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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제이 Nov 27. 2019

승무원을 관두고 비로소 보인 것들

이제야 수줍게 고백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공감능력이 뛰어나도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은 이상
그 상황이나 사람에 대해서 온전하게 공감할 수 없다.




나는 진짜 잘 몰랐다. 어린 아기를 데리고 혼자 비행기에 오른다는 것이 얼마나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 부담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싱글의 승무원이었던 나는 정말 몰랐다. 비행에 아기 엄마들이 많이 보이는 날에는 한숨부터 나왔다. 오늘 비행 힘들겠구나. 오로지 나를 위한 걱정이 앞섰다. we will die today. 옆 동료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나름 승객들에게 친근하게 대하려고 노력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가끔 기 엄마들 행동은 나에게 물음표를 안겨 주었다.



비행에 돌도 안된 기를 데리고 혼자 타는 엄마들이 종종 있었다. 엄마들은 하나같이 아기띠로 아기를 안고 백팩 숄더백에, 토트백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낑낑대며 탑승했다. 비행 전부터 위태로워 보였다. 이 왜 저렇게 많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자진해서 그들의 짐을 오버헤드 빈(overhead bin: 위쪽의 짐을 넣는 칸)에 올려 드렸다. 하지만 가끔 그녀들은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도와드렸는데 왜 고맙다는 인사도 안 하실까.




이코노미 승무원들은 식사 서비스를 시작하고 마치는 순간까지 쉴 새 없이 일한다. 발바닥에서 불이 난다는 말이 딱 맞다. 그렇게 바쁜 순간에 아엄마가 갤리로 들어온다. 젖병을 씻어 달라며 말이다. 기내에서 무언가를 씻을 수 있는 공간은 화장실뿐이다. 그래서 승객이 젖병을 씻어달라고 하면 참 난감했다.  화장실에서 씻는 건 위생적이지 않다. 게다가 서비스가 한창 진행 중이라 정신도 없는데 젖병을 씻을 여유는 더 없다. 혼자 서비스가 늦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쯤에서 성질 급한 동료 승무원은 우리는 젖병을 씻어주지 않는다며 화장실에서 직접 씻으라고 나 대신 쌀쌀맞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긴 또 야박한 마음이 들어 뜨거운 물로 젖병을 한번 헹궈서 드리곤 했다.

뿐만 아니 어떤 엄마들은  젖병에 따뜻한 물을 담아달라고 하거나 우유도 요구했다. 왜 젖병과 물, 우유 같은 중요한 것들을  여유롭게 안 들고 다니실까.




가끔 아기 요람이나 좌석에서 기저귀를 가는 엄마들을 목격했. 그때마다 못 볼 것 본 것 마냥 화들짝 놀라면서



승객님. 여기서 기저귀 가시면 안 돼요.
화장실로 가서 하세요.


라고 이야기하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하던 그녀들.  화장실이 코앞인데 왜 자리에서 기저귀를 가실까.




식사 쟁반을 치워야 하는 시간에 그녀들은 또 한 번 나를 힘들게 했다. 다 먹고 난 쟁반을 바닥에 내려두었기 때문이다. 무릎을 꿇다시피 해서 그것을 다시 집어 드는 일 참으로 짜증 나는 일이다.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냥 손으로 전해주면 안 되나. 저렇게 바닥에 쌓아 두시는 걸까?




승객들이 다 자는 시간에 아기가 큰소리로 울면, 다른 승객들의 잠을 다 깨우는 건 아닌가 싶어 급히 기 엄마를 갤리 쪽으로 불러냈다. 계속해서 우는 아기를 보면 엄마가 조금 힘들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여전히 다른 승객들이 우선이었다. 기가 왜 우는 건지 이유도 묻지 않았고, 아기 엄마가 그 누구보다도 제일 난처하고 힘들 것이라는 것 까지 헤아리지 못했다. 그저 그녀가 속히 아기의 울음을 그치게 하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었다. 






