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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운 Oct 03. 2022

"내가 만들 거야,
나만의 유토피아 마을"

레비 구루바이(Levi Gurubay) / 멕시코 와하카 / DJ


"내 고향마을에 같이 가지 않을래?"


멕시코, 호주, 노르웨이, 한국. 국적도 다양한 4명이 꼬박 5시간을 달려야 하는 시골마을로 작은 차를 몬다. 가로등도 없고, 온통 비포장도로라 우당탕탕 달리는데도 마냥 즐겁다. 도시의 불빛에서 한참 멀어져서 차창 밖으로 내다본 하늘엔 별이 촘촘히 가득했다. 이 말도 안되는 여정은 와하카에서 시작됐다.  




photo  by Unsplash


와하까는 멕시코시티에서 버스로 일곱시간 남동쪽으로 달리면 만나게 된다. 널찍한 멕시코 남부, 그 중심에 의연히 자리잡고 있다. 와하카 주는 멕시코에서도 원주민 문화가 잘 남아있다고 알려진 지역이다. 데낄라와 형제뻘이지만 다소 거칠고 광야의 향기가 나는 멕시코의 술 '메스깔'은 와하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와하카의 첫인상은 정갈하고 세련된 느낌이다. 멕시코시티가 분주하면서도 다양한 매력이 섞인 도시라면, 와하카는 차분하고 군더더기 없는 공간이다. 마치 서울과 분당의 느낌이랄까. 네덜란드의 소도시가 연상되는, 쭉쭉 뻗은 길을 따라 자전거로 마냥 내달리고 싶은 기분이 드는 깔끔한 도시다.


내 상체보다 커다란 50L짜리 배낭을 매고 '붉은 하늘 cielo rojo'라는 이름의 호스텔에 들어선다. 그러자 로비에 있던 누군가 인사를 건네온다. 길게 길러서 땋은 머리, 목에 새겨진 피라미드 문양의 타투가 눈에 들어온다. 밝게 말을 걸어온 그는 인사를 몇마디 나누고는 다짜고짜 오늘밤 파티에 오겠냐고 묻는다.


"내가 오늘 디제잉 할 예정이거든! 너도 오면 진짜 재밌을걸?"

DJ의 파티 초대라니, 흥미로운 제안이다. 가벼운 듯 다정한 초대에 기꺼이 가겠다고 했다.


저녁 10시, 나를 초대한 DJ가 마침 디제잉 테이블에 오르고 있었다. 왔어? 하는 표정으로 씩 웃어보이고는 헤드폰을 쓴다. 아까와는 다른 모습, 카리스마 넘치는 DJ 그루바이다. 흥 넘치는 밤을 보내고, 다음날 어렴풋이 술이 깰 때쯤 DJ 레비 그루바이를 두번째 인터뷰이로 초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날이 밝고 파티의 여파로 노곤한 몸을 이끌고 와하카 시내를 구경하러 나선다. 와하카는 세련된 외양과 어울리게 음악이 끊이지 않는 도시였다. 여러 골목을 휘감아 웅장한 관현악이 낮게 울려퍼진다. 시내 중심부를 따라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산토도밍고(Santo Domingo) 성당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붉은 하늘' 호스텔로 돌아왔을 때, 레비는 다시 동네 한량 같은 표정으로 돌아와 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의 여자친구 실비아와 함께다. 호주에서 온 실비아는 반짝이는 눈빛, 다정하고 올곧은 말투, 그을린 피부가 매력적인 친구다. 원래 대기업 소비자 상담센터에서 일했던 실비아는 멕시코로 여행을 왔다가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호주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레비를 만난 것도 멕시코 여행중에서였다.


이 두 사람에게 인터뷰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인터뷰 요청을 하자, 재밌다는 표정으로 흔쾌히 수락한다.


"그럼 내일 모닝커피 하면서 인터뷰 하자! 재밌겠다. 재밌어."

레비는 특유의 쿨한 말투로 바로 약속을 잡는다. 실비아도 옆에서 같이하겠다고 거든다. 각각도 좋지만 함께 있을 때 케미가 멋진 두 사람이다.




하지만 '모닝'의 개념이 달랐던 걸까. 두 사람이 로비에 나타난 것은 다음날 오후 2시였다.


