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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운 Oct 04. 2022

"누구나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세울 거야"

아르만도(Armando) / 과테말라 안티구아 / 비영리단체 활동가


과테말라의 옛 수도였던 안티구아(Antigua, 스페인어로 '오래된'이라는 뜻)는 이름처럼 낡아있다. 머리를 비우고 돌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드는 곳이다. 걸음마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이곳에선 굳이 미래를 지향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향기가 경주의 색감을 닮은 곳. 나라를 불문하고 고도(古都)의 매력이란 이런 것 아닐까. 담박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마냥 여기 머물며 무위(無爲)를 즐긴다. 물론 잠깐만 들렀다 가려다가 이 도시의 매력에 발목 잡혀 버린 경우가 더 많다.





새벽 4시, 빛바랜 도시를 둘러싼 화산 사이로 회색빛 어둠이 짙게 쌓여있다. 잠든 도시의 한 구석에서 아르만도는 출근 준비를 마친다. 어둠을 깨트리지 않으려고 발걸음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새벽인지 밤인지 모호한 이 시간에 오르는 출근길이 고될 법도 한데, 그는 익숙하다는 듯 웃어 보인다.


“여기서 과테말라 시티까지 출근하려면 2시간은 일찍 나서야 해. 하지만 집값을 생각하면 여기 사는 게 나아. 안티구아에 산 지 오래되어서 정도 들었고.”


과테말라의 현 수도인 과테말라시티는 한국의 서울 같은 곳이다. 사람도 차도 일도 많고, 복잡하고 시끄럽다. 안티구아는 과테말라시티의 북서쪽으로 25km 떨어져 있다. 차로는 두 시간 거리라, 아르만도처럼 두 도시를 오가며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


멀지 않은 도시지만, 두 도시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과테말라시티는 불안한 치안만큼 차갑고 어수선한 인상을 가졌다. 하지만 차를 타고 안티구아로 들어서는 순간,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돌길 위에 달그닥 거리는 바퀴소리는 우리를 느린 과거로 안내한다. 한 번 안티구아에 정들어 버리고 나면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 마음이 백번 이해가 된다.


오전 4시에 집을 나서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느새 오후 8시. 그런데도 아르만도는 좀처럼 피곤한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는 컵에 물을 따라 마른 입술을 적시고 하루의 피로를 덜어낸다. 밥 먹으며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냐며 요리를 시작한다. 저녁 메뉴는 휘리릭 끓여낸 파스타와 오늘 사온 빵 몇 조각. 주방기구를 다루는 솜씨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방이 세 개나 되는 2층짜리 집. 아르만도는 혼자 살고 있다. 2014년부터는 여행객들에게 호의로 방을 내어주는 카우치서핑(couchsurfing) 커뮤니티에 호스트로 참여하여 각국에서 온 게스트를 만나고 있다. 아래층 넓은 방은 게스트에게 내어주고 정작 자신은 2층의 조그마한 방을 쓴다.

“이렇게 좋은 방들을 두고, 왜 2층 방을 쓰는 거야?”

“손님을 좋은 방에 대접하는 것이 더 좋아. 카우치서핑 호스트가 되고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거든.”


파스타 면이 익어가는 동안, 부엌 한편에서 기다리는 내 모습이 밟혔는지 아르만도는 주전자에 물을 올린다. 투박한 주전자 속의 팔팔 끓는 물에 초콜릿 바를 한 조각 뚝 떼어 넣자 금세 녹아들어 달달한 핫초코가 된다. 하루 종일 사람의 흔적이 없어 쌀쌀하기만 했던 부엌에 조금씩 온기가 돈다.


밥을 먹는 아르만도와 펜을 쥔 내가 마주 앉았다. 종일 일하느라 허기졌을 그는, 입에 파스타를 한가득 물고 눈짓으로 시작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아르만도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힘을 가졌다. 푸근한 표정뿐 아니라 말투의 세심한 배려까지. 과테말라 사람들에 대한 긍정적인 편견이 생긴 건 다 아르만도 덕이다.


아르만도는 4년 전부터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청소년 담당 부서에서 일한다. 문제 상황에 처한 청소년, 특별보호가 필요한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보호할 기관을 선정하고 관리·감독한다. 부모를 잃은 고아, 가정 폭력 피해 청소년, 장애 아동, 범죄를 저지른 14살 이상 청소년이 대상이다. 이 사업들은 정부의 지원금으로 운영된다.


“그 전에는 미혼모 지원 사업을 담당했어. 수만 명의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지. 여전히 수많은 미혼모들이 직업도 구하지 못하고 차별의 굴레 속에서 고통받고 있어. 아직도 우리가 도와야 할 사람들은 세상에 가득해.”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기 전까지 아르만도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사무실을 두고 개인 사업을 했다. 침술이나 마사지 기계를 판매하는 일이었다. 수입은 그때가 더 좋았을지 몰라도, 지금의 아르만도가 훨씬 행복하다.




