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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shion MD Jerry Feb 10. 2022

5. MD와 '시간_현재'

'현재'가 MD에게 하는 이야기 (Build Up)

   앞의 글에 적은 MD의 월요 일상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 본다. (MD의 '시간' ⓛ 시간을 여행하는 MD). 22SS라고 표현한 현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디자인/기획이 끝나 현재 생산이 이뤄지고 있는 시즌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Build Up’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게임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Build Up'이라는 단어가 익숙할 수 있다. (어느덧 나도 3040 올드게이머가 된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 세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어떻게 'Build Up'을 하느냐에 따라서 나오는 결과물의 차이를 확연하다. 요즘은 게임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교육도 'Build Up'을 한다고 표현한다. 예를 들면, 3~4세에 영어유치원을 보내고, 초등학교 입학은 어느 학교로, 그때 학원은 영어 축구교실/영어 등 교육은 몇몇 가지를 해야 하는 식의 'Build Up'이 있다. 필자 역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다 보니, 가입해서 들어간 육아 카페에서 발견한 List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아,,, 아뿔싸... 주변의 자녀를 가진 지인들에게 적절한 타이밍과 적합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기반성과 동시에 대하는 마음가짐을 고쳐먹었다. 상품 역시 같다고 보면 된다.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시기에 상품의 수량, 가격, 품질, 출시 시기 등을 다 결정한다. 그래서 상품도 ‘Build Up’이 필요하다.


□ 기회비용의 바다


   MD에게는 안타깝게도 무한한 자원이 절대 주어지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건 참으로 많은데, 안타깝지만 이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실적과 회사의 방향에 맞게 정량의 자원이 주어지, 이를 시즌 공급금액이라 한다. (쉽게 생각하면, 신발 1개 스타일 15천 원짜리 X 2개만 공급하면, 3만 원이 공급금액인 것이다.) 아무래도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기회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상품의 스타일별 수량 및 가격에 따라 전체 금액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이 모든 것은 MD의 전략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서 고려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브랜드에는 담당 MD가 한 명이 아닌 것이다. 아이템에 따라 전문성이 다르기 때문에 MD들의 업무를 아이템별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 전체 자원을 두고 MD 간에 자원 배분을 위한 협의 세션을 한다. 그 뒤, 전체에서 나눠진 자원을 두고 담당 MD의 의사결정을 반영한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려 한다. 과거 남성복 MD 시절, 브랜드팀에는 아우터 MD / 재킷 MD / 이너 MD / 팬츠 MD로 구성되어 있었다. 해당 브랜드의 매출은 계절에 따라 파워 아이템이 달라지기 때문에, 시즌과 브랜드 특성, 아이템 특성을 잘 고려해서 전체 공급금액을 배분해야 했다.

 우선,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특성을 반영해 4개로 나눈다. 개인 취향이지만 트렌치코트를 입고 다니는 봄과 가을을 좋아한다. 트렌치코트를 입으면 먼가 클래식한 남성의 멋스러움을 드러낼 수 있 왠지 모르게 그때는 조금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확신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봄과 가을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필자의 선호도에 흔들린 정신머리를 다시 잡고 생각해본다. 최근 한국의 봄/가을이 길지 않다. 덥고 추운 여름과 겨울이 어느덧 서로 바통 주고받듯이 이어지는 느낌이 강한 한국의 계절이다. 그렇다면, 그에 맞춰서 비중을 나눠 본다. 아무래도 가을/겨울 옷들이 두께감이 있으니 가격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작년 상품의 판매 비중도 들여다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해본다. 결과적으로 봄 10% / 여름 30% / 가을 15% /겨울 45%? 이런  느낌이 된다. 자, 이제 비중이 대충 나온 것 같다. 좀 더 깊게 가정을 해본다.


 ① 봄(Spring) / 가을(Fall)

   - 생 각 : 긴 겨울이 지났으니, 외출할 때 멋스러운 트렌치코트나 최근 유행인 카디건을 입어 보자.

   - 선 택 : 트렌치코트, 카디건/스웨터류


 ② 여름(Summer)

   - 생 각 : 덥다. 깔끔한 폴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나선다. 허전하다면, 씨어서커 재킷을 걸쳐보자.

