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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Nov 20. 2019

백색소음 같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1.

카페에 가보면 한쪽 테이블에서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는 이들이 많다.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집중이 잘되는가 보다. 영어단어를 외우고 책을 뒤적이며 노트북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뭔가 리듬감이 느껴진다. 도서관이나 공부방에서 공부하고 글을 쓰면 더 잘되지 않을까 싶지만. 요새 트렌드는 카페에서 공부하기와 글쓰기다. 유명 소설가들도 동네 빵집이나 카페에서 종종 글감을 떠올리고 창작활동을 한다고 하니 무언가 있는가 보다. 무엇이 이들을 카페로 이끌었을까?


그것은 특별한 분위기를 지닌 소리(소음). 백색소음이었다. 그들을 커피 향속으로 이끈 것은...


중력이 사라진 공간에서 인간의 몸은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다. 소음이 사라진 공간에서 인간의 영혼은 자유롭게 고요를 꿈꿀 수 있다. 가장 깊은 심연에서 솟아나는 영혼의 소리는 적막이 아니면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절대 고요와 적막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없다. 우리의 주변은 온갖 생활소음과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온갖 시끄러운 소음으로 뒤덮이다 보니 주위는 산만해지고,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어졌다.


그런데, 우리의 귀에 들리는 소음 중에는 이렇듯 거슬리고 시끄러운 소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양한 음역대의 소리를 합하면 넓은 음폭을 지닌 소리가 되고, 그 소리가 주변의 다른 소음을 덮어주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를 <백색소음>으로 부른다. 갓난아이들도 진공청소기 소리나 TV의 지지직 소리에 잠을 잘 이룬다고 하니 백색음이 지닌 힘은 대단하지 않은가.


직장에서도 우리가 편안함을 느끼는 백색소음을 듣게 되면 업무에 집중은 물론 기분도 더 좋아진다고 한다. 동료의 전화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대화하는 소리가 백색소음에 묻히게 되면서 자신의 영혼이 깨어나는 것이다. 이 순간을 몰입(flow)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는 업무의 집중력을 높여주고 불필요한 잡담을 줄여준다고 한다. 부가적으로 부산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주파수의 영역에 맞추어 신체적 움직임도 거스르지 않게끔 행동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독서실에도 의도적으로 백색소음을 들려주는 곳도 있다. 아이들의 집중력을 올려줄 뿐만 아니라 학업성취도를 올리는 효과 때문일 것이다. 의학적으로도 백색소음을 들었을 때 주변에 관심을 갖는 횟수가 줄고 스스로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이러한 효과를 뒷받침해준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주위에 백색소음이 널려있다. 비 오는 날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 처마 밑에 비 떨어지는 소리, 대나무 숲에 바람과 빗방울이 만들어내는 군무, 창가에 떨어지는 빗소리, 부엌에서 부침개 부치는 소리. 이들의 하모니를 누가 거부하겠는가.


사람이 적은 바닷가에서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는 갈매기의 날갯짓,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에 바닷가는 천국이 된다. 밀려오는 파도소리가 들리는 바닷가 숙소에서 잠을 청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파도소리는 자연이 주는 최고의 수면제라 할 수 있다.


알고 보니 백색소음은 우리에게 아주 유용한 소리였다. 지금은 상품으로도 개발되어 팔리고 있는 ASMR(자율 감각 쾌락 반응)도 이것의 일종이다. 혹시나 가정에서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백색소음이 있을까?




#2.

부모는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아이들은 부모의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유아기 때나 초등학교 진학 이전에는 엄마 아빠가 절대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부모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보호본능이 충족된다. 이때에는 부모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지 어떤 무용한 소음을 내든지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내면의 상처를 입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이때의 부모는 존재 자체로 아이들에게는 생존환경이자 생활의 기본이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부지불식간에 가치관이나 생활방식, 자질구레한 습관들까지 많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순간에.


