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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shion MD Jerry Sep 12. 2022

12. MD와 '고객'

고객에도 다른 특성이 있다?

 "MD님, 뛰는데 바지에 허벅지가 쓸리는 거 같아요."

 "아, 그래요? 내일 제가 디자인실이랑 원단이나 핏을 점검해볼게요!"


 "MD님, 달릴 때 티셔츠가 땀이 잘 마르지 않고 몸에 붙는 느낌이에요."

 "음, 원단의 흡습속건 기능이 떨어지는지 내일 확인해볼게요!"

 

 "MD님, 신발이 정사이즈인데 너무 발볼이 좁은 거 같아요."

 "아, 다른 신발도 다 그런지 한번 제가 점검해볼게요. 만약 그러면 사이즈 업해드릴게요."


 해외 러닝 브랜드 선임 MD를 하고 있을 당시,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러닝 크루에 매주 참여했었다. 처음 자기소개를 브랜드 MD라고 한터라, 우리 브랜드의 옷이나 신발을 착용하고 달리던 러너가 순간 불편함을 느끼면 언제나 필자에게 찾아와 이야기를 꺼낸다. 고객의 이야기는 언제나 사연이 있어서, 요점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왜 이 브랜드를 사게 된 계기부터 사용 후기까지 본인의 사연을 심도 있게 들려준다. 듣다 보면, 고객에 대해 알게 되고 한편으로는 죄송함과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워낙 고객의 직접적인 VOC이기 때문에 하나도 흘려들을 수 없다. 많은 담당자들이 고객과의 직접 소통을 부담스러워하고 나 역시 처음에는 엄청난 부담이었던 거 같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얻은 고객의 VOC를 출근 뒤 정리한 후 팀에 공유하면 반전이 일어난다. 어느덧 말하는 동안 필자는 고객의 대변인이 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대다수 수긍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감지한다. 판단은 우리가 해야겠지만, 어쨌든 우리의 바이어(Buyer)가 아닌가.

  아마 대다수의 분야가 그렇듯 고객의 판단은 중요하기에 두말할 필요가 없다. 패션의 특수성이 있다면, 다른 종류의 고객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13년 패션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표현으로 존재하지만 서로 간의 연결성을 강화하고자 필자의 생각으로 정리해보았다. 이른바, 최초 고객과 중간 고객, 그리고 최종 고객이다. 이 세 부류의 고객에 대해서 지금부터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 최초 고객 (Feat. 유통 On·Off Line Buyer)


 나이키 제국 창시자인 필 나이트의 저서인 슈독을 읽다 보면, 흥미롭고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다. 패션업을 하다 보면, MD, 영업, 마케팅 등 직군의 벽을 넘나들며 일을 할 때가 많다. 그 예를 필 나이트 본인의 이야기로 짥막하게 합쳐서 담은 문단이 있어서 소개한다.


 "타이거(지금의 아식스)를 독점 수입 판매할 당시, 스포츠 용품점에서 입점을 모두 거절당했다. 

  대다수 그들의 반응은 동일했다. '여보게, 세상에 흔해 빠진 게 운동화야!'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육상대회가 열리는 경기장을 모조리 찾아다니기로 했다.

  내 차의 트렁크에 타이거 신발을 잔뜩 싣고 다니면서 말이다." 


