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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Jan 08. 2020

아이폰 액정이 깨지자 마음까지 깨졌다

누구에게나 뻔하지만, 쉽지않은 마음가짐

어느 날 딸이 고가의 아이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다.

 

큰딸은 취업을 해서 처음으로 자신이 구입한 고가의 물건이라 아이폰을 애지중지했다. 그렇다고 딸이 물건에 심하게 집착하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모퉁이가 깨진 폰을 보고 딸은 짜증지수가 올라간다며 한숨을 쉰다.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실수도 책망하고 후회하고 있었다.


그렇다. 아이폰의 액정이 깨지자 딸의 마음도 깨져버린 것이다.


물건도 그렇고, 약속도 그렇고, 계획도 그렇다. 우리가 가지고 있거나 행하는 많은 것들이 사소한 실수로 깨져버릴 때 우리의 마음도 금이 간다. 그 이유가 물건을 탓하는 것인지 자신을 탓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그 깨져버린 물건이나 약속 때문에 언제까지 자신을 책망하고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자신의 사소한 실수로부터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 버틸 것인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도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실제로 과거의 많은 크고 작은 실수나 실패가 현재의 기억을 지배하지 않는다.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사건(트라우마를 남기는 사건)이 아닌 이상 대부분 사소하게 잊힌다. 어쩌다 기억난다 해도 가벼운 웃음거리 정도밖에 안 되는 경우가 많다.(이런 망각을 인류가 멸종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생각하는 인류학자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현재의 사소함에 집착하고 얽매여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을까?


입을 삐쭉거리며 소파에 앉은 딸에게 아빠는 조심스럽게 이런 조언을 했다.


"물건이야 다시 사면 되고, 약속이야 다시 날을 정하면 되고, 계획도 다시 세우면 되는 것이지.

아이폰도 벌써 약정기간 만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가입할 때 들었던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으면 다시 AS를 받아도 되고....."


"물건 때문에 짜증 내봤자 내 마음만 손해고.... 누구한테도 득이 되지 않는다. 다시, 생각해봐라.....

이 사건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인데... 굳이 자신에게 화내고 짜증 낼 필요 없다. 아빠도 그런 것들이 많았다..... 지금도 그렇고."


아빠의 얘기를 듣고는 딸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아빠의 몇 마디가 자신이 스스로에게 하고(듣고) 싶은 얘기였던 것이다. 같은 뉘앙스의 말을 아빠로부터 들으니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로부터 자신의 사소한 실수가 가져온 고민거리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물건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다쳐서는 안 된다는 작지만 중요한 진실을..... 물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까지.


물건뿐만 아니라 수험계획을 그르쳐 중요한 시험을 망쳤을 때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당장 이 시험에 떨어졌다고 해서 세상에서 낙오된 것도 아니다. 이것 또한 사소하게 지나쳐 가보자. 그러다 보면 한참 시간이 흘러간 뒤에... 이날을 생각하고 크게 웃을 일이 있을 것이다."(물론 적절한 반성과 부단한 노력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은 입만 아프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이것만이 우리가 알아야 할 삶의 진실이다.


그냥 시나브로 흘러가는 시간과 그로 인한 망각이 명약이다. 어차피 모든 것이 흩어질 것이기에...


우리 자신과 우리의 마음이 제일 소중하다. 우리 마음먹기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그런 물건쯤이야...


한참 동안 아빠랑 대화하던 딸이 한층 편해진 표정으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이것저것 알아보더니, 일단은 AS로 가능할 것 같다고 하면서..... 별거 아니라는 투로 무심하게 아이폰을 거실에 던져두고.


살다 보면 내 자신에게는 엄청난 고민과 걱정거리인데도 누군가의 몇 마디로 인해 그 상황이 훨씬 덜 부담스러워지는 경우가 있다. 이 밤의 거실 풍경이 그러지 않았을까. 자정을 가리키는 시간,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는 시선에 거실 안의 고요가 포근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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