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테주 Tagus, Portuguese: Tejo 강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흐르는 이 눈물을 도무지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리스본을 떠나는 날이었다. 기차 시간이 빠듯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일정을 채워 넣기에는 애매해서 체크아웃 후 바로 역으로 갔다. 오리엔트 기차역 Estação do Oriente 주변은 알파마, 바이샤 지구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신도시다. 역은 스페인 Spain 출신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Santiago Calatrava의 작품으로 스스로 훌륭한 관광 상품이다. 바스코 다 가마 쇼핑센터 Centro Vasco da Gama가 바로 연결되어 있어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수도 있다. 쇼핑몰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나오면 약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 Altice Arena과 해양 수족관 Oceanário de Lisboa 도 있다. 멀리 보이는 바스코 다 가마 타워 Torre Vasco da Gama까지는 테주 강변을 따라 긴 산책로다. 머리 위로 케이블카가 움직이는 것을 보니 산책로 끝까지 가면 승강장이 나올 것이다. 그저 기차를 타기 위해 왔다가도 한참을 머물 수 있을 만큼 볼거리도, 놀거리도 부족하지 않았다. 초행길이라 혹시 헤맬까 싶어 일찌감치 나선 터라 시간도 충분했다. 그런데 나는 그 남은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화려하지만 차가운 현대 건축물보다 돌과 흙으로 단단히 지은 옛날 집을 더 좋아한다거나, 쇼핑을 즐기지 않는 까닭이라는, 그럴싸한 취향 타령을 하고 싶지만 아주 정직하게, 육중한 캐리어를 끌고 움직이기 버거워서 산책로 벤치에 그냥 앉았다.
한국을 떠나온 지 여섯 밤이 지났다. 여느 해의 여름휴가였으면 귀국 비행기에 올라야 했을 텐데 이번 여행은 11박 13일 일정이니 이제 절반이 막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장기 연차를 사용하는 것에 워낙 인색한 부서다 보니 이제까지, 아마 이후로도 가장 긴 휴가일 것이다. 가능했던 건 십 년 장기근속휴가였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를 십 년을 다녔구나.’
……
‘어, 이게 뭐지? 나 우는 거야?’
콧등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정신을 차렸다. 지난 엿새 동안은 십 년 근속으로 오게 된 여행이란 걸 전혀 생각 않고 다녔다가 아직 여행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상기했을 뿐이다. 그게 이상할 것은 아닌데, ‘눈물’은...... 당혹스럽다.
서울에서 지하철로, 차로 수없이 한강을 건너면서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가 여행을 다니면서 한강이 얼마나 큰 강인지 새삼 깨달았었다. 그런데 테주 강은 내가 처음 본, 한강보다 큰 강이었다.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육지가 강의 건너편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득해서 바다 어디쯤의 섬이라고 해야 더 그럴듯했다. 테주 강을 잇는 바스코 다 가마 다리 Ponte Vasco da Gama의 길이가 무려 17.2 킬로미터라고 하니 그렇게 보이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강이라니 강인 줄 알지 보기에는 바다와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그날 나는 벤치에 앉아 그 바다를, 아니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테주 강을 바라봤을 뿐이었다.
나를 두고 내기를 했다고 들었다. 1년은 채울 거라고도 했고 누구는 반년을 넘기지 못하는 데 걸었단다. 3개월을 버티면 용하다고 한 사람까지 있었다고. 열정 하나로 버틸 이십 대가 아니었고, 학위가 있었고, 여자였고, 아직 얼굴도 모르는 신규 입사자의 퇴사 시기를 두고 돈까지 걸겠다고 호들갑을 떤 이유였단다. 삼 년 이상을 말한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아무도 이기지 못했다는 얘기에 이때까지 다니고 있는 나 때문이니 판돈은 내게 주라는 농을 했었다. 입사 사오 년쯤 되던 해, 어느 날의 술자리였을 것이다. 그제야 할 수 있었고 이후로는 다시 뱉지 않은 농이었다.
이미 적지 않은 나이인데 사회생활은 처음이라서 늘 바짝 긴장을 했다. 논 것도 아니고 공부하느라 늦은 것을 왜 신경 쓰나 할지도 모르지만 학위를 인정받은 게 더 괴로웠다. 신입 막내면 다 용서되지만 경력 사원이 쥐뿔도 모르니 제대로 민폐였다. 그 와중에 여자라서 요령 피운다는 말은 곧 죽어도 듣기가 싫었다. 이런 나라서, 내 모양이 별나서 힘든 줄로만 알았다. 남들보다 배는 빠르게 일을 익혀서 내 자리의 몫을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은 사오 년을 채웠을 쯤에야 겨우 내려놓을 수 있었다.
첫 출근하는 사람을 두고 1년을 견디네 마네 할 만큼 보통은 아닌 회사에서 십 년의 앞은 그렇게, 그리고 뒤의 반은 좀 멍청하게 지냈다. 신경을 그리 곧추세우고 살았으니 똑 부러질 기운 따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날은 사람에 기대고, 언젠가는 애써 무심하고, 또 어떤 날에는 성도 냈다가, 다음 날은 다시 출근을 했다. 스트레스에 퇴사 노래를 부르며 잠이 들었으면서 아침에 일어나서는 새로운 곳에서 또 내 탓하면서 적응기를 보내느니 이 곳에서 둔해지리라 생각했다. 일견 불성실일 수도 있는 모습으로, 딱 양심만큼의 책임만 지키는 삶이었다.
테주 강은 나의 기막힌 십 년을 조용히 들었고 토 달지 않았고 묵묵히 덮었다. 나는 아마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