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만남, 포르투에서.

'역시 포르투였다.'를 기대해 보자.

by MinZhu

'드디어 포르투 Porto다.'

이렇게 시작해서 ‘역시 포르투였다.’로 끝냈다. 포르투에 도착하기도 전에 함부로 예상했던 포르투 여행기였다. 두 문장 사이 어떤 이야기가 담기든 포르투는 마땅히 좋을 줄로만 알았다. 앞으로 얼마 동안은 다시없을 긴 휴가였기 때문에 최소 어느 정도의 여행 기간을 필요로 하는 먼 지역에 대한 미련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포르투갈이었던 것은 때마침 방송된 [비긴 어게인 2] 영향이 가장 컸지만, 이미 포르투갈로 유혹하는 매체는 차고 넘쳤었다. 그중에서도 포르투는 유독 백이면 백 평이 좋았다. 그래서 일정을 짤 때 아껴두는 마음으로 가장 마지막에 두었었다. 그러니 ‘드디어’ 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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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5 @ L) Estação Ferroviária de Porto-São Bento, C,R) Praça da Liberdade, Po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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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5 @ Igreja dos Clérigos, Porto


그러나 나는 누가 봐도 조금 심드렁했다. 상 벤투 역 Estação Ferroviária de Porto-São Bento의 아줄레주는 소문대로 대단했지만 인터넷에서 이미 본 적이 있어서인지 탄성이 나오지는 않았다. 호텔을 찾아 광장을 지날 때도 무심했다. 그곳이 리베르다드 광장 Praça da Liberdade인 것도 나중에 알았다. 늦은 오후였기에 무리하지 않고 클레리구스 성당 Igreja dos Clérigos 만 갔다 간단히 저녁을 하고 첫날을 마무리했는데, 탑 Torre dos Clérigos에서 보이는 전망은 근사했지만 붉은 지붕은 리스본에서 이미 많이 봐서 새롭지 않았다. 그래도 성당 내 십자가 전시는 크리스천이라면 감동할 수밖에 없을 만큼 인상적이긴 했다. 그렇지만 그나마 유일한 수확이었을 뿐, 포르투의 첫인상은 그냥 그랬다.


이튿날, 여기는 포르투이므로 동 루이스 다리 Ponte D. Luís부터 갔다. 정말 멋지긴 했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도루 강 Río Duero 도 볼 만했다. [비긴 어게인 2]을 보고 가장 궁금했던 곳이 이 강이었다. 세월호의 아픔을 노래하는 김윤아의 목소리에 따뜻한 위로를 더한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실망까지는 아닌데 기대한 바가 채워지지는 않았다.


2019.05.06 @ Jardim do Morro, Vila Nova de Gaia




뭐지? 이 차지 않는 마음은? ‘하긴 한데 그렇지만,’이 자꾸 붙는다.


하나, 날이 너무 흐리다. 둘, 춥기까지 하다. 셋, 게다가 동 루이스 다리는 철골이라 차가운 기운을 더한다. 넷, 여행이 후반으로 접어들며 피로가 조금 쌓인 것도 같다. 그리고, 다섯, …… 굳이 숫자까지 세어 가며 따질 일은 아닌 곳에서 이과생의 버릇은 튀어나온다. 이유를 알자고 어이없는 셈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인이에요? 사진 찍어 줄까요?”

그때 한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고 모후 정원 Jardim do Morro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아저씨는 산티아고 Santiago 순례를 막 마치셨다고 했는데, 연세가 일흔이 넘었노라 하셔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순례를 결심하게 되셨는지 물으니 그때부터 이야기보따리가 풀렸다. 그 모든 이야기를 옮길 수는 없지만 차마 순례길을 나설 용기는 없는 나에게는 하나같이 신기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그렇게 즐거운 대화를 한참 나누다 깨달았다. 다섯 번째 이유, 나는 외로웠던 것이다.


혼자 하는 여행이 좋은 이유를 수십 가지 댈 수 있지만 외로운 순간이 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풍경을 만났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그 순간을 바로 나눌 수 있는 동행이 그리워진다. 당연히 반대의 상황에서도 그렇다. 풍경은 기대에 못 미치고, 도저히 입에 맞지 않아 한 숟가락도 뜰 수 없는 음식이 앞에 놓였을 때, 함께 온갖 실망을 쏟아내며 수다라도 떨 친구가 필요하다. 물론 혼자여서 낯선 이들과 쉬이 말이 섞이기도 하는데,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니 용기를 내어 인사를 건넸어도 즐거운 대화로 이어진 경우가 거의 없었다. 맞다, 그러니까 나는 심심하고 외로운 참이었는데, 날씨까지 아주.


그래서 그때 아저씨를 만난 건 선물 같았다. 여행자가 여행자를 만나 서로의 여행을 나누기는 흔한 일이겠지만, 아저씨가 들려준 이야기들이 여느 흔한 여행기는 아니어서, 아직까지도 순례는 머뭇거리지만 언젠가의 걷기를 바라게 해서, 그리고 딱 그 타이밍에 말을 건네주셔서 특별했다.




아저씨로 인해 받은 선물이 하나 더 있다. 헤어질 때 이제 어디로 가는지 물으셨는데 별다른 계획이 없다 하니 지도에서 도루 강이 흘러 들어가는 바다를 짚어 주셨다. 해안 도로를 따라 걷기에 좋다며. 덕분에 즐거운 산책을 한 것은 아니다. 지도로 봐서는 감이 잘 오지 않아 안내소에 가서 물었는데, 직원의 반응을 다시 떠올리니 또 웃게 된다. “그 거리를 걷는다고?” 두세 시간은 족히 걸릴 거라 했다. 걷는 데 이력이 나신 아저씨다운 추천이었다. 직원은 해변이 있는 마토지뉴스 Matosinhos에 갈 수 있는 대중교통을 일러 주었다. 모후 정원 바로 옆이 역이어서 갈 때는 메트로를 이용했고 돌아올 때는 호텔이 있는 리베르다드 광장까지 바로 오는 버스를 탔다. 행운은 이 버스다. 아저씨의 추천을 반만 따라서 그저 바다를 구경하려고 갔는데 버스가 물길을 따라 달렸다. 마토지뉴스 해변에서부터 도루 강변까지 아저씨 덕분에 정말이지 구경 제대로 했다. 날도 추운데 버스 안에서 이렇게나 편하게, 투어 버스가 따로 없었다.




포르투는 기대했던 따뜻한 공기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좋은 만남이 있었고 덕분에 에너지를 다시 채울 수 있었다. 그날의 여행은 포르투가 주인공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에너지가 이 도시를 떠날 쯤에는 ‘역시 포르투였다.’로 끝맺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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