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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Sep 19. 2019

중학생인 아들이 뜨겁게 소망하는 것

은근히 아빠가 바라는 것들을 담아서

#1.


  드디어 셋째이자 큰아들이 중학생이 되었다. 교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낯설지만 더 의젓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과 대화하다 보면 아직은 철이 안 들어 있는 모습이 때로는 좋다(?). 아직 동심이 있다거나 철부지 상태가 좋다거나 그런 차원이 아니고, 단지 가식이 없는 행동이 아직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해서다. 우리가 무언가 행동을 할 때 보여주기 위한 가식의 의도가 있으면 그건 이미 철이 들었거나 어른들의 행동이다. 그래서 아들의 말과 눈빛에 순순함이 묻어 나오고 있음을 감사드린다는 얘기다. 아직은 어른스럽지 않아서.


  너무나도 편하게 어린 동생과 격의 없이 싸우거나 엄마에게 허황된 말대답을 할 때면 다시 아들의 나이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나이 때의 아빠를 잠시 소환해본다.


아빠는 중학교 1학년 때 무엇을 했을까? 아마도 1980년이었을 것이다.


아빠가 중학교 들어가서 제일 먼저 읽었던 책이 펄벅의 <대지>였다. 중학교 도서관 세계명작소설 코너에서 제목이 맘에 들어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지>를 시작으로 모파상의 <목걸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등 많은 소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틈틈이 각종 만화와 무협지는 빠지지 않고 만화방에서 빌려 읽었다. 온 식구가 만화를 좋아해서 스무 권씩 빌린 날은 밤새워 만화를 봤다. 글자나 그림으로 된 것이면 무엇이던 읽고 소화했던 시절이었다. 물론 공부에 관한 책은 아니었다. 영어사전도 교과 관련 참고서도 집에는 없었던 때었다. 그때 '공부도 그렇게 했더라면 인생이 바뀌었을 텐데'라고 지금도 가끔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왜 아빠는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없어 보이는 세계명작소설을 이유 없이 섭렵했을까? 동시대를 지나온 분들은 알 것이다. 그때 그 시절은 호기심을 자극할 만 것이 별로 없었다. 집에 배달되는 신문도 농민신문과 서울신문이었던 것이 고작이었고, 잡지도 새마을(운동이던가?) 뿐이었다. 그 내용은 어린 눈에 봐도 다양성도 떨어지고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 보이는 노골적인 얘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TV는 흑백이었고 바깥세상은 회색이었던 시절에 중학교 1학년생이 재미를 붙일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는 얘기다. 쉽게 말하면 그때 아이들은 그냥 심심했었다.


  시대는 암울했었고, 저녁 무렵에는 술 취한 아버지들이 많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았었던 시절. 밤을 밝혀야 할 전등불은 어두웠고, 그 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눈을 감았다. 불안하게 떨리는 삼십 촉 전구 아래서 삼삼오오 모여서 밥을 먹고 책을 보고 잠을 잤다. 어쩌면 그 당시는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던 최적의 환경이었을지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2019년에 중학교 1학년생은 무엇을 소망하고, 무엇 때문에 가슴에 떨릴까? 그것이 궁금하다. 진정.




#2.


  우리 집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여러 가지가 달라졌다. 일단 육체적인 변화로 보면, 키가 부쩍 커지고 목소리에 변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키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쭉 성장할 것이고(물론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목소리는 변성기라서 아직 완성된 남성의 목소리는 아니다. 아빠 같은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를 갖기를 희망하지만 이것 또한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마냥 희망고문에 그친다는.


  정신적인 변화로는 부모와 애착이 덜하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에는 아빠랑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지만, 중학생이 되어서는 오히려 또래집단이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빠 입장에서는 오히려 홀가분한 면도 있고 서운한 면도 있다. 아들과 손 안 잡고 다닐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주말이면 농구장과 축구장에서 함께하는 시간은 많긴 하지만.


  중학생인 아들이 무엇을 뜨겁게 소망하는가?


그것에 대하여 혼자서 가만히 생각도 해보고, 엄마랑도 얘기해보고, 아들보다 몇 살 더 많은 누나들과도 대화를 해봤다. 그리고 직접 아들에게 편하게 "지금 당장 원하는 게 뭔지"도 물어도 봤다. 직접 인터뷰를 통해서.


아들이 아무리 원한다 해도, 설사 경제적 능력이 따라준다 해도 당장 원하는 모든 것을 다해줄 수는 없다. 약간의 결핍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것은 철학적이면서 현실적인 문제다. 아마도, 소크라테스도 비슷한 말을 했던가.

 



* 게임은 최고의 놀이다 - 누가 뭐래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는 순간 아들에게 큰 재미가 하나 생겼다. 기존에는 TV로 해오던 클래식한 게임에서 거실에 있던 와이드 화면의 PC로 하는 현란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아기자기한 구버전의 게임에서 좀 더 상상력을 자극하게 하는 게임들이 많이 등장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특히 아들은 <포트 나이트>라는 게임에 빠져있다.  


