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떠올리는 것만도 충분해
민주에게
수고했다, 민주야.
입사 막 했을 때 사람들이 널 두고 얼마를 버틸 수 있을까 내기했다고 들었는데, 그들이 대부분 부서를 떠나는 동안 너는 10년을 채웠네.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 못나 어디 떠나지도 못한 건지, 잘 버틴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수고했다, 민주야.
입사 앞두고 처음 유럽 배낭여행했었는데, 10년 후 이번 포르투갈 여행은 그때랑 많이 다르네. 가이드북 잃어버리면 큰일 나는 것처럼 손에 꼭 쥐고 빽빽한 일정 쫓아 빠르게 걸었었는데......, 기차를 타고 창을 보고 조용한 시골을 천천히 걷고, 어쩌면 여유가 생긴 것이고, 어쩌면 단순히 체력이 떨어진 것일 수도......,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네.
포르투갈 여행은 기대보다는 그냥 그래. 눈에 담기는 풍경이 이미 너무 익숙해서 놀랍지 않다. 그런데 또 어떤 순간, 내가 멈칫 눈물을 흘리고 있네. 조금 외로운가?
민주야, 수고했어.
외롭지 말자. 다시 시작되는 일상도 두려워 말자!
2019.05.07 Porto, 민주
퇴근길, 몇몇 지인들에게서 엽서 잘 받았다는 답신이 왔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내 집 우편함에도 반가운 엽서 한 장이 있었다. 포르투에서 내가 나에게 쓴 엽서다. 보름 전 직접 쓴 건데 이렇게 새삼스러울 수 있나 싶었다. 특히 ‘수고했다.’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어 살짝 민망했다.
여행 중 엽서를 쓰기는 참 오랜만이었다. 일주일 못되게 다녀오면서 마치 멀리 떠난 폼을 잡는 게 간지럽기도 하고, 어디에 있든 SNS에 바로 소식을 올릴 수 있는 시대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때보다 조금 더 길게 간다고 그랬는지, 장담하지 못하면서도 지인들 주소를 몇 챙겼다. 그러고도 솔직히 잊고 있어서 기념품 가게를 수없이 지나면서도 한 번 엽서를 안 샀다가 여행을 하루 남겨 둔 저녁, 노을이 지는 도루 강을 바라보다 펜을 꺼내 들었다. 바로 앞서 포르투갈식 해물밥이 맛있다는 식당을 찾았는데 일 인분은 팔지 않는다고 해서 결국 먹지 못했다는 하소연부터 여행 초반 파란 하늘이 너무 예뻐 칠렐레 팔렐레 다녔더니 지금 아프리카 원주민이 친구 하자 할 만큼 까맣게 탔다는 탄식, 어디는 무척 좋았고 다른 어디는 별 것 없었지만 그래도 여행은 참 좋다며 다음에는 함께 오자는 다짐까지 넓지 않은 지면을 아쉬워하며 채웠다. 그리고 십 년 전 썼던 엽서를 생각했다, 입사 앞두고 갔던 유럽 여행에서 나에게 썼던 엽서. 그래, 그때처럼 나에게도 쓰자.
집에 들어와 편지함을 뒤졌다.
‘네가 딛었던 걸음들에 만족하길, 새로 시작하는 삶, 변화의 문턱에서 좋은 에너지가 되었기를.’
2008년 7월의 나는 나를 이렇게 응원했구나.
솔직히 여행, 뭐 대단하다고 에너지가 되고 위로가 될까. 지난 회사 생활은 좋은 기억보다 힘든 기억이 훨씬 많다. 포르투갈에서 돌아와 고작 보름이 지났을 뿐인데 엽서의 내용이 가물거리는 걸 보면 나는 쳇바퀴 생활로 벌써 돌아왔다. 여행을 다녀온다고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줄은 진즉 안다. 그런데 오랜 엽서를 다시 보니 다시 힘이 조금 나기도 한다. 수고했다고 토닥여 주니 의미 없는 십 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칭찬을 건넬 수 있었던 건 허우적대던 일상 속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가지를 좀 써도, 버스를 놓쳐도 괜찮은 곳이 여행지다. 그곳에서는 나에게도 한없이 너그러울 수 있다.
여행은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전과 같은 일상을 산다. 정신없이 졸며 출근을 하고 퇴근해 집에 오면 기운이 달려 철퍼덕 쓰러진다. 상사는 오늘도 말 안 되는 논리를 폈고 그 앞에서 나는 표정 관리가 안 돼 괴로웠다. 회사를 탓하다가 결국 자책을 하는 날들 사이에서 포르투갈, 그 낯선 곳을 걸었던 어느 때를 나는 자주 잊고 살 테다. 그렇지만 가끔 떠올리는 날에는 그곳에서처럼 마음이 한층 풀어지겠지.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충분할지 모른다. 기력을 회복하는데 달콤한 과일차 한 잔이면 때로 충분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