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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shion MD Jerry Sep 25. 2022

14. MD와 '멘토'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다.


 2014년도 저물어가는 12월의 마지막 주였다. 고향에서 저녁 시간을 가족들과 보내고, 시간이 늦어 나가진 못한 채 평소에 만지지도 않는 리모컨을 누르고 있었다. 연말이라 방송 3사에서는 시상 프로그램들이 한창이었다. K사에서 연예대상을 하고 있었는데, 대상은 역시나 유재석이었다. 놀랍게도, 9년 만에 K사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유재석의 대상보다 더 감동스러운 장면은 당시 위기를 겪고 있는 개그맨 김준호를 향한 후배들의 수상소감들이었다. 당시 운영하던 엔터테인먼트사 공동 대표의 횡령과 도주로 후배 개그맨들과의 계약을 정리하고 있던 터였다. 계약이 정리될 것이라 원망을 받을 법도 한데, 수상을 받은 K사 공채 후배들 모두는 김준호에게 진한 애정이 담긴 응원을 보냈다. 전혀 연관이 없는 필자도 감동이 절로 되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미래의 연인이 된 김지민도 "우리 후배들은 선배님 한 사람 덕분에 흩어지지 않는다."라는 멋진 멘트를 했다. 말 그대로 당시의 후배들에게 김준호는 힘든 신입 초기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한 멘토였다고 한다.

 우리가 평상시에 멘토란 단어를 자주 듣는다. 그리고 아무에게나 멘토라는 단어를 붙이지는 않는다. 그만큼 멘토라는 단어에 대한 무게감과 진정성이 크기 때문이다. 멘토라는 단어의 유래는 아주 오래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트로이의 전쟁 영웅인 오디세우스의 영웅 서사시를 담은 <오디세이아>에서 유래됐다. 당시 오디세우스는 어느 날 전쟁에 나가면서 자신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자신의 친구에게 맡기게 된다. 그 친구의 이름이 바로 "멘토"였다고 한다. 오디세우스의 친구 "멘토"는 오디세우스의 아들을 긴 시간 동안 잘 보살펴 주었다. 멘토는 "텔레마코스"의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해 스승이자 상담자였고, 친구와 같은 존재였다. 바로 여기에서 "멘토"가 유래되어, 현재까지 경험과 지식이 많아 신뢰할 수 있는 스승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여 "멘토"라고 부르게 되었다.

 필자도 패션업계에서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수많은 리더와 선배를 만날 수 있었다. 모두에게서 배울 수는 있지만,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리더와 선배가 아닌 "멘토"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필자의 행운은 적지 않아 지금 멘토라 부르는 분들을 짧은 인연으로 지나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멘토마다 기질과 전문분야가 다르신 덕에,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배울 수 있었다. 덕분에 필자의 패션 생활에 있어 부족하지 않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 관계의 핵심은 "관심"


  한국 사회생활에 있어서 '관계'라는 단어만큼 정의하기 어렵고 범위가 큰 것은 없는 것 같다. 또한 '관계'는 상호적이고 양방향이라 한쪽의 오해로 오인되거나, 가치가 훼손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필자에게 사회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가 어려워하는 '관계'를 놀랄 정도로 잘하시는 선배가 한 분 계셨는데, 바로 회사생활의 첫 번째 상무님이셨다. 아마도 '관계'를 잘한다고 표현하면 대다수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첫인상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당시 상무님의 첫인상은 상당히 강하시고 풍채도 대단하셨다. 물론 지금도 대단하시다. 게다가 말투도 강하다는 표현이 부족해서 강력하다는 표현이 맞으시다. 그래서 그런지 상무님을 처음 뵈었을 때 나도 모르게 위축되는 느낌이 든 것은 필자가 신입사원이라 그런 것 외에도 상무님의 첫인상이 분명 한몫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개성을 가지고 계심에도, 회사 내에서 위로는 어마어마한 신뢰를 아래로는 강한 지지를 받으시고 계셨다. 뿐만 아니라, 회사 밖의 점 대표자님들, 바이어들, 계약 업체들 사이에서도 놀라울 정도의 덕망을 가지고 계셔서 흠모하는 이들이 셀 수 없었다. 회사의 직급과 직책으로 인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같은 조건을 가지신 분들 중에서 그 정도의 덕망을 가진 분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아우라가 남다르셨다.