   - 결 정 : 씨어서커 재킷, 폴로 티셔츠, 반바지

 

 ③ 겨울(Winter)     

   - 생 각 : 요즘 한국은 북극추위이다. 그러나 나는 얼어 죽어도 코트를 입을 거다. (얼죽코)

   - 결 정 : 캐시미어 100% 코트

 

   브랜드마다 정답은 다르겠지만, 저런 생각들이 모여서 세부적인 아이템의 방향을 정리한다. 그리고 계절별로 나눠둔 금액을 아이템들로 하나씩 하나씩 채워 넣기 시작한다. 다수의 브랜드 매출은 Top류(아우터, 재킷, 다운 패딩, 코트 등)에 큰 비중을 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바지 10개로 100만 원 팔 시간에 다운 아우터 한 장 팔면 100만 원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의 윗도리 사랑은 크다. 우선 윗도리를 고르고, 그 뒤에 이너와 팬츠를 코디한다. 이러니, Top류에 집중을 아니할 수 없다. 대략적으로 Top류에 40~50%를 배정한 뒤, 나머지에 배분한다. 나머지 50% 중 20~25% 정도를 이너에 쓴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당시 이너 MD였던 필자는 약 20%의 자원을 가지고 나만의 '공급금액'이라는 스케치북에 '상품'이라는 다양한 색칠을 칠해본다. 그러면 시즌 포트폴리오라는 작품이 나올 것이다.

 

□ 분류하는 본능


  생각해보면, 필자는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받으면 분류하는 법을 배웠다. 이마트에서 장을 봐온다면, 장바구리를 풀기 무섭게 먹을 것과 아닌 것으로부터 나눈다. 냉장고 앞에서 위로 갈 것(냉장실)과 아래로 갈 것(냉동실)으로 나눈다. 그리고 냉동실에서 냉동식품과 고기로 또 나눈다. 나누고, 나누고, 나누고... 일상이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공급금액을 받으면, 이너 MD 답게 바로 티셔츠와 스웨터로 나눈다. 그리고 다시 티셔츠는 반팔/긴팔이 나눈다. 그리고 거기에서 또 라운드/PK형/V넥 타입으로 스타일로 나눈다. 스웨터도 마찬가지다. 카디건과 풀오버(머리부터 넣는 옷)로 나눈다. 그리고, 풀오버를 반집업 / 라운드 / 조끼형으로 또 나눈다. 나누고 나누다 보면, 어느덧 Exel의 행은 50줄을 넘어가고 있다. 여기에 컬러까지 나눠야 하니,,, 잠깐 커피 한잔 마시고 하는 것이 내 건강에 좋을 것 같다.

 

   MD의 성향과 일하는 분야의 성격이 여기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어떤 MD는 다양한 스타일로 확장하고 대신 스타일마다 수량을 줄인다. 반면, 어떤 MD는 스타일을 가급적 압축하고, 스타일당 생산 수량을 늘리는 타입을 선택한다. 아마도 여성복, SPA같이 트렌드가 빠르고 고객의 기호도가 다양한 카테고리의 MD는 전자를, 후자는 남성/스포츠/트레디셔널 같이 캐리 오버가 강한 카테고리의 MD는 후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역으로 가는 MD들도 간혹 있지만, 엄청난 Risk를 감안해야 한다. 마치 비트코인 초기에 전재산을 ALL-IN 해서 Fire족이 된 부럽고 부러운 사람이 있는 반면, 상투를 잡아 여전히 물만 태우고 태우다 자신의 속을 다 태운 사람도 있다. 만약 MD가 한 가지 상품에 ALL-IN 해서 성공하면 그 시즌은 '대박'난 시즌이고, 문제가 생기면 흔히 말하는 ‘망한’ 시즌이다. 률적으로는 후자가 높다. 그래서 그런지 안정을 택하는 경우가 역시 많다.


   과거에 나도 ‘망한’ 시즌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스포츠 티셔츠에는 형광색 옐로우를 많이 사용하는데, 당시 브랜드 초기라서 아직 모든 원단 및 염료에 대한 검증이 부족한 상태였다. 하지만, 마치 무언가에 씌였는지 시장에서 눈에 그렇게 들어오던 형광색 옐로우를 보고 우리는 과감한 베팅을 감행했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샘플이 예뻤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베트남에서 생산 후 매장으로 출시가 되었는데, 웬걸… 나가자마자 매장에서 전화가 빗발친다. 고객이 구매하셨는데, 세탁만 하면 물이 빠진단다. 그걸로 끝나면 행복한 거다. 그 옷뿐만 아니라, 다른 옷도 색이 염색되어 소비자들의 강성 클레임이 쏟아졌다. 판매되지 않는 상품의 판매 정지뿐만 아니라, 판매한 옷에 대한 환불, 다른 옷에 대한 보상까지 정리하느라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마치 드래곤볼의 '정신과 시간의 방'(이곳의 1분은 바깥의 하루)에 갇힌 느낌이었다. 하루가 그렇게나 가지 않는다.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투여된 시간과 노력들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안 만드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품질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으며, 형광색 샘플만 보면 그렇게 집에 가져가서 빨아본다. 그래도 불안해서 형광색 상품은 소량만 생산하는 필자만의 수비법이 생겼을 정도이다.