"미안, 미안. 오늘 저녁에 고향집에 가야해서 짐을 좀 챙기느라고. 바로 시작하자."


부스스한 얼굴에 미안해 하는 기색이 역력해서 별다른 불평 없이 노트를 펼쳤다.  사람이 늦은 덕분에 나도 여유로운 오전을 보냈다. 인터뷰에 속도를 내려고, 부드러운 진입로 없이 본론부터 들어갔다.


"대표 질문부터 시작할게. 넌 꿈이 뭐야?"


우문현답이었을까. 허무맹랑하게 추상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데, 레비는  구체적인 답을 내놓는다. 아마 평소부터 꾸준히 해온 생각이었기 때문일 거다.


"나는 사실 구체적인 꿈이 하나 있어. 내년쯤에 땅을 사서 공간을 마련하고, 친구들과 각자 오두막집을 하나씩 짓는 거지. 이 공간에는 학교도, 의사도, 심리상담사도 있는 곳이지. 보육원도 있고. 누군가는 여름에만 왔다 갈수도 있고, 주말에만 놀러와도 좋아."

"마을을 새로 만들겠다는 말이야?"

"응. 중요한 것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거야. 그 안에서 농사도 짓고, 동물도 기르고."


레비의 계획은 이렇다. 1만 유로쯤 들여서 산기슭에 저렴한 땅을 사고, 자연친화적 재료들로 집을 짓는다. 이 마을은 기초적인 생활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꾸며진다. 매년 마을에 사람들을 초청해 뮤직 페스티벌을 열고, 다른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삶의 방식과는 다른 길을 보여주는 것이 꿈이란다.


"마을에서는 모든 것을 유기농으로 재배해 나누어 먹고, 또 함께 요가를 하고 치유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 몇개월이든 몇년씩 이 마을에 와서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하면서 재능을 나눌 수 있는 의사, 수의사, 선생님이 필요하겠지.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해."

"그럼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고 싶은 거야?"

"하하. 그건 너무 거창한데. 게다가 요즘엔 커뮤니티라는 말이 남용되는 거 같아. 그냥 모두가 와서 편히 머물 수 있는 큰 집(big house) 정도라고 부르자."


레비에게는 이 비전을 함께하는 친구가 두 명 더 있다. 한 걸음씩 내딛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초기 자본은 셋이 다 부을 거야. 그 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돈을 내지 않아도 돼. 이윤을 내려고 하면 무조건 처음 뜻이 변질되고 말거야. 곡물과 동물은 직접 키우고, 모든 걸 교환경제로 돌아가게 하는 거지."

"돈이 많이 들지 않겠어?"

"맞아.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 After hours club이라고, 24시간 클럽처럼 밤새 운영되는 이벤트를 주최하기도 하고, 때때로 디제잉 일도 열심히 하고 있지"


레비가 이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푸에르토 에스콘디도(Puerto Escondido, '숨겨진 항구', 와하카 남부 해안)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이 지역은 원래 항구로만 이용되고 사람이 살지 않다가, 1940년도에야 학교와 교회가 세워지고 마을이 생겨났다. 그러나 1970년대 도로가 연결되기 전까지는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상선이 유일한 외부물품 보급로였다. 400여명 남짓의 주민들은 각자 생산한 물품을 교환하거나 무료로 나누면서 자급자족 경제를 꾸려갔다. 물론 그 이후 관광지로 명성을 얻고 도시의 규모가 커가면서 과거의 모습은 사라졌다. 현재 푸에르토 에스콘디도의 인구는 4만5천, '서퍼들의 정류장'이라고 불리고 있다.


"당시 푸에르토 에스콘디도에서는 누구에게나 음식과 필요한 것들을 무료로 나눠줬대. 내가 만드려는 마을이 차이가 있다면, 술을 마셨다는 점이지. 내 마을에선 술을 안 마시도록 할 거야. 아이들과 함께 지내야 하니까. 물론 나는 술을 좋아하지만... 하하. 파티가 필요하면 시내로 나가거나 해야겠지."


레비는 100여명 남짓, 모두가 서로 알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회에서 살기를 원한다. 유럽 곳곳에 퍼져 있는 소규모 마을들을 연구하고 배워가면서 자신만의 마을을 꾸려나가기 위한 그림을 그린다.


