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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shion MD Jerry Jul 20. 2022

11. MD의 '경계_Contents'

Value Creator, 콘텐츠MD

 2018년 눈이 펑펑 내리는 12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당시 필자는 삼성 그룹의 교육기관에서 3년간 파견 근무를 하고 있었다. 삼성 그룹이 좋은 점은 직무나 회사의 틀을 벗어나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운 좋게도 패션을 떠나 그룹의 교육 및 스태프 업무를 병행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필자가 존경하는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선배는 해외 스포츠 브랜드를 론칭할 예정이며, 자신과 함께 할 멤버를 모집하고 있다고 하였다. 회사 내에서도 MD 직군이 경쟁률이 높아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던 시기였고, 더불어 존경하는 선배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매력이 더해져 한치의 고민도 없이 복귀를 결정했다. 아이러니하게 복귀 후 여러 사정들이 겹쳐 스포츠 MD가 아닌 남성복 MD로 배치를 받게 되었지만, 결론적으로 MD 직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남성복 갤럭시 브랜드 MD로 발령받아 팀장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신프로, 기획 MD는 편물 MD부터 배우는 게 정석이야. 그래서 스웨터와 티셔츠를 맡아줘."  

   ※ 편물 : 실 또는 끈으로 뜨는 상품 (스웨터, 티셔츠류)


 그렇게 필자는 생소하던 스웨터와 티셔츠의 담당자로 MD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편물은 실로 상품을 짜다 보니 납기 사고, 품질 사고 등 워낙 이슈가 많았기 때문에 몸으로 부딪히며 배울 수 있는 장점이 많은 품목이었다. (물론 돌아보면 고생 좀 한 것 같다.) 아무래도 필자는 마케팅 영업에서 패션업을 시작한 터라, 현장 중심으로 업무를 보는 게 익숙했다. 현장에서는 인력 관리가 먼저다 보니, 일하시는 분들의 컨디션을 가장 먼저 살폈다. 컨디션이라 함은 근무하시는 분들의 판매 스킬, 서비스 마인드, 고객관리 역량 등을 포함한다. 그 뒤, 매장의 상품 Display 상태 및 재고 현황을 살피고, 준비중인 프로모션의 현황을 챙겼다. 또한, 시장은 경쟁체계이기 때문에 주변 경쟁사들의 호조 및 부진 현황에 대해서 살펴보고 분석하였다. 아무래도 정신없이 현장의 컨디션을 점검하다 보면, 막상 상품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제한적이었고 직접적으로 확인을 하기보다는 근무하시는 분들을 통해 간접적인 정보 확인하는 것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업무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패션의 근본은 브랜드 및 상품의 매력도라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였다. 고객은 여러 가지 프로모션이나 니즈에 따라 구매를 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구매에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브랜드 및 상품의 매력도였다. 신입 시절 상품 MD에 대한 컸던 바람이 드디어 7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이루어진 것이었다.


□ 상품의 Value Creator : 콘텐츠 MD


 콘텐츠 MD는 브랜드의 방향을 설정하고, 의류, 신발 등 상품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며, 디자인/생산 또는 바잉부터 판매에 이르는 모든 상품의 싸이클을 주도함으로써 브랜드와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상품을 바라보는 고객들의 니즈는 천차만별이며, 패션 트렌드도 워낙 빠르다 보니 쉴 새 없이 싸이클이 돌아간다. 즉, 셀 수 없이 수많은 상품들이 쏟아지고 있기에 반대로 셀 수 없이 수많은 상품이 아무런 의미 없이 사라진다. 콘텐츠 MD는 상품이 아무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지 않게, 상품의 존재가치를 부여하고 케어하고 키워주는 어찌 보면 부모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콘텐츠 MD를 이해하기 위해 NIKE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 「Shoe Dog」을 꼭 읽어보 항상 추천한다. Shoe Dog」에 나오는 "Shoe Dog"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슈독은 신발의 제조, 판매, 구매, 디자인에 전념하는 사람을 말한다. 신발에 일생을 건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두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 표현을 쓴다. 그들은 오랜 세월을

