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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shion MD Jerry Feb 05. 2022

1. MD와 '공간'

호기심의 자극

 2020년 연말이 다가오는 추운 겨울이었다. 벌써부터인가 크리스마스 트리들과 캐롤이 모든 거리를 뒤덮고 있다. 한해가 끝나가는 모양이다. 양재역 근처에서 약속있었던 필자는 일찍 도착해 선물 받은 쿠폰으로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기분 좋게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켜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사람들로 붐비는 스타벅스에서 쉽게 자리를 잡는다는 것도 이제는 작은 행복인 것 같다. 스타벅스는 어느덧 카페의 개념을 넘어서 문화의 메카로 자리 잡은 것으로 느껴졌다. 이런 문화의 메카에서 필자는 유유히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손에는 유리컵을 통해 전달되는 커피의 따스함과 목을 통해 넘어가는 커피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시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필자의 눈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주변을 끊임없이 살피고 있었다.


 □ MD의 호기심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커피는 원두 원가가 얼마길래, 지금 가격을 받는 걸까’

  ‘요즘은 얼죽코(얼어 죽어도 코트)라더니, 정말 다들 코트를 많이 입는구나,’

  ‘코트 안에 스웨터보다는 이제는 스웻셔츠를 편하게들 참 많이 입는구나.’

  ‘요즘은 블랙 코트보다 카키 코트가 훨씬 많이 보이네.’


 커피와 대화를 즐기는 스타벅스라는 공간에서 MD라는 명함을 가진 이들은 아마 필자처럼 주변인들의 패션을 바라보며 이렇듯 호기심 가득하게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이 작은 호기심으로 시작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이을 것이고, 어느덧 생각의 바다에 빠져서 시간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이렇듯 사람을 생각의 바다에 빠지게 하는 방법은 인류의 숫자만큼 다양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간이 주는 에너지는 실로 크기에, 아마도 우리는 휴가를 내고 여행이라는 방법을 통해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로운 나라 또는 도시에 가서 새로운 것을 보고 신선함을 느끼며 그 경험을 즐긴다. 그러면서 생각의 공간을 확장하는 과정을 체험할 것이다.

 MD라는 명함을 가진 이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시즌이라는 큰 세계관을 시작하기 전, 생각의 바다에 빠지기 위해 시장조사라는 방법을 통해 해외로 떠난다. (패션에서의 시즌은 크게 SS, Spring/Summer와 FW, Fall/Winter로 나뉜다.) 화려한 4대 패션위크 중 가장 먼저 시작을 알리는 뉴욕을 방문해서 랄프로렌, 알렉산더왕, 톰브라운, 마크 제이콥스 등 미국 출신 다자이너 쇼를 보고, 맨해튼의 소호를 방문해서 다양한 샵들은 방문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역사가 깊은 유럽의 파리에서 가게 된다면,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 등 유명 브랜드의 쇼를 볼 수도 있다. 가깝게는 일본 도쿄의 하라주쿠나 긴자의 거리를 걸으며 다양한 패션 트렌드와 문화를 볼 수 있다.

 

  ‘이번에는 클래식 블루(가령 시크 블랙)라는 단어가 많이 들리더니, 많이 보이는구나.’

  ‘리싸이클 소재에 대한 관심이 많다던데, 이번에 많이들 사용했구나.’

  ‘여전히 오버핏이 대세긴 하구나.’


 정신없는 해외출장 중 어느 순간 MD들은 넘치는 호기심과 다양한 생각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양재의 스타벅스에서 호기심 가득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의 바다에 빠져있는 필자처럼 말이다.

 

 Tip. 4대 패션위크

   뉴욕, 런던, 파리, 밀라노 등 패션 주요 도시에서 1년 2회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쇼를 통해

   보여주는 행사로, 많은 패셔니스타와 셀럽이 참여하는 빅 이벤트 (참고로 뉴욕의 시작이 가장 빠르다.)


 □ 공간을 즐기는 마음


 개인적으로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파이터’를 엄청 열심히 보는 빅팬이다. 지금도 재방송을 하면 채널 고정을 하고 유심히 들여다본다. 한나라에 가서 그곳의 유명한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풀어내는 것이 보면 정말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하나의 음식에 담긴 스토리에 대해서 얼마나 준비를 열심히 했을까 하는 존경심마저 들 정도이다. 이와 비슷하게 패션도 같은 관점에서 보는 것을 꼭 추천한다. 패션 MD에게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오픈마인드는 좋은 Attitude라고 생각한다.

