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까지만 해도 4월의 봄은 수학여행의 계절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수학여행”은 우리에게 낯선 단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추억과 사진 속에 남아있는 몇몇 기억들.... 돌아가지 못할 과거의 시간들.... 돌이킬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들...
2014년, 오늘 수학여행을 떠나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기억합니다. 그날 이후 평범한 일상이 절망의 나날로 변해버린 비통한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봅니다.(진정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하루가 있다면 바로 오늘일 것입니다.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에게 바칩니다.
헌화
우리 살아
이토록 슬픈 봄이 또 있을까
영혼으로 피워낸 어린 꽃들이여
하릴없이 저버린 가여운 꽃들이여
그대들의 애처로운 부름에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였거늘
우리는 그대들의 부음을
영원토록 전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이었다면
한순간만이라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그대들의 웃음을 다시 들을 수 있다면
오늘 같은 잔인한 사월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을 터인데
우리는 이 찬란한 봄을 용서할 수 없다
봄빛을 탐하던 그대들의 사랑스러운 눈빛이
진정 그리워질진대
그대들을 저버린
우리, 우리 모두에게
더 이상의 봄날은 없을 것이다
그저 자식이었다가 부모가 되면 누구나 자신의 부모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 부모님들, 아이를 낳아 키우는 하루하루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첫 아이와의 만남을 떠올려봅니다. 새침한 둘째 아이의 눈웃음을... 아이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설레고 감동적인 그 순간이 여러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느 앨범의 한 페이지에, 부모의 색 바랜 가죽지갑 안에... 영원한 기억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애틋하게 존재합니다. 잠자는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부모는 삶의 고단함을 달게 삼킵니다. 그래도 이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겠노라고, 진심으로 행복하게 해 주겠노라고 다짐하면서....
가끔은 사진 속의 얼굴이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를 인연이 있습니다. 비탄과 통곡의 강이 바다를 이뤄도 마르지 않을 눈물이 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 부모님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별이 된 아이들이 다시 엄마 품속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세상을 잃은 아빠를 다시 웃음 짓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먼 훗날, 다시
먼 훗날
혹여, 이 땅에
다시 엄마, 우리 엄마로부터
따뜻한 숨결을 이어받는다면
감사하다는, 말과
용서한다는, 말을
두 주먹에 쥐고
서러운 울음을 터트리리라
슬픔만이 낮게 깔린
부끄러운 하늘 아래
사라진 봄날과 함께 돌아오리라
잘 다려진 교복에
또렷이 이름을 새기고
못다 이룬 소풍을
또다시, 사월에 다녀오리라
현관문에 찰랑이는
목어 소리와
신발 네 켤레가 나를
기다리는
저녁 식탁으로
이제는, 웃으며 돌아오리라
팽목항을 노랗게 물들이던 수많은 발걸음을 기억합니다. 노란 리본이 그렇게 간절한 희망의 상징인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세월호>에는 아직 ‘사람’이 있다는 처절한 외침에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던 몇 년 전 오늘을 떠올려 봅니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투정 부리던 아이를 마음으로 안아주지 못했던 못난 순간을 후회합니다. 다시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안아주지도 다독거려주지도 못할 부모님들의 빈 가슴을 비통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오늘은 하늘도 서러운가 봅니다. 저토록 푸르게 슬픔의 농도를 표현한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