  두고 꾸준히 신발에만 몰두한다. … 그들의 머리에는 안창, 바닥 창, 안감, 대다리, 리벳,

  등가죽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어떤 상품을 만들지, 어떻게 만들지, 어떻게 팔지 매일매일 고민한다. 상품이 태어나기 전부터 판매되고, 역할을 다할 때까지 모든 순간을 고민하는 것이다. 필자가 콘텐츠 MD를 상품의 부모라고 이야기한 것이 바로 같은 의미이다. 모두가 알겠지만, NIKE는 더 이상 신발로만 기억되기에는 너무나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디자인이든 마케팅이든 어느 분야에서도 브랜드 그 자체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이는 창업자였던 필 나이트와 멤버들의 브랜드 방향을 설정하고 가꿔온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필 나이트는 단순히 상품을 팔아 돈을 버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았고, 세상에 무엇인가를 통해 만들고 개선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그런 신념이 브랜드와 상품에 녹아 우리가 아는 가치로 치환된 것이다.

 

  위와 같이 브랜드와 상품에 가치를 불어넣기 위해서 MD는 수많은 카운터 파트너를 만난다. 디자이너, 소싱, 마케터, 영업, VMD, SI 등 수많은 직무 담당자들과 함께 브랜드를 시즌 단위로 꾸려 나간다. 직군별로 역할이 다르기에 시너지 창출을 위해 소통이 상당히 중요한다. MD는 소통과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GTM(Go to Market)이라는 스케줄을 짜서 시즌을 운영한다. 여성복이나 SPA의 경우 일 년에 4개 시즌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우리가 아는 시즌은 SS/FW로 나눠진다. GTM 스케줄은 상품이 시장에 출시되는 시기를 끝으로 두고 있다. 디자인하고 생산하고 출시하는 과정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출시 후는 Hind Sight(아마 회사마다 네이밍을 다를 것이다.)라는 리뷰를 통해 다음 시즌을 위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기획 MD 또는 바잉 MD에 따라 차이가 존재하지만, 큰 메커니즘은 비슷하다.


  ○ 기획 MD : ① 디자인 → ② 생산 → ③ 출시/판매 → ④ 리뷰 

  ○ 바잉 MD : ⓛ 바잉 → ② 출시/판매 → ③ 리뷰


 콘텐츠 MD의 두 직무에 대해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한다.


□ Value Chain의 지휘자, 기획 MD


 MD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양적 계획(우리는 RANGE PLAN이라 불렀다)을 잘 수립하는 것이다. 전체 시즌 공급 금액(택 가격 기준)을 두고 디테일을 잡는 것이다. 공급금액은 브랜드 매출, 시장 상황, 마케팅 플랜 등의 다양한 조건들에 의해 결정이 된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 공급 금액 설정 >

 

 예를 들면, 위와 같이 21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소비가 위축될 것을 고려하여 총액을 줄인다. 여기서 무엇을 줄이냐가 이슈인데, 아무래도 외출이 줄고 재택근무가 활성화될 것을 예상해서 아우터 판매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금액을 조정하는 것이다. 위의 케이스는 경이 다를 수 있으나 바잉 MD도 동일한 프로세스이다. 저렇게 큰 프레임이 결정되면, 각각의 담당 MD들이 주어진 금액을 바탕으로 세부적인 상품 구성 계획을 짠다. 편물(이너 : 티셔츠, 스웨터) MD인 필자는 2억을 가지고 세부적인 리스트를 구성한다.

< 세부 플랜 FLOW >


 위와 같이 어느 정도 리스트업이 되면, 이제는 상품을 디자인해줄 중요한 대상을 만나야 한다. 기획 MD와 바잉 MD의 큰 차이를 만드는 존재는 바로 디자이너와 소싱이라고 볼 수 있다. 디자인하고 만들어야 하는 직무이기 때문에 두 유관부서 담당자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들인 것이다. 그래서 기획 MD는 유관부서와의 소통 과정이 많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중요하다.