 위 내용에서 미루어 짐작해 보면, 미국 소비자들 입장에서 신규 브랜드였던 타이거를 독점 수입한 필 나이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판매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신발은 대다수 스포츠 용품점에서 지금으로 비교해보자면 편집샵처럼 판매를 되고 있었다. 그래서 상품을 확보한 필 나이트가 찾아간 곳이 바로 스포츠 용품점이었던 것이다. 내용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형식이야 어쨌든 상품 비전에 대해 필 나이트는 프레젠테이션을 용품점 대표자에게 진행했고 차가운 결과를 받은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의 스포츠용품 대표자들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는 중요한 시점이었던 것을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전설의 필 나이트조차도 실감할 정도로 패션 유통의 진입장벽은 높고 냉정하다. 한국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플랫폼을 가지고 있는 MD들은 검증된 브랜드, 즉 실적이 있고 지명도가 어느 정도 높은 브랜드에 대한 입점을 선호한다. 그렇기에, 신규 브랜드들의 초기 입점은 엄청나게 힘들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정해진 공간 내에서 가장 높은 효율을 가져가야 하는 바이어의 입장이 있기에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런 이해관계가 분명히 다른 만큼, 브랜드들이 바이어들에게 자신들의 가치를 잘 홍보하고 어필해야지만 그들의 판매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유통 바이어들에게 브랜드의 매력을 어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에서 가장 파워풀한 것은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샘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그들의 공간에 들어가면 이렇게 보일 것이라는 직관적인 샘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브랜드들이 론칭하면,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고 공을 들이는 이유 중 하나로 이 목적이 포함된다. 다수의 브랜드들은 이렇게 플래그십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바이어들을 초대해서 입점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다. 물론, 바이어들이 먼저 플래그십을 둘러보고 입점을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플래그십을 운영한다는 것은 분명 장점도 많지만 상당히 많은 리스크 역시 감수해야 한다. 당장 초기에 건물을 선정해서 계약하게 되면, 보증금과 임대료가 발생하게 된다. 모두가 인정하는 핫플레이스에 오픈해야 효과가 좋지만, 그만큼 금액이 천정부지로 높아지기 마련이다. 글을 적는 22년 하반기에는 성수, 연남동 등 핫플레이스는 어느덧 작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상승해있다. 코로나라 해도 핫플레이스의 가격은 흔들리지 않는다. 대기업을 몰라도 신규기업의 입장에는 현금 흐름에 상당히 큰 부담이 된다. 계약이 끝나면, 당장 큰돈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하고 인원도 채용해야 한다. 오픈한다고 끝이 아니라, 자잘한 세금부터 청소까지 손이 엄청 많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헤리티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플래그십 스토어라는 양날의 검을 안고 운영을 한다.

  다른 방법으로는 시즌 상품 컨벤션에 바이어들을 초대해서 브랜드의 방향성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이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행사에 초대해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크겠지만, 바이어들은 관심 브랜드가 아니고서는 시간을 내서 찾아오기가 쉽지 않다. 그들도 직장인이기에, 시간의 효율을 따지게 된다. 패션 대기업에 있을 때 경험을 미루어 보면, 서로 간의 오랜 파트너십에 의한 요청으로 관계에 도움 받아 초대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신규 브랜드는 대기업에서 론칭할 때 기존 인프라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근무할 당시, 쉽지 않은 브랜드의 컨벤션에 유통 바이어들이 오는 것을 보고 채널을 담당하는 영업 담당자들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경우를 위해 그들은 주말에 휴식을 포기하고 그들과 골프를 치거나 평일 저녁 자리를 마련하는 등의 친분을 쌓아 두는 것이다. 어쨌든, 컨벤션에 바이어를 초대해 플래그십 스토어만큼의 직관성을 아니지만, 어느 수준 이상으로 브랜드 방향성과 상품을 보여줄 수 있다.   

 이렇게 유통 바이어들의 마음을 얻게 돼서 가장 좋은 결과는 바로 특정점 또는 특정몰에 계약을 통해서 입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온라인의 경우, 브랜드관을 오픈해서 판매를 하는 것이 베스트라고 볼 수 있다. 오프라인의 경우, 임대(보증금 발생) 또는 특정(보증금 미발생, 상품 담보)이라는 계약체계로 입점하게 된다. 위의 경우는 베스트인 경우이고, 최근에는 POP -UP 스토어를 통해서 우선 일반 고객들의 반응을 보자는 경우도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공간을 얻어서 특정 기간 동안 임시 매장을 설치하고 판매를 해서 검증을 받는 것이다. 유통관계자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 최근에는 이 방법을 선호한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기간 동안 매출로서 증명을 하지 못하면, 철수를 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진입하는 것이다. 우리가 쇼핑을 하는 공간의 이면에는 이렇게 많은 사연들이 녹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최초 고객인 유통 바이어는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 중간 고객  (Feat. 판매 전문 점대표자)


