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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Oct 07. 2019

아이들의 욕망을 부추기다

너희들의 욕망에 불을 질러라!

#1.

 아빠는 아들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 가끔 대화를 한다.


아빠는 거실에서 셋째인 큰아들과 살가운 대화중이다. 아들이 게임 "포트 나이트" 아이템을 얻기 위해 아빠 스마트폰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그전에는 보인적 없었던 애교 어린 눈동자로 먼가 구애하는 듯한 느끼한 대화를 이어가던 중학교 1학년생과 아빠. 중1 아들의 하염없는 속없음에 인내의 한계를 느끼던 아빠가 물었다.(괄호 안은 아빠가 진짜 하고 싶은 말)


"우리 아들은 뭐가 되고 싶니?"(네가 좋아하는 것은 뭐고, 무슨 직업을 갖고 싶니?)


"지금 당장은 무엇을 하고 싶은 거지?"(그걸 위해서 공부든, 뭐든 지금 어떤 노력을 할 거니?)


"나중에 어른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거는 뭐니?"(어른이 되면 어떤 생각과 직업을 갖고 인생을 살아갈래?)


우여곡절 끝에 아빠 스마트폰을 얻어 게임을 다운로드하고 있던 아들이 건성으로 쳐다보며 한마디 한다.(괄호 안은 아빠가 진짜 듣고 싶은 대답)


"글쎄, 아직은 생각 안 해봤는데...."(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니까, 웹툰 작가가 되고 싶은데)


"지금은 게임을 제일 하고 싶고, 친구들하고는 축구하고 농구하고 싶은데"(지금은 책도 많이 읽고, 여러 분야에 관심도 갖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하고.)


"나중에 어른이 되면 그때 생각하면 되지 머"(나중에 어른이 되면 아빠처럼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데)


"근데 아빠, 저녁에 치킨 먹으면 안 될까? 콜라도?"(그래도 지금은 공부할 거니까, 저녁에는 치킨강정 먹고 싶은데. 아빠)


아주 속 편한 대답을 했고, 애정하는 치킨강정을 먹자는 새로운 요구까지 했다. 적어도 아빠가 기대하는 답은 하나도 듣지 못했다. 우리 아들만의 문제일까? 은근히 화가 나면서 의문이 든다.


아빠 생각에는 요즘 아이들이 한참 전의 부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살 것 같은데. 30~40년 전과 달리 지금은 지식이나 정보의 유통량이 속도도 빠르고 대용량이어서 아이들이 각종 정보에 노출되는 빈도나 농도가 훨씬 높고 진하다. 지금 아이들이  예전의 부모보다 훨씬 더 많이 보고 듣고 있어서 아는 것도 많을 것 같은데..... 왜 그럴까?


왜 지금 아이들은 당연히 해야 할 고민과 생각을 하지 않을까?

어째서 아이들은 지적인 자극과 허기를 느끼고 자신이 하고픈 것을 상상하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이 스스로는 살이 찌지 않는다는 치킨 때문일까.




#2.

지금 부모인 과거의 아이였던 우리들은 어떤 힘으로 인생을 살아왔을까?
어떤 삶의 동기로 청소년기를 지나왔을까?


여러 생각이 겹쳐서 떠오르지만, 막상 결정적인 것은 없다. 부모의 사랑과 지원, 선생님의 헌신과 교훈 , 즐거운 학교생활과 바람직한 교육제도, 좋은 친구들, 자신의 불철주야 노력, 그밖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살짝 우리 부모들에게 이런 이상적인 조건들이 "존재했을까?", "과연 그랬을까?"라는 의문이 없지는 않지만, 오늘의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데는 여러 여건들의 도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데, 나열한 것들을 살펴보니 뭔가 중요한 것 하나를 빼놓고 있다. 그게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머리를 스치는 한 단어.


나 자신의 욕망. 나만의 인생을 살아갈 삶의 의지.


어쩌면 "나 자신의 욕망"이 없었다면 다른 모든 것이 있더라도 (100 - 1= 99)가 아닌 (100 - 1 = 0)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삶의 욕망은 내면의 동기는 물론 끊임없는 인내를 제공하는 마르지 않는 거대한 샘물과 같다. 어린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머릿속과 마음속에 계속적으로 솟아나는 욕망이야말로 우리 삶의 본질이며 우리의 삶을 지속케 하는 자양분이다.

