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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나 Pina Nov 26. 2019

공간 정리 사이클

 내가 정리를 배우던 초반, 그리고 정리를 마음먹은 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어지러워진 내 방의 상태, 그곳을 청소해야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었다. 상당히 의욕적이었지만 곧 정리는 청소가 아니라는 것과 더불어 정리를 시작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잘못된 접근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지러운 바닥이나 테이블, 책상을 덮고 있는 물건을 어디론가 치우고 먼지를 닦아낸 후엔 분명 전보다 깨끗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그건 늘 해오던 청소의 반복일 뿐이었다.


 이내 내가 하는 정리는 진짜 내가 하고 싶던 정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정리를 위해 필요한 더 큰 과제는 제가 갖고 있는 물건에 위치를 부여하는 것이 1순위고 그 위치에 즉각적으로 놓아두는 습관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거였다. 그런 일을 미리 해 두어야 정리를 하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때 흐트러진 상태의 물건들을 정해둔 위치에 맞게 놓는 작업과 함께, 어느새 생긴 필요 없는 것을 치우는 일을 하면서 비로소 일을 끝마칠 수 있는 것이다. 이게 생각보다 더 거대한 문제라는 사실에 살짝 자신감을 잃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정리라는 일을 쳐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물건의 자리를 부여하는 작업을 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어떤 한 곳을 완벽하게 정리했다 해도 정리되지 않은 쪽이 정리된 곳을 어지럽히기는 너무나도 쉽다는 것. 지갑에 영수증이 많이 쌓였을 때는 백 프로의 확률로 가방도 어지럽고, 그 상태의 저는 책상 위도 어지럽히고 있었다. 더불어 크기와 상관없이 나를 둘러싼 공간은 어느 하나 저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때문에 정리는 물리적이든 그렇지 않든 공간을 가리지 않아야 하고, 언제든 진행 중 이거나 반복을 계속해야 할 장기전이라는 것도 분명해졌다.


 결국 따로 떨어진 곳들의 정리는 한 번에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좁은 범위에서 넓은 범위로, 혹은 연관된 스폿으로 이동하며 천천히 해나가기 시작했다. 현업에서 활동하시는 정리전문가 분들은 한 번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뤄놔야 정리의 좋은 점을 깨닫고 앞으로도 정리를 계속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느릿하고 꾸물거리는 타입의 나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 것도 이유였다.

 

 어느 정도 정리를 했다는 나름의 판단이 들었을 때 다음으로 했던 일은 '정리 사이클'을 만드는 일이었다. 책 <1일 1분 정리법>을 통해 영감을 얻었다. 거창해 보이지만, 쉽게 말하면 정리할 곳 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위치 잡기, 공간별 정리를 오랜 시간 공들여서 한다고 하더라도 나중엔 꼭 느슨해지고 풀어지기 마련.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법칙과도 같았다. 그래서 좀 느슨해졌다 싶은 타이밍에 이 공간 정리 사이클을 돌려본다. 그다음 정리할 때는 잘 된 곳을 건너뛰고 반복하기도 하면서. 한 사이클 돌릴 때마다 막살았다며 좌절하는 대신 ‘사람이 좀 그럴 수 있지!’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다시 시작하려고 했다. 이 지루한 반복이 쉽게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지만 끊임없이 저를 달래가면서 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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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이야기했듯, 아래의 목록은 제가 정리를 장기적으로 접근하고, 반복하기 위해 만든 ‘정리 실행 사이클’ 예시입니다.


<정리 실행 1사이클>


1)휴대폰 앱, 사진 정리: 휴대폰 저장 공간을 잡아먹고 있는 필요 없는 이미지를 삭제하는 일인데요. 기억해두기 위해 캡처했던 이미지는 메모한 뒤 지우고, 직접 찍은 이미지 중 중복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이미지를 지우는 일입니다. 여행지나, 추억이 담긴 사진은 백업해둬요.

2)노트북 바탕화면 정리: 어지럽게 흩어진 바탕화면 속 파일을 분류하고, 역시 삭제합니다. 

3)지갑과 가방 정리: 영수증이나 도장 쿠폰 정리로 깨끗한 지갑을 유지하고 잊고 있었던 가방 속 쓰레기도 버려줍니다. 파우치 안에 담겨있는 소지품이 더러워졌는지도 확인해요. 

4)책상 위, 책상 서랍 안 정리(사무실 등 일하는 곳 책상 포함): 사용하는 물건들이 제 자리에 있는지를 점검하고 사용할 이면지를 추린 뒤 필요 없는 종이는 버려줍니다. 

5)책장 정리: 책과 지류도 꺼냈던 원래의 자리에 놓아둡니다. 받아온 브로셔도 일정 기간만 보관했다가 버리는 것이 좋아요. 

6)화장대 정리: 흐트러진 상태를 정돈합니다. 쌓인 먼지를 제거하고, 브러시나 스펀지 등의 도구도 있다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교체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작업을 해주는 거예요. 

7)욕실 정리: 역시 흐트러진 상태 정돈과 물 때를 제거하고, 다 떨어지거나 추가된 욕실 용품이 있다면 확인해 수량을 관리합니다. 

8)서랍, 수납장 정리: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놓아두었던 물건들의 제 자리 찾아줍니다. 어설프게 놓인 상태를 정돈하고, 나름의 순서가 있었다면 또 그에 맞게 정리합니다. 

9)주방 그리고 상부장&하부장 정리: 서랍과 수납장 정리 때 확인하는 것들과 동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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