아르만도의 집은 색 바랜 바둑판처럼 정갈하게 펼쳐진 안티구아의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다. 안티구아는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된 1773년까지 200여 년 동안 과테말라의 수도였다. 중세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시. 세월의 발길이 쓰다듬어 반질반질해진 돌길을 따라 걸으면 끝없는 생각 속으로 빠져든다. 시간의 향기가 묻은 건물 벽들을 짚어가며 걷다 보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맥도날드에 이질감을 느끼게 될 만큼, 바깥과는 다른 시간을 품은 곳이다.


아르만도는 안티구아에 산 지 어느새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가 처음 여기 왔을 때만 해도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관광객도 지금보다 적고 프랜차이즈 기업들도 없었다.

“안티구아도 그동안 많이 변해왔어. 내가 그때 20대였으니까, 내가 변해 온 만큼이나 이 도시도 모습을 많이 바꾸어 온 거지.”

“그때의 안티구아와 지금의 안티구아, 어떤 쪽이 더 마음에 들어?”

“글쎄, 변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옛날의 안티구아도 좋아하지만, 자연스럽게 달라져가는 안티구아도 역시 사랑하지.”

아르만도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담담히 오늘의 현실을 받아들인다. 다만, 내일을 바라보는 걸 그치지 않는다.


그런 아르만도에게 꿈을 물었다.

“꿈이 있다면, 번듯한 회사를 하나 차리는 거야.”

의외였다. 자원봉사나 NGO 활동으로 남은 삶을 채우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 어떤 회사인지 묻자 정해진 건 없다며 여러 가지 생각을 늘어놓는다. 환경친화적 호텔을 차리는 것도,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돈을 잔뜩 벌 수 있는 기업을 여는 것도 좋단다.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많은 사람을 안정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듬직한 회사가 되고 싶다는 것. 번드르르한 회사 사장님이 되고 싶은 이유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많이 고용하고 싶어서라니?

“과테말라에 있는 대다수 회사들은 35살 이상을 채용하지 않아. 나이가 들어 해고당하거나, 뒤늦게 직업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일할 곳이 없어. 비단 나이 든 사람뿐 아니라 미혼모나 장애인도 마찬가지야.”

“일을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채용하겠다는 거야?”

“그렇지. 내 회사는 잘 굴러가고 돈도 많이 버는 회사였으면 좋겠어. 내가 원하는 사람을 모두 뽑을 수 있게 말이야. 60살이 넘은 사람이든 경력에 단절이 있는 사람이든, 사실 일하는 데는 문제가 없거든.”

“직원을 위한 회사라니. 멋진데.”

“만약 호텔을 세운다면 숲 속 한가운데 커다랗게 짓고 싶어. 그리고 그곳에 미혼모들을 고용하는 거야. 우리 사회에서 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 안에서 함께 살며 일하게 하고 싶어. 그들을 위한 의사도 고용하고.”

마치 영웅이 된 듯, 아르만도의 표정이 의기양양하다.  


아르만도가 이토록 ‘올바른 고용’에 목말라하는 이유가 뭘까.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나는 지난 4년 동안 1년 단위로 고용계약을 해왔어. 매년 계약이 연장될지 불투명했고 계약을 연장하기 위해선 따로 노력을 기울여야 했어. 불안정한 삶의 연속이지.”

“언제 끝날 줄 모르는 1년짜리 비정규직이라니… 정말 힘들었겠다.”

“어쩌겠어. 사장들이 정규직 채용을 원하지 않는 걸.”

“열악한 고용환경이 계속되면 결국엔 문제가 생기게 될 텐데.”

“고용 안정성 문제뿐이 아냐. 과도한 업무강도도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있어. 내 직장의 예를 들면, 과테말라 전역의 청소년 지원기관 관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야. 전국의 청소년 클리닉을 관리·감독해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곳곳에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청소년에게 긴급한 도움을 줘야 하는 클리닉이 마음대로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었어.”

“결국 소비자나 지원을 받아야 할 대상자들이 힘들어지겠는 걸.”

“맞아. 내 경우에도 그래. 말도 안 되는 인력배치 때문에 내가 아무로 노력해도 아이들에게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해주기가 힘들어. 같은 보호대상 청소년 중에서도, 정신적·신체적 장애가 있는 청소년과 범죄 청소년은 구분해서 보호해야 하거든. 하지만 그 아이들은 같은 공간에 방치되고 있어. 세심한 관심과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아이들인데…….”

