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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Apr 16. 2020

다시 그대들을 부를 수가 있다면(리멤버 0416)

몇 해 전까지만 해도 4월의 봄은 수학여행의 계절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수학여행”은 우리에게 낯선 단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추억과 사진 속에 남아있는 몇몇 기억들.... 돌아가지 못할 과거의 시간들.... 돌이킬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들...  

   

2014년, 오늘 수학여행을 떠나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기억합니다. 그날 이후 평범한 일상이 절망의 나날로 변해버린 비통한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봅니다.(진정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하루가 있다면 바로 오늘일 것입니다.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에게 바칩니다.     

 

헌화

     

우리 살아

이토록 슬픈 봄이 또 있을까

영혼으로 피워낸 어린 꽃들이여

하릴없이 저버린 가여운 꽃들이여

그대들의 애처로운 부름에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였거늘

우리는 그대들의 부음을

영원토록 전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이었다면

한순간만이라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그대들의 웃음을 다시 들을 수 있다면

오늘 같은 잔인한 사월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을 터인데

우리는 이 찬란한 봄을 용서할 수 없다

봄빛을 탐하던 그대들의 사랑스러운 눈빛이

진정 그리워질진대

그대들을 저버린

우리, 우리 모두에게

더 이상의 봄날은 없을 것이다   



그저 자식이었다가 부모가 되면 누구나 자신의 부모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 부모님들, 아이를 낳아 키우는 하루하루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첫 아이와의 만남을 떠올려봅니다. 새침한 둘째 아이의 눈웃음을... 아이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설레고 감동적인 그 순간이 여러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느 앨범의 한 페이지에, 부모의 색 바랜 가죽지갑 안에... 영원한 기억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애틋하게 존재합니다. 잠자는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부모는 삶의 고단함을 달게 삼킵니다. 그래도 이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겠노라고, 진심으로 행복하게 해 주겠노라고 다짐하면서....    

  

가끔은 사진 속의 얼굴이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를 인연이 있습니다. 비탄과 통곡의 강이 바다를 이뤄도 마르지 않을 눈물이 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 부모님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별이 된 아이들이 다시 엄마 품속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세상을 잃은 아빠를 다시 웃음 짓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먼 훗날, 다시  

   

먼 훗날

혹여, 이 땅에

다시 엄마, 우리 엄마로부터

따뜻한 숨결을 이어받는다면

감사하다는, 말과

용서한다는, 말을

두 주먹에 쥐고

서러운 울음을 터트리리라

슬픔만이 낮게 깔린

부끄러운 하늘 아래

사라진 봄날과 함께 돌아오리라

잘 다려진 교복에

또렷이 이름을 새기고

못다 이룬 소풍을

또다시, 사월에 다녀오리라

현관문에 찰랑이는

목어 소리와

신발 네 켤레가 나를

기다리는

저녁 식탁으로

이제는, 웃으며 돌아오리라  

        


팽목항을 노랗게 물들이던 수많은 발걸음을 기억합니다. 노란 리본이 그렇게 간절한 희망의 상징인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세월호>에는 아직 ‘사람’이 있다는 처절한 외침에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던 몇 년 전 오늘을 떠올려 봅니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투정 부리던 아이를 마음으로 안아주지 못했던 못난 순간을 후회합니다. 다시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안아주지도 다독거려주지도 못할 부모님들의 빈 가슴을 비통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오늘은 하늘도 서러운가 봅니다. 저토록 푸르게 슬픔의 농도를 표현한 것을 보면.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님을 대신해 마지막 편지를 띄웁니다.     


마지막 편지  

   

살아가는 동안

마르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절망의 사월

내가 살아갈 이유와

하루의 삶과 희망이

오롯이 너로 인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체념의 오월

앞뜰의 장미는

어미 새의 눈동자처럼 붉기만 하다     


살아가는 동안

가슴에 묻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서러운 봄날

지독히도 헛된 바람이

팽목항에 노랗게 피어나고

주인을 잃어버린 기타와

닳지 않을 새 운동화, 만이

분노의 바다를 향할 때

믿음 없는 인간 세상엔 장미가 목을 꺾는다  

   

문득, 다시금

학교에서 돌아오는

네 발자국 소리가 들릴 것 같아

라면을 달라고

식탁에서 투정을 부릴 것 같아

네 방문 앞에서 서성거려보지만

이제는 부를 수 없는

영원한 나의 십팔번

우리 딸,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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