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붉은 노을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았습니다.

by MinZhu

붉다.

이미 깜깜하고도 남을 시간이 아니었나.


경유지 도착부터 지연되더니 모든 일정이 제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더뎌졌다. 비행기 연착은 흔한 일이지만 예정대로 도착한다고 해도 이미 충분히 늦은 시간이었다. 여행을 할 때 세세한 일정까지 미리 정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시작부터 맨땅에 헤딩할 만큼 도전적이지는 않아서 보통 도착부터 호텔까지의 동선은 미리 그려 놓는다. 예약한 호텔의 위치를 확인해 보는데, 이상하다. 구글은 예약할 당시 봤던 것과 다른 좌표를 가리킨다. 메트로 역, 공항버스 정류장, 모두에서 한참 멀다. 출발 직전 맞닥뜨린 이 상황에 안 그래도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자꾸 지연이라니, 한밤중에 낯선 골목을 헤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공포였다. 갖가지 경우를 생각한다고 안절부절못했다.

2019.04.28 on the plane to Lisbon

그런데 그러던 중 스친 창밖이 아직 붉다.


‘늦은 시간’으로 꽉 채워진 내 머리는 시간의 감각을 잃고 줄곧 ‘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았다. 리스본Lisbon의 처음은 그렇게 나의 예상을 비켜 검은색에서 붉은빛이 되었다. ‘늦음’에서 ‘아직 시간이 남음’으로, 조바심에서 여유로.


리스본 공항에 내렸을 때는 물론 한밤이었다. 내가 노을을 본 그 순간 비행기는 실제로는 아마 프랑스 상공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자는 자신만의 좌표를 기억한다. 복도 쪽에 앉았던 탓에 구도도 엉망인 그때의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포르투갈Portugal, 리스본을 떠올릴 것이다.


비행기가 착륙한 시간은 이미 열한 시에 가깝다. 공항버스는 운행이 끝났고 메트로는 이용할 수 있었지만 중간에 환승해야 해서 번거롭다. 무엇보다 호텔이 구글이 가리킨 대로 역에서 멀 경우는 상상하기 싫은 고생이다. 남은 방법은 택시가 있다. 가이드북 대신 챙긴, 포르투갈 여행을 한다고 하니 오랜 친구가 선물한 책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에 나온 팁은 택시 애플리케이션이다. 도착하면 바로 유심을 구입할 참이었지만 보더폰Vodafone 매장은 이미 문을 닫았다. 공항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우버 앱을 설치하고 내 정보를 등록했다. 십 오분쯤 지나니 약속한 장소에 차가 도착했고 나는 매우 편안하게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내가 애초 확인했던 그 위치에 있었는데 만약 구글이 맞았다면 기사에게 양해를 구할 생각이었다.


그 날의 결말이다. 호텔 방에서 시계를 봤을 때 새벽 한 시경이었으니 두어 시간의 기록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나는 계획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 무척이나 침착했다. 이미 놓친 것들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차분하게 대안을 찾았다.


그 노을을 보지 못했다면, 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면, 내가 보든 보지 않든 상관없이 똑같은 속도로 가는 시계에서 결국 눈을 떼지 않았다면, 글쎄, 내내 급한 마음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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