 하지만 함께한 시간이 조금 지난다면, 처음 밀려온 부담감과 180도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왜냐하면, 상무님이 얼마나 상대에 대 배려와 예의를 갖추는지 금세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시면서 세심하게 상대의 반응에 맞춰 눈높이를 조절해나간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긴장이 풀리게 되고 그렇게 편하고 좋으신 분도 없다. 오랜 회의에 지쳐 자리에 돌아가실 때도 신입사원이 보이면 꼭 자리에 찾아가서 응원해주시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출산을 앞둔 여성 동료가 있다면 출산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시다가 먼저 휴식을 챙겨 주셨다. 또 고민이 많은 중견급 직원이나 중간 간부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방법을 찾아보셨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지켜봤던 그런 세심한 배려와 존중 참으로 인상 깊었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고, 누구나 그렇듯 상무님께서 회사를 떠나게 되셨을 때 펼쳐진 장관은 아직도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선명하고 또렷한 것 같다. 당시 회사 주차장을 나가려면 건물을 끼고 좁은 긴 길을 따라 돌아 나가야만 벗어날 수 있는 구조였다. 상무님께서 마지막 퇴근을 하시는 그날에는 그렇게 긴 길을 따라 수백 명의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모여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 뜨거운 에너지 속을 지나 3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회사로부터 떠나시는 상무님의 마지막은 정말 감동적이었고 멋있었다. 필자는 그날 이후, 그렇게 멋지게 떠나신 선배님을 만날 수가 없었다.

 일정한 시간을 지난 후, 필자는 떠나신 상무님께서 메가 브랜드(악어 로고를 가진 프랑스 회사)를 가진 타 회사의 CEO로 부임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탄탄한 브랜드였기에, 참으로 축하드릴 소식이었다. 그리고 들려온 이야기로 부임 후 첫 번째 상품 컨벤션에 유통사의 내로라하는 백화점 점장님들(유통사의 상위 임원 레벨)이 대거 출동하셔서 그 자리를 빛내주시고 응원해주셨다고 한다. 역사상 그렇게 점장급 레벨에서 특정 브랜드 행사에 단체로 출동하는 경우는 유통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사례였다고 한다. 하나의 작은 사례지만, 그 상무님께서 살아온 인생의 가치를 대변하는 사실이 아닐까 한다.

  여담으로 한 가지 더 이야기를 하자면, 대표님이 되신 상무님께서 어느 날 신발 MD 직무를 하던 여성 후배를 필자에게 소개해 주셨다. 시간이 지나, 그 여성 후배는 필자의 와이프가 되었고 그렇게 리는 패션 패밀리가 되었다. 당시 결혼을 결심하고 대표님께 주례를 요청하는 삼고초려를 드리던 중, 문득 대표님께 그간 지 못했던 궁금증을 여쭤보았다.


▷ 필   자 : 대표님, 업무도 많고 그렇게 바쁘신데 어찌 그 어마어마한 관계들을 케어하실 수 있으셨나요?

대표님 : 모든 것은 그들에 대한 작은 관심에서 시작했지. 그것이 그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


 대표님의 말씀을 듣고 「언어의 온도」라는 책에서 읽은 석탑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저자가 대학 때 농활(농촌봉사활동)을 간 에피소드인데, 농활을 간 저자가 작은 사찰에서 한 오래된 석탑에 대해 주지스님에게 얼마나 되었냐고 질문을 했다. 주지스님이 답하길, 석탑은 수백 년 되었다면서 이런 탑을 만들 때 묘한 틈을 줘야 한다고 했다. 너무 빡빡하거나 오밀조밀하면 비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폭삭 내려앉는다고,,, 반면, 묘한 틈이 있으면 수백 년을 튼튼하게 이겨낼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아마도 대표님께서 모진 비바람이 잦은 패션업계에서 석탑처럼 단단하게 롱런하고 계신 노하우는 바로 작은 관심이라는 묘한 틈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 인내의 핵심은 "믿음"  


