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는 낯설지 않아 좋은 도시였다.
마지막 날이다. 아쉽지 않게 보내야 마땅할 것이다. 해외여행이 쉬워진 시대니 다시는 못 온다고도 못하지만 또 온다고도 장담은 못하므로. 그런데, 딱히 계획이 없다.
포르투에서 ‘반드시’의 수식어가 붙는 것은 무엇일까? 동 루이스 다리? 렐루 서점?, ‘다들 좋다고만 했지만 뭐 그렇게 아주 좋은 줄은 모르겠다’가 속마음이었다. 기대가 꺾여 또 다른 무엇을 알아보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정하고 나선 길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선 이유를 굳이 댄다면 지인들을 위한 쇼핑이라 할 수 있었다.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마지막 날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긴 하다.
여행을 다녀오면서 챙겨 오는 기념품은 각자의 취향이다. 랜드마크 모양의 마그넷을 빠뜨리지 않아 냉장고 한 면을 채워가는 사람도 있고 각 도시 테마의 스타벅스 텀블러를 수집하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야구 모자를 조카들 선물로 사 온다. 스페인에서는 특별히 FC 바르셀로나 것을 사 왔지만 보통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을 찾는 편이기에 대학교 모자로 한다. 이번 여행은 원래 코임브라 대학교에서 구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코임브라가 스케줄 상 주말에 끼여 기념품점이 문을 닫았었다. 리스본 대학교에서 진작 샀어야 했나, 안타까워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 여행 책에서 소개받은 아 비다 포르투게사 A Vida Portuguesa에서 지인들 선물을 사고 나와, 얼마 안 가 사자 분수 Fonte dos Leões를 바로 만났다. 그렇다면 앞의 건물이 포르투 대학 Universidade do Porto이라는 말이다.
포르투 대학 모자를 사서 나오는데 맞은편이 눈길을 끌었다. 'CASA COMUM', ‘공공의 집’이라...... 들어가니 관리하는 학생이 있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얼마간 둘러보다 나가려는데 다시 나를 붙잡는다. 시간이 괜찮다면 흥미로운 전시가 있다며 안쪽 복도로 안내했다. 의학 관련 전시와 어느 거리 사진작가의 작품 전시가 있었다.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친절했던 그 학생이 너무 적극적이어서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뜨겁고도 뜨거운 내 머리를 확인하기도 해서 어쨌거나 재미있는 구경이 되었다.
사자 분수에서 길을 건너 조금 가니 카를로스 알베르토 광장 Praça de Carlos Alberto이었다. 그리고 광장 옆으로 이어지는 골목은 특별히 표지판이 있었다. 세도페이타 거리 Rua de Cedofeita,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란 문구가 있어 호기심이 생겼다. 역사적인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오히려 힙한 예술 거리였다. 와인, 조명, 등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다양한 상품의 가게들 사이에 갤러리들도 종종 끼여 있었고 거리를 꾸민 맵시도 평범하지 않았다. 자주 걸음을 멈추고 쇼윈도로 눈길을 주다 마음이 동하면 기꺼이 문을 열고 들어가 한참을 구경했다. 예쁜 것은 갖고 말아야 하는 쪽은 전혀 아니어서 열심히 들여다보면서도 선뜻 집어 들지는 않았는데, 그 앞에서는 나도 흔들리고 있었다. 어느 편집숍, 중고 액세서리가 규칙 없이 놓인 진열장 안에서 피에로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는데 반해 주인의 “Try out”은 거침이 없었다. 결국 승복, 춤추는 피에로는 나에게로 왔다. 주인 핑계를 댔지만, 발을 못 떼고 뚫어지게 보고 있었을 때 이미 결론은 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몇몇 지명을 가린다면 ‘포르투’ 여행기인 줄 모를 수도 있겠다. 서울 인사동 산책을 다녔다고 해도 그런가 보다 할 것 같다. 포르투의, 아니 포르투갈 여행의 마지막 날은 이렇게 평범했다. 어느 작은 도시를 목적 없이 걷다 벼르던 물건을 찾고,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심심하지는 않은 구경거리를 만난다. 소박한 가게에서 마음에 쏙 드는 놈을 만나 결코 무리라 할 수 없는 충동구매를 하는 일도 너무 일상적이라고 할 밖에. 그런데, 이제야 포르투가 왜 좋다는 줄 알겠다. 무겁지 않고 급하지 않다. 어디에 무엇이 있어 특별하기보다 느리게 머무르기에 외국인도 낯설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내 구름 낀 날씨에 도루 강변에서의 광합성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아마 이 곳에서 ‘오래 지내기’를 한다면 적어도 한 번은 파란 하늘 아래 나른한 오후일 테고, 그 또한 플러스 점수가 될 것이다. 그 오후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너무 매일 같은 마지막을 보낸 탓일까, 돌아가는 짐을 꾸리는 동작이 전혀 굼뜨지 않다. 포르투는 내일도 또 이럴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혹 다시 온다면, 그때도 격이 없이 나를 맞아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