 회사에 취직 후 반년 간의 연수 기간을 지나, 드디어 첫 부서에 배치를 받았다. 당시 삼성물산은 현장 경영을 중시하고 있어, 다수의 신입사원을 처음에 영업 부서로 배치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많은 동기들과 영업 사업부를 배치받고 담당 임원께 배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시간이 대략 오후 4시로 기억한다. 처음 들어갈 당시, 임원들에게 주어지는 사무 공간은 참 넓고 쾌적해서 '역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인사를 드리던 중, 문득 담당 임원이셨던 상무님께서 오늘 저녁 충청·대전 지역 점대표자님들과 저녁자리가 있는데 현장의 VOC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시며 참여 의사를 여쭤보셨다. 당시 신입사원인 우리가 거절하고 말고 선택할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당연히 참여하겠다고 답을 드린 뒤, 부랴부랴 다들 집에 들러 짐을 싸고 서울역에 모여 대전으로 첫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점대표자들을 저녁자리에 만나 다채로운 현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아무래도 점대표자님들이 베테랑이라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주셨다. 그렇게 현장의 소리를 듣던 중, 상무님께서 우리 모두를 부르시더니 이야기를 하셨다. 


  "우리의 월급은 누가 주는지 아니? 지금 앞에 계신 점대표자님들께서 평일·주말을 가리지 않고,

   늦은 저녁까지 영업하셔서 만든 매출에서 우리가 받는 거란다. 그래서 항상 점대표자님들을 뵐 때

   고객을 뵙는다는 마음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그 이야기를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던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참 정확한 사실을 말씀해주신 것 같다. 입사 당시만 해도, 신입 사원인 필자뿐 만 아니라 모든 직원들에게 본사 직원이라 하며  나이가 많으신 점대표자님들께서 깍듯이 대해 주셨다. 이런 것도 익숙해지면, 스스로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들의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과도한 행위나 말투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필자도 13년이 지난 지금을 돌이켜 보면, 참 많은 인간적인 실수를 한 것 같아 후회되는 장면이 많다. 패션 시장의 구조가 백화점이라는 공간에 수수료를 주고, 점대표자님들과는 기간 계약을 해서 판매 수수료를 제공하는 형태이다. 그래서 회사 영업의 핵심역량 중에 꼭 우수한 점대표자 유치가 반드시 포함된다. 말 그대로 여성복 같은 경우에는 점대표자님들을 따라 엄청난 매출이 이동하기 때문에, 스타 점대표자들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그러한 사실을 당시 상무님께서는 이러한 시장의 이치를 알고 계셨기에 신입이었던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싶으셨던 것 같다.

 이런 계약 관계를 법적으로는 하도급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하청인 것이다. 아무래도 수급인과 도급인의 관계는 일방의 지배 및 복종관계가 당연시되어, 노동력 착취 등의 사회문제를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필자가 입사하기 전부터 오래된 관습처럼 계약관계임에도 점대표자님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게 당연하게 인지되었다. 그리고 점대표자님들도 평생직장처럼 회사에 로열티와 프라이드를 엄청나게 가지고 판매를 하셨다고 한다. 매출이 좋을 때는 너무나도 이상적인 상황이지만, 관계가 계약 이상으로 깊으면 문제는 항상 좋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다. 특히나, 매출이 부진해서 계약을 해지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서로 감정이 상할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계약관계임에도 자신의 회사처럼 충성을 다 바쳐가며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계약해지 통보를 받으면 그들이 받을 수 있는 배신감이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 반대로는 회사 입장에서도 부정적인 상황이 분명히 있다. 믿고 계약을 했는데, 재고 손실이나 부정판매로 개인적인 수입 획득 등으로 회사에 손실을 끼치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회사는 점대표자에게 보증 보험을 필수로 하고, 점대표자는 회사에 영업의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최근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온라인 판매 비중이 증가하고, 오프라인 매출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변화를 겪고 있다. 이련 시대의 변화 속에서 관계의 변화가 발생하고, 상호 간의 의미가 보다 계약적으로 가다 보니, 점대표자에 대한 인지가 고객이라는 생각보다는 계약 대상으로 인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점대표자 입장에서도 이제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보다는 수익을 위해 흔히 말하는 점프를 잘하는 구조로 정착되고 있다. 