 필자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20대 초반 군대에 입대했다. 지나고 보면, 아마도 가장 첫 번째 제대로 된 매운맛의 사회생활을 시작한 시기라고 본다. 조직이란 곳에는 어느 곳에서나 Hierarchy(계층 계급구조)가 세팅이 되어 있으며, 군대는 그 조직 중에서도 가장 Hierarchy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에 들어갈 때 타이밍이라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필자는 다행히 흔히 말하는 '풀린 군번'에 해당돼서 특정 시기를 지나고 나서는 선임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책임감이라는 이슈가 있겠지만, 그래도 후임들 대비로는 몸이 편하지 않았나 싶다. 필자의 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회사 취업까지 이어졌다. 회사를 입사해서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필자의 후배들은 줄줄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2018년 서브프라임 이후 위축되었던 채용 시장이 필자 입사 전후로 풀렸는지 후배들이 제법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이른 직급에 과차장 업무를 도맡아서 하게 되었다. 일을 하다 보니, 역량의 한계와 시간의 제한이 있어 결과적으로 협업은 필수적이라는 걸 배우게 됐다. 선·후배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서로 간의 오해나 불만들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 없었다. 또 오해나 불만이 생기면 그걸 풀기 위해서 또 다른 에너지를 써야 하는 참 어려운 현실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원인들은 서로 한 템포를 참지 못하고 나오는 말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참거나 기다린다는 게 모든 이에게 힘든 일인 것을 당시에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필자의 두 번째 멘토로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천방지축 사고뭉치 팀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 한 팀장님을 소개하려고 한다. 팀장님을 처음 뵈었을 때는 브랜드 상품기획팀의 최고선임 차장님이었고, 필자는 브랜드 영업 막내 사원이었다. 바로 옆에서 생활했음에도 워낙 조용하셨던지라, 목소리조차 거의 들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차장님께서 갑작스레 발령이 나고 필자의 팀장님이 되셨다. 발령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면담을 하면서 차분하시고 조용하시지만 따뜻한 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영업을 하다 보면, 현장에서 다사다난한 일들이 수시로 터진다. 영업의 메인 업무인 실적은 당연한 일이고, 사람 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돈·비리 등 복잡한 일들이 팡팡 터진다. 그런 업무를 진행하면서 정답이나 정확한 매뉴얼도 없기에 필자가 한 실수만 해도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실수를 하면 필자는 다행히 이실직고를 하는 타입이라 바로 보고를 한다. 보고 전에 욕을 어마어마하게 먹을 것을 각오하고 팀장님 상황을 눈치껏 보다가 조용하시다 싶으면 스윽 자리로 가서 말을 꺼낸다. 한 가지 사례로 백화점 영업을 하다가 노련한 외곽 중형 백화점 영업담당이 던진 700만 원짜리 연출 요청을, 쉽게 말하면 모두가 손사래 치는 똥을 받아버리고 말았다. 당시 700만이면 핵심 백화점 2곳 정도는 연출할 수 있는 큰 금액이었다. 또 다른 비교를 하자면, 당시 필자의 월급보다 몇 배가 되는 큰 금액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실수라고 생각을 못하고 잘하겠다는 의욕만 앞섰다가 나중에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아차' 싶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에 빠른 단념을 하고 천근만근 무거운 마음으로 팀장님께 보고를 했다.


▷ 필   자 : 팀장님, 바쁘세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팀장님 : (보통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바로 눈치챈다.) 오, 무슨 일인데?

▷ 필   자 :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런 사유로 700만 원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 팀장님 : 기왕 써야 할 700만 원이라면, 아이디어를 넣어서 가치 있게 써보자.

                그래서 700만 원 이상의 배움을 찾아보자. 너의 성장에 투자라고 생각하자.


 엄청 혼날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뜻밖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그 순간 얼마나 감사하던지 팀장님에 대한 로열티가 무럭무럭 생겨났다. 필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팀원들의 크고 작은 실수를 하나 같이 따뜻하게 이해하시고 해결책을 찾아내려고 엄청 노력하셨다. 그래서 많은 팀원들은 필자처럼 감사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팀원들의 허물을 말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설령 자신이 엄청 욕먹어도 말이다. 하루는 상무님 보고가 있었는데, 한 가지 이슈로 시끌시끌했다. 한 팀원의 실수로 브랜드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기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여자 상무님은 워낙 대쪽 같은 타입으로 유명하셔서 분명 분위기가 쉽지 않다는 짐작이 되었다. 회의는 시작되고, 상무님께서 이미 상황을 다 알고 계시는 듯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팀장님께 상황 설명 요청과 함께 책임소재를 정확히 하자고 이야기하셨다. 문제를 일으킨 담당자의 표정은 그저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욕먹는 것을 떠나서 징계까지 가는 거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발언권은 팀장님께 돌아왔다. 놀랍게도, 팀장님은 말씀을 하지 않고 가만히 계셨다. 생각을 하시는 거라고 모두가 짐작했는데, 그렇게 시간이 1분, 5분, 10분 계속 흘러갔다. 20분째 되는 시점에, 다시 한번 상무님께서 대답을 요구하셨다. 그래도 끝내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더니, 1시간이 흘렀다. 상무님께서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회의를 할 필요가 없다고 자리를 나가셨다. 그리고 팀장님은 조용히 상무님을 따라가셨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다들 회의실을 떠나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막내급이던 필자는 그저 눈치만 볼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팀장님이 돌아오셔서 이번 건은 해결부터 하는 걸로 상무님과 이야기가 됐다면서 다들 힘내자고 하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지만, 회의실에서 해당 팀원이 질책받지 않도록 본인이 침묵을 지켰던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바로 상무님께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오셨다고 한다. 끝내 해당 팀원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아무리 호인이라고 해도 이렇게 팀원들을 지켜주는 것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그 유명한 「트렌드 코리아」에서 '각자도생'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인내심 달인 같은 팀장님과 약 1년을 함께 보냈다. 일을 마치고 종종 소주 한잔을 함께 하곤 했었는데, 그때 왜 이렇게까지 순간을 잘 참으실 수 있는지 질문을 드렸다. 당시 팀장님께서는 옅은 미소를 띠며 말씀하셨다.