 우선 디자이너와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시장조사를 필수이다. 해외출장 및 국내 출장을 통해 다양한 브랜드를 함께 보고 소재나 디자인 포인트, 컬러 등 벤치마킹 포인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필자가 스포츠 브랜드 MD 시절 시즌에 도쿄, 상하이 출장을 디자인실과 함께 갔었다. 2박 이상의 해외출장을 다니다 보면, 서로 간의 생각을 이해할 시간이 많다. 상품을 보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디자이너가 하고 싶어 하는 상품이 있고, MD가 해야 하는 상품이 있다. 이 GAP은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서 줄여나갈 수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의 영역이 확실하다 보니, 존중을 통해 협의를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디자이너와 일을 하며 배운 것은 정말 극도의 디테일과 섬세함이었다. 예를 들면 필자에게는 모두 비슷한 블루 컬러지만,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시크한 블루, 시원한 블루 등 콘셉트가 다르며 그 안에서 팬톤 컬러로 표현할 수 있는 번호도 수십 가지가 되었다. MD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전문적인 디테일들이다. 그렇게 수많은 우여곡절을 지나 큰 협의가 끝나면, 디자이너는 구상하던 상품을 캐드로 이미지화를 시작한다. 그제야 MD는 실질적인 형태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맵이 모여 캐드 품평을 진행한다. 거기에서 샘플로 갈 친구와 지워질 친구들이 나눠질 갈림길에 놓인다. 일부의 친구들(보통 3~4 배수의 이미지를 그린다)은 1차적으로 살아남아 샘플을 될 수 있다. 그런 뒤 중요한 행사라고 할 수 있는 컨벤션을 진행한다. 어찌 보면, 보통 패션쇼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시즌의 모든 상품 샘플을 만들어서 보여주는 하나의 행사인 것이다. 그 행사의 반응을 통해 샘플의 일부는 시장으로 갈 수 있고 일부는 샘플실에서 머물게 된다. 컨벤션은 상품 입장에서는 시장에 나가기 전 최종 면접 같은 행사인 것이다.


 최종 면접을 통과한 상품들은 비로소 시장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 계획한 수량만큼 적정한 가격으로 필요한 시기에 최고의 품질로 만들어 내는 일이 남은 것이다. 참 적고 있지만,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부터 소싱 담당이 본격적으로 함께 하게 된다. 필자가 제일모직에 입사 당시, 같이 일하시던 분들 중에서는 안양 공장에서 근무하셨다는 분들이 제법 계셨다. 2010년대 초반에 입사한 필자가 느껴지기에도 공장에 일했다고 하면 라인에서 계셨다는 건지 사무실이 거기셨다는 건지 판단이 안될 정도로 오랜 과거였다. 패션 섬유산업이 90년대 초반까지 유지하다가 생산 단가의 상승으로  중국을 지나 베트남 등 동남아로 생산처를 옮기게 되었다. 80년대~90년대 초만 해도, 국내에는 크고 작은 생산공장이 곳곳에 많았다. 물론 상품별로 지역이 나눠졌다. 예를 들면, 스웨터를 만들고 싶다면 서울 중랑구 면목동을 찾아가면 된다. 과거에는 많은 공장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몇몇 작은 공장들이 살아남아서 여전히 횡편기(스웨터를 짜는 기계)를 돌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상상이 안 가지만, 안양과 구로는 남성복의 수트와 재킷을 만들던 곳으로 유명했다. 이렇게 서울 근교에 다양한 생산 공장들이 자리 잡고 있어, MD들은 MR(소싱 담당자)들과 함께 수시로 현장을 점검하고 상품의 Supply Chain을 관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가 절감의 이슈로 해외 생산기지로 아웃 소싱하게 되고 이를 컨트롤하기 위해 패션회사들은 글로벌 소싱 역량 강화에 노력하게 되었다. 22년 현재로 돌아오면, 세계 경제의 불안함으로 원가가 상승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생산 주력국인 동남아의 상황이 악화되어 봉제 공임도 증가하고 있고,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물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해 운임료마저 상승하는 삼중고의 상황에 직면해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생산하기에는 공장의 생산량 제한과 높은 생산단가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MD와 소싱 담당자는 여러 가지 RISK를 고려하여 생산 루트를 결정하고, 때로는 생산 원가가 도저히 안 나오는 상품은 캔슬을 하는 어려운 결정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생산 투입이 결정되면, 생산 완성되어 우리 물류센터에 도달하기까지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약 4개월 간 준비기간 끝에 디자이너/MD/소싱 담당자들이 에너지를 쏟아부은 상품이 드디어 시장으로 나가게 된다. 출시가 되면 시장의 다른 브랜드 상품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게 될 것이고, 그 안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히트 상품이 탄생할 것이다. 여기서 히트 상품의 징조를 잘 포착하는 것이 MD의 역할이다. 보통 출시 1주 차에 10% 판매율이 넘어가면 SPOT 리스트에 올라가고 조금 지켜본다. 그리고 3주 차가 지났을 때 30% 수준이라면 SPOT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때 MD/소싱이 빠른 대응을 해서 판매 흐름을 이어 간다면 히트 상품은 밀리언셀러가 될 수 있는 프로세스에 올라가게 된다. 물론 밀리언셀러로 가기 위한 조건에는 마케팅/VMD/프로모션 등 다양한 조건들이 있는데 이런 옵션들을 고려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경우는 2번 경험해 본 것 같다. 결정을 하기 전에 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진하게 준비한 뒤, 바깥 벤치에 나가 따뜻한 햇볕을 쬐며 광합성을 한다. 왜냐하면 기획 MD로써 이 순간이 가장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넘쳐 스릴과 행복감을 극대화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순간이나마 이 상황을 만끽하면 다음에 또다시 이 순간을 만나기를 기원하며 나아간다.


