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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나 Pina Jul 28. 2020

내가 버린 것들


 정리를 시작하게 되면 자연스레 물건을 버리는 일부터 시작하게 된다. 특정 자격 분야로서 정리수납 수업을 들었을 때도 본격적인 정리법으로 들어가기 전, '버리는 일의 중요함'을 배우는 것이 우선이기도 했다. 이후 주변 지인의 컨설팅이나 수업을 했을 때 유독 버리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때마다 간청하길 반복했다. 버리는 일 없이 정리를 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정리한 수고도 없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며 애원했다.


 정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버리는 일이 오히려 쉬웠던 것 같다. 애정이 있는 것, 마음에 드는 물건이 많지 않았다. 그 당시 자존감이 극도로 낮아진 상태였는데, 그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 게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이 기회에 다 버리고, 나중에 필요하면 더 좋은 걸 사자는 마음으로 낡고 오래된 옷이나 새로울 것 없는 소품들,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책들도 버렸다.


 내 방에 물건이 쌓이는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1)큰 고민 없이 가격이 싸거나 할인을 하길래 섣부르게 구입하고 2)어떻게든 넣을 자리를 발견해 던져두다다 3)점점 쓰임이 줄어 방치시키고 4)결국 그 자리에 있는지 자각조차 못하는 순서. 수입이 많지 않아 소비가 적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도 필요 없는 것을 꽤나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버릴 것들을 고르다 보니 버리는 일의 목적에 대해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버리는 일은 어떻게 보면 공간의 빈 곳을 만들어가는 행위에 그칠 수도 있었지만,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었는지, 놓지 못하는 일은 무엇인지를 파악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더 이상 하지 않는 뜨개 용품을 보면서 예전에 시도했다 그만뒀던 것들이 생각났고, 색이 변한 플라스틱 물통을 보며 이젠 더 이상 보리차를 끓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내가 통과해온 일상이 담긴 물건을 정리하면 새로운 것들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특히 이런 버리는 과정 덕분에 앞으로는 물건을 많이 들이지 않은 취미를 가져보자는 나름의 방침을 정해두었다.


 요즘도 무엇을 버리는 일은 계속하고 있다. 극강의 미니멀리스트로 하루아침에 변신하지 않는 이상, 나에게 버리는 일은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특히 속상한 일이 생기거나 어느 것 하나 맘대로 되지 않는 기분에 빠질 때가 있는데. 이럴 때 그저 하루 이틀 꼬박 가라앉게 두고는 조금씩 회복하는 그 타이밍을 차분히 기다리는 것으로 해결할 뿐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 순간을 보내며 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를 버리는 일.

 

 물건을 버리는 일을 하다 보면 감정이 정리되는 것과 함께 나쁜 과거 또한 떠나보내는, 나만의 의식을 치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구간을 지날 땐 버릴지 말지 결정을 미루던 것들을 더 과감히 버리기도 한다. 이 세상엔 생각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고, 내 물건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단순하고 당연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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