 오랜 기간 성장하는 브랜드를 들여다보면, 회사 내부의 안정적인 시스템과 현장의 강력한 맨파워가 잘 세팅이 되어 있다. 회사와 점대표자들 간의 상호 존중과 스스럼없는 피드백을 통해 브랜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가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서로 간의 신뢰가 커지고, 소통이 자연스레 문화가 된다. 필자도 영업 직무로 근무할 당시, 현장을 방문하면 점대표자님들에게 시스템 데이터에 나타나지 않는 의미들이나 경쟁사 동향 등 궁금한 점을 한 보따리 가져가서 풀어놓았다. 그때마다 그들은 나에게 친절하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었고, MD가 되는 과정까지 좋은 자양분이 되어 성장해 나갔던 것 같다. 점대표자님들 역시 전문성을 존중받는다는 생각을 하시고 스스로 많은 고민을 하고 답을 주셨다. 이렇게 신뢰와 존중을 받는 점대표자들은 스스로 브랜드의 로열티와 프라이드를 키워가며 주인의식을 가지게 된다. 그런 매장의 매출은 역시나 예상대로 훌륭하다. 이런 매장들이 모여서 브랜드는 꾸준히 앞으로 나아간다. 이렇듯 중간 고객인 점대표자들은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도록 엔진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최종 고객 (Feat. 일반 소비자)

 

  명품 요가 브랜드인 룰루레몬을 창시한 칩 윌슨의 저서인 "룰루레몬 스토리"에는 칩 윌슨이 얼마나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첫 사업을 시작할 당시(정확히는 두 번째다. 칩 윌슨은 웨스트 비치라는 스노보드 브랜드로 시작했다.), 특정 그룹의 고객을 초대해서 포커스 인터뷰를 통해 브랜드 방향성과 비즈니스 모델을 재정립하고 심지어는 지금의 룰루레몬이라는 브랜드명까지 확정 지었다.


 "고객들은 생식기 주변의 윤곽이 드러나는 불편함으로 인해 요가복을 밖에서 입기를 꺼려했다.

  우리는 그 불편함을 우선적으로 해결한 것이 획기적인 혁신이었다.

  그리고, 나는 고객들이 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가 수련 후에 우리의 옷을 입으면 옷을 갈아입지 않고 약 45분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나는 '애슬레티칼리 힙', '룰루레몬' 등 20개의 이름을 포커스 그룹에 선보였다.

  나는 '애슬레티칼리 힙'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리라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룰루레몬'이

  압도적인 표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고객들은 '애슬레티칼리 힙'에서 사용하려고 했던

  A자를 섬세하게 변형한 로고를 최고의 로고로 선택했다."


 칩 윌슨은 고객의 소리, 특히나 불편함에서 인사이트를 얻어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였다. 그리고 룰루레몬이라는 브랜드 명과 로고까지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결정하였다. 이론적으로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무를 하다 보면, 고객의 VOC를 정확하게 결과물로 전환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칩 윌슨은 고객의 소리를 비즈니스로 창출할 수 있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온라인 시장의 확대로 리뷰 기능이 활성화되고 있다. 리뷰의 양이 길어졌고 내용도 전문가 못지 않게 디테일해졌다. 또한, 착용한 모습을 직접 찍어서 올리는 경우도 이제는 다반사다. 평점은 당연히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덧 고객의 VOC를 빅데이터로 전환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룰루레몬의 칩 윌슨이 진행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에 이제는 빅데이터가 더해진 것이다. 필자가 기획한 상품들의 고객 평점이 모여서 어느덧 나에 대한 평가가 될 수도 있기에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리뷰를 모아 읽어보다 보면, 수많은 내용을 카테고리 화해서 인사이트로 추려내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리뷰는 한 방향에서 오는 메시지기 때문에, 필자에게는 질문의 기회는 없다. 그들의 메시지를 보고 유추하는 방법밖에 없다. 

