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다니던 회사에 적응하기 어려운 데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절대 어울릴 수 없다고 느끼던 때였다. 상당한 고가의 가구를 파는 회사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자신이 그 상품과 부합하는 이미지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곳도 그곳이지만 내가 어느 회사를 간들 적응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더 문제였다. 회사에 나가 억지로 분위기를 맞춰가며 일하다 집에 돌아오면 방전되기를 반복했는데 덕분에 체력이 바닥을 모르고 꺾였다.
특이한 증상이 나타났는데, 다른 체력문제 중에서도 눈과 몸이 유독 건조해졌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오면 뭐라도 해나갈 만한 상태가 아니었고, 그 때문에 방 안에서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은 없이 기껏해야 할 수 있는 일은 눈 감고 누워있기 정도였다. 누워있으면 피어오르는 것은 걱정과 우울뿐. 내 기분과 몸 상태가 마치 물기는 싹 다 증발한, 바싹 마른 낙엽처럼 느껴졌다.
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 보이는 것은 엉망이 된 방 안. 어지럽히기만 할 뿐 치우지 않는 일이 반복되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누워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는데, 그 상상 속의 내 모습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앞으로 무엇을 할 계획을 갖고 있고, 또한 무엇이든 할 예정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했을 때의 어려움까지 앞서서 생각하고는 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변하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결국 스스로 절박해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상 속 성취는 그만두고 어떻게든, 뭐라도 해서 이 악순환을 끊어야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안 좋은 결과를 상상하는 대신 뭐라도 한 뒤에 그 다음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중 가장 시급하다고 여겼던 일은 눈을 좀 뜨고, 보이는 것을 없애야겠다는 것. 일단 눈의 건조를 줄이려고 병원이며 한의원도 찾았고 보이는 것들을 치우는데 조금씩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좀 더 잘 치우고 정리하기 위한 방법이 있을 거라고 여기던 차에 우연히 '정리수납'이라는 분야를 발견했다. 정리서비스 회사에서 이것을 가르치고, 민간자격증까지 발급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의욕도 없고, 불안한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면 좀 낫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그렇게 정리를 시작했다. 특히 시간을 쓸 만한 많은 취미중에서도 집에 무언가를 들이지 않는, 아니 덜어낼 수 밖에 없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지역 여성센터에서 1,2급의 정리수납 과정을 마쳤다. 약 3개월 정도의 주말을 모두 투자한 결과였다.
수업 이후에도 정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리해야 할 것은 계속 생겨났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정리해야 할 범위는 꼭 물리적인 공간만 해당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게는 내 노트북의 바탕화면이라든지, 스마트폰 속 레퍼런스 이미지의 분류, 그 다음에 해야 일들이 자꾸만 따라붙었다. 정리로 시작한 일은 결국 나의 시간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의 문제까지 번져갔다.
그렇게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 선택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일상을 정리하는 동안 저는 제게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늘까지, 정리는 나에게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