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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운 Oct 27. 2022

"난 변호사 일보다
태권도 사범인 게 더 좋아"

리카르도(Ricardo) / 페루 아레키파 / 변호사 겸 태권도장 관장


아레키파를 둘러싼 신비로운 봉우리.  photo by Unsplash 


페루 하면 어떤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오를까? 하늘 위에 숨은 신비로운 도시 마추픽추, 전통의상을 입고 야마를 몰고 가는 원주민 가족을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다채로운 문화의 나라 페루를 여행하다보면 상상하지 못했던 도시의 풍경도 만나게 된다.


페루에선 만나는 도시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마추픽추의 관문 쿠스코는 흙먼지 묻은 아이의 정겨운 함박웃음 같고, 수도 리마는 세상을 온통 짊어진 지식인의 그늘진 뒷머리 같았다. 그리고 아레키파는 페루에서 마주친 도시 중 가장 의외의 공간이었다. 고생을 모르고 자란 부잣집 자제의 창백함 같은 기운이 서려있다.


‘하얀 도시 (La Ciudad Blanca)’라는 별명을 가진 도시 아레키파는 그 이름만큼이나 온통 하얗게 덮여있다.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온 건물의 낯빛이 하이얗다. 그곳에서 나는 이 도시처럼 의외인 사람을 만난다. 내가 가지고 살아 온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그래서 더 반갑고 뜻깊은 사람을.




아레키파의 중심지, 아르마스 광장에 서자 햇살이 가득 내린다. 하얀 벽을 타고 햇살이 온통 퍼져나가며 도시 전체가 눈부시게 빛난다. 이채롭고 신비스런 도시의 풍경과 역사적 가치가 합해져 아레키파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레키파는 머리가 희끗한 화산들로 둘러싸여 더 신비롭다. 도시를 감싸고  있는 세 봉우리의 이름은 미스티, 픽추픽추, 차차니다. 미스티라는 이름은 그 위용이 마치 건장한 남자가 서있는 것 같다는 의미로, 미스터(Mr)에서 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름처럼 웅장한 위세로 수호신처럼 도시를 지켜주는 듯하다.


사람들이 아레키파를 찾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콘도르다. 콘도르는 길이가 3미터가 넘는 새로, 해발 4000m 고공을 날아다닌다. 잉카인들은 콘도르를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겼고, 이 새는 잉카문명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아레키파에서 3시간 거리인 콜카캐년(cañon de Colca)에 콘도르들이 서식 하고 있다. 콜카캐년은 미국 그랜드캐년보다 2배나 깊은 골짜기를 품고 있다. 


많은 사람이 콘도르를 두 눈으로 보려고 콜카캐년을 찾는다. 하지만 콘도르는 높은 상공 위로 날아다니기 때문에, 늘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콘도르를 보려고 몇 번씩 이곳을 다시 찾는 사람도 있다. 콘도르 투어는 새벽 3시에 시작되지만, 콘도르를 만나보고 싶다는 꿈 앞에서 그까짓 새벽 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늘을 나는 콘도르.   photo by Unsplash 


아레키파는 도시 자체가 고요한 수도원 같다. 어딘지 모를 골목, 창가에 핀 꽃마저 성스러운 기운을 품고 있다. 실제로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아레키파는 많은 수도원 수를 자랑한다. 아레키파의 역사지구 내에서 종교 건축유산으로 지정된 수도원만도 8개나 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산타 카탈리나 수도원(Monasterio de Santa Catalina). 300여 년간 꾸준히 수녀를 길러냈던 유서 깊은 수도원이다. 현재는 수녀들이 살지 않고, 일반에 개방하여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지나가는 길에 마주친 산타 카탈리나 수도원 앞은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산타 카탈리나 수도원 대신, 산타 테레사 수도원을 택했다. 굳이 유명한 곳을 피해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수도원을 찾아 가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내 세례명이 ‘테레사’이기 때문에, 두 번째로는 진짜 수녀님이 살고 있는 수도원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산타 테레사 수도원은 시티 센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10분이 조금 넘는 거리를 자박자박 걸어간다. 살짝 외곽으로 빠졌을 뿐인데 도시가 온통 고요하다. 수도원에 도착해서 입구를 기웃거려보지만 아무도 없다. 벨을 눌러야 할지, 목소리를 높여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조금 더 망설이고 있는 와중에 경비 할아버지가 나타난다. 몸집이 두껍고 탄탄해 보이는 경비 할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친절한 목소리로 묻는다.