"회사라는 게 생태계처럼 지속되는데, 나는 팀장이라는 자리가 팀원들이 이 생태계에서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도록 믿음으로 기다려줘야 한다고 생각해. 그 잠시를 기다려주지 않고 화를 내고 비난한다면 설령

 성장하더라도 좋은 방향으로 클 가능성이 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면 결국 이 생태계에 좋지 않거든." 


 인내에 대한 배움을 주신 그 팀장님께서는 그렇게 3년 정도 더 자리를 지키시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외부로 옮기셨다. 아무래도 주변의 숱한 비바람이 팀장님을 쉽게 두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팀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수년간 필자를 비롯한 후배들을 기다려주신 덕분에 많은 이들이 여전히 숱한 위기를 이겨내고 단단한 철학을 가지 성장 해나고 있다. 믿음으로 후배들을 지켜주는 멋진 팀장의 모습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말이다.


□ 변화의 핵심은 "책임"  


  신입 3년 차였을 때 옆팀 팀장으로 한분이 발령을 오셨다. 딱 봐도 엄청 젊으신 분이었는데, 들어보니 학력부터 역량까지 말그대로 회사 에이스셨다. 저 팀장님은 전무까지 탄탄대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옆팀이셨기에 직접적인 경험잘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필자의 팀장님 및 선임 모두가 자리를 비운 타이밍에 중요한 회의가 생겼다. 자리에 있던 게 필자밖에 없던지라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대리참석을 하게 되었다. 참석자 전원이 팀장급 이상인데, 사원 3년 차인 필자가 들어가는지라 먼가 그림이 맞지 않았다. 어쨌든, 회의를 참석해서 듣던 중 필자의 팀 의견이 필요했던 상황이라 소신껏 대답을 드렸다. 회의가 끝나고 에이스라 불리시는 팀장님이 따로 불러서 몇 년 차냐고 물어보시더니, 미래에 같이 일할 기회가 되면 꼭 오라고 하셨다. 유명한 팀장님께서 그렇게 이야기를 주시니,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으로 부르시면 언제든지 가겠다고 답을 드렸다. 그 대답을 드리고 약 5년의 시간이 흘렀다. 필자도 새로운 조직에서 자리 잡고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팀장님께서 연락이 오셨다.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인데, 너랑 함께 하고 싶은데 올 수 있니?"


 그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 5년 전에 대한 약속이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의 안정적인 상황도 스쳐 지나갔다. 게다가 패션업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면 고생길은 확고한 공식이다. 결과적으로 드린 약속을 지키고자 우여곡절을 거쳐 브랜드에 합류하게 되었다. 5년 전 약속은 현실이 되었고, 약 4년간 신규 브랜드에서 소위 말하는 자신을 갈아 넣었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열일했던 것 같다.

