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를 정리할 때 떠올리는 것들
갖고 있는 책을 버릴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공간이라는 것은 한정되어 있고 책을 무한하게 쌓아둘 수 없다. 사실 우리가 지내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우린 너무나 비싼 값을 치렀으며 원하는 크기보다 대개는, 작다. 슬프게도 그렇다. 책이 많다면 역시 정리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연구를 하는 사람, 작가, 출판계에서 일하는 사람, 정말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자신은 없다.
책을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책을 좀 비워내고 싶다거나 줄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또한 자연스러운 일. 내가 갖고 있는 책이 많이 않아서인지 나는 조금 쉽게 책을 정리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안 읽은 책을 들춰볼까 싶어 책장을 훑어보았다. 혹여 솎아낼 책들은 없는지 확인했는데 역시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덕분에 갑자기 책을 뒤집고 먼지를 날려가며 한바탕 책과 싸우고 말았다. 아래 소개하는 것은 정기적으로 책을 내보내며 나름대로 세웠던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책을 고르는 방법.
1.트렌드에 맞지 않는 책들
한때 출판계를 휩쓸었던 베스트셀러 중 떠밀려 산 것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그때도 지금도 나의 정서에 맞지 않지만 다들 사는 분위기라 호기심에 산 책들. 더불어 지금은 주목받지 못하는 개념을 다룬 경영, 경제 서적과 재테크 서적들이 이에 속했다.
2.내용이 쉽게 생각나지 않는 소설
눈에 들어와 집어든 소설, 어떤 것은 대략의 줄거리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 커다란 인상을 남기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그 외에 아이디어가 좋다며 읽는 내내 감탄했거나, 마음에 남는 이야기를 담았다면 당분간 갖고 있기로 했다.
3.지금 하지 않는 취미를 다룬 실용서
나의 취미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기가 참 오래 걸렸고 관련된 책을 버리는 데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정리를 시작하고 난 뒤 집 안에 많은 재료를 들일 수 밖에 없는 특히 지금은 시들해진 취미라면 과감히 버렸다.
4.주제가 던지는 화두만 기억해도 좋을 책들
책에 담긴 메시지, 화두는 너무 좋지만 세부적인 내용이나 사례는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은 책들. 잊어버리지 않게끔 제대로 메모한 뒤에 처분했다.
나는 다행히도 책에 대한 집착이 없어서 아니면 다독하는 체질은 못되는지 선반 두 칸을 배정해 40권 내외의 갯수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책을 버리기 유독 아깝고 아쉬울 때, 이 모든 일이 나만의 베스트 서가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즐거워지지 않을까.
‘…서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한 부분은 읽은 소설, 또 한 부분은 읽은 비소설, 나머지는 읽지 않은 책들이다. 읽은 책들은 내가 보기에 좋은 순서대로 꽂는다. 그러니까 제일 좋은 책이 맨 앞에 있고, 뒤를 이어서 그다음 좋은 순서대로 책들이 쭉 꽂힌다. 물론 판단은 주관적이다. 그렇게 해서 평생에 걸쳐서 소설 365권과 비소설 365권을 선정한 뒤 일흔 살이 지나면 매일 한 권의 소설과 한 권의 비소설을 읽으면서 지내고 싶다. 그러니 내 노후대책이라면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730권의 책을 마련하는 것이랄까.’ <소설가의 일>, 김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