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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Sep 26. 2019

부모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야 할까?

아이들의 시간은?

00의 시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얼마 전 인사청문회 관련하여 세상이 시끄러웠던 그때. 시중에 나도는 말 중에 국회의 시간, 검찰의 시간, 대통령의 시간이 있었다. 그 00의 '시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운동경기로 보면 누군가가 경기의 시작이나 경기의 주도권을 갖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누구의 시간'이라 할 경우 그 시간은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부모와 아이는 동시대를 살아간다. 정확히 말하면 양측의 시간의 겹쳐서 흐른다는 의미가 타당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만의 독립적인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은 거시적인 흐름과 미시적인 흐름, 추상적인 의미와 구체적인 의미의 양자성을 갖는다. 또한 그 시간들은 시계열적 흐름을 따르면서도 다차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전속적 권한이 있다는 것은 개인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다. 선택과 결정, 책임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모와 아이의 시간을 얘기해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로의 시간이 겹쳐 흐르더라도 상대의 시간이 갖는 근본을 흐트러지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모의 시간, 아이들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 것이 바람직할까?


부모들의 시간이 아이들의 시간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래도 부모의 시간이 먼저 진행되다 보니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아이의 시간이 합류한다. 아이의 시간은 부모의 시간으로부터 태어나기 때문이다. 영화 속 벤자민의 시간처럼 거꾸로 흘러가지만 않는다면, 아이의 시간은 부모의 시간을 역류할 수 없다.


아이들의 성장단계별로 부모와 아이의 시간이 달리 흘러갈 것이다.


영유아기 때는 부모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시간은 부모의 시간 속에 100% 편입될 수밖에 없다. 이때에는 아이만의 시간은 인정받을 수 없거나 극히 제한적이다. 유치원 때는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초기다 보니 아이 자신만의 시간이 일정 부분 존재한다. 이때에도 부모의 삶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보니 아이의 시간이 따로 흐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부모의 시간에 속했던 상당 부분이 아이의 삶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독자성과 개별성의 의미를 깨닫는다. 이때부터는 부모는 아이의 시간이 갖는 독자성을 인정해줘야 하며 그로부터 파생되는 가치에 대해 아이가 책임을 갖도록 북돋아줘야 할 것이다. 초등학교까지는 모의 시간에 기대어 흐르거나 겹쳐서 갈 수밖에 없다.  


중학교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이미 독립된 인격체로서 시간을 점유한다. 이때부터 아이의 시간과 부모의 시간은 동시대에 흐르되 서로 겹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중고등학교 때의 아이들은 부모의 시간에 회의를 갖고 갈등의 소지를 키우기 십상인 시기이다. 사춘기와 질풍노도의 시기가 한꺼번에 진행되면서 아이의 시간은 부모의 시간으로부터 독립을 꿈꾼다.


성인의 경우 중고등학교 때부터 인정된 개별성을 더욱 심화시켜 자신의 독특한 아우라가 깃든 시간의 개념을 만들 때다. 이때부터는 자신만의 색깔과 개성으로 개인의 삶의 구체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 자신의 삶 속에 의미 있는 작업 중 하나가 꿈꿔왔던 것들의 성취, 밥벌이로서 직업의 선택, 독립된 가정의 구성이 있다.




따지고 보면 부모와 아이의 시간이 따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방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흐름이 원활하지 않을 때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부모의 시간이 아이의 시간에 혹은 그 반대가 자연스럽지 않을 때 그 갈등은 표면화된다. 특히 일부 부모들은 아이의 성장에 따른 개별성과 독자성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계속적으로 부모의 시간이 아이의 시간 속으로 스며들기를 바라지만, 이것은 시간 역학의 본질은 물론 아이 시간의 아이덴티티를 훼손하는 것이다.


아이의 시간 때문에 부모의 시간이 방해받아서도 안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일정 시기가 되면 서로를 존중하면서 흘러가야 한다. 그래서 아이의 시간에 과도한 부모의 개입은 양자의 흐름에 갈등을 상존케 한다. 특히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시간이 아이의 시간대로 흘러가려는 시도가 많다. 부모의 부당한 간섭이나 과도한 기대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거나 의존성 강한 어른이로 성장케 할 수도 있다.


우리 아이의 시간은 어디로 흐르고 있을까? 지금.


우리 부모들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야 할까?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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