□ MD의 구분


   각 MD들의 가격/기획량/원가 등이 결정되고 정리한 것을 합친 파일을 우리는 ‘Range Plan’라고 불렀다. 이후 바잉 MD와 기획 MD로 업무 프로세스가 나눠진다. 바잉 MD는 HQ(해외 브랜드 사, Headquarter)에 발주를 신청하고 입고 스케줄 및 출시 시기를 산정할 것이다. 입고가 들어오는 그날까지 HQ와 스케줄 확인/송금/통관업무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것이다. 아무래도 외국 기업과의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바잉 MD의 필수 역량 중 외국어가 꼭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바로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잉 MD는 세일즈북이 날라오는 순간부터 세일즈미팅 참여를 위해 상품의 정보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해외에서 열리는 세일즈 미팅에서 효율적인 셀렉을 위해서 분석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아무래서 큰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바잉MD는 혼자 발주부터 입고까지 케어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바잉 MD 경험이 있는 경력자를 선호한다.


  기획 MD는 MR(소싱 담당자)과 함께 원자재(원단)를 발주하고 생산 공장을 선정하여, 생산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 소싱 경쟁력은 그 브랜드의 사업을 운영할 때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다. 최근 글로벌 소싱 환경이 어렵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상황이 정치, 재해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거에는 중국이 생산공장이었다면, 최근에는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비중이 아주 높다. 스포츠 MD 시절, 베트남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였는데 이는 한국과 FTA가 체결되어 관세 혜택 및 현지 임가공비가 저렴하여 이래저래 생산을 위한 조건이 좋기 때문이다. 원가가 소싱 담당자와 마찬가지로 MD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지표인데, 베트남 생산 상품의 한국의 70% 수준이다. 같은 이유로 많은 브랜드들이 베트남을 많이 선호한다. 그렇지만 최근 코로나 팬더믹으로 베트남 생산 역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 아무래도 베트남이 공산국가다 보니, 정부 지침에 따른 지역 또는 공장 폐쇄로 생산이 중단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나만 해도 코로나로 공장이 폐쇄되어 어쩔 수 없이 애지중지 기획해온 상품을 캔슬할 수밖에 없던 경험이 있었다. (늦게 받느니, 캔슬하는 게 현명하다는 게 내 주관이다.) 불가항력적으로 최근 많은 기업들이 소싱 경쟁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한 강제 레벨업의 경험을 한 것이다. 정치적인 이슈도 문제가 된 적도 있다. 미얀마 역시 중요한 소싱국 중 하나인데, 21년 쿠데타로 인해 나라가 마비된 적이 있다. 이때는 생산은커녕 연락조차 되지 않아 우리 소싱담당자들의 답답함은 오죽 답답했을까. 이렇게 기획 MD의 경우, 생산처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상품의 안정적인 공급을 계획할 수 있기 때문에 수시로 정보를 소싱 담당자와 협의하는 것이 좋다.


□ Build Up의 필수요소 : Detailed


 처음 다시 게임으로 돌아간다. 올드게이머로서 스타크래프트에 비유하자면, 게임 스타트 후 무언가 문제없이 Build Up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미네랄(돈)이 모이지 않는다. 필자의 소중한 자원을 모이는 공간에 다크템플러(특정 기술이 없으면 볼 수 없는 유닛)가 필자의 소중한 일꾼을 하나 둘 없애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필자는 그것을 볼 수 없다. 왜냐면 필자는 그걸 볼 수 있는 Build Up(기술개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이머는 GG를 칠 수밖에... 이러한 ‘Build Up’이 제대로 되어야 상품은 물류센터에 입고가 되고, 온라인/오프라인에 판매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된다. 필자의 소중한 상품(게임의 일꾼)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Build Up’을 고민하고 진행해야 한다. ‘망한’ 시즌인 GG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렇다. 곳곳에 넘쳐나는 Risk를 피해 가며 'Build Up'을 하는 것은 바로 MD의 ‘Detailed’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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