하지만 아이들이 초등학생만 되면 자기 인식능력이 발달한다. 그토록 친밀했던 엄마 아빠와의 사이에 무언가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는 것도 이때부터다. 맨날 옳은 얘기로만 들렸던 부모의 얘기가 빈틈과 비논리적인 면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때부터 부모의 권능은 아주 상대적인 것으로 바뀐다. 부모가 하는 많은 얘기들이 잔소리로 들릴 때가 이때쯤이다.


아이들 입장에서 부모의 존재감을 생각해보면. 그냥 생활소음 같은 존재로 여기는 부모도 있을 것이고,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백색소음 같은 부모도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이들이 부모의 얘기를 그저 부정적인 잔소리로만 여기고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어쩌면 우리가 어릴 적 우리 부모들이 지금의 백색소음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덜 간섭받고, 나름 원하는 인생의 진로를 잡고 살아온 것을 돌아보면. 그 당시 부모님들이 그렇게 의도했든, 상황이 그러했든 간에 부모로부터 자유롭게 성장한 이들이 많았다. 물론 지금과는 다른 경쟁상황과 사교육으로부터 자유로웠다는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겠지만.


지금은 어떨까? 헬조선, 초경쟁시대, 만성 청년실업,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로 표현되는 시대. 이 같은 상황에서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다 보니 아이들의 공부와 진로에 대해 지나친 관여나 간섭을 하는 부모들이 많아졌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율성이 줄고 부모의 관여를 사랑의 보살핌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부당한 간섭으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 헬리콥터 부모나 잔디깍기 부모나 아이들의 미래를 이유로 학원으로 내모는 부모들이 특히 그렇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선택이나 친구 집단의 연결까지 고민하는 부모들을 주위에서 심심찮게 본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중학교 과정 선행학습을 주도하는 것도 부모들이다. 이때부터 아이들의 진로탐색을 아이들에게 맡기지 않고 부모가 알아서 해주는 경우도 많다. 과연 이러한 부모들의 역할에 대해서 아이들이 어떤 평가를 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아이의 적성이나 타고난 재능을 잘 파악해서 이끌어주는 부모도 있을 것이고, 부모의 의도대로 아이를 이끌어가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뭐가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물어볼 일이다.


태아 때 엄마의 심박동, 아빠의 중저음(?)의 노랫소리는 백색소음의 전형이다. 아이들에게 가장 원초적인 편안함을 주는 소리. 아이들은 커나가면서도 태아 때부터 들어왔던 특정 주파수의 편안함을 주는 부모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백색소음은 가정 내의 분위기다. 따뜻한 시선이 존재하고 사랑의 감정이 떠도는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영혼의 테라피 같은. 향 좋은 디퓨저가 공간을 아늑하게 해 주듯이 부모들이 내뿜는 적당한 백색음은 아이들에게 보호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때로는 부모의 잔소리가 아이에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고, 무언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 음료가 될 수도 있겠다. 우리 부모들이 기다리는 것이 있다면 이런 순간이 아닐까.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를 영원한 후원자로 여기는 순간들. 부모가 곁에 있을 때 자신들의 인생이 좀 더 풍부해짐을 느끼고 행복해하는 순간들.


아이들이 자신들의 방에만 있지 않고 생활의 중심인 거실에서 부모와 부대끼며 살아가는 풍경은 생각만 해도 흐뭇하지 않은가. 현실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부모가 돌아와도 모른 체하고, 밥 먹을 때마저도 스마트폰에 시선을 떨구고 대화가 실종된 가족들이 많은 세상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카페의 백색소음처럼 아이들을 편하게 집중하게 해주는 부모는 되기 어려운 걸까?


생각해보면, 가장 좋은 부모는 공기나 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진짜 소중하지만 그 존재감이 그렇게 부각되지 않는 배경 같은 존재. 이런저런 얘기 소리가 아이들을 거실로 불러 모아 공부도 하게 하고, 스르륵 잠도 들게 하는 백색소음 같은 부모의 존재.


부모가 이처럼 아이들에게 소중하면서도 결핍과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만 존재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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