"원래 대학 전공은 관광경영이었어. 해보니까 관광 일은 하고 싶지 않아졌어. 그 다음엔 정치 보좌관이 되려고 했는데. 세 번의 시험에서 9점 만점에 9점을 맞아야 통과할 수 있었거든? 3달 공부하고 쫓겨났지. 하하."

레비는 지나간 꿈에는 미련 없다는 표정으로 호쾌하게 웃는다.

"그때 정치보좌관이 되고 싶었던 건, 세상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야. 대학 초년생의 로맨틱한 꿈이었지."

"뭘 바꾸고 싶었는데?"

"멕시코에서는 모두가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가려고 해. 하나의 그림을 따라가고 싶어하지. 미국식 소비문화가 사실은 멕시코에서 더 크단 말이야. 모두가 끊임없이 물건을 사고, 끊임없이 아이를 갖고, 도시는 점점 커지고 공장은 미친듯이 돌아가자. 큰 도시가 꼭 번영을 의미하는 건 아닌데. 누군가는 이 무의미한 질주를 멈춰야해. 나는 직접 내 삶으로,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


나만의 가치를 담은 마을을 세우는 것도 결국엔 정치 아닌가. 그는 돌고 돌아 자신의 운명을 찾아가는 중이다.


"처음에 멕시코를 정복한 사람들이, 뭘 제일 먼저 했는지 알아? "

"유럽에서 온 정복자들이?"

"응. 원주민을 일정 지역에 가둬놓고 음식을 제한했어. 영양이 부족하도록 말이야. 그래야 반항을 못할테니까. 그 다음엔 성당을 지어서 종교에 의존하게 했고,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리게 했지. 그쯤되면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게 돼. 무언가 바뀌려면 가족이 희생되어야 하니까. 그렇게 사람들이 불평없이 살아가게 한 거야."


레비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고, 안정적인 직업을 이어가야만 한다는 사회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아. 대신 울타리가 필요한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우고 싶어. 그 아이들에게 멘토가 되어주고 싶고, 그 아이들이 홀로 설 수 있게 되면 언제든 떠나게 할거야. 아이들에겐 그런 지지대가 필요해. 언제든 나를 찾아올 수 있고, 지칠 때 와서 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어."


그래서인지 '아이들을 입양하기'는 레비는 인생을 통틀어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에 첫번째 미션이었다.


"아이들을 입양해서 내가 받은 것들을 모두 돌려주고 싶어. 난 그동안 정말 많은 것들을 받아왔거든. 부모, 친구, 심지어는 인도에서 만났던 낯선 친구들조차 나를 모르는데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줬어. 그게 사랑이든, 아니면 공부든, 언어든 말야. 대가 없는 도움이었지. 언젠가는 나도 돌려줘야만 한다는 생각을 해.


레비의 두번째 버킷리스트는 '나만의 음악 하기'. 그가 음악의 세계로 뛰어든지 10년이 넘었다. 디제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6년째. 작곡도 직접 하고 플로우도 만들면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역시 '도시가 아닌 곳에서 살기'를 꼽았다. 결국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와 촘촘히 연결되는 그의 모든 꿈, 모든 버킷리스트를 이룬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것 같다.


"나의 할아버지는 아주 작은 마을에 살았어. 그때 그 삶이 너무 좋아보였어. 특히 노인에게는. 나도 언젠가는 그런 곳에서 평온하게 살아가는 나이든 남자(an old man)가 되고 싶어."


인터뷰가 다 끝난 후 내 표정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예기치 않게 생생하고 구체적인 꿈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그의 모든 꿈이 이뤄져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예기치 못했던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인터뷰 노트를 덮고 일어나는 나에게 레비는 갑자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저기, 있잖아. 오늘 저녁에 뭐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다시 바라봤다. 레비 옆에서 실비아도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 오늘 고향집에 간다고 했잖아. 사실 나도 7년만에 가는 거거든. 부모님은 안 계시고, 삼촌이랑 이모들에게 인사드리러 가려고 해. 오늘 밤에 갔다가 내일 오후에 다시 돌아오는 짧은 여행이긴 한데."

"와, 정말 짧은 여행이네."

