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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Oct 14. 2019

부모만의 특별한 레시피가 필요한때

#1.

애당초, 부모를 화나게 하는 말들이 있었다.


가끔 TV나 신문의 기사를 보면 '이렇게 아이를 성공적으로 키웠다'라는 케이스를 본다. 부러움 반 질투 반 시기 어린 부모 마음에 마냥 칭찬만 나오질 않는다. 수능 전국 수석 한 어느 학생처럼 티브이에 나오는 부모들도 하나같이 하는 말.


"간섭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무한한 신뢰를 줬더니.... 정말 스스로 알아서 잘하던데요"

"처음에 약간의 좌절은 있었지만 부모가 고생하는 걸 아는지 아이가 깨닫고 열심히 한 결과였다"

"타고난 것인지, 어릴 때부터 자기 스스로 알아서 잘하던데요"

"학원이요, 자기 필요한 것만 찾아서 다니고 혼자 교과서로 공부했어요. 기특하죠?"

"우리 부부는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어요. 공부란 게, 별게 있나요?"


...라는 신문 기사나 방송 인터뷰를 보다가 상을 뒤엎거나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는 부모들도 많을 것이다. 그 말들의 진실은 믿지만, 그렇게 해도 된다는 현실이 왜 우리 집에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에. 급히 냉장고 문을 열고 캔맥주 하나를 꺼내들 수도 있겠다.


아마도 상당수의 부모들은 수능 전국 수석의 말 한마디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보이는 발작과 유사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왜 우리 집이랑 여러 가지가 비슷한데, 우리 아이는 안될까라는 좌절감의 보너스도 함께 받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부모의 생각을 바꾸면 되는 건데.




#2.

왜 누구는 되고, 누구는 되지 않는 걸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부모가 아닌 아이에게 달려있다. 시험은 아이가 보는 거니까. 문제는 그 시험 준비과정에 진정 아이 혼자서 했었는가 아니면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돼서 능력 이상의 성과를 거뒀는가에 달려있다. (사실 경제력 차이로 인한 결과의 차이는 시험의 공정성 차원에서 따져야지, 여기서 얘기할 건 아니다.)


아이들의 시험 준비와 사교육비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은 영역이다. 쏟아부은 만큼 일정한 결과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달에 수백만 원이 드는 학원비나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교육컨설팅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가끔씩 결과가 반대인 경우, 그런 경우는 진짜로 운이 안 좋은 케이스다. 왜 다들 대치동으로 목동으로 몰려가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나온다.


평균 이상의 능력만 갖추고 사교육 시장에서 선행학습과 무한 반복을 되풀이하다 보면 내신등급과 수능 고득점은 어느 정도 보장된다. 여기서 "어느 정도"란 아이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치동이나 목동에서도 폭망한 학생들이 아주 많다. 노력이 부족했거나 노력이 배신한 경우다. 이것도 어쩔 수 없다. 비슷하게 공부한다고 해서 모두가 1등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꼭 사교육 시장 쪽으로 가라는 얘기는 아니다. 아이마다 부모마다 각기 다른 삶의 방식과 선택과 노력의 차원이 있기 때문에 저런 방식이 최선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려는 거다. 한 가지 더하여 가정의 경제력이나 부모들의 교육철학적인 문제들까지. 이것은 고차방정식의 문제이지 단순히 이차방정식으로 해법을 내놓을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 우리는 공부에서 1등을 하지 못해도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부족하니까 학원이나 가자는 것은 부모나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얘기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없으니까 하는 말들이긴 하지만. 우리 삶은 어느 영화처럼 5차원의 세계에서 전개되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마땅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거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이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부모가 경제적 뒷받침이 된다고 해도 아이가 동기부여가 안되거나 노력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그렇다고 안 되는 공부 억지로 하게 되면 대부분 결과도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어쩌다 행운의 여신이 손을 들어줄 수 있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결과를 바랄 수는 없다. 대학 가서 퍼지거나 각종 시험에 안되거나 취업에 실패하는 경우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그저 운이 안 따른 케이스가 아니라는 거다. 주위를 돌아보면 이런 사례는 아주 많다.



#3.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부모가 해야 할 것 중 첫 번째는 아이의 수준이나 능력을 헤아리는 거다. 공부에 소질이 있는지 여부를 알아채는 문제인데. 이것도 생각보다 간단하다. 부부가 서로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라. 그러면 답은 나온다. 답이 나오면 부정하지 말고 솔직히 욕심부리지 말자. 돈 버리고 자식 버린 케이스가 너무 많다. 부모들의 노후마저 불안해진다.


두 번째는 그런 유전적 소인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동기부여가 잘되어 있거나 후천적인 노력의 욕망이 강한 경우인지를 살피는 거다. 이때는 부모의 남다른 지원이 있다면 충분히 승산 있는 게임이 될 수 있겠다. 어차피 유전학적으로도 돌연변이도 있고, 부모도 자신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 이 케이스에 속한다. 개천에서 용 나는 전설 같은 얘기들은 거의 이 경우에서 나온다. 자기 주도형 학습에 능한 아이들도 이쪽인 거다.


세 번째는 부모들이 주도하지 말고 아이에게 맡기는 거다. 자신의 인생이니. 부모의 관여로 잘된 케이스는 생각보다 적다. 소수의 성공한 케이스가 소문이 과도하게 퍼져서 많은 부모들을 착각의 세계로 인도하는 거다. 우리 집도 그렇게 하면 되겠지. 하지만 속지 마시라. 소문은 소문이고 진실은 진실이니까. 이때는 돈 버리고 자식 성질 버리고 부모 자식 간 관계까지 나빠질 수 있는 가장 안 좋은 케이스다. 그냥 나두는게 최선책이다. 어찌 되었건, 책임은 아이에게 있다.


결국 종합해보면, 아이들의 공부와 대학 진학과 취업의 문제는 오롯이 그들만의 문제다. 그것도 자신들이 공부에 소질이 있거나 관심이 있거나 노력할 수 있는 욕구가 있을 때의 문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찾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한두 갈래만 있는 좁은 세상은 아니지 않는가?


부모나 아이에 맞는 각각의 인생살이가 다 준비되어 있다.(여기서 사회구조적인 얘기는 하지 말자.) 굳이 자신의 길이 아닌 타인의 길에서 헤맬 필요가 없다. 억지로 해서 되는 것도 있지만, 억지로 하다 보면 대부분은 탈이 나거나 부작용으로 안 좋은 결과로 끝을 맺는다. 평생을 후회할 수도 있다.  


오히려 부모들은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부모로서 던져야 할 근본적인 질문들.


나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 걸까?(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을까?)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시킬까?(경제적인 문제를 빼놓고 생각하자는 거다.)


무엇을 알려주고 무엇을 금지시킬까?(이것은 절대 돈으로 할 수 없는 문제다.)


어떤 아이로 성장하도록 방향을 제시해줄까?(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 빼면 뭐가 있을까?)


이 질문들에서 부모들 각각의 특별한 레시피가 나온다. 부모들이 이 질문을 성공적으로 고민해본다면 자식농사의 해법은 의외로 쉽다. 왜냐하면 이런 고민을 의미 있게 하는 부모들은 생활 속에서 자신의 생각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노력할 것이고, 아이들은 그런 부모를 보고 자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 교육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의 관찰과 판단력이다. 우리 아이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에 흥미가 있는가?


나아가 자식의 인생을 부모의 잣대로 함부로 손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면 그만이다. 나머지는 모두 반칙이다. 인생게임에서 강퇴당할 수 있는.


우리는 부모만의 아주 특별한 레시피를 믿고 가면 되는 거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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