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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shion MD Jerry Feb 07. 2022

3. MD와 '시간'

시간을 여행하는 MD

 ‘시간여행자의 아내’라는 영화가 있다. 2009년의 영화로, 자기도 모르게 시간여행을 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와이프의 이야기를 다룬 따뜻하고 감성적인 로맨스 영화다. ‘시간’을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보면, 문득 저렇게 시간을 왔다 갔다 하면 필자는 무슨 일을 먼저 하려나 하는 상상에 빠져든다. 물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이렇게 시간이라는 대상은 많은 이들에게 갖고 싶고 컨트롤하고 싶은 것이기에, 많은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활용된다. MD에게 시간이란 어떤 의를 가질까. (머.. 막내MD때나 Chief MD때나 부족한 건 매한가지긴 하다,) 생각해보면, 다양한 시즌을 운영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여러 시점의 일을 하는 것 같다. 굳이 표현하자면, MD도 과거/현재/미래의 일을 동시에 하는 시간여행자라 할 수 있다. MD의 가장 바쁜 월요일 일상을 잘 녹아있는데, 함께 들여다보자.


□ 어느 MD의 정신없는 월요일


  지난 주말에 캠핑을 다녀와서인지 유독 여독이 풀리지 않은 월요일 아침이다. (생각해보면, 지난 주도 그랬다.) 어느 MD님은 복잡한 지하철로 출근하는 길에 지나, 스타벅스에서 사이렌 오더로 아메리카노를 하나 가지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PC의 전원 버튼을 누른다. PC가 켜지는 사이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머리 속으로 할일을 시뮬레이션한다. 그리고 PC가 켜지는 순간, 지난주의 21FW 상품 판매 동향을 분석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DATA를 돌린다. (아마 당년/전년의 입고율, 판매율, 할인율 등을 뽑을 것이다.) 여러 가지 엑셀에 피벗을 돌려가며 자료를 열심히 만들어 본다. 그리고 주말의 특이사항에 대해 궁금한게 보이면, 여지없이 영업담당자나 핵심매장에 카톡을 넣어 사유를 물어본다. 그렇게 모은 DATA를 바탕으로 상품의 기획 당시 방향 및 예상과 지금 판매 결과가 과연 Aliened 해서 가고 있는지 살펴본다. 또, 상품에 대한 고객의 반응이 어떤지 살펴보며, 자료에 내용을 담는다. 바쁘게 오전 내내 주간 동향을 작성하고 제출하면,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한 시간의 꿀맛 같은 점심시간은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점심시간을 보낸 뒤, 현재 생산 중인 22SS의 생산을 점검해야 한다. 베트남에 코로나가 워낙 심하니 베트남의 코로나 확진자 인원을 한번 구글링해본다. 역시나, 장난아니구나. 걱정이 앞선다. 이윽고, 원단은 완성되어 가공에 들어갔는지, 미리 들어간 상품은 입고 예정일이 언제인지, 혹시 부자재 등의 발주가 빠진 것은 없는지, 생산단가는 얼마나 되는지 등 꼼꼼하게 체크리스트를 보며 점검한다. 그 뿐만 아니다. 왜 이렇게 원가가 비싸진거지? 왜 입고일정이 밀린거야? 정신없이 문제점을 찾아 소싱담당자와 통화를 하며 원인을 찾아본다. 22SS 생산을 챙기고 나니, 어느덧 시간이 늦은 오후가 된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22FW 킥오프 보고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와 만나 22FW 방향에 대해서 만난다. 이 회의를 위해 지난 주말에 시간을 내서 집 근처 백화점과 몰을 다니면서 어떤 옷들이 눈에 띄는지, 실제로 잘 팔렸는지 확인하며 다녔다. (물론 가족들과 밥도 먹고, 쇼핑도 조금 하긴 했다.) 디자이너 역시 고민을 많이 하고 왔는지, 본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게 많다. 그리고 지난 주에 본인이 매장에서 본 옷 사진을 보여주면서 컨셉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듣다 보니, 마침 아침에 만든 21FW 판매동향에 내용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MD답게 숫자로 의견을 주고 받는다. 그렇게 22FW 콘셉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어느 정도 초안이 잡히면 보고 준비에 대한 협의를 마친다. 휴,, 이제 만날 사람은 다 만난 것 같다. 드디어 내 자리에 앉아 미뤄둔 일들을 하나 둘 처리하다 보면 퇴근할 시간이 눈 깜짝할 새 다가온다.