 다양성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문화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좋은데, 해외출장은 그런 측면에서 최고의 경험이자 선택이다. 패션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출장을 다니지만, 그 과정에 만나는 문화를 즐기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렇기에 그 지역에 방문한다면 유명한 음식이나, 핫플레이스, 공연이 찾아서라도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뉴욕에 간다면, 워싱 파크에 가서 줄은 좀 길겠지만, 오리지널 shake shack을 먹어보자. 그리고, Broadway에 가서 코로나로 아껴둔 문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뮤지컬을 보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만약, 일본 도쿄에 간다면 패션샵들이 오픈하기 전에(일이 시작하기전이다.) BLUE BOTTLE에서 유명한 라떼를 마시면서 여유를 즐기자. 잠깐의 여유지만,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곳의 Lifestyle과 패션을 같이 보면 해외출장의 인사이트와 재미가 분명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스포츠 MD로 일하던 때, 출산을 앞둔 디자인실장님과 Chief 디자이너, 막내 MD와 함께 일본 도쿄로 출장을 갔다. 남성복 MD였던 필자 자주 일본 출장을 왔던 터라 도쿄라는 장소는 익숙했지만, 브랜드(남성복 -> 스포츠)를 옮겼기 때문에 마치 처음 출장을 가는 신입 MD의 마음가짐이었다. 출장 준비 중, 구글 지도에 가야 할 SPOT을 일일이 저장하고 Time Table을 꼼꼼하게 짜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구글 MAP 장소 저장을 아직 모르신다면, 꼭 하시기를 추천드린다.) 출장 때 길을 찾고 가이드를 하는 것은 보통 MD가 하는 문화였다. 그래서 디자이너, 실장님, MD(가끔 팀장/사업부장님들)와 함께 다니는데, 다들 필자를 바라보며 따라오던 기억이 난다. 만약 그때 길을 잃고 헤매었다면, 생각만 해도 마음이 갑갑해지고 등에 식을 땀이 났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제 와서 돌이면, 남성복과 스포츠의 보는 아이템과 소재들이 달라서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대다수의 MD들이 해외출장을 경험하게 되는데, MD들이 담당하는 브랜드의 특성과 헤리티지에 따라, 방문하는 도시와 목적은 분명 다른 것이다. 어떤 MD(우리는 이들을 생산 MD/기획 MD라고 부른다.)들은 디자이너들과 해외에서 다양한 아이템을 보고 시즌 상품을 기획하기 위해. 또, 어떤 MD(우리는 이들을 Buying MD라고 부른다)는 브랜드 HQ(헤드쿼터)에서 준비한 컬렉션 및 세일즈 콘퍼런스를 보고 상품을 바잉 하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한다. 이렇게 많은 MD은 다양한 역할과 목적을 가지고 전날 늦은 새벽까지 이것저것 꾸깃꾸깃 밀어 넣은 무거운 캐리어와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을 것이다.

 일본 나리타공항에 내려 택시에 짐을 싣고 타려는 순간, 우리의 열정적인 막내 MD가 당당하게 앞좌석으로 이동했다. 첫 번째 해외출장이라 그런지, 자신이 해온 준비를 바탕으로 에스코트를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우리 막내 MD는 약 3년을 같이 일했는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결단력과 행동력을 가진 친구였다. 그 결단력과 행동력이 막 일본 나리타에 실현되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막내 MD가 앞좌석의 문을 열었는데 그 자리에는 택시기사가 앉아 있었다. 우리 막내 MD는 일본의 운전석이 오른쪽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해외출장에 있을 수 있는 웃음과 재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덕분에 당시에 얼마나 즐거웠던지, 글을 적는 지금 이 순간에도 즐겁다.)

 해외 출장은 일적인 경험 외에도 이렇게 문화적인 경험을 줄 수 있는 기회이다. 해외 출장 기간 동안 그들의 문화와 사고방법에 대해 함께 동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재미를 느끼는  것이 출장의 깊이를 더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그러다 보면, 그들의 문화와 사고방법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의 Shop에 드러나 있는 특성(일본이라면 간결함/아기자기함/디테일 등)을 볼 수 있는 좋은 시선을 가지게 된다.


