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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Sep 14. 2021

남산을 넘어 명동에 이르니 오래된 미래가 보였다

동네 산책이 지겨울 때가 있다. 집 주변은 별다른 준비 없이 가볍게 나가면 되지만, 너무 익숙한 풍경이 특별한 감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밥이 질릴 때쯤 외식메뉴가 눈에 들어오듯 이때에는 시야를 좀 더 멀리 확장해볼 필요가 있다. 서울 도처의 둘레길도 대부분 여러 번 가본지라 좀 더 다양한 장소를 물색했다. 그러다 다시 익숙한 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늘 서울 한가운데 위치하면서도  가지 못하는 산. 옛 이름  목멱산, 지금의 남산이었다.


남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그중 걷기 싫어하는 이들을 위해 명동 쪽에서 케이블카도 준비되어 있다. 봄가을 가벼운 트레킹 하기 좋은 명소로 알려져 있어 주말이면 가족 단위의 인파가 물결을 이룬다. 유모차와 맞잡은 손들이 정겨운 풍경으로 남산 둘레길을 오르내린다. 그들이 보여주는 미소와 얘깃소리에 산 이곳저곳에 다투어 피는 꽃들까지 한데 어우러지는 하모니는 가히 소망하는 절경이다. 여러 지하철 역에서 꼭대기에 이르는 순환버스가 몇 대 있지만, 역시 남산길의 백미는 걸어 올라가는 것이다. 우리는 동대입구역에서 출발해서 국립극장을 지나 오르는 익숙한 경로를 택했다.


가을의 맑은 하늘은 시야가 막힘이 없었다. 중간 쉼터에서 바라본 한강 이남의 전경. 멀리 롯데 타워가 보인다. 멀리서 바라보면 저토록 작은 존재이거늘ᆢ

남산을 걷다 보면 서울의 사방을 두루두루 마주할 수 있어서 주로 한 방향을 보고 지내온 일상과 다름을 경험할 수 있다. 한강과 강남이 보이다가 인천 방향의 경인 길이 어렴풋이 들어오고, 청와대와 병풍처럼 펼쳐진 북악산과 북한산이 보이다가도 멀리 수락산과 아차산 너머까지 조망할 수 있다. 이들 모두를 두어 시간 내에 볼 수 있다는 것은 남산의 산행만이 줄 수 있는 즐거운 매력이다. 더욱이 사계절마다 바뀌는 남산만의 풍경과 서울 외곽의 변신은 사진 애호가들의 최애지로 알려져 있다.


산 중턱에 중간중간 최적의 사진 포인트를 둬서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동서남북 가리지 않고 아파트 공화국의 명성에 걸맞게 사방이 온갖 브랜드의 건축물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그 속에 우리의 지난한 삶이 살아 숨 쉬고 있다고 생각하니 애잔한 감성이 가슴 한구석에 꿈틀거리기도 한다. 욕망의 결정체로부터 소외된 인간들의 일상이 이토록 콘크리트 벽에 갇혀 살고 있었나 하는 낯선 깨달음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남산 타워까지 오르는 길은 자칭 철학자나 시인의 면모를 지닌다.



한철 피었다 지는 이름 모를 꽃들에게 보내는 헌사는 역시나 한생을 살다가는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외경이다. 소나무 사이에서 살고 있는 청설모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은걸 보니 남산 내의 생명체들은 사람들에 대해 더 친화적으로 변모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잘 자란 소나무들은 서울 종묘의 그 나무들을 떠올리게 한다. 수백년의 세월을 거쳐 인간세상의 영욕을 지켜봤을 나무들. 그들 사이로 잠시 떠올랐다 사라지는 작은 동물과 사람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남산 산책로의 곳곳에 피어있는 꽃들의 군락. 두 눈은 그저 호강할 뿐, 자연의 위대함에 덧붙일 수사는 없다.

남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하지는 않지만, 도심 한가운데 이런  숲 속이 있었나 할 정도로 고요가 느껴진다. 가끔씩 들리는 대화 소리나 거친 호흡이 아니라면 강원도 오대산 초입에서 월정사에 이르는 어느 한 길목에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마저 든다. 그 고요는 남산의 명물 N타워에 가까워질수록 다양한 소란과 사연을 품은 사람들에 의해 막을 내린다.


꼭대기에 다다르기 위해 마지막 급경사를 올라가면, 맑은 날이면 저 멀리 인천 앞바다까지 보인다는 남산타워가 위용을 드러낸다. 360도 회전하는 맨위층에는 늘 관광객들과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붐비고 있다. 아마도 여의도의 63 빌딩이나 잠실의 롯데타워에서 바라본 정경과는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특히 저녁시간에 바라보는 서울의 야경은 역설적이지만 찬란한 낭만을 보여준다. 그 속에 숨은 인간의 고통과 비애가 빌딩 숲이 발산하는 인공의 빛에 가려진 까닭일터이다.  


