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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Jan 19. 2021

사립유치원 개혁은 이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립유치원 개혁의 트리거, 오종민 전 감사관을 말한다.

언제부터 자식을 둔 부모들이 죄인이 되었을까?


취학 이전의 유치원생들 아이를 둔 부모들을 분노케 한 사건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부모들로 하여금 유치원 운영자들을 달리 보게 한 사건이 있었다. 어쩌면 한국사회에서 사립유치원의 위상은 그 사건을 전후로 평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부모들은 그들을 신뢰했었다. 그들의 친근한 미소 속에서 기대 이상의 애정과 호의를 발견했었다. 그들의 배웅 속에서 아이들이 보냈던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행복한 하루를 감사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생각들이 순진한 착각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극히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되었고, 누군가는 그 상품을 팔아 호의호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물론 대부분의 운영자들은 부모들의 바람대로 애정과 헌신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 교육문제에 있어서는 영원한 약자다. 특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원에서 묘한 상황의 을(乙)이 된다. 내 돈 주고 아이를 맡기고도 운영주체에게 읍소하고 잘 부탁한다며 고개를 숙인다. 아이를 가진 부모들의 숙명일까. 아니면 아이를 낳은 죄인일까.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이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의 맘속에서 맴돈다.

 


1. 누가, 무엇이 문제였을까?


부모들을 실망케 하고 절망케 하는 아동보육의 현실은 누가, 무엇이 문제였을까? 운용주체의 행위의 근거를 제공하고 규제하는 법령이 문제일까. 운영주체의 흑심이나 사심이 문제일까. 이들을 감시하고 감독해야 할 교육청과 공무원들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이들에게 아이들을 맡긴 부모들이 문제일까?


법치주의가 바라는 법은 이상향을 지향하지만, 현실 속의 법은 이상적으로 제정되지는 않는다. 그 법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가 반영되고, 상충되는 의견을 조정하여 합리적인 균형의 연장 선상에서 법과 제도라는 외피를 가진다.


유치원 관련 3 법은 <사립학교법, 유아교육법, 학교급식법>이다. 사립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일정 범주에서 이 법들의 적용을 받는다. 문제는 그동안 사립유치원 등의 회계나 재정에 관한 사항이 공적규제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사유재산권의 행사라는 빌미 속에서 운영주체의 방만과 비리의 단초를 제공했다.


법률 개정 과정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은 사립유치원의 회계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에 관한 사항이었다.

사립유치원 등이 가진 사유재산권의 자율성과 공익성 차원의 감사체계로의 편입이라는.


과연. 사유재산권의 존중이 먼저일까. 어린이 보육과 사회적 공익이라는 공공성이 먼저일까. 헌법상 기본권의 체계나 상호 갈등에서 비롯되는 문제로 헌법재판소에서 다뤄야 할 정도의 사안일까. 상식의 선에서 바라보면 무엇이 옳을까. 상식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 답은 무엇일까.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까.



2. 공무원 하면 떠오르는 말은 무엇일까?


공복, 봉사자, 복지부동, 철밥통... 최근 들어 공무원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보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다. 말없이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공무원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공무원도 있다는 반증이다. 누군가는 일단의 공무원을 가리켜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는 정치권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자기 소신이 없는 공무원의 상황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리라. 물론 공무원 개개인이 처한 조직상황이나 주어진 권한과 재량을 정확히 판단하지 않고 내뱉는 조롱이라면 그 또한 <영혼 없는 비난>에 불과할 수 있다.


신규 공무원이 되는 누구나 임용 과정에서 해야 하는 선서가 있다.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공무원들이 이 선서에 부합하는 행위를 하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만만치 않다. 누군가는 이 선서를 지키기 위해 성실하게 살아가고, 소수의 누군가는 사심 가득한 행동으로 일관한 이도 있을 것이다.




3. 철밥통이 아닌 진정한 공복의 전형을 보인 공무원이 있었다.