"하하. 그렇지. 우리도 즉흥적으로 정한 여행인 걸. 나랑, 실비아, 그리고 내 친구 융서가 함께 갈거야."

레비는 살짝 뜸을 들이더니 말을 잇는다.

"너도 같이 갈래?"


그 말을 들은 게 오후 5시 무렵. 그리고 우리 넷이 탄 렌트카가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한 것은 오후 7시였다. 이미 시야에서 멀어진 와하카 도심에는 어스름이 깔려오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원래 오늘 밤은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고 평안히 쉬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와하카 시내에서 편도 5시간이 걸리는 깡촌 마을로 달려가고 있다니, 이게 꿈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차는 점점 시골로 향해 갔고, 도시의 불빛이 적어지는만큼 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흐르고 있었다. 창문을 반틈 열자 선선한 밤공기가 가득 밀려들었다. 차가운 별빛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미친척 오겠다고 하길 너무 잘했어, 라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세 시간쯤 달렸을까, 점점 비포장도로의 빈도가 높아졌다. 운전대를 잡은 실비아는 자정 전까지 도착하려면 속도를 내야 한다며 도로의 요철에 망설이지 않고 달렸다. 처음엔 쿵쿵 떨어질 때마다 쏘리, 미안한 기색을 보였지만 나중에는 알아서 충격에 대비하라는 듯 "bump!!!"라고 소리치고 엑셀을 밟았다.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다. 예고도 없이 쏟아붓는 장대비에, 우리는 당황하기보다는 이게 뭐냐며 웃기 시작했다. 쏴아아 쏟아내리는 빗소리를 이겨내고 레비가 선곡한 음악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새까만 밤에 사람도 불빛도 없는 도로를 우당탕탕 달리면서 우리는 뭐가 그렇게 웃겼는지 깔깔 많이도 웃었다.


레비의 고향집에 도착한 것은 밤 열한시가 넘은 시간. 와하카 서부의 뜨라씨아코(Tlaxiaco) 지역, 그곳에서도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레베카 이모는 늦은 시간까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Buenas noches, mucho gusto(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볼을 맞추며 인사를 나눴다.


늦은밤, 노란 등에 불이 들어왔지만 여전히 어둑하다. 다리 길이가 제멋대로인 앉은뱅이 테이블 위로 따뜻한 저녁이 차려졌다. 브로콜리가 들어간 붉은 수프, 멕시코식 또띠야, 따뜻한 빵과 잼. 다 먹자 머물 곳을 안내해주셨다. 창고 비슷한 모양의 헛간에 나무판자를 깔고 매트리스와 이불을 깔아둔 공간이었다. 소박했지만, 조카가 온다는 소식에 세심하게 꾸며두신 게 분명했다.  


다음날 우리는 다시 이카틀란(Ixcatlan)이라는 마을로 향했다. 레비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자, 레비의 다른 이모와 삼촌들이 살고 계시는 곳이다. 어린 레비가 살던 집은 큰 교회의 바로 옆이었다. 나무로 된 문을 열자 그의 이모는 반가움의 탄성을 지으며 레비를 꼭 안아준다. 스물다섯에 떠난 조카가 어느새 서른 두 살이 되어 여자친구, 그리고 머나먼 대륙에서 온 친구들을 둘이나 데리고 돌아왔다.


준비해주신 점심을 먹고 비닐하우스로 가서 레비의 삼촌과 사촌동생들을 만났다. 레비를 지그시 들여다보는 그들의 눈에서 신기함과 감격, 변해버린 그의 지난 세월을 더듬어내리는 눈빛을 본다.  


여러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오후 2시. 렌트카 예약은 24시간이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출발해도 반납 시간에 맞출수 있을까 말까한(사실 실패했을) 시간이었다. 슬슬 짐을 챙겨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그때 레비의 이모가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좀 더 있다 가면 닭이라도 잡는 건데..."


닭이라니. 시골 농가에서 다해야 대여섯마리밖에 안되는 닭 중에 하나를 잡는다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 (사실 나는 전혀 몰랐지만) 레비는 닭을 잡아주신다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라며 난리가 났다. 우리에게 정말 잘 대접해주고 싶으신 거라고. 그런 마음인 거라고. 잠시 우리 넷 사이에 진지한 상의가 오갔다.


