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를 안 들이기로 결심한 이후 그것이 성공을 거두었는지 되돌아보면 확실한 실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장을 볼 때의 비닐 쓰기는 확실히 성과가 있었지만 세탁기 옆 비닐봉투 정리대는 그대로에 설상가상으로 다시금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갯수를 늘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장을 보는 횟수가 줄어서 그렇지 그닥 나아진 게 없는 것 같기도.
그렇지만 ‘비닐’이라는 품목으로 좁히지 않고 전체적인 쓰레기 배출로 따져보면 난 전보다 환경에 영향을 덜 끼치고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은 행동. 썩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하고는 있으니까.
1. 화장솜 반으로 나눠쓰기
주말 오후 유튜브나 넷플릭스 영상을 틀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하기 좋은 일이다. 올리브영 같은 곳에서 제품을 테스트하거나 집에서도 수없이 느끼지만 나는 화장솜 반 개로 충분히 토너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내가 쓰레기를 줄이기로 결심하기 훨씬 전부터 해왔던 일인데, 사용감에도, 피부에도 별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빨아 쓰는 화장솜을 제로웨이스트샵에서 발견하기도 했지만 도저히 화장솜을 빨아 쓸 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될 자신이 없었다. 대신 시간을 들여 화장솜을 자르고 소비를 반으로 줄인 것처럼, 소모품을 최대한 적게 사용해야겠다는 의욕은 더욱 높아졌다.
2. 샤워시간 줄이기
따뜻한 물을 맞고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갑자기 샤워시간을 줄인다는 결심은 쉽지가 않다. 아무 생각 없이 욕실에서 퍼져있기 일쑤였고, 심지어 유튜브를 보면서 샤워를 하는 날도 많았으니까. 샤워시간을 줄이는 좋은 방법을 생각하다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텐션을 끌어올리는, 4분 가량 되는 노래 3곡을 넣어 그 안에 샤워를 마치는 식이다. 그 안에 세수는 마치지만 이를 닦는 시간은 뺐다. 결국은 샤워 시간을 반으로 줄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나름의 팁. 다만 도저히 기운이 나지 않는 날이면 플레이리스트고 뭐고 정신을 놓은 채 앉아 있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날도 있다고 생각한다.
3. 텀블러 사용
흔한 직장인이 그러하듯 나 역시 회사에서 하루에 한 잔씩 커피를 마시고 있다. 심지어 오전 시간마다 나를 포함한 팀원들이 돌아가며 커피를 사 올 정도로 빼놓지 않고 테이크아웃을 해오는데, 이렇게 커피를 마시면서 생기는 컵은 내가 봐도 좀 어마어마 하다. 오래 고민하다 결국 텀블러를 사서 쓰게 되었다. 밖에서 갑자기 커피를 마시게 되는 일 빼고는 꽤 알차게 쓰고 있다. 집에 처박아 뒀던 텀블러를 안 쓴다며 한 번 버렸던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만은 오래도록 잘 쓰고 싶은 마음이다. 새삼 느끼는 텀블러의 장점은 도무지 따뜻해지지 않는 사무실에서 커피는 오래도록 따뜻하다는 점이 아닐까.
4. 물건 안 사기 또는 안 들이기
코로나 덕분에 거리두기가 강화될수록, 밖에 나돌아 다니지 않으니 쇼핑을 적게 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카드값은 줄지 않았다. 늘어난 음식 배달이라든지, 걸핏하면 쇼핑앱으로 겨울옷을 사느라 쓴 돈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장바구니에 넣고 최대한 미루기를 실천하고 있지만 얼마 전 오래 쓸 물건을 고른다며 지갑을 새로 샀고, 코트도 한 벌 새로 샀다. 남은 겨울 동안 나에게 옷 쇼핑은 없지 싶다. 없다고 믿고 싶다.
음식 배달도 최대한 자제한다고 했지만, 추워진 날씨에 다잡은 멘탈이 맥없이 풀려버리더니 다시금 신나게 배민을 이용하고 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반찬과 단무지 안 받는 정도인데(치킨무 포함!) 이것으로는 죄책감을 덜 수 없다. 아예 내가 용기를 가지고 가서 받아올 수 있는 집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제로웨이스트에 가깝게 살고 싶다고 늘 생각은 하지만, 한 번에 나를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걸 너무 의식하면 스트레스만 더 생기면 생겼지 내가 만들 쓰레기의 양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그러니 내가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은 약 0.5인분 정도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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