“무슨 일로 왔나요?”

생각해보니 무슨 일이 있어서 온 건 아니었다.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이 곳 수녀님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어서요.”

할아버지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답한다.

“잠시 기다려보세요.”

수첩을 꺼내 뒤적거리던 할아버지의 눈이 안경 너머로 가늘어진다.

“여길 나가 왼쪽 길을 따라가면 문이 하나 더 있어요. 문으로 들어가면 나무로 된 창이 하나 있죠. 그곳을 두드리세요. 안에서 Ave Maria Purisima라고 할 겁니다. 그럼 Sin Pecado Concebido라고 대답하면 돼요.”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덧붙인다.

“이곳만의 규칙 같은 겁니다. 수녀님들과 소통하기 위한.”

영화 속 세상에 몰래 들어온 것만 같은 기분. 아무도 모르는 곳의 비밀스런 규칙을 엿들은 것처럼. 암호를 풀 열쇠를 받아들고 문을 찾아 나선다. 어쩌면 여기서 만난 수녀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희망을 가져본다.


할아버지가 일러준 문으로 들어간다. Silencio(정숙)라고 적힌 글씨 아래로 작은 창이 하나 보인다. 나무로 된 창에는 아래에 돌판이 있고 회전문처럼 돌아가도록 되어 있어서, 이쪽에 물건을 놓고 판을 돌리면 저쪽 편에서 받을 수 있는 구조다.


똑똑, 두드리자 나무가 정갈하게 울림을 낸다. 울림이 공간에 스며들어 곧 정적으로 몸을 감춘다. 오래지 않아 안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Ave Maria Purisima (원죄 없는 마리아여)”

와, 정말이잖아. 놀란 나는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구절을 더듬더듬 읽는다.

“Sin Pecado, Concebido (죄없이 잉태하셨나이다)”

목소리가 떨리려고 하는 걸 간신히 붙잡는다. 내가 긴장한 걸 눈치 챘는지, 안에서 부드럽게 말을 건다.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면서요?”

이미 할아버지로부터 연락이 닿은 것 같았다. 그러자 조금 더 용기가 난다.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제 세례명도 테레사예요. 그래서 그냥 이곳에 발길이 갔어요. 괜찮으시다면 잠깐 대화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무슨 이야기든 괜찮아요.”


준비 되지 않은 상태라, 주섬주섬 질문들을 주워섬겨본다. 당신의 꿈이 무엇인지, 그 꿈을 이루는 데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영원히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게 꿈이죠. 유일한 장애물은 나 자신이에요.”

사실 예견된 대답이었다. 인생을 바쳐 종교에 귀의한 사람의 꿈. 다른 것을 기대한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녀의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더 이상 인터뷰를 한답시고 시시콜콜 캐묻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아쉬웠다. 이대로 돌아서기에는. 대화를 이어가려고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과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족에게도 친한 친구들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는 이야기였다.

“저는…… 사실 수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도 있어요.”

“그래요? 왜 그렇게 생각했나요?”  

“힘들었어요. 제 앞에 놓인 삶이 버거웠어요. 다 끝내버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때 수녀님들을 보면서 저분들은 평화롭지 않을까, 조금은 더 편안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랬군요. 주님은 어디에나 있답니다. 각자 자리에서 충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잠시 말이 멈추고, 창 아래 돌판이 그르륵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거기엔 작은 묵주와 책갈피 크기의 기도서가 하나 놓여있었다.

“선물이에요.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라요.”