  몇 년 전에 출시한 티셔츠에 리뷰가 있었는데. "상의가 짧아서 불편하다."라는 고객의 메시지였다. 리뷰를 보자마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옷의 어느 부위가 짧다는 거지? 전체 길이인가, 아님 팔 길이? 혹시 고객의 신체가 일반적인 체형인가?" 리뷰의 한 문장에서는 시원하게 팩트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유사한 티셔츠들에서 같은 타입의 리뷰가 있는지부터 우선 확인했다. 유일하게 이 티셔츠에만 발견이 되었기에, 다시 한번 티셔츠 스펙을 점검했다. 그리고 그걸로 부족해서 현장으로 나간다. 현장에서 그 티셔츠를 피팅룸에서 입은 고객이 있는지 점대표자의 의견을 들어보고 다른 고객이 혹시나 입을까 기다려본다. 다행히 한 고객이 티셔츠를 들고 피팅룸에 들어가서 입어보더니, 바로 나와서 반납하고 매장을 나갔다. 그래서 점대표자님에게 물어보니, 기장이 살짝 짧은 것 같다는 피드백을 주셨다고 한다. 시스템상의 기장 길이는 같은데 왜 다른가 살펴봤더니, 기장의 이슈보다는 가슴둘레가 살짝 타이트해서 배가 나오신 분들의 경우 기장이 올라가는 케이스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고객의 짧은 한마디 리뷰였지만, 표현의 이슈였던 것이지 사실을 정확히 이야기한 것이었다. 

 온라인의 데이터 외에도, MD는 직접적으로 전국을 돌면서 고객과 시장의 동향을 조사한다. 전국 출장을 다니다 보면 다양한 먹거리 문화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패션 패턴이 참 많다. 아무래도 오랜 기간 자리 잡은 문화의 영향이 아닐까도 싶다. 예를 들면, 부산 쪽은 항구도시라서 그런지 유독 블루 계통의 옷이 잘 팔린다. 그리고 바닷바람이 있어서인지 바람막이 등의 아우터류에 대한 소비욕구가 높다. 반면, 대구 쪽은 더워서 그런지 기능성 소재에 대한 선호도가 높게 나타난다. 대전에는 교통의 중심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단품 구매가 많다. 이해가 가는 듯 하지만, 확실한 공식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고객들의 정성적인 성향인 것이다. 

 위와 같이 직접적인 VOC도 있지만, 소비지들의 브랜드 선호도 조사인 거시적인 데이터 역시 큰 도움이 된다. 한국섬유신문에서는 매년 상하반기 복종별 베스트 브랜드를 조사한다. 19년 당시 남성복 MD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담당 브랜드가 몇 년 연속 선호도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업부에서 다들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거기서 필자는 몇 년간 선호도 %를 살펴봤는데, 항상 1위긴 했으나 점진적으로 비중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고객의 성향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1위라는 타이틀에 가려서 그런 메시지는 조용히 지나가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남성복 시장 자체의 침체로 전체적인 하향세로 가고 있던 시기였으나, 결과적으로 기존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중심으로 여전히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고객은 절대로 크진 않지만, 언제나 그들의 메시지를 브랜드에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브랜드가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같은 카테고리 내 다른 브랜드 또는 아예 다른 카테고리로 이동해버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패션 회사 및 브랜드들이 고객의 소리를 듣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렇듯 최종 고객인 일반 소비자는 브랜드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고객은 MD에게 좋든 싫든 메시지를 전달한다.


 2009년 NBA 명예의 전당에 전설 중 전설이 입성하였다. 전 세계 대다수가 모를 수가 없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주인공이었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때 그의 연설을 들어보면 차원이 다른 경쟁의식과 스스로에 대한 마인드 셋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언론의 평가나 선수간의 경쟁을 도전의 대상이자 동기부여로 여기고 하나씩 하나씩 극복해나가며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것이다. 그 연설 속에 흥미로운 구절이 있다.


 "많은 것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많은 이야기를 어떤 방법으로든 좋은 메시지로 계속 들어야 합니다."


 수많은 메시지를 스스로 좋은 의미로 재해석하고 결과로 만들어 낸 것이다. 패션업에서 고객들의 VOC를 듣다 보면, 긍정적인 메시지보다 부정적인 메시지를 들을 확률이 높다. 고객은 만족하는 90%보다는 불만족하는 10%에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고객의 메시지로 상처받고 지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마음을 다쳐 업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MD가 무언가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성취하고자 한다면, 고객의 VOC를 많이 듣고 그 속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찾아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그랬듯 이야기를 좋은 메시지로 전환해서 인지하고, 스스로의 동기부여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객들은 쉼없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고, 그렇기에 우리 MD들은 현장으로 답을 찾는 여정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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