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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달 Dec 01. 2021

생각보다 빠른 강아지의 시간

시한부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 <2> 막내와 함께 바뀐 일상

 심장병 초기는 생각보다 증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특히나 루비가 겪은 초기는 추운 겨울이라 최초에는 감기로 의심되어 정기검진 차 병원을 찾았고 심장병을 발견했습니다. 개체마다 다 다르지만, 생후 7년을 일반적으로 노견(Senior) 단계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 소형견 기준.
 지난 편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가 예상치 못하게 다음 메인에 올라가면서 많은 분들이 봐주셨습니다. 실제 루비는 지난달 10월 초 병원을 찾았을 때, 담당의와 수명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1~2개월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부제목에도 시한부 반려견과 함께하는 삶 이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번 글에는 그나마 증상이 덜 했던 기억의 시간이라 조금은 안심이 되는 편입니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모든 분들, 그리고 강아지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2021년 1월

 늘 그렇듯이 아무런 준비 없이 새해를 맞이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나와 집사람은 루비의 변화를 알고는 있었으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외형적인 변화는 전혀 없는 데다가 가끔 추운 새벽에만 기침을 했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겨울이니까 춥기고 감기도 걸릴 수 있지. 약을 좀 먹다보면 기침은 좀 가라앉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12월에 처방받은 약을 먹고나서는 기침이 거의 없었다.


 루비는 산책을 너무 좋아한다. 사실 산책을 싫어하는 강아지가 드물긴 하다만 진짜 광적으로 좋아한다. 외출용 옷만 봐도 흥분해서 직립보행을 시작한다. 집사람과 나는 동시에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 둘 다 옷방으로 들어가면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흥분한다. 루비랑 함께 하는 외출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항상 외출 준비는 조심스럽다. 심장병을 앓고 나서부터 루비가 가장 좋아하는 외출이 자신의 건강에 가장 해가 되는 행동이 되어버렸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는 건지, 마침 겨울이라 산책을 나갈 수 없었다. 1월의 추운 날씨는 활발한 루비의 활동을 막는 합리적인 이유가 되었다.


 사실 루비보다 새로 온 식구인 누룽지에 대한 걱정과 관리가 앞선 1월이었다. 늘 혼자서 씩씩하게 본인의 일을 잘 처리하는 루비와 달리 누룽지는 손이 많이 갔다. 잠깐 한눈을 팔면 집의 모든 벽지를 아작 내고 입에 닿는 것은 모두 다 물어뜯었다. 무릎 아래로는 누룽지가 남긴 상처들이 엄청났다. 1년 미만의 아기는 처음이라 모든 것이 새로웠다. 사료에서부터 예방접종, 조심해야 하는 것들. 처음에는 너무 작고 약해 보여 안는 것도 힘들었는데... 또 잠은 어찌나 그리 많이 자는지. 1월의 사진첩에는 자는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가장 걱정했던 것은 루비가 새로운 강아지를 식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의 문제였는데, 다행히도 루비는 크게 거부하지 않았다. 새로운 친구를 데려오기로 마음먹은 것도 루비가 컸다. 루비는 산책만 나가면 그렇게나 아기 강아지를 알아보고 많은 관심을 보이며 좋아했다. 오죽했으면 우리끼리 꼬물이 킬러라고 불릴 정도였으니까. 그런 루비도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한 누룽지의 호기심을 가끔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있나 보다. 이럴 때 루비는 약간의 훈육(?)을 한다. '크르르~~~~!' 그러면 누룽지는 호다닥 도망가고 다시 호기심 발동... 반복이었다.

생각보다 잘논다.

 루비 혼자 있을 때 심심해할까 봐 걱정이 많았는데, 꼬물이가 새로 들어와서 이래저래 루비는 신경이 쓰이는지 관심을 보이고 조금은 더 활발해졌다. 계획은 성공이었다. 태어나서 줄곧 다른 친구랑 함께 살아온 루비였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어린 친구랑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에 어느 정도는 응해준 것 같아 고마웠다.



2021년 2월

 날이 풀리고 볕이 좋은 날에는 산책을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막내의 예방접종도 마무리되었고 그동안 풀지 못했던 산책에 대한 욕망도 해소하러 외출을 결심했다. 산책이 흥분을 유도하여 분명 심장에 좋지 않을 것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평생 좋아하는 일을 못하고 오래 살기 vs.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조금 일찍 떠나기를 수백 번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행복한 것을 하며 살기.

루비와 누룽지의 처음이자 마지막 동반 산책

 2월의 산책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루비가 컨디션이 좋은 날, 날씨도 적당히 춥지 않은 날을 잘 골랐다. 누룽지는 막 접종을 마친 상태라 사실상 첫 운동장 산책이었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적당히 지쳐 누워있는 애기들을 보면서 행복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누룽지와 튼튼하게 잘 지내는 루비를 보며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이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면 조금 더 많이 함께 외출하자는 다짐도 했다. 심장이 좀 빠르게 뛰는 순간이 오면 어때. 이것도 잘 컨트롤할 수 있으면 나중엔 익숙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강아지의 1년은 사람의 7년과 같다고 한다. 강아지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보다 훨씬 빨리 간다. 나의 하루도 강아지에겐 일주일이다. 1월, 2월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그리고 21년 한 해 동안 얼마나 다양한 일을 겪게 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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