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달 Dec 08. 2021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것들

시한부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 <3> 초보 간병인

 현재 심장병 C단계를 넘어서 사실상 말기에 가까운 루비는 하루에 세 번 약을 먹이고 있습니다. 8시간 간격으로 시간을 지켜서 먹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들어가는 용량도 많아 한번에 먹이기는 힘듭니다. 이제는 눈 딱 감고 먹을 만도 한데, 오늘 아침에는 농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처음으로 제 손가락을 물었습니다. 손톱이 시작되는 첫마디에 맺히는 핏방울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듭니다. '쓴 약을 매일같이 먹이는 건 미안한데, 한편으로는 아직 저항할 수 있는 힘도 있구나'

 지난주에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현재 먹이고 있는 약이 잘 듣고 있는지. 심장의 크기는 어떠한지. 먹는 약으로 인한 신장의 수치는 어떠한지 등의 검사를 받고 왔습니다. 집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집에 돌아오는 차에 타기 전까지 계속해서 흥분 상태였던 루비가 걱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검사를 통해 루비의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도 심장의 크기는 큰 변화가 없고, 신장도 잘 버텨주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10월보다 신장 관련 수치 (BUN 및 크레아틴)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먹는 것도 잘 먹고 고구마, 양배추 등 간식도 좋아합니다. 2주 치의 약을 받았습니다. 잘 먹고 함께 건강하게 겨울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것들>, 병은 진행되고 심장과 관련하여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던 올해 초의 기억들입니다. 행복했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그땐 잘 몰라서 잘해 주지 못한 순간들을 떠올리는 것은 생각보다 아프기도 하네요. 반려견과 함께하는, 좋아하는 그리고 이 글을 마주하는 모든 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2021년 3월

 루비가 쓰러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산책을 하러 나갔다가 갑자기 비틀거리더니 중심을 잃었다. 자기도 놀랬는지 잠깐 소리를 치고 다시 벌떡 일어난다. 나름 좋은 컨디션이라고 생각하고 데리고 나간 산책이었는데, 시작한 지 약 10분 만에 쓰러졌다. 풀 숲에서 쓰러져 털엔 흙이 묻은 채로 바로 안고 몸을 마사지 하기 시작했다. 몸이 풀렸는지 품에서 소변을 본다. 그래도 산책 나오자마자 마킹도 하고 소변도 봤던 터라 양은 많지 않았다.

 기절. 몸을 바들바들 떨거나 그러지는 않는데 뒷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그대로 옆으로 쓰러진다. 마치 스위치가 꺼진 장난감을 보는 것처럼 멈춰버린다. 심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뇌 쪽으로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발생한다고 한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정말 아찔하다. 특히나 밖에서 발생했을 경우에는 더욱. 때로는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지기도 해서 더 놀라기도 한다. 여차저차 집에 들어왔는데 자기도 놀랬는지 루비가 통 기운이 없었다. 이럴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놀란 가슴과 함께 무력함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다음 날, 병원을 찾았다. 전 날의 일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검사를 진행했다. 기절하는 것 자체가 심장에 많은 무리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자주 발병하면 좋지 않다고 했다. 심장의 크기는 1월에 비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다시 한번 심장병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시고, 강심제 등 심장이 원활하게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약을 처방해 주셨다. 그러면서 이제 이 약은 끊지 못하고 루비의 평생 함께 해야 할 약이라고 하셨다. 약은 12시간 간격으로 하루 2번. 매일매일 먹이게 되었다.

 약이라는 게 참 그렇다. 심장을 위해서 먹어야 할 수밖에 없지만 계속해서 먹게 되면 다른 장기에 영향을 미친다. 이뇨제가 포함된 심장약의 경우에는 신장에 무리를 준다. 신장이 안 좋아지면 어떠한 증상이 나타나는지 바로 지난해에 경험을 했다. 루비와 함께 살던 방울이는 작년 겨울, 급성 신부전으로 인해 조금 빨리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약 한 달 간의 짧은 투병기간이었지만 그동안 신장이 안 좋아졌을 때 나타나는 모든 안 좋은 경우를 봐서 걱정도 많았다.