  <포트 나이트>는 에픽게임즈에서 제작한 3이닝 슈팅 게임으로, PVE 콘텐츠인 세이브 더 월드 모드와 PVP 콘텐츠인 배틀로얄 모드, 포크리 모드 3가지를 제공한다. 이 중에서 아들은 주로 '배틀로얄'을 하고 있다. 얼핏 봤을 때 온갖 무기를 장착한 주인공이 땅에서 하늘에서 종횡무진 움직이면서 적을 무찌르는 내용이다. 좀 더 많은 적을 신속하게 섬멸하기 위해 강캐릭터를 구입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아마도 아빠 모르게 용돈을 모아서 그러한 캐릭터를 사서 활용하는 눈치가 있으나 모른척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 그냥 가만히 있다.  


  게임을 통한 재미는 아빠 입장에서는 무의미하게 보일 수  있다. 게임에 몰입해있는 아들을 보자면 한편으로는 한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게 과연 재미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드는 게 사실이다.(참고로 아빠는 원래 게임을 좋아해 본 적이 없는 사람임) 차라리 저 시간에 영어단어나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풀면 좋을 것을. 혀를 끌끌 차면서 아들의 뒤통수를 바라보곤 한다. 심지어는 뒤통수를 한대 치고 싶을 때도 있다.

    

 아들 입장에서는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친구들과 헤드폰을 통해서 얘기하면서 각자의 집에서 공동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반기는 눈치다. 게임을 하는 것이 친구들과 소통하는 놀이의 일종이 돼버린 상황에서 이를 무조건 제지하고 못하게 말릴 수도 없는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게임에 빠진 아이를 보면 최악의 상황인 '게임중독'을 염려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게임에 빠져있는 상황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닌 것 같다. 엄연히 하나의 놀이 수단으로 인정되어 있고, 거의 모든 아이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 스스로 게임시간을 조정하고 어느 정도 자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생각해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아이 스스로 시간을 통제하고 게임에서 멀어져 공부로 가까워져 가는 그 시간이 빨리 다가오길 바라본다. 아빠의 마음속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 공부도 잘하고 싶다 - 왕이면

  중학생이 되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지금부터 공부할 때다"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아직 시험이 없는 중학교 1년을 보내고 있다. 학원이 아니면 자신이 공부를 잘하는지 어떤지를 평가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아빠도 불안하고 아들도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다. 같이 게임을 하는 한 친구는 벌써 중학교 3년까지 선행학습이 모두 끝나고 이번 겨울방학에는 고등학교 1학년 선행학습을 시작한다는 얘기를 했다. 반면 우리 아들은 뭘 하고 있을까? 시험이 없는 학년이다 보니 교과서 내용도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지 확인도 어렵다. 사춘기 특유의 까칠함으로 무장해서 부모의 어떤 질문도 봉쇄하거나 반사시키다 보니, 그 이상의 정보접근이 어렵다.  


  어느 날 공신(공부의 신)이라 불리는 강성태가 TV 어느 프로그램에서 공부방법론을 얘기한 적이 있다. 공부를 시작한 아이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빠가 똑같은 얘기를 하면 잘 안 들을게 뻔하기 때문에 아들을 불러 같이 보자고 했더니, 그 방법론은 이미 알고 있는 거란다. 너무 쿨하다. '알고 있는데 왜 하지 않는 거지'라는 말이 목구멍을 탈출할 뻔했지만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해 내뱉지는 않았다. 그 사건을 통해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 얘들도 알만큼 다 알고 있다는 거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안 하니까  하지 않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공부를 안 하기도, 못하기도 하는 거다. 별 논리성은 없지만 상당히 신박한 해석으로 보인다.


  아무튼, 아들도 이왕 하는 공부 잘하고 싶다고 한다. 심지어 2학년 때 몇% 안에 들면 선물로 무엇을 사줄 것인지 아빠와 도박 같은 제안을 하기도 한다. 약간은 우습지만 일단 그 솔깃한 제의에 넘어가 보기로 했다. 공부로 인한 성취의 대가로 선물을 주면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많으나,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힘든 문제다. 그 전문가들 집에서는 어떠할지 궁금하기는 하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당근과 채찍을 통해 어른과 아이를 통제한다는 것이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빠 입장에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시험을 치러 반드시 1등을 하거나 만점을 맞기는 바라지는 않는다. 앞으로 해나가야 할 공부의 양이나 시험 횟수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과도한 욕심은 아이들 쉽게 지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 가면서 안전하게 결과가 끝에 좋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다. 백 미터 달리기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 레이스에 필요한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처음에 전력질주를 해야 할 필요성이 없다면, 자기 신체적인 능력이나 공부습관에 따라서 최종 목표인 지점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다.


그래서 중학생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는 평생 가는 좋은 공부습관 들이기다. 공부를 해본 분들은 누구나 다아는 최고의 공부방법은 인내다.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은 수많은 실전에서 수많은 이들이 증명했다. 아주 극소수의 머리로 하는 이들을 빼놓고 나머지는 어느 정도 공부시간과 성과가 비례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각종 학원이 왜 그리 오랫동안 아이들을 잡아놓고 하기 힘든 숙제를 내겠는가?