포근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나는 이미 위로를 받고 있었다. 인터뷰 욕심에 서툴게 시작했던 대화에서 기대치 못한 선물을 받았다. 묵주를 손에 꼭 쥐고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낯선 도시에서 만나는 태권도는 언제나 반갑다. 배워본 태권도라고는 유치원에서 멋모른 채 매어본 흰 띠가 전부인데도. 도장에 무작정 들어가면 검은 머리의 한국인 사범님이 반갑게 웃어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높은 고도에 기온이 낮아, 차가운 얼굴을 한 백색도시 아레키파에서는 태권도장이 한층 반가웠다. 길을 걷다 하얀 건물들 사이로 태권도라는 글씨를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그때 열린 창문 틈으로 한 얼굴이 쑥 고개를 내민다.

“올라Hola!”

해맑은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중년의 사범님. 예상과 달리 검은 머리는 아니었지만, 반갑게 먼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동네 태권도장의 사범님과 닮았다. 반가워서 손을 맞흔드니,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손짓을 한다.

“나?”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끄덕끄덕 고개를 흔들며 다시 웃는다.

“꼬레아(한국)! 들어와요!”

어차피 시간도 남던 차에, 잘됐다 싶어 발걸음을 돌린다. 또 어디서 페루의 태권도 사범님과 이야기를 나눠보겠나 싶었다. 도장으로 들어가자 문 앞까지 마중 나온 사범님이 사무실로 안내해준다. 사무실은 태권도 관련 사진들로 가득 도배되어 있다. ‘태권도 협회’라든지 ‘품새’ 같은 익숙한 단어들에 둘러싸여 나도 모르게 맘이 편안해진다. 페루에서 만난 작은 한국이다.


리카르도라며 자신을 소개한 사범님은 의자를 내어주고는 자리에 앉는다. 내가 두리번거리며 사무실을 살피자 푸근한 웃음을 짓는다.

“페루는 처음 여행하는 거야?”

여행자를 맞이하는 질문으로는 적격이다. 나는 내 이름과, 그동안 여행한 기간과 방문했던 국가들을 쭉 늘어놓음으로써 여행자로서의 신고식을 마친다. 그러고는 늦을세라 바로 인터뷰를 요청해본다.

“꿈에 대한 인터뷰라……재밌겠는데, 나도 영광이지.”


리카르도의 제일 큰 관심사는 역시 태권도다. 꿈이 뭐냐고 물어보자 가장 가까이 있는 꿈부터 내놓는다.

“내년(2016년)에 리마 태권도 품새 자격시험에 참석할 거야. 또 기회가 된다면 세계 태권도협회가 주관하는 국제 태권도 품새 자격시험에도 가보고 싶어.”

“여기에는 태권도 도장이 많아?”

“여기라면, 아레키파를 말하는 거야? 아님 페루를 말하는 거야?”

“둘 다. 페루에서 만난 태권도장은 아직도 신기해서.”

“아레키파에는 10명 정도의 태권도 사범이 있어. 페루 전체에는 꽤 많아. 1970년대부터 태권도가 페루에 알려지기 시작했거든.”


공식적으로 태권도가 페루에 보급된 것은 1981년 이기형 사범이 페루 공군 사관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리카르도는 그로부터 멀지 않은 1985년에 태권도를 처음 시작했다.

“왜 태권도를 하기로 한 거야?”

“그냥 나는 태권도가 좋았어, 처음 봤을 때부터.”

“혹시 왜 태권도가 좋은 지 설명해줄 수 있어?”

“태권도는 하나의 훈련이야. 신체와 정신 모두를 단련하는. 그게 좋았던 것  같아. 그냥 몸만 쓰는 게 아니라 정신까지 가다듬는다는 것.”

진지하게 대답하는 리카르도의 뒤로, 두 팔을 앞으로 들고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진 속 리카르도의 눈이 이글이글 빛난다. 태권도를 정신수련으로 존중 하는 그의 태도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참, 그런데 사실 나는 변호사야.”

예기치 못한 이야기에 나는 깜짝 놀란다.

“직업이 변호사라고? 그럼 이 태권도장은 뭐야?”

“변호사인 동시에 태권도 사범이지. 변호사 협회에 소속되어서 일도 하고  있어. 하지만 요즘은 주로 태권도에 관련된 사건을 맡아서 해.”