  

자수성가로 나름 성공한 이들의 노력의 이면에는 그들의 뜨거운 욕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평범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대부분도 자신의 성장을 뒤집어보면 그 속에 어떤 욕망이 숨어있을 것이다. 그 형태가 콤플렉스나 성공 욕구, 왕자병(혹은 공주병)이든 간에 인간의 열정과 몰입에 연료를 제공해주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있었다.


지금의 부모들에게는 덜 치열한 시대를 살아오면서 적어도 자신의 삶을 이끌어갈 만한 자신만의 생의 열정, 즉 욕망이 있었던 것이다. 청소년기를 거쳐오면서 공부 이외에 다양한 상상의 차원과 그것이 허용되었던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던 것이다. 이것이 부모들이 살아온 세상과 지금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다른 점이다.


중학생인 아들과 얘기하다 보니 공부와 게임 얘기 빼놓고는 다른 주제가 별로 없다. 다른 얘기를 할만한 생각을 안 하고 있다는 거다. 그렇다고 책을 읽지 않는다거나 공부만 하는 아이도 아닌데도 말이다. 우리 아들한테 뭐가 없을까?


가만히 보니, 아들에게 다른 욕망이 없었다. 자신만의 삶의 열망이. 부모들에게는 있었던 자신만의 의지나 열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3.


아이들의 세상은 매 순간이 경쟁이다.


요즘 아이들은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던 시절과는 달리 '죽어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부모를 통해서 건 타인의 말이나 대중매체를 통해서 건 계속적으로 듣고 또 들어서 머릿속에 콕 박혀있다. 그래서 학교와 학원을 공부하는 곳으로 여기고, 친구들과 놀이도 그냥 공부시간 외의 시간을 때우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학교는 쉬는 곳이고, 학원을 공부하는 곳이라 여기는 아이들도 있다. 물론 친구를 경쟁상대나 밟고 올라가야 할 상대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원래는 중고등학교와 대학시절마다 충족해야 할 욕구를 그때그때 실현하고 그 과정에서 자아를 탐구하고 고민하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초경쟁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이 과정이 생략된다. 이 중요한 과정이 생략되거나 유보된 채로 시간이 흘러가면서 욕망은 더 폐쇄적으로 억압되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분출되기도 한다. 그 핵심에 도구화되고 기능적 역할에 충실한 가정이 있다. 이때의 가정은 애정의 결합체가 아닌 신분 유지나 상승을 위한 도구적 복합체에 머무른다.


공부는 열심히나 자신의 삶에는 무기력한 아이를 한번 쳐다본다. 그 뒤에는 온갖 장비로 무장한 "헬리콥터 부모"와 "잔디 깎기 부모"가 버티고 있다. 부모가 아이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거의 모든 것을 해주다 보니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고픈 욕망이 사라지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부모의 의지나 욕망에 의해 아이의 욕망이 제거당하는 것이다. 각 가정의 경제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알게 모르게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은 키워지고 있다. 다른 욕망은 제거되고 오직 공부에 대한 열정만을 살리는 채로. 결국 그것이 삶의 무기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큰 문제는 타인으로부터 제공된(혹은 강요된) 욕망은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는 이다. 다시 말해 부모로부터 비롯된 성공한(혹은 따라 해야 할) 삶에 대한 욕망은 아이들의 것은 아니라는 거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부모의 의도에 의해 아이들의 욕망은 이끌어지고 재단된다. 나아가 부모의 관여는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상상의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상상한다는 것은 욕망하는 것이다. 나 자신의 의지와 생각의 힘으로 가보고 싶은 곳과 해보고 싶은 것을 욕망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상상의 힘이 약해지고 그 영역이 축소될 때 아이들의 삶의 동기와 상상해야 할 시간과 여지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해줘야 할 것은 하나다.


아이들의 다양한 욕망을 부추기는 것. 그들의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주는 것.


누구든지 생각한 대로 상상하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신의 미래의 삶을 상상해야 현재의 고민이 생기고 고민을 해야 비로소 내일의 삶이 그려진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민과 자기 확신의 시간이 빠진다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 의한 삶에 기대거나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원한다. 자신의 아이들이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하지만 이렇듯 부모의 의지에 기대어 살아가는 아이들은 부모의 욕망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아이 스스로의 욕망은 억제되고 아이의 상상은 타인의 삶의 외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이에게 "헛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고 말하고 뒤통수를 노려보는 부모님에게 드리는 말씀.    


아이들에게 상상의 시간과 욕망의 여유를 허해주시라!


공부와 게임 외에 다른 생각이 없는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너 자신의 욕망에 불을 질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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