아르만도는 설명하기 끔찍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지 인상을 찌푸려 보인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표정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가 생기는 건 뭐가 정말 중요한 지 생각하지 않고, 보여주기 식 제도를 만들어 둔 채 방치하기 때문이야. 제도는 만들면 그만이고, 그 후에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관심이 없으니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지. 충분한 인력을 고용해서 일을 처리해야 해. 합당한 노동조건 아래서 말이야.”


우리 사회 곳곳의 톱니바퀴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선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아르만도는 믿는다. 안정적 고용과 합리적 노동량. 당연해 보이는 것들의 결핍이 사회의 기반을 갉아먹는다는 얘기다.


“늘 하던 대로 하고, 같은 일만 반복하면, 같은 결과만 있을 뿐이야. 변화는 선물처럼 찾아오는 게 아니니까.”




10년 후의 아르만도는 어떤 모습일까. 올해로 49살, 아르만도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꽤 구체적인 모습으로 10년 후의 꿈을 그린다.

“나는 지금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으니까. 내년이면 변호사 자격 증을 갖게 될 수 있을 거야.”

아르만도가 변호사 과정을 밟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흔히 우리가 늦었다고 생각하는 나이. 또는 은퇴, 노후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나이. 나는 여전히 그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다.

“변호사가 되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네. 정말 열심히 일할 거야. 과테말라에는 이미 변호사가 무지 많거든. 그치만 그만큼 일거리도 많아서 업무시간에 비해서 일은 항상 넘칠 거야. 요즘엔 심지어 빨리 처리해주겠다며 웃돈을 요구하는 변호사들도 있대.”


그러나 아르만도의 관심사는 돈이 아니다. 웃돈을 마련할 여력이 되지 않아,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은 것뿐.

“여기저기 바쁘게 쏘다니면서 사건들을 빨리 처리해주고 싶어. 곤란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언제쯤 해결할 수 있을지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걸. 난 정말 열심히 일할 거야.”  

예비 변호사 아르만도의 눈이 반짝거린다.

“민사와 형사 중에선 형사사건들 위주로 일하고 싶어. 내가 그동안 정부 기관이나 시민단체에 일하면서 함께 일했던 노동자들이 주로 형사재판에 많이 연루되고 또 도움이 필요하거든.”

“노동자들을 돕고 싶은 거구나?”

“그들에게 일은 정말 중요한 거야. 일이란 건 곧 의식주니까. 그런데 재판을 받거나 형을 살게 되면 일을 못 하게 돼. 하루라도 일을 못 하게 되면……. ”

아르만도의 표정이 비통해진다. 그동안 지켜봐 온 무수한 가장들의 어깨를  떠올리고 있는 것 같다.


“내 친구의 남편이 갑자기 해고당해서 소송을 걸었어. 소송은 2년이나 걸렸고, 결국에는 이겼지만 그동안의 생활이 너무도 비참했대. 교육비, 집세, 식비…… 그런 것들은 소송이 있다고 해서 멈춰주지 않으니까. 지옥 같았겠지.”


40년 후의 미래를 묻자, 내내 슬프고 정의로운 눈을 하고 있던 아르만도가 재밌다는 듯 웃는다.

“하하. 40년 후라. 딱히 오래 살고 싶지는 않아. 나이가 많으면 건강이 나빠지잖아. 죽음이 두렵지는 않아. 죽음은 영생의 첫날이라고 믿어.”

꿈을 가진 사람과 죽음에 초연한 사람. 선뜻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이 아르만도에게서 보인다. 죽음에 초연할 만큼 자신의 것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아서 타인을 향한 꿈을 꾸고, 그래서 그 꿈은 더 강력한 것 아닐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내 표정이 어두웠는지 아르만도는 이야기를 돌린다.

“글쎄, 그때도 살아있다면 대학교수가 되어보고 싶어. 충분한 여유와 휴식 시간이 있는. 변호사 공부를 할 때, 교수들이 나랑 비슷한 나이였어. 친구처럼 지내는 것도 재미있었지. 그때 보니까 그들의 삶도 괜찮아 보이더라고.”

친구 또래인 교수들에게 수업을 듣는 게 껄끄러웠을 법도 한데, 아르만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중요한 것은 나이나 체면 같은 게 아니다.

“법 공부를 처음 시작한 건 2006년이었어. 생각해보면 사실 늘 법을 좋아했어. 법과 관련된 영화나 소설도 많이 챙겨 봤지. 왜 진작 법을 공부하지 않았나 몰라. 하지만 늦게나마 시작했다는 사실이 참 즐거워.”