* 용돈과 (좋은) 직업에 대한 관심이 많다

중학생이 되자마자 용돈을 100% 인상을 요구했다. 요구는 즉시 관철되어 집행되었고, 아들의 지갑은 두둑해졌다. 그 용돈이 어디에 쓰일지 어디로 흘러갈지 뻔하지만 역시 모른 척하기로 했다. 용처에 대해 캐묻기 시작하면 백 프로 갈등 유발 상황이 온다. POP CARD충전과는 별도로 용돈을 주다 보니, 팝카드로는 주로 편의점에서 라면이나 김밥 음료수를 사서 먹는데 쓴다. 용돈은 피규어 조립이나 게임 캐릭터 구입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제법 값나가는 피규어는 아들의 한 달 용돈으로는 택도 없다. 아빠에게 말도 안 되는 애교를 부려 구입하기도 하지만, 그런 시도가 엄마나 누나들에게 막힐 때면 자신의 용돈을 모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용돈 저축의 중요성을 몸소 깨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용돈에 대한 관심이 돈이나 경제에 대한 관심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아들이 바라는 것은 결국 용돈 액수에 관한 것과 그 용처에 관한 것이다. 그 돈이 어떻게 집으로 들어오는지에는 아직까지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가끔씩 부모의 연봉과 월급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처럼 보이나, 이는 친구들과 부모들 연봉을 비교하기 위한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그네들은 아파트 평수나 소유 차량의 종류나 크기를 보듯이 부모들의 직업과 연봉을 비교하고 평가한다.


부모들의 직업을 서로 비교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해서도 서로 얘기를 나눈다고 한다. 그 구분의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관심이 없는 듯 하지만, 그 구별이 차별이 되고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는 듯하다. 그래서 아들이 생각할 때 부모의 직업에 대해서는 적잖은 안심을 하고 불만이 없는 것 같다. 문제는 부모 같은 직업이나 본인이 원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지금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지금 하는 공부가 너의 직업을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해줄 수는 없다. 우리의 삶도 그렇듯이 아들의 인생도 다양한 기회와 선택으로 이어져있을 것인데, 특정 시점을 꼭 찍어서 "지금 열심히 하지 않으면 너는 이런저런 직업을 얻을 수 없어"라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점은 어떤 부모도 전문가들도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꾸준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특별히 잘할 수 있는 것을 탐색하고 공부를 하다 보면 원하는 직업이 나타날 것이라는 추상적인 얘기만 할 수밖에 없다. 직업세계의 비정한 계층적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말해주다 보면 아들에게 불편한 두려움을 줄 수도 있어서이다. 그것이 지금 아빠의 입장에서 최선이 아닐까 싶다.



* 그 밖의 것들

- 개인 노트북과 최신형 고사양 스마트폰이 필요하다

주로 게임을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별로 들을 가치는 없다. 집에 있는 PC 사양으로도 충분하고 가끔씩 아빠 핸드폰을 빌려 쓰면 해결될 문제다.


- 로드형 자전거가 필요하다  

지금 아들의 자전거는 일명 MTB 자전거다. 외형상 투박하기는 하지만 안전성이나 내구성이 강해 전전후로 쓰이는 자전거다. 아들은 라이딩을 위한 로드형 자전거를 원하나, 일단은 안전을 위해 조금 두고 보기로 했다.


-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사춘기 남자아이라 성적인 호기심이나 이성에 대한 관심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일단 재학 중인 학교가 남녀공학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다.


- 여행을 자주 가고 싶다

작년 1월에 일본의 최남단에 있는 섬인 이시가키에 가족여행을 갔다 온 적이 있다. 아들은 그런 여행이 좋았던지라 틈만 나면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여행을 가자고 한다.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인 누나가 있기 때문에 이문제도 잠시 보류할 수밖에 없다.

 

- 다양한 독서를 하고 싶다

아들은 아빠 때와는 달리 세계명작 소설에 대해서는 일체 관심이 없다. 셜록홈즈나 괴도 루팡류의 추리소설도 아빠의 강권에 의해 겨우 읽었다. 아직 독서의 즐거움을 모르는 지라 이 소망은 거짓말로 생각된다. 글밥이 적은 만화 종류만 좋아해서 한심해 보이는 경우다.


* 아빠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조금은 심심한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세상이 심심해야 아빠 중학교 때처럼 이런저런 책을 읽고 머리가 좀 더 커 나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온갖 정보와 자극적인 놀거리가 널려있다 보니 아들의 관심은 온통 그쪽에 가있을 수밖에. 책을 많이 읽어야 인생에 도움이 되느니, 창의력이 길러지느니 하는 것들은 아빠의 생각 속에서만 머물다 사라진다. 생각해보면, 어느 누구의 인생도 뜻대로 안된다. 너무 당연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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