타워 밑에는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도 보았던 거리의 화가들이 연인들과 아이들의 얼굴을 스케치하고 있다. 비록 자신과 많이 닮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인물화를 받아 든 이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달려있었다. 누군가는 서울을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는 북한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어떤 연인들은 자신들의 사랑의 언약을 영원히 풀리지 않을 자물쇠에 봉인시키고 있었다.

사랑이 봉인된 난간이 오래 버텨 주어야 할 텐데 라는 걱정이 앞섰던 형형색색의 자물쇠들. 저 무게만큼 세월의 더께가 연인들의 마음속에 쌓이길 바란다.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우리의 사랑은 아직까지 유효할까, 우리의 사랑은 자물쇠가 필요 없을 정도로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았지만 마음속의 갈등은 없었다. 명동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맥주와 돈가스가 유혹하는 계단길을 지나쳐야 했다. 농밀한 거품과 바삭한 기름기가 흐르는 돈가스의 조합에 여러 번 흔들렸지만, 이 길을 쭈욱 따라 내려가면 우리의 청춘이 머물렀던 명동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명동 쪽으로의 하산길은 계단의 연속이었지만 명동에서 남대문을 거쳐 광화문까지 보이는 거리뷰가 단조로움을 잊게 했다. 물론 이 쪽 길을 통해 남산으로 올라오는 이들에게는 살짝 지겨울 수도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맨 밑에 다다르면 역사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발자취가 있었다.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의 동상,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과 백범 김구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에게 교훈을 줄만한 인물들이 서계셨다. 특정 정치적 색깔을 가진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저분들 중에 누군가가 나서서 자신의 양심을 꾸짖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서울과학전시관에서 소파로로 내려가는 계단을 내려가면 비로소 명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드라마 속 오래된 건물 같은 회현시민아파트를 거쳐 우리은행 본점까지 이르는 골목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었다. 골목길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다 어디선가 우연히 봤던 "Yesterday's Gone"이라는 상호의 BAR가 떠올랐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를 남겨두고 현재로 흘러가는 무심한 시간때문이었을까. 예전의 시간이 흐르던 좁은 골목을 헤쳐 나오다 보니 그 끄트머리에 21세 기적 경적이 소리를 내지르는 대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대각선 너머에 오늘의 목표인 명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명동 우리은행 본점 건물에 커다란 걸게 그림과 문구가 길손들을 붙들었다. 진심으로 가족들에게 하고픈 말이었는데...

배고픔을 참고 신호등을 기다리며 오가는 차와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코로나 시국에 예전 같은 활력은 없었지만 여전히 서울의 중심이라는 자존심을 가진 동네 아니던가. 명동골목 안쪽에는 외국인 관광객 감소로 인한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1990년대 낭만적인 명동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명동(혹은 서호) 돈가스나 몇 집을 제외하고는 전혀 다른 도회적 풍경을 가진 명동은 마치 한국사회의 외국인 마을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스카이라운지의 경양식집으로 유명했던 유네스코 회관은 아직 그대로였지만, 그때의 정겹고 맛있었던 음식점은 사라지고 없었다. 소중했던 추억 한 조각을 잃어버린 시선은 최후의 보루인 명동성당을 찾아 헤매었다. 그 거리를 같이 거닐던 친구들은 눈 내리던 겨울의 명동길과 은은했던 대성당의 불빛을 기억하고 있을까.


거리에 넘쳐나던 크리스마스 캐럴과 연말 분위기에 들뜬 이들. 그 거리의 끝에 경건하게 명동을 비추던 성당의 크리스마스트리와 미사를 마치고 나오던 종종걸음들. 어묵과 오징어 섞어찌개, 차가운 술을 마시기 위해 서두르던 발길들. 명동성당에서 롯데백화점 본점에 이르기까지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즐기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손에 담긴 꽃다발과 주고받은 선물꾸러미. 지금은 누구의 가슴속에서나 어느 사진 속에서 남아있을까.


신을 믿지 않았던 20대 시절에도 명동성당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성지로서, 수많은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로서, 시대적 고통에 상처 받은 이들의 치유소로서 그 역할을 다했다. 본당의 미사는 물론 지하성당과 뒤뜰의 성모 마리아상까지 안식과 평화를 주는 시민들의 성소였다. 비록 우리가 기억하는 삼십 년 전의 명동은 아니었지만, 명동성당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성당 주위에서 지하성당을 지나 뒤뜰에 이르니 묵상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었다. 눈을 감고 절대자를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을 보니 남산을 넘어 이곳까지 이른 이유를 깨달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의 미래를 보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2021년 9월의 오늘은 우리가 살아왔던 1990년대의 오래된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동성당에 오르는 작은 오솔길과 언제든지 누구든지 미사와 묵상을 할 수 있는 지하성당. 누군가는 아이를 원하고 마음의 안식을 원하고 사랑을 구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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