□ Value Selector, 바잉 MD


 바잉 MD의 본격적인 진가는 해외 브랜드 본사 HQ (Headquarter)에서 이번 시즌 세일즈 북이 날아오면 빛을 발한다. 세일즈 북이라 하면, 위 기획 MD의 글 중 컨벤션 리스트와 같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본사의 디자인실과 그곳의 MD들이 해외 바이어들에게 판매를 하기 위해 상품을 리스트업 한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 브랜드 본사들은 실제 제작 샘플을 세일즈 북 발송 시기에 맞춰 볼 수 있게 보내준다. 아무래도 이미지만으로는 터치감이나 컬러감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샘플과 함께라면 바잉 MD들의 의사결정에 큰 도움이 된다.


 바잉 MD가 해외출장으로 해외 본사 세일즈 미팅에 가기 전에 전략회의 또는 전략보고를 하고 간다. 여기서 작은 브랜드의 경우, 바잉 MD가 보통 1명인 상황이 많아서 회의라기보다는 리더에게 방향 보고를 하고 간다고 보면 된다. 몇 백억 대의 큰 브랜드의 경우는 2~3명의 MD가 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 기획 MD들처럼 양적 계획과 바잉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있던 곳의 바잉 MD들은 가기 전에 모여서 주력으로 발주할 상품들을 고르고 전체 금액부터 세부 포트폴리오까지 세밀하게 짜서 간다. 그리고 해외 가서 변동된 조건을 비교할 수 있게 받았던 세일즈 북 정보를 꼼꼼하게 저장해서 간다. 아예 엑셀에 상품 이미지와 전체 정보를 매칭 해서 가기도 한다. 엄청나게 많은 인풋을 들여서 출발하게 된다면, 스케줄이 타이트한 해외출장 시간에서 세이브되는 게 많아서 미리 시간을 투자한다고 보면 된다. 만약 가서 정리를 한다고 하면, 현지에 가서 낮에는 쇼룸에서 상품을 보고 수량을 메모한 뒤, 밤에 호텔 방에서 노트북에 입력하면서 늦은 밤까지 현지 야근을 할 수도 있다. 아시다시피, 출장을 가는 패션 도시는 파리, 밀라노, 런던, 뉴욕 등 낭만이 가득한 도시이다. 그곳에서 야경을 즐기며, 와인 또는 간단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에 호텔에서 엑셀을 한다면 아마도 누구라도 미리 준비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을까 싶다.


 바잉 MD의 중요한 역량을 두 가지로 선정하라면, 상품 셀렉 능력(의사결정)과 외국어 능력이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품 셀렉 능력이지만, 저기에 좀 더 형용사를 붙인다면 빠른 상품 셀렉 능력이라고 보면 된다. 만들어지는 과정을 전혀 보지 못한 상황에서 해외 본사의 담당 MD 또는 디자이너의 세일즈 포인트 교육을 들으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내가 골라야 할 상품의 수가 대략 300 SKU라고 가정한다면, 세일즈 미팅에 펼쳐진 상품은 적어도 1,000개 가까이 될 것이다. 참고로 SKU는 stock keeping unit의 약자로, 부품이나 상품의 구성 품질 색상 등에서 동일해서 상품 창고 또는 부품창고에 동일 제품/부품 재고로서 관리하는 단위를 뜻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빠르면 내일 저녁에 비행기를 타야 하는 바잉 MD는 주어진 시간 내에 3 배수 정도 상품들 속에서 한국 시장과 고객 성향에 맞는 옷들을 선별해야 하는 미션을 받는 것이다. 아마도 해외담당들의 설명을 듣는 내내 머리 속이나 리스트에 수량을 적었다가 지웠다 하면서 자신과의 의견 조율을 하고 있어야만 허락된 시간 내에 가능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잉에 대한 노하우를 가진 MD를 선호하기 때문에 바잉 MD는 보통 경력직을 선호하는 편이다.