승무원을 그만두고 난 다음 해에 출산을 했다. 100일 된 아기를 데리고 한국에서 랑이 있는 아부다비로 홀로 돌아와야 했다. 아기가 어릴수록 챙겨야 할 준비물이 굉장히 많다. 수유용품부터 옷가지, 비상약, 체온계, 기저귀 등. 비상상황을 대비해서 이것저것 여분을 담다 보면 마치 어디 피난이라도 가야 할 모양새가 된다. 거기에다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용품들을 수화물 허용량에  맞춰 꾹꾹 눌러 담다 보니 짐이 주렁주렁, 기내 가방까지 그득그득했다.

이유식을 시작하기 전의(이유식은 보통 4~6개월에 시작한다) 아기들은 2~3시간마다 모유나 분유를 먹는다. 그래서 장시간의 이동이 더 힘들다. 집을 나와서 공항에 도착 체크인을 하고 세관을 지나 탑승하기까지의 여정 적잖이 험난했다. 이미 지칠 대로 지다.




비행기를 탑승하자 승무원이 뭐라고 하면서 반겨주고 도와주는데 꾸도 제대로 못다. 웠지만  정신이 없어 대꾸할 시간도 놓쳤다.




젖병을 여유 있게 챙겨 왔는데도,  아기가 예상보다 더 많이 먹는 바람에 이마저도 간당간당했다. 일회용 젖병을 챙겨 오긴 했지만 정신이 없어서 오버헤드빈의 가방에 넣어 두고 말았다. 기는 우는데 요람에 눕히고 가방을 꺼내서 세팅을 하려니 손에 땀이 났다.

설상가상으로 보온 통에 여유롭게 담았던 따뜻한 물도 모자랄 것 같았다. 여유 있게 챙긴다 챙겼는데도 말이다. 집에서  나온 지 반나절이 지났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다. 할 수 없이 승무원에게 따뜻한 물을 부탁하게 되었다.



식사시간이 끝났다. 식사 쟁반을 가지고 있다가 승무원에게 직접 전달하고 싶었다. 무릎을 꿇어 쟁반을 드는 일이 얼마나 짜증 나는지 아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는 아를 안은 상태에서  앉았다 일어섰다 흔들흔들하느라 어쩔 수 없이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고 말았다. 무원 눈치를 보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기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데 혼자 기내 화장실에 들어가서 기저귀를 갈기가 무섭다. 기내 화장실은 너무 좁고 비행기는 흔들리고 저귀 갈이대는 너무 딱딱하다. 승무원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싶지만, 바쁜 그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혼자 버둥대며 갈고 말았다. 요람에서 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내가 승무원을 하지 않았더라면 재빨리 요람에서 갈았을 수도 있다.(그것이 액체인 경우에 한해 )




기가  밤중에 으앙 하고 울기 시작하면 등줄기에서 땀이 났다. 빨리 애가 울음을 멈추지 않으면 누군가가 맘충이라고 욕하진 않을까 싶어서 서둘러 갤리 쪽으로 가서 기를 달래고 달랬다. 승무원이 딱히 도와줄 건 없었지만, 힘드냐고 물어보거나 살짝 미소를 지어주는 승무원이 고맙게 느껴졌다. 심으로 걱정하며 도와줄 것이 없냐고 묻는 그녀들에게 작은 존경심마저 생겨났다.






아부다비에 도착해  한숨을 돌리고 나니 그때의 그녀들이 혼자서 얼마나 고군분투했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찔끔 났다. 그리고 미안했다. 어린 아기를 데리고 행기에 혼자 오르는 일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다면, 더 잘해드릴걸 그랬다. 바쁜 와중이라도 한숨 안 쉬고, 속으로 짜증 안 내고,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도울걸 그랬다. 승무원을 그만두고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녀들의 외롭고 힘든 여행길 보이기 시작했다. 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의 내가 알았더라면, 정말 더 좋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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