방울이와 루비. 방울이는 작년 겨울 급성 신부전의 악화로 강아지 별로 먼저 떠났다.

2021년 4월

 흥분 금지. 산책 금지. 산책은 하지 않으면 되니까 괜찮은데 흥분이 문제다. 집을 잠시라도 나갔다가 들어오면 중문에서부터 폴짝폴짝 뛰며 반기는 애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만 나도 호다닥 달려와서 중문을 긁고 있다. 약도 약인데 이 흥분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특히나 약을 본격적으로 복용하면서 출퇴근 시간과 약을 복용하는 시간을 조율하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루비의 산책 횟수를 기록하던 체크리스트는 이제 루비 약 복용의 체크리스트로 변했다.


 출근 하기 직전 여섯 시 반에 약을 주고 퇴근 후 여섯 시 반에 약을 준다. 이 때는 약의 양이 그리 많지 않아 사료와 함께 자연스럽게 섞어주면 딱히 거부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사료를 남기는 경우였다. 약과 사료를 함께 주고 갑자기 사료를 남기게 되었는데 이 약을 먹지 않아도 문제, 루비가 아닌 누룽지가 먹어도 문제였다. 사료와 함께 약을 주는 방법은 탈락. 다른 방법으로 갈아타기로 했다. 사료는 사료대로 약은 약대로. 약이 그렇게 쓴 편은 아니었지만 가루로 된 약을 먹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좋아하는 간식 사이에 섞어주기. 루비는 고구마를 정말 좋아한다. 집사람이 고구마를 좋아해서인지, 집에는 항상 고구마가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루비도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 고구마가 되었다. 고구마를 티스푼 하나에 가득 떠서 물과 함께 섞어 퓌레를 만든다. 거기에다 약을 섞어놓으면 게 눈 감추듯이 먹었다. 

 약을 먹이는 것도 먹이는 것이었지만 사실 시간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담당의의 말로는 8시간 간격으로 3번씩 주는 것이 약효를 유지하는 것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둘 다 회사를 다니면서 8시간 간격으로 정확하게 약을 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12시간 간격으로 2번의 약을 복용했다. 오전 시간이야 어떻게 내가 일찍 일어나 조금 부지런하면 괜찮은데, 퇴근 시간이 문제였다. 당시 8 to 5 였던 나는 여섯 시 즈음에 약을 주고 40분쯤에 출근했다. 그리고 다섯 시에 퇴근해서 부랴부랴 오면 여섯 시. 이때쯤의 가장 큰 문제는 약효가 떨어져 가는 시점에 내가 집에 들어감으로써 흥분까지 발생하는 것이었다. 집에 누군가가 있을 때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흥분이 덜 했지만, 혼자 (또는 누룽이랑) 있는 상황에서 현관문을 열게 되면 흥분이 더 심해졌다. 실제로 퇴근하고 약을 먹기 전의 흥분으로 인해 루비는 이후 몇 번의 쇼크가 왔다.

 지금에 와서야 약도, 흥분도 여러 가지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매일매일이 새로운 도전이었던 것 같다. 가급적이면 칼퇴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안 되는 날에는 초조한 마음으로 자동차의 액셀을 밟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약을 먹지 않으면 어떻게든 먹여보려고 고구마에다가 꿀도 발라보고 닭고기도 같이 먹여보는 등 별의별 방법을 다 사용해 본 것 같다. 더군다나 막내 누룽지가 자라면서 활발해지고 호기심도 왕성해지면서 집안을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 날도 많았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봄의 날씨는 루비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3,4월에는 루비로 인한 우리의 새로운 루틴을 만드는 것에 많은 신경을 썼다. 평일과 휴일 가리지 않고 매일 줘야 하는 약과 함께 오후 6시라는 시간제한은 삶에 있어 많은 '제한'을 가져다주었다.

이전 02화 생각보다 빠른 강아지의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