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라잉제이 Dec 15. 2019

당신이 비행기에서 쫓겨난 이유

그녀가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때는 바야흐로 2015년. 한국 비행기 안이었다. 객들이 분주하게 탑승하고 있었고 나는 비즈니스 객실에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일하고 있었다.(비즈니스 클래스는 꽤 많은 이륙 전 서비스가 있다)



보딩이 시작되고 20분쯤 지났을까. 이코노미 쪽에서 젊은 여성이 걸어와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 자신의 사정을 간단히 이야기했다.


속이 안 좋아서 비행기 탑승 후 구토를 했다. 위경련이 있는데 실수로 약을 수화물로 부쳤다. 약국에서 파는 약이 아니어서  탑승 전 구하지 못했다. 비행 중 약을 먹어야 한다. 혹시 비행기에서 약을 구할 수 있는가. 혹시 약 리스트가 있으면 보여달라.


나는 일단 그녀에게 좌석번호를 묻고 앉아서 기다리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정확한 상태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펜과 리포트 용지를 가지고 그녀를 찾아갔다. 승무원은 의료인이 아니기에 약을 제공함에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 약 제공전에 승객의 기본정보와 상태에 관한 문서작업(SAMPLE 질문에 따름)고 시니어와 상의를 한다.


승객이 약을 요구하거나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 반드시 시행하는 SAMPLE 질문

Signs & Sympton-징후와 증상
Allergy-알레르기
Medication-복용약
Previous history-과거 병 이력
Last meal-최근 식사
Event-특이사항


나는 그녀가 과거 48시간 이내에 위경련으로 입원했었다는 사실, 기내에서 구토를 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곧바로 사무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사무장은 기장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지상에 있는 항공 전문병원에 연락을 했다. 환자의 상태를 전화로 전달받은 그들은 승객의 오프로드를 권고했다. 장은 최종적으로 그 승객의 오프로드를 결정했다. <오프로드(off load)란 비행기에서 사람이나 짐을 내리는 행위를 말한다>


기장이 최종 결정을 해서 사무장에게 시를 하면 되돌릴 방법 없다. 승객은 무조건 행기에서 내려야 한다.



나는 갑자기 난처해졌다.  승객은 나에게 약이 있냐고 물어본 것뿐인데 나는 그녀에게 비행기에서 내려달라고 얘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 입장에서는 도와달라고 했다 난데없이 뺨을 얻어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오프로드를 부탁하자 그녀는 언성을 높이며 완강히 반항했다. 이미 모든 승객의  탑승 완료 상태라서 도어만 닫으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녀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왜 아니겠는가. 내가 승객이었어도 황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으니 버티기 작전에 들어갔을 것이다.



사무장이 그녀를 오프로드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결정에 대해서 명했다. 승객의 컨디션이 비행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되지 않고, 그로 인해 장시간의 탑승은 승객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 승객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항공사 탓을 하지 않을 테니 자기를 내버려 두라고 했다.



사무장은 계속 단호한 태도로 오프로드를 요구했다.

자신의 의견이 묵살된 승객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쳤고, 사무장은 이런 그녀를 보고 버벌 워닝(verbal warning)을 주었다. 내 크루에게 삿대질을 하지도, 소리를 지르지 말라며 말이다. 더 소란을 피우면 법적으로 처리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우리의 이런 설득과 구에도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승객들의 불만 섞인 질문들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사무장은 지상직원에게 연락을 해서 그녀를 오프로드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한 두 명의 남직원이 곧 비행기로 들어왔고 그녀에게 다가가 정중히 내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녀는 거절했다. 그들은 그녀에게 한번 더 요구를 했다. 그녀가 소리를 지르면서 거부하자 그들은 조용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셋을 셀 동안  일어나지 않으면
강제 연행하겠습니다



그들의 포스에 기가 죽은 그녀는 정확히 그들이  좌석에서 엉덩이를 뗐다. 그녀는 그렇게 저주를 퍼부으며 떠나갔다.





항공사가  승객의 건강상태를 이유로 오프로드를 감행하는 이유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고 본다.




1. 휴머니즘적인 사고에 기인한다. 자칫 잘못하면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승객인 것을 뻔히 알고도 비행기에 탑승시킨다? 있을 수 없다. Fit to fly. 모든 승객은 하늘을 날 수 있는 최적의 건강상태에탑승한 뒤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내린다. 아마 항공사가 지향하는 가장 기본적이자 원초적인 목표일 것이다.




2. 항공사는 건강하고 안전한 이미지를 굳이 깨부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도 PR에 굉장히 촉각을 곤두세우는 집단이다. 항공사는 크고 작은 내부의 사고를 굳이 세상에 알림으로써 그들의 브랜드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3. 항공사는 이익집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은 애초에 위험 요소가 있는 것을 면피하고 싶어 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만약 그 여성 승객을 태워 한국으로 가던 중에 의료사고가 일어났다면? 그래서 그 승객이 건강상의 피해를 입어 고소라도 했다면 항공사로서는 큰 금전적 손실을 볼 수도 있다. 공사 입장에서는 아픈 승객이나 크게 아플 가능성이 있는 승객은  거부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으면 한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실제 그 여성승객이 회사에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한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항공사의 처우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사고를 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E 항공사가 얼마나 최악인지를 주변인들에게 핏대 세우며  피력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먼 미래에라도 꼭 알아주기를 바란다. 비단 항공사의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결정이 아니라,  그녀의 건강상태를 고려해서 병원과 기장이 내린 합리적 최선의 결정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도라이에게는 어퍼컷을(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