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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shion MD Jerry Sep 29. 2022

Prologue

모든 것에는 계획이 있다.

  누구나 옷이나 신발을 사기 위해 패션 매장을 가거나 온라인 몰에 접속한다. 그리고 한참을 뒤지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설레는 마음으로 계산대로 가져가거나 장바구니에 담아 결정을 한다. 그 순간에 터져 나오는 믿을 수 없는 아드레날린은 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고 다시 같은 자리에 서게끔 한다. 그 누군가의 그 행복감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자의 직업인 MD는 존재하다.

  패션 MD의 사관학교라삼성물산(구 제일모직)에 입사해서 그 누군가가 느낄 설렘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것을 배웠다. 사람의 행복을 만든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많은 실수와 반성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다. 혼돈과 변화가 가득한 13년이라는 시간의 터널 속을 지나는 동안 영화 '터널'에서처럼 무너지기도 하고, 탈출하기를 반복하였다. 열정을 쏟던 브랜드가 없어질 때는 정말로 터널이 무너진 것 같은 마음을 느꼈고, 승승장구할 때는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마냥 기뻤다. 그렇게 브랜드와 일체감을 느끼며 동고동락 생각과 배움을 언젠가부터 조금씩 메모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시작한 메모였지만, 양이 불어나면서 메모는 문단이 되고 어느덧 글이 되어 갔다.

  우연히 읽게 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의 서문을 읽다 보니, 마음을 훅 통과하는 문장을 대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적어 두었다.


Page 7.

 서머셋 몸(Somerset Maugham)은 "어떤 면도의 방법에도 철학이 있다."라고 쓰고 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매일 계속하고 있으면, 거기에 뭔가 관조와 같은 것이 우러난다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면도에도 철학이 있는데, 13년 동안 매일같이 공을 들여온 패션 MD라는 직업에 철학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션 MD도 그렇고, 회사생활도 13년 동안 해왔는데 역시나 철학이 있겠거니 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 북에 발행되는 책을 살펴보면, 많은 이들자신의 직장생활부터 일상생활까지 자연스럽게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 공감이 되었다.

 '그래... 나도 40살을 앞둔 지금 나의 인생이자 직업을 한번 정리해보자'라는 말도 안 되는 다짐을 해버렸다. 그래서 집안 책장에 꽂혀 있던 메모들은 주섬주섬 모으고, 수첩의 적혀있던 글들을 하나 둘 옮겨 적기 시작했다. 모으면 정리가 되겠거니 했더니, 오히려 혼란과 혼돈의 글들이 조각조각 곳곳에 의미 없이 뿌려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른 변화가 필요했고, 또 다른 조언들이 필요했다. 주변의 수많은 패션인들과 지낸 지 수년째인데 비로소 그들과 어울리지 않게 심도 있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놀랍게도 제법 진지하고 인사이트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과 인생을 녹여서 담아보기 시작했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로 변하는 어느 순간을 지나니, 마법같은 느낌을 받았다. 처음의 볼품없음은 어느덧 제법 그럴듯함으로 변모해 있었다. 아, 이래서 집단지성, 집단 지성하는구나 하는 또 하나의 배움을 얻는다.

 작은 단추, 지퍼에서부터 머리를 움켜잡고 고민하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방향에 번뇌하는 MD. 치솟는 원가 속에 깊은 한숨 쉬는 소싱. 하루하루 널뛰기하는 매출로 가슴속이 타들어가는 영업.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하느라 퀭한 마케터. 그렇지만, 오늘도 그들은 어김없이 출근해서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아 노력하고 있다. 바로 구절에 이야기한 그 누군가의 그 행복감이 우리들이 찾는 해답인 것이다.

 우연히 이 글을 접한 누군가는 우리가 찾는 그 누군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지금 패션을 통해 행복하다면, 우리의 그 소명감은 이뤄진 것이고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의 행복감 뒤에는 솔직하고 순수한 우리들의 계획이 숨어 있음을 이실직고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당신의 행복감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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