MD의 시간


  10년 경력이 훌쩍 지난 직장인인 나의 월요일은 어쩜 이렇게 여유가 없는 것일까. 불행히도 이는 비단 나만의 이야기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월요일은 어느 나라, 어느 회사 모두 정신이 없는 그런 당연한 날인 것 같다. 간단하게 적어도 저 정도이니, 얼마나 바쁜지 짐작이 갈 것이다. 특히나 B2C 분야에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지난주에 발생한 수많은  숫자로 분석자료는 만들고, 하다보면 하나 둘 추가하게 되고 결국 자료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드는 것은 국룰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푸념을 멈추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본다. 위의 일과를 자세히 살펴보면 3개의 시즌이 이야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아래와 같다.


1) 과거(ex. 21FW) : 디자인/기획/생산이 끝나 시장에서 실제로 판매 중인 대상 (Big Data)

2) 현재(ex. 22SS) : 디자인/기획이 끝나 현재 생산이 이뤄지고 있는 대상 (Build Up)

3) 미래(ex. 22FW) : 이제 디자인/기획을 위해 협의하고 있는 대상 (Branding)


  괄호에 넣은 Big Data, Build Up, Branding은 설명을 돕기 위해 한마디로 내가 정의해본 것이다. 이렇게 3가지 시즌을 한 번에 운영하니 MD를 두고 MD의 약자가 ‘모두 걸 다 한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3개의 다른 시즌과 함께 일하면, 아무래도 쏟아지는 일 자체가 적을 수 없고 범위가 넓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벌어지는 시간의 간격 속에 있다보면, 얼마 전에 나온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처럼 차원이 중복되어 누가 상대인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혼란에 빠져 있는 주인공의 마음을 공감하게 된다. 문득, 나에게도 '닥터 스트레인지'와 같은 이 모든 것을 정리할 전지전능한 법사가 필요한 것일까.


 필자의 회사인 삼성에서는 이런 복잡함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GTM(Go To Market)라는 프레임을 바탕으로 시즌의 주요 일정들을 관리한다. 예를 들면 시즌단위로 킥오프 – 해외출장 – 디자인 CAD 품평 – 샘플 품평 – 컨벤션 – 발주 – QC (퀄리티 컨펌) – 생산 - 출시 등 주요 일정들을 시기별로 기입해서 스케줄을 체크한다. 물론 업종이나 회사마다 위의 순서가 다를 수는 있고 더 디테일하게 관리할 수 있으나, 대체적으로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통 Chief MD가 되면, 전체적인 일정을 조율하고 챙기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아무래도 일정관리가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패션은 계절성을 띄는 상품이 많기 때문에, 위 일정 중 일부가 늘어지게 되면 중요한 출시시기를 늦어진다. 출시시기의 지연은 곧 판매기회의 손실이기에 엄청난 마이너스임이 분명하다. 코로나 팬더믹같이 워낙 큰 환경적 요소라면 내가 손쓸 수있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다. 메인 생산처인 베트남에 확진이 확산된 시기가 있었다. 그로 인해, 공장에 출근하는 라인담당자들이 감소하여 생산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결론적으로 FW의 핵심인 다운 아우터가 두 달이 밀려, 12월이 끝나갈 때쯤 들어온 적이 있었다. 아시다시피, 그12월말이면 블랙프라이데이를 시작으로 대대적인 연말 프로모션과 시즌오프 등 대대적인 세일이 한창인 시기였다. 참...MD입장에서는 흔히들 말하는 GG(GOOD GAME, 프로게임 시 패배를 인정하는 멘트)인 것이다. 무엇을 위해 난 지난 반년을  한 것인지...매장에 들어오자마자, 할인해서 팔아야 하는 그 상황은 그저 마음 아픈 상황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팔 수 있는 시기는 오로지 1월 뿐이다. 시간적으로도 이미 나는 벼랑끝에 몰리게 된 것이다. 판매가 되지 않아 재고가 발생하게 되고,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무리한 할인 정책을 펼쳐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그역시 안 팔리면 내년 아울렛 매장으로 이 상품들이 하나둘 헤쳐 모이고, 새로들어온 따끈따끈한 신상품은 가격 비교 때문에 팔리지 않는 악순환 고리가 여기서 시작된다. 참 상상하기 싫은 최악의 카오스가 펼쳐진 것이다.

 

□ 시간을 다루는 MD


   '중요한 것은 얼마나 바쁜가가 아니라, 무엇에 바쁜가가 핵심 질문이다. - 오프라 윈프리'


  오프라 윈프리의 명언 중 좋아하는 문장이다. 정신없는 일정 속에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보면, 우선 순위를 놓치게 되고, 결국에는 감당할 수 없는 카오스를 만들고 만다. 그런 미래를 피하고 싶어서 항상 가슴 속에 두고 생각하는 명언이다. 이렇듯, MD의 일정관리는 브랜드의 안정성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매일 매일 카오스 같은 혼란스러운 일정에 마치 마법같은 정리정돈의 심플함을 가져 올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MD의 'Management'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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