리카르도는 페루 태권도 협회의 재판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다. 태권도 협회 운영 과정에서 분쟁이 생기면 이를 해결하고, 법적 자문을 제공한다. 변호사가 본업을 버리고 태권도 사범이 되어 살고 있다는 사실에 유난스레 놀라다니. 나는 아직도 내가 알던 세계의 상식에 갇혀있구나. 틀을  깨고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가 않다.


“나는 태권도를 가르치는 것이 좋아.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게. 스포츠를 통한 건강한 삶을 가르침으로써 청년들을 마약이나 도박 같은 위험에서 구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

그냥 지나치고 싶은 질문이었지만, 나는 참지 못하고 물어본다.

“하지만 페루에서도 변호사가 돈을 더 많이 벌지 않아? 돈을 벌기에는 변 호사가 더 좋지 않으려나?”

“뭐, 가끔 심판도 하고 그러면 돈이 모자라진 않아. 그리고 돈벌이 때문에  태권도를 하는 건 아니니까. 벼락부자가 되어서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와도 나는 태권도를 계속 할 거야.”


리카르도가 변호사가 된 것은 그가 25살 무렵인 때였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다. 처음에는 그도 여느 변호사처럼 치열하게 변호를 준비하고 재판에 나서는 숨 가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계를 느꼈다.

“변호사는 늘 싸워야 해. 재판정에 설 때는 상대편과 싸워야 하고, 재판정을  나서면 고객들과 다시 싸우지.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야.”

그가 전업 변호사로 살기를 단념한 이유다. 태권도 도복을 입고 있을 때가 정장을 갖춰 입고 재판정에 섰을 때보다 훨씬 행복한 그다.


한창 인터뷰하던 중에, 한 아이엄마가 아이 손을 잡고 사무실로 들어온다.

“여기 새로 이사왔는데, 아이 태권도 수업을 듣게 하고 싶어서요.”

“네, 들어오세요. 잠깐 실례할게, 미안.”

나는 괜찮다고 손을 휘휘 내저으며 뒤로 물러나 앉는다. 대여섯 살 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가 동그란 눈을 뜨고 사무실에 가득한 태권도 사진들을 둘러 본다. 이국적인 도복이 생소할 법도 하다. 가만 옆에 앉아 기다리면서 본의 아니게 상담을 엿들었다. 월수금, 주3일로 진행되는 리카르도의 태권도 수업은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고 저녁 7시에는 성인반도 운영한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요가수업도 있단다.  


아이를 데려온 여자는 아이에게 태권도 수업을 듣게 하고, 자긴 요가 수업을 들어야겠다며 좋아한다. 상담이 끝나가자 나는 문득 끼어들어 질문을 한다.

“아이에게 태권도 가르치려는 이유가 있나요?”

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요. 태권도라는 운동이 아이가 정신을 단련하는 데 도움될 것 같아요. 다른 무엇보다도 내 아이가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옆구리 찌른 질문이기도 하고, 뻔한 대답이기도 하지만 기분이 으쓱해진다. 한국 칭찬에 어김없이 팔랑거리고 마는 나도 영락없는 팔불출이다.



사람은 누구나 무심코 자주 쓰는 단어가 있다. 그 단어에는 보통 자신의 가치가 녹아있다. 리카르도는 자꾸 ‘이해(comprensión)'와 ’분별(entendimiento)‘이란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했다.


그가 말한 유토피아의 조건에도 두 단어가 먼저 등장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해와 분별을 갖고 살아가는 세계. 이해와 분별, 한국어로도 스페인어로도 어려운 단어다. 리카르도가 덧붙여준 설명을 바탕으로 의역해보자면, 우리 삶의 조건에 대해서 끊임없이 돌아보고 되묻는 것을 의미한다.


시류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의식하고 생각하는 것. 현재의 질서가 타당한지, 바람직한지, 행복하게 만드는지 계속해서 반문하는 것. 결국 리카르도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모든 이가 질문을 던지며 사는 세계다. 도대체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인지, 모두가 매일 반성하며 사는 세계.


“많은 것이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어. 페루의 정신도 전과 많이 달라졌고.”

“어떻게 달라졌는데?”