사립유치원 개혁 3법은 거창하게 불리지만. 막상 사립유치원의 회계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개정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상식적인 내용의 개정임에도 관련 단체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 힘)의 반대 때문에 입법과정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유치원 개혁 3법의 통과에는 경기도 교육청 감사관실에 근무했던 오종민 전 감사관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통상 감사관의 업무는 피감기관의 업무와 관련된 범주의 타당성과 위법성 여부를 감사하는 것이다. 위법사안을 적발 시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도 피감기관에 시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감사현장에서 담당공무원들은 무엇을 했을까. 제한된 시간 안에 전임자들이 해왔던 관행적인 감사업무를 반복적으로 해오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괜히 일을 크게 만들어 긁어 부스럼을 일으킬 수도 있고, 튀는 공무원이라고 주위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관련 단체로부터 부당한 압력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소신과 다르게 어쩔 수 없이 관행을 반복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불편한 진실 속에 갇힌 관행의 부정적인 결과는 오로지 국민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관행의 이면에는 관련 법령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제정하거나 개정하기를 바라는 단체가 있고, 이들 이익단체로부터 입법로비를 받는 국회의원들이 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시스템하에서는 어떤 단체든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입법행위를 요구할 수 있다.

다만, 그 요구에는 그들의 견해가 정당할 때라는 입법적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그 단체의 입장에서만 정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서비스 수혜자인 국민적 이익과의 균형에서 정해져야 한다. 그러한 균형 없이 만들어진 법령은 단체의 이익에만 충실하고 수요자인 국민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그 법은 결국 정당성과 균형을 잃은 나쁜 입법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감시와 견제를 벗어난 관행을 가진 우리의 현실이다.


오종민 전 감사관은 이러한 관행에서 벗어나 자신의 직분에 충실할 줄 아는 공무원이었다. 피감기관의 불법적인 관행이나 편법을 눈감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는 사립유치원의 특정감사를 통해 유치원의 공공성과 회계투명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그의 행동은 그동안의 부정과 부조리에 대한 반성적 계기를 마련했고, 부당한 현실에 대해 사회적 경종을 울렸다는데서 의미가 크다.


오종민 전 감사관은,
사립유치원 개혁 3법 통과 계기를 마련하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시발점 역할을 했고,
학교급식 전자조달시스템 의무화 도입에 기여했고,
한국투명성기구에서 수여하는 투명사회상(2017년도)을 수상했다.




4. 오종민 전 감사관의 고통과 사명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감사과정에서 피감사기관인 사립유치원 측으로부터 수많은 진정과 고발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심지어는 가족의 사생활을 비방하는 못된 루머도 있었다. 현재도 감사 당시 사립유치원 측과의 갈등으로 인한 각종 재판 과정의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출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는 승진에서 누락되는 등 조직 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공무원인 개인이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공무원의 존재 이유를 명백히 밝히면서 살아가기가 쉽지는 않다. 조직 내에서 이를 시기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소신은 근본적으로 이익집단으로부터 다양한 민원과 권력형 압박을 받는다.

한 개인으로서 공무원이 그 시련을 감당하기에는 불이익이 크다. 승진 문제나 부당한 진정뿐만 아니라 잘못된 소송에 휘말려 개인의 사생활이 핍박받을 수 있는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가 그런 부당함을 알고도 선뜻 나서겠는가. 누가 당신이 아니면 이 문제를 적발하고 해결할 수 없다고 등을 떠밀 수 있겠는가.

멸사봉공이나 살신성인 같은 말은 그럴듯하지만, 내 발등에 불 떨어질 때 그런 구호는 액자 속의 사자성어에 불과하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그 상황에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아마도 오종민 전 감사관 또한 이 많은 문제를 고민했을 것이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한 아버지로서 어찌 두려움이 없었을까. 잠시 모른 체하고 편안한 길을 걸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선택의 순간, 옳고 소신 있는 일을 했을 때 느끼는 보람도 생각했을 것이고. 그 이면에 부당한 업무수행이라고 말하는 이들로부터 오는 격정적인 반응도 걱정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고민스러운 상황에서 소신 있는 행동과 역할을 했고, 그 결과로 인해 유치원 3법의 개혁이라는 결과물이 있었다. 어쩌면 국가의 녹을 먹고 있는 공무원 신분에서 당연한 일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당연한 일들을 어느 누구나 당연하게 해오지는 않았던 역사적인 경험을. 누군가 그 역할을 제대로 했었더라면 국가나 사회적 위기의 극복뿐만 아니라 더 진보적인 사회가 될 수 있었다는 뒤늦은 후회를. 국가나 국민을 위해, 공공조직이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돌아보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종민 전 감사관 또한 그러하지 않았을까?


그는 현재 경기도 소재 고등학교 행정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전국의 교육 관련 감사담당자들에게 본인의 감사 노하우와 사명감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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