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아타투르크 공항에서
“비행기가 취소됐다고?!”
한껏 늑장을 피우다 항공사에서 보내온 문자에 정신이 번쩍 났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서둘러 나왔다. 호텔 직원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가 ‘즐거운 안녕’이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내 표정은 불안 그 자체였다. 내내 흐려 애태우던 포르투 하늘은 그날 드디어 비를 뿌리고 있었다. 여행이 어떠했건 귀국을 위해 공항으로 가는 길은 아무래도 아쉬워 감상적이 되기 마련인데, 비까지 보태주는 중에도 청승은 들어올 틈이 없었다.
‘날씨 때문인가? 아무리 비가 온다고, 설마 이 정도 비에 취소? 아니야, 말도 안 돼’
‘나 한국에 못 돌아가나? 그럼 출근은? 휴가를 며칠 더 쓴다고 미리 연락을 해야 하나?’
공항에 도착하니 루프트한자 Lufthansa 데스크 앞으로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보아하니 내가 탈 비행기만의 문제가 아닌 듯했다. 역시, 안내 모니터에서 루프트한자 항공은 줄줄이 ‘CANCELED’이었다. 직원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유는 ‘Strike’, 말인즉슨 누군가 의지를 가지고 작정했단 얘기다. 그러니까 ‘취소’가 취소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 내가 타려던 그 비행기는 정말 안 뜬다는 것이었다. 항공사는 줄을 선 차례대로 대신 이용할 수 있는 항공편을 알아봐 주었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는데도, 평소에도 걱정이 많은 성격이 어디 갈까, 내 순서를 기다리는 내내 마음은 근심 한 가득이었다.
이스탄불 Istanbul 아타투르크 공항 Atatürk International Airport이다. 조용했다. 나처럼 이곳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이들만이 자신의 다음 항공편 게이트를 찾아 부지런히 걸을 뿐 다른 목적으로 생기가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은 대기실 의자에 모로 누워 잠을 청하거나 깨어 있더라도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자정이 가까우니 그럴 만했다. 탑승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나 역시도 게이트 앞에 자리를 잡고 조용하기로 했다. 단위가 작은 유로가 남아 있었다면 기념으로 로쿰 Lokum 한 상자 정도 살까 면세점을 기웃댔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포르투 공항에서 회사에 갖다 바칠 초콜릿에 잔돈을 탈탈 털었기에 미련도 없었다. 그저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다 당연히 인천까지도 한 비행기일 줄 알았던, 포르투에서 함께 온 한국인 커플이 보이지 않아 궁금해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문득,
‘여기, 이스탄불 공항, 좀 반갑다.’
그러고 보니 이스탄불 경유가 결정되었을 때, 아주 잠깐 설렜던 것도 같다.
무려 설렜다고? 직전까지 안절부절못했으면서, 간사하기도 하다. 스스로 민망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지만 아주 거짓은 아닌 게, 터키 항공에 빈자리가 있다고 들었을 때, 집에 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지나니 그다음 떠오른 생각이 ‘이스탄불 공항에 간다’였다. 외국 살이라고는 대학교 시절 중국으로의 반년 도피가 전부, 수시로 날아 해외 이곳저곳을 찍는 방랑벽도 아니다. 그런 이에게 다른 나라의 공항은 가끔 여행이라는 사치를 부릴 때 한 번씩 지나는 곳에 불과할 텐데, 그중 어디는 반갑기까지 하다면...... 거기, 뭔가 있는 것이다.
터키 여행 때다. 이스탄불 국제공항으로 입국하여 국내선을 갈아타고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루트였다. 문제는 입국 심사였다. 사람이 워낙 많았는데 심사관은 한 명 한 명 꼼꼼히도 봤다. 그때 비행기를 놓칠까 온 힘을 다해 국내선 터미널로 뛴 사람이 나와 내 친구 말고도 둘이 더 있었다. 게이트 앞에서 우리 넷은 기진맥진한 서로의 모습에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허물없이 웃음이 터지고 말았었다. 이후 여행 중 우연히 한 번 더 만났는데 서로를 알아보고 함께 식사를 했었다.
아일랜드를 가는데 직항이 없어 이스탄불에서 경유를 한 적이 있다. 연착은 자주 겪었지만 그날은 오히려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여 일찍 도착했다. 생각지 않았던 여유가 생겨 카페에 자리를 잡았는데, 한 중년 여성이 빈자리가 없었던지 합석을 해도 되겠냐고 말을 걸어왔었다. 우리는 한참을 대화했는데, 그때 나눈 이야기들은 즐거울 뿐 아니라 적어 놓지 못한 게 아쉬울 만큼 깊이도 있었다. 너무 좋아서 성함을 물었는데 우연한 만남은 우연으로 남는 게 좋다며 그야말로 쿨하게 헤어지자 하셔서 나는 그분께 더 반해 버리고 말았었다.
누가 봐도 대단한 경험은 아니다. 하나는 그저 죽어라 뛴 것이고, 또 모르는 사람과 차 한 잔을 함께 하는 게 신기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 때문에 이스탄불 공항이 나에게는 조금 특별해졌다. 추억은 어쩌면 원래 그처럼 사소하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는 않다.
비행기가 취소되지 않았으면, 그래서 이스탄불에 오지 않았으면 몰랐을 테다. 장소가 의미를 담기에 대단한 일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지금’이라서 또 맞춤이다 생각했다. 이번 포르투갈 여행의 어느 곳도 아마 무심히 잊히지는 않을 것이다. ‘취소’ 문자를 받았을 때는 너무 당황하여 여행 끝자락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나 원망했는데, 덕분에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렸고 이스탄불 공항은 추억 하나가 또 더해졌다. 다음에 오게 되면 그땐 정말 내 집 같은 건 아닌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