□ 공간을 보는 관점


 나라/도시/거리마다 Shop들의 콘셉트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해외출장 루트를 기획할 때, 출장의 목적과 그곳의 특징들을 잘 고려해야만 한다. 그에 따라가야 하는 도시와 루트가 달라지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예를 들어, 스포츠 브랜드 NIKE의 상품 포트폴리오를 분석하고 싶다면 중국 상해 난징동루에 있는 House of Innovation을 꼭 방문해서 섹션별로 구성된 상품 포트폴리오를 보는 것을 추천하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Nike Mega Shop이기 때문에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상품의 구성이 빵빵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곳에서 모든 상품을 볼 수 있어 아주 효율적이다. 더불어서 시즌의 전략상품과 에센셜 상품 등을 좀 더 분석한다면, 난징서루/화오하이루의 브랜드샵을 돌면서 각각의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3곳의 샵에서 공통적으로 메인 VP존에 위치한 상품이 있다면 아마 이번 시즌의 전략상품일 것이며, 행거들마다 에센셜 상품들이 아마 행거링 되어 있을 것이다. 샵들의 크기/등급에 따라서 상품의 입점 여부가 다를 것인데, 전략/에센셜 상품은 대다수에 들어가 있으며, 등급별로 차등이 있는 상품은 포트폴리오의 허리를 구성하는 상품일 것이다. 말로는 참 쉽게 적을 수 있지만, 이를 살펴보기란 생각보다 쉬지 않다. 왜냐면 평수가 크고 그곳에 행거링 되어 있는 상품들을 하나하나 보기에는 시간이 참 턱없이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출장 가기 전 포커싱할 포인트를 반드시 리스트업 해서 가야지만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상해에서만 가야 할 거리만 해도 대략 항회광장, 신천지, 화오하이루, 난징서루, 난징동루 등이다. 이렇게 가야 할 곳이 줄을 설 정도이며, 봐야 할 브랜드가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에 아마 느껴지는 스케줄의 빡빡함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스케줄을 짤 때 거리의 특성을 잘 살펴야 하는데, 항회광장은 프리미엄 MALL의 개념이라면, 화오하이루는 강남 느낌에 가깝다. 또한 신천지 상가는 청담 거리의 느낌이 들 수 있으며, 난징동루는 명동 느낌이다. 그곳에 특성에 따라 브랜드 구성이 다르며 상품들도 다르기 때문에 이 차이점을 이해하고 스케줄을 구성하는 것이 좋다. (이 문단을 적으니, 마치 여행책을 적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큰 포트폴리오가 아닌 독특한 소재와 디자인의 디테일을 보고 싶다면, 일본 도쿄로 이동해보자. 물론 하라주쿠로 시작되는 편집샵부터, 다이칸야마/시부야/아오야마 등 특색 있는 샵들이 즐비한 거리를 보는 재미가 분명 있다. 아까 중국은 주요 브랜드 중심으로 큼직큼직하게 구성되어 있다면, 길 사이에서 작은 카페와 패션샵들이 구석구석에 위치하고 있어 도보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까 상해 난징동루 House of Innovation가 있다면, 도쿄 아오야마에는 Nike Lab이 있다. 그곳에서 아껴둔 신용카드를 꺼내든 우리 디자이너들의 모습에서 얼마나 특색 있는 곳인지 실감이 날 정도였다. 더군다나 편집샵이 많다 보니, 같은 상품이 여러 곳에 보이는가 하면, 특정 장소에만 있는 상품들만 있기도 한다. 그 상품들마다 소재 차이라든지 디테일을 구분해서 보다 보면 정말로 시간이 빠듯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디자이너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참고할 것이 많은 이런 곳들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도쿄에도 긴자처럼 강남 같은 느낌들의 샵들이 많은 장소도 있지만, 아무래도 일본에 간다면 일본의 느낌을 물씬 느끼는 것을 추천한다.)

 구석구석에 특색 있는 브랜드 샵들도 많아서 시간이 가능하다면 하나씩 들어가 보는 것이 좋다. 일본 출장 당시 하라주쿠에서 ‘Snow Peak’라는 캠핑 브랜드를 본 적 있다. 당시만 해도 캠핑은 소수 마니아 층에서 선호하는 분야였기에 나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 영역이었다. 그리고 캠핑도구들이 어찌나 많은지 눈이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아이템을 고객들이 그렇게 많이 사는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나, 아기자기한 아이템들을 바라보며 습관적으로 원가랑 효율을 계산하고 있던 나를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다. 코로나 이후 제한적인 공간에 대한 고객들의 우려가 확산되고, 자연으로 가는 트렌드가 생겼다. 러닝/등산/골프/캠핑까지 특정 마니아층의 분야가 어느덧 대중적인 시대가 된 것이다. 덕분에 필자가 가볍게 본 해당 브랜드는 어느덧 백화점 전국 곳곳에 입점하고 볼륨을 키워가고 있다. 지나고 보면 필자의 하찮은 안목에 대해서 쓴 웃음이 나올 뿐이다.


 □ '아, 또 이렇게 이번 시즌이 시작되는구나

 

 정신없이 바쁘게, 때로는 재미있게 대화로 가득한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공항에서  무언가 한시름이 놓인다. 그 순간 몸의 이완과 마음의 안도감이 동시에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윽고 필자의 머릿속에는 항상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이 뇌리에 꽂힌다.

 해외출장이란 MD에게 공간의 변화에 따른 새로움이 주는 몰입감을 선물한다. 이 엄청난 몰입이 필자에 시사하는 바는 마치 과거의 왕국들이 전쟁을 치르기 위해 선전포고를 하고 출발하는 것과 같은 무언가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즉, 한 시즌을 시작하는 선언이자, 원정이라 생각한다. MD들의 치열한 시즌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즐겨듣는 노래 중에 정인과 윤종신이 부른 '오르막길'이라는 곡이 있다. 시즌을 시작하는 MD의 마음을 꼭 담은 구절이 있어서 소개한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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