 팀장님이 신규 론칭 브랜드는 해외 러닝 스포츠 브랜드였다. 당시 회사에서 스포츠 브랜드에 대한 경험치와 이해도는 부족한 상황이었는데다가 이 브랜드는 한 단계 더 들어가서 특정 종목인 러닝이었다. 주변에서도 상당히 우려가 컸고, 대다수 부정적인 예상과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필자가 그 브랜드에 갈 때도 당시 상무님께서 무모하고 어리석은 결정을 하는 것처럼 표현한 걸로 기억한다. 그런 부정적인 전망 속에서 합류했는데, 역시나 쉬운 게 없었다. 대기업이라는 곳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예전 사례나 시장 경쟁사 동향 등에 근거를 해야 한다. 하지만, 러닝 스포츠 브랜드를 해본 적이 없어 내부 결재를 하나 받는데도 레퍼런스가 없어 그렇게 승인받기가 어려웠다. 당시 선임급이었던 필자도 주변 부서에 설명고 설득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사용하는 게 다반사였다. 항상 어려움에 직면하면 팀장님께서 해당 부서들에 찾아가 본인이 책임을 질테니 진행을 해달라고 요청을 많이 하셨다. 그러던 중, 한국의 메이저급 러닝대회 스폰서 제의가 들어왔다. 워낙 큰 대회라 비용 등 들어가는 리소스가 어머어마했다. 조직 내에서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만약 진행하다가 실패하면 누가 책임질 거냐는 두려움들이 가득했다. 이렇게 극심한 반대 속에서 팀장님은 모든 임원들을 찾아다면서 설득하고 승인을 받아냈다. 사실, 아무리 팀장님께서 유명하신 분이라고 해도 이렇게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는 잘못되면 그동안 회사생활에서 쌓아온 공든 탑이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는 건이었다. 그리고 회사 자체가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가장 중요시하는 삼성이 아닌가. 그래서 조심스럽게 팀장님께 이번 건은 우려가 되니 피하시는 게 어떠냐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팀장님께서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세상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예상되지 않은 일이 훨씬 많아지고 있지.

  그런데, 우리는 과거의 경험이나 레퍼런스를 근거로 현재 의사결정을 하고 있단다. 그건 새로운 도전으로

  받을 수 있는 성과보다는 발생할 수 있는 책임이 더 걱정이 돼서 그런 점이 있단다. 우리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려면 책임을 지더라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그 한 스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지금 그 한 스텝을

  내디뎌 보는 거란다. 책임은 당연히 내가 지는 거라고 생각해."


 필자도 회사를 10년 이상 다녔지만, 책임을 진다는 말을 하는 분들은 거의 찾아보지 못했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이런저런 디펜스 할 명분을 찾는 분은 사실 너무나도 많이 봤다. 팀장님의 철학은 너무나도 신선했고 열정적이었다. 그렇게 우리 팀은 메이저 대회를 유치했고, 힘든 시기에 론칭해서 약 4년간 매년 2배가 넘는 성장을 해냈다. (비슷한 시기에 론칭한 다수 브랜드는 3년 이상버티지 못했다.)하지만, 조직의 기준은 달랐고,아쉽지만 브랜드 계약 마지막이 되는 해에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성적표를 우리는 받게 되었다. 모든 조직원들이 열정적으로 브랜드를 키워가던 중이라, 필자를 비롯한 모두에게 이 결정은 충격적이었다. 모든 에너지를 불사른 팀장님은 오죽했을까. 그리고 그 팀장님은 5년간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본인이 지겠다는 약속을 지키시겠다며 20년이 넘은 정든 회사를 그렇게 떠나셨다.

 미국의 대통령 중 한명인 해리 트루먼의 좌우명은 유명한 "The buck stops here"이다.(항상 사무실 책상위에 적어둔 뒤 세워 뒀다고 한다.) 즉, "모든 책임을 지고 결정한다"라는 뜻이다. 2차 세계대전을 지나, 냉전시대에 냉철한 의사결정으로 유명했던 그는 미국 대통령 유일한 고졸 출신이자 아웃사이더 출신의 대통령이었다. 항상 고정관념과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반발이 많았지만, 책임이라는 단어 하나로 의사결정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안전제일, 각자도생이 중요시되는 현대 회사 생활에서 "The buck stops here"를 실제로 보고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필자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영국의 2파운드짜리 동전 테두리에는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이 안 되는 가치의 이 동전에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라는 문구를 새겨놓은 것은 영국 출신의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뉴턴(1642~1727)을 기리기 위해서이다. 뉴턴의 유명한 업적들에게 대해서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물리학적 발견을 치하하자, 그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내가 남보다 더 잘 보고 더 멀리 봤다면 아마도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설 수 있었던 덕분이다”


 앞선 사람들, 선배들의 수많은 노력과 발견이 있었기에 자신의 업적이 가능했음을 위와 같이 표현했다. 우리 모두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앞선 멘토들에게 배우고 그들이 이뤄놓은 길을 걷게 된다. 크든 작든 그들이 이뤄놓은 업적들이 있기에 우리도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필자를 비롯한 많은 패션 MD들은 과거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 더 멀리 보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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