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12월이 되면 눈 내리는 것보다 더 기다려지는 것이 산타할아버지였다. 우리 집에는 한 번도 산타할아버지가 오지 않은 걸로 봐서 집에 착한 어린이가 없었을까 생각해본다. 가능한 한 큰 양말을 문에 걸어놓고 잠을 청하고, 밤새 꿈속에서는 산타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곤 했는데..... 아침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양말에서 사라지고 있던 어린 동심을 보았다. 돌아보면, 동심을 간직하고픈 아이의 이유 있는 슬픔이랄까. 그나마 그 당시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한 달 내내 여기저기서 들려오곤 했었다.
크리스마스 무렵 어린 마음이 느꼈던 외로움과 슬픔 비슷한 감정의 색상은 흰색이었다. 눈 쌓인 언덕 위 교회의 십자가는 유난히 밤하늘에 붉게 빛났다. 교회 종소리는 별빛의 외로움을 아는지, 어린아이의 슬픔을 모르는지 멀리 퍼져만가고.... 그때 크리스마스는 쓸쓸한 저녁 풍경으로 남아있다.
새벽에 대문 앞에서 들려오는 찬송가와 캐럴송은 깊은 잠을 깨웠지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축복을 빌어주는 그 따스함이 겨울 아침을 포근하게 만들었다. 따뜻함과 외로움, 소망과 실망 사이에서 하염없이 내리던 눈발은 앵두전구도 없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이었다. 교회에서 나눠주었던 팥빵 한 개와 사과 한 알은 어린아이들을 언덕 위로 이끌었고, 성탄의 설렘은 종교적 의식을 떠나 하나의 축제가 되었다. 이들 모두가 지금은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한 장의 흑백사진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기다리던 산타할아버지는 오지 않을 것이다.언제인지 모르지만 오래전 원로 산타들이 은퇴한 이후 신규 산타로 충원된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산타의 업무환경이나 자격조건을 들여다보면 이유를 알 것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노인이어야 한다
산타의 전형적인 모습은 따뜻하고 인정 많은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모르는 누군가에게 사랑과 선물을 베풀어주기 위해서는 그런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들어다 보면. 갈수록 노인들은 성마른 캐릭터만 존재하게 되고, 인자한 노인들은 보이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고도의 썰매 운전 실력을 가져야 한다
젊을 때 썰매 운전면허를 취득하였더라도 고령자인 경우에는 눈길을 밤에 운행한다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오히려 면허를 반납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할 시기다. 기존에는 썰매가 소달구지나 말이 끄는 수레와 충돌할 여지도 거의 없었으나, 지금은 칼치기와 난폭운전이 횡행하는 도로에서 썰매 운전은 전용차선이라도 만들지 않는 이상 아주 위험한 행동이다.
루돌프 사슴을 달래고 관리하기 위해 수의사에 준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루돌프 사슴은 사실 추운 극지방에서 썰매를 끄는 순록일 것이다. 루돌프 사슴은 코가 빛나는 특별한 신체를 지니고 있다. 추운 겨울밤 겁이 많은 루돌프 사슴을 달래며 혹시라도 고된 노동에 아플지 모를 루돌프를 돌보기 위해서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동물 친화적이며 동물의 마음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갖추기 쉽지 않다.
착한 어린이를 알아볼 수 있는 영적 능력을 갖춰야 한다
산타가 한참 활약하던 시기에도 착한 어린이와 그렇지 않은 어린이를 구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착한 심성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떤가.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은 착하겠지만(?). 착하기보다는 세상을 많이 알고 있는 영악한 아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더더욱 착한 어린이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렸다. 요즘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가짜 산타를 많이 봐온 까닭이기도 하다.
그 밖의 나머지 조건도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밤샘 업무를 견딜 수 있는 강철체력을 가져야 한다.
한철에만 업무를 할 수밖에 없어 다른 벌이가 있어야 한다. 노후의 연금이 든든하던지...
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강한 멘털을 가져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춘 산타할아버지 지원자가 존재할 수 있을까? 애당초 산타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후천적으로 갖추기 어려운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 외에도 과연 산타는 자신의 일에 만족했을까?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자연환경에 은퇴 이후의 삶이 보장 안 되는 업무환경에 만족해야하는......
더 이상 산타할아버지가 오지 않을 12월의 크리스마스.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 남아있을 영원한 산타는 부모일 수밖에 없다. 비록 진짜 산타가 아님이 진즉에 들통 나 버린게 공지의 사실이지만.
이제는 알겠다. 가짜 산타마저 존재하지 않았던 수십 년 전에도 산타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희망을 솟게 해 주고 일상의 안정을 주었던 우리 부모님들이 보이지 않았던 산타였다는 것을.
산타가 주는 선물은 늘 주위에 도착해있었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양말 속의 선물보다는 구멍 나서 바느질된 양말이 진짜 선물이었다는 것을. 어두운 백열전등 아래서 전구알을 넣어 양말을 깁고 고구마를 깎아주던 어머니, 조용히 지켜보던 아버지가 진정 기다리던 산타였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네 명의 아이들에게 영원한 산타가 된 지금에야 그것을 알겠다. 너무 늦지 않았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