“본격적으로 법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던 건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거야?”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 그게 법 공부를 시작한 첫 번째 동기였어.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하면서 계속 걸리는 게 법적 문제들이었거든. 예를 들면, 가난한 사람들이 일산화탄소를 마시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부엌 설비를 설치해줄 때 고려해야 하는 법적 문제가 많아. 의료나 교육 지원을 할 때도 매번 따져봐야 하는 법적 조건들이 있지. 결국 더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 법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거야.”

“정말 멋진 생각이다. 뒤늦게 공부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35살 이상이 2명 더 있었어. 혼자가 아니어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지. 그리고 내겐 법이 꼭 필요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

만학도 아르만도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생각 하나로 뒤늦은 공부의 어려움을 헤쳐 온 그가 조금 전보다 커 보인다.


꿈을 이루는 데 방해되는 장애물이 무엇이냐고 묻자, 희망으로 반짝이던 그의 눈동자가 현실로 돌아온다. 원대한 포부, 순수한 이상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법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돈이다.

“돈, 시간, 그리고 법. 그것만 해결되면 나의 꿈을 이룰 수 있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거 말이야?”

“아니, 사실 집에서 술을 팔고 싶거든. 그런데 미신고 술장사는 법에 걸린단 말이지.”

아르만도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는 탓에 나도 덩달아 자세를 낮춘다.

“뭐?”

“하하, 장난이야. 너무 놀라니까 미안하네. 내게 많은 돈과 시간이 있다면, 이런저런 법적 규제들이 없다면.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거야. 그게 항상 아쉬워.”


아르만도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간명하다.

“모든 사람에게 직업이 있어서 돈을 벌고, 자신이 먹고살 것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행복하다고 봐. 거리에 살고 있는 사람이 없고 말이지. 결국에는 일할 곳을 만들어야 해.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모든 사람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게.”

“일자리는 정말 중요하지. 과테말라도 마찬가지구나.”

“수많은 과테말라 사람들이 미국으로 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이 씁쓸하다. 일자리가 곧 목숨이라고 생각하는 아르만도, 인터뷰의 첫머리에서 정의로운 고용을 꿈으로 삼았던 이유를 이제 알겠다.


“누구나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도둑질을 할 사람이 있을까? 모두들 신용도 보장될 거고. 지금 우리 세계 부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봐. 한 사람이 일을 해서 최저임금을 보장받고,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된다면 말야. 그렇게 한 세대가 바뀌면 자식 세대의 삶은 더 나아질 거야. 그리고 또 다음 세대는 더 큰 가능성을 보게 될 거야. 이러한 순환이 계속 반복되면, 그게 바로 유토피아지.”  


당장 모든 걸 뒤집을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르만도는 한 계단씩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믿는다. 변화의 시작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고용,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사회에서부터다.


“그렇다면 특별한 힘이 생겨서 이 세계에서 딱 하나를 바꿀 수 있다면 뭘 고를 거야?”

방금 아르만도가 그려낸 유토피아의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던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질문을 건넸다.

“내일이 월요일이잖아? 오늘을 금요일 저녁으로 만들어야지. 하하.”

나는 예기치 못한 답변에 큰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때묻지 않은 희망과 뜨거운 포부가 있는 아르만도에게도 월요병은 피해 갈 수 없는 숙제다. 게다가 내일도 새벽 네 시에 일어나야 하는 그니까.

“하하, 농담이었어. 내가 바꾸고 싶은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야. 돈에 대한 열망이 모든 악(惡)의 근원이라고 믿어. 돈에 대한 사랑이나 욕망을 없애버리고 싶어.”

“사람들이 돈을 원하지 않게 만든다는 거야?”

“물론 돈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 하지만 돈은 단순한 교환수단이라는 거야. 사람들 마음속에 돈이 교환의 수단으로만 존재하면 좋겠어. 무조건적인 축적의 대상, 무한한 탐욕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해.”

“그렇다면 또 많은 것들이 달라지겠네.”

“그렇게 된다면, 아프리카에 죽어가는 난민이 있을까? 기아 문제가 남아 있을까? 모든 국가들이 고루 자원을 나누어 쓸 수 있다면 말이야. 돈 자체를 신성시하는 욕심을 모두 없애버리고 싶어. 그렇다면 모두가 돈을 끌어안고 있기 위해 애쓰지 않을 텐데.”


아르만도가 살아온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가 간직하고 있는 꿈과, 그걸 이루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을 보니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누구나 당당하게 일할 수 있고, 누구도 돈의 노예로 살지 않는 세계. 그게 아르만도가 꿈꾸는 행복한 세상이다.


인터뷰를 마친 아르만도는 다음날 출근을 위해서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의 내일 하루가 또 어떤 한 사람에게 희망을 줄지 기대된다. 그간 쌓아 온 50년 인생보다, 더 값진 50년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만 같다.



- Antigua, Guatemala

- 인터뷰 날짜 : 2015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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