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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나 Pina Nov 24. 2020

직전의 시간들

 정리를 습관으로 만들겠다며 노력해 온 기간이 2년. 그 기간이 무색하게도 나는 늘 풀어졌다가 정신 차리길 반복하고 있다. 사실 모든 것이 귀찮을 때가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며칠 정신을 놓다 보면 방 안에는 그동안 내가 가졌던 기분이나, 우울감, 또한 체력의 정도가 고스란히 나타나는 게 특히 신기하게 느껴진다. 최근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꼭 오답 밑에 코멘트가 주렁주렁 달린 채점을 받아 든 것과 비슷하달까.


 출퇴근만으로도 지치는 평일에, 정리할 시간을 짜내는 것은 늘 만만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뒤 옷을 갈아입으면 자연스레 눕게 되고, 유튜브에서 관심 가는 영상을 켜고는 억지로 저녁을 챙겨 먹으면 하루는 이미 끝나고 없기 때문이다. 영상을 끄면 이어서 찾아오는 쓸데없는 생각과 싸우고, 억지로 잠에 들려고 하는 것이 늦은 밤의 흔한 내 일상. 정해둔 운동을 다녀오거나 글을 쓰고 스케줄 정리를 할 때도 있지만 그때도 정리할 시간은 후순위로 밀려버리고 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문득 테이블이 유독 어지럽다거나, 마시다 남은 맥주캔을 침대 밑에서 발견하고는 뒤늦게 반성하며 정리하는 식이다.


 그 때문에, 나라는 사람은 역시 게으르고 시간도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되도록 몰아서 정리하지 않게 다잡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조금이라도 낼 수 있는 사소하고 짧은 시간을 정해버리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직전의 시간들’이라고 혼자 부르고 있다.



 첫 번째. 물건을 들이기 직전

 보통 온라인으로 무언가를 살 때 구매 버튼을 누르기 직전, 택배가 도착해 포장을 뜯기 직전처럼 집안으로 무언가를 들이기 직전 잠깐의 시간. 배송되면 들어갈 공간은 있는지 그리고 충동적인 소비는 아니었는지 확인할 겸 정리를 하려고 했다. 식재료를 사기전 냉장고 안을 살펴본다든가, 옷을 주문한 택배 상자를 뜯기 전엔 꼭 옷장을 정리하는 식. 무엇인가 새것이 왔다는 기분 좋음이 정리를 하게끔 도와주는 것 같다.


 두 번째. 편하게 음식을 먹기 직전

 냉동피자 같은 간편식을 오븐에 가끔 데울 때가 있다. 그때는 잠깐의 청소를 하기 좋은 타이밍으로 식기와 컵을 준비하면서 너저분한 테이블이나 싱크대 위 상부장을 살펴봤다. 도저히 요리를 하거나 뭔가 차려먹을 기력이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도 있다. 그 대신 한 끼를 배달 받는다는 보상에 맞게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에 싱크대나 테이블을 치우고, 책상 위를 정리하기도 했다.


 세 번째. 잠을 자거나 본격적으로 쉬기 직전

 30분, 그 이상을 누워있어도 잠이 안 올 때가 나에겐 너무 많다. 오후 늦게 커피를 마셔버렸다거나,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거나 그 밖의 이유들은 많았을 테지만 누워서 괴로워할 바엔 일어나서 물건 하나라도 제자리에 놓자는 생각으로 몸을 일으켰다. 침대 주변과 서랍을 정리한다거나 미루던 빨래 개기를 하기도 한다.


 별것 없긴 하지만 확실히 이런 시간을 자주 가지면 가질수록, 한 번 청소를 하거나 본격적인 정리를 할 때 드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퇴근 직후 15분’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새기지만 옷 갈아입기 직전 매번 건너뛰는 나에게는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얄팍한 수에 기대기보다는 시간을 정해두자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기에 난 너무 게으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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