마침 그날 밤은 멕시코 독립기념일(9월 16일) 전야제로 와하카 시내에 성대한 불꽃놀이가 열리는 날이었고, 나는 그걸 내심 기다려왔었다. 내가 돌아가야겠다고 하면 이 친구들은 당연히 내 뜻을 존중해줄 것이다. 잠시 고민하고 이내 빠른 결정을 내렸다. 독립기념일은 매년 돌아오지만, 이 마을은 평생 다시 올 수 없겠지.


"나도 여기 더 머물고 싶어."

레비는 환호성을 질렀다. 이거 이거, 처음부터 제 시간에 돌아올 생각 없었던 거 아냐? 생각해보면 왕복 10시간이 넘는 여행을 24시간 안에 끝낸다는 게 쉬운 미션은 아니었다. 낚인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런 낚시라면 기꺼웠다. 장기여행의 매력은 매순간 마음 끌리는대로 선택하는 것이니까.


갑자기 여유가 생긴 우린 샤워를 하고, 일기를 쓰고,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갑자기 이모가 닭 잡는 걸 직접 구경하라며 마당으로 부르셔서(굳이 그러실 것까지는 없었는데), 닭 목에서 천천히 피가 흐르는 걸 흐린 눈으로 바라봐야 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부엌의 의자에 동그랗게 모여앉아서 옥수수알을 벗겼다. 레비의 할아버지가 만드셨다는 작고 낡은 나무의자는 세월에 눌리고 깎인 할아버지의 몸처럼 단단해 보인다.


저녁까지는 두어시간 남은 시간, 이 동네 초등학교 선생님인 레비의 사촌형이 문소리를 내며 들어온다.

"너네 시간 남으면 학교 와서 애들 좀 놀아줄래?"


우리는 흔쾌히 나섰고 아이들은 우리를 좋아하고 잘 따랐다. 나는 무적의 필살기, 한글로 이름 써주기를 시작했고 디에고, 나임, 알란, 알레한드로 같은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줬다. 귀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이름이 적힌 종이를 소중히 품에 안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마지막 식사는 성대하게 차려졌다. 따뜻하고 정성된 음식에서 진한 사랑이 느껴진다. 긴 저녁시간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이모는 그동안 레비가 살아온 시간들에 대해 묻는다.

"그래서 뭐 하고 돈을 번다고?"

"디제잉이요. 무대에서 노래를 틀어주는 건데요, 음악을 믹싱하고..."

이모의 표정에 물음표만 늘어난다.

"노래를 부른다고?"

"아뇨. 노래하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부를 수는 있는데. 음악을 믹싱하기도 하고... 아, 믹싱이 뭐냐면요."

레비는 몇번씩 다시 설명했다. 이모와 삼촌은 끝까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신 듯 했다. 그렇지만 다 듣고 나서 장하다며 잘하고 있다며 두툼한 손으로 레비의 등을 쓸어준다. 앞으로도 그렇게 잘 살거라, 건강하기만 해라, 하는 마음이 묻어나는 것 같아서 나도 함께 위로를 받는다.




따뜻함이 가득했던 2박3일 간의 레비 고향 투어. 이 여행을 하면서 레비가 꿈꾸던 새로운 마을이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낯선 사람과도 따뜻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재능을 나누고, 아이들은 함께 돌보는 것은 바로 레비가 나고 자란 곳에서 싹튼 생각이었다.


레비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모두가 일한만큼 알맞은 보상을 받고, 언제나 배움의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곁에 있는 사람들을 거리낌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레비. 그는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직접 만들어가기 위해 오늘도 한 삽을 뜬다.


"10년 후? 내 프로젝트를 도와줄 좋은 친구들이 함께하고 있겠지. 내가 여는 뮤직 페스티벌에 많은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고. 나는 계속 음악을 할테니까."

"그럼 40년 후의 네 모습은 어떨 것 같아?"

"40년이라.. 글쎄. 마을의 정원에 앉아 책을 읽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내가 배우기도 하고. 여유로운 삶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그러곤 아이들에게 말해줄 것 같아.


“얘야,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이 나무가 요만했는데, 벌써 이렇게 그늘을 만들고 있잖니.”  "




- Oaxaca, Mexico

- 인터뷰 날짜 : 2015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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