 상품 셀렉 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게 외국어 능력이다. 보통 강의나 멘토링을 하다 보면, 바잉 MD를 희망하는 멘티들이 외국어 능력이 정말 중요한지 많은 질문을 해온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번역 프로그램이 실시간으로 되는 시대라서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럴 때마다 필자의 미국 생활 중 첫 서브웨이에서 음식을 주문하던 경험을 이야기해준다. 아시다시피 서브웨이에서 주문할 때 야채, 소스의 종류부터 양까지 이야기해야 할 옵션이 참 다양하다. 한국 서브웨이를 방문하더라도 처음 간다면 담당자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면서 주문을 할 확률이 높을 정도로 디테일한 셀렉이 필수이다. 처음 갔을 때는 주문하는 프로세스를 몰라서 무조건 첫 번째 옵션만 고르는 무미건조한 주문은 10분이 지나서야 마칠 수가 있었다. 나의 아무런 의지와 니즈를 담지 못한 참담함. 반대편의 담당자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음식들의 다양한 단어 자체를 몰라서 소통 자체가 안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때 번역기가 있었다면, 바로 번역해서 알려줬을 텐데. 하지만 번역기가 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두려움을 안고 다시 방문을 한 날, 담당자가 나를 알아보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건 어떤지 추천하기 시작한다. 담당자와 나 사이에 라포(rapport)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라포(rapport)란 주로 심리학에서 쓰이는 프랑스 용어인데, 상호 간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공감대라고 할 수 있다. 공감대가 생긴 덕에, 첫 번째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훌륭한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사실 필자의 영어실력이 발전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처럼 세일즈 미팅 때 본사 담당자와의 라포가 형성된 바이어와 그렇지 않은 바이어는 천지 차이이다. 그 라포를 형성하는 중요한 필수요소 중 하나가 바로 외국어인 것이다. 번역기를 보는 게 아니라, 서로의 눈빛을 주고받으며 소통하게 된다면 좋은 정보를 더 획득하고 우리의 시장 상황을 잘 전달해서 그에 맞는 상품기획에 반영할 수 있게도 만드는 효과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외국어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할 수밖에 없다.


 세일즈 미팅을 다녀온 뒤, 바잉 MD들을 본격적으로 오더시트를 작성해서 본사에 보낸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상품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수입할 때 통관에 이상 없는지, 한국에 맞는 형식(가격택 등)이 준비되어 있는지 점검한다. 본격적으로 자신들이 결정한 상품의 셀렉방향이 맞는지 검증하기 위해 시장으로 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 콘텐츠 MD라면, "Fail Big"


 훌륭한 스피치로 유명한 덴젤 워싱턴이 2015년에 딜라드 대학교에서 졸업연설을 했다. 영상을 보며 알았지만, 덴젤 워싱턴의 아들이 거기를 다니고 있었고 그 인연으로 연설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초반에 유머스러운 말투로 분위기를 청중을 부드럽게 휘어잡던 그가 마지막에 힘을 주어 말을 했다.


 "Fail big! Don'be afraid to fail big to dream big!"

  (크게 실패하세요. 큰 실패를 두려워 말고 큰 꿈을 가지세요)

 "But, dreams without goals, are just dreams"

  (그러나, 목표 없는 꿈은 그저 한낱 꿈일 뿐입니다.)


 상품 MD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잘못된 기획으로 인한 실패이다. 하지만, 상품기획을 평생 실패 없이 잘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덴젤 워싱턴의 말처럼 차라리 한 시즌이 설령 실패하더라도 큰 목표를 가지고 기획하기를 추천한다. 왜냐면 한 시즌의 실패에서 얻은 Lesson Learn은 평생의 상품기획에 있어 중요한 가르침이자 목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품 MD, 콘텐츠 MD라면 Fail Big을 경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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