“원래 페루의 고유한 정신에는 삶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고 생각해. 여기서 삶이라는 건 나 자신만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는 세계 전체를 말하는 거야. 삶과 세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이제는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아.”

리카르도가 그리워하는 페루의 정신에서는, 나의 행복뿐 아니라, 우리가 함께 이루고 있는 세계의 안녕까지 생각한다. 자신과 타인이 하나의 존재인 셈이다. 나와 세상을 가르지 않는 사고방식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리카르도는 단 하나의 변화를 만들 수 있다면, 사람들의 마음(mente)을 바꾸어놓고 싶단다. 이해와 분별의 씨앗을 모두의 마음속에 심고 싶다는 꿈. 그는 그 씨앗으로 온 인류가 좋은 삶(bien estar)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사회가 공유하는 정신(mentalidad)이라는 건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거야. 페루의 정신은 잉카 전, 잉카 후로 나뉜다고 생각해. 페루의 고유한 정신은 잉카의 정신이지. 전세계 사람들이 찾아오는 마추픽추가 바로 잉카의 시대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인 거고.”  

리카르도의 말에서 자부심이 묻어난다.


리카르도가 잉카 이야기를 꺼내자 문득 이곳이 콘도르의 고향 콜카 캐년에서 멀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되었다. 언젠가 버스에서 잠결에 들은 ‘엘콘도르 파싸(El Condor Pasa, 콘도르가 날아가네)’라는 노래가 귓속에서 맴돌았다.


“하늘의 주인이신 콘도르여, 우리를 안데스 산맥 고향으로 데려가오. 잉카의  동포들과 함께 살던 그곳으로.”


이 노래 가사엔 잉카인이 신성시하던 콘도르를 바라보며,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고 싶어하는 염원이 담겨있다. 여기서 콘도르는 콜카캐년에 사는 새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잉카의 마지막 왕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캉키’를 상징한다. 그는 잉카 제국을 되찾기 위해 처절하게 저항하다가, 스페인군에 붙잡혀 쿠스코 광장의  한 가운데에서 사지가 찢기는 처참한 형을 당했다.


그러니까 ‘엘콘도르 파싸’는 잉카인들의 한이 깊이 서린 노래다. 우리가 힘겹게 지켜 왔던 아리랑처럼, 그들의 뿌리를 기억하려는 노력이다. 300여 년 전 정신이 아직 남아서 페루의 고유한 정신으로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빠른 속도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지나간 것을 지워가고 있다. 페루인의 잉카정신처럼, 우리에게도 지키고 싶은 고유한 정신이 있을까. 그건  어떤 모습일까. 정답 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10년 후의 리카르도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아레키파에 머물며 행복과 만족 속에 살고 싶다고 답한다. 변호사라는 직업과 태권도라는 스포츠를 사랑하며 그것들 사이에서 균형을 이뤄가고 싶단다.

“10년이 지나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평화로웠으면 좋겠네.”

“일상의 평화로움 말이야?”

“그렇지. 평온한 마음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어. 어떤 상황에서라도.”

쉽게 말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리카르도는 알고 있는 것 같다.


45살 리카르도에게 40년 후의 오늘을 묻는다.

“형제애(fraternidad)의 시대가 오게 되고, 그러면 모두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부터 40년이나 더 흐른다면 말이야.”

인터뷰 질문은 늘 같지만, 질문에 담긴 의미는 인터뷰이에 따라 달라진다. 정답은 없다. 10년, 40년 후 미래를 물으면 보통은 진로, 결혼 같은 것들을 상상하고 그린다. 리카르도는 더 나아진 세계를 기대하고 꿈꿨다. 그 대답에서 인류애를 느꼈다고 하면 과장인 걸까.


리카르도는 세상의 시선, 한 달 수입보다 건강한 정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태권도의 고향인 한국의 정신은 어떤지 궁금해 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다고 해야 할지, 선뜻 답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해가는 법 이니까. 한 명, 또 한 명. 리카르도 같은 사람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조금씩  달라질지도 모른다.



- Arequipa, Peru

- 인터뷰 날짜 : 2015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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