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 <4> 너무나도 다른 두 마리
견생의 겨울을 지내고 있는 루비와 한창 꽃을 피우기 위에 무럭무럭 자라는 누룽지를 보고 있으면 다양한 감정들이 떠오른다. 이제는 11살의 루비와 12개월의 누룽이. 둘은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계절에 살고 있다.
아픈 루비는 계속해서 약을 먹여야 하고 돌봄이 필요했지만 아직 어린 누룽지도 돌봄이 필요했다. 사람과 똑같다. 몸이 좋지 않은 노인과 함께 이제 걸음마를 하는 아기를 동시에 돌봐야 했다.
특히나 날이 갈수록 쑥쑥 자라나는 어린 누룽지는 개월 수에 맞춘 사회화도 필요했고 넘쳐나는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산책과 학습을 시작해야 했다. 이맘때쯤부터 누룽지와 함께 외부로 많이 다니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집 주변의 애견카페란 카페는 죄다 탐방했고 강아지 유치원에 입학하는 것 또한 고려했다.
2021년 5월
따뜻한 봄날이다. 6개월 차 견생을 맞이한 룽이가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쑥쑥 컸다.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반겨주는 누룽지가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 놀랍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이나 강아지나 어릴 때 사진을 많이 찍으라고 하나보다.
돈가스 상자에 고이 모셔온 누룽지가 어느새 루비 덩치를 뛰어넘는 늠름 강아지가 되었다. 누룽지는 말티푸인데 생긴 모습이나 모진 영락없는 몰티즈인데 피지컬이 푸들이다. 다리가 길다. 걸을 때도 스탠더드 푸들이 걷는 모양새랑 비슷하다. 총총.
누룽지의 폭풍성장과 더불어 함께 하는 외출도 잦아졌다. 루비와 함께 갔던 애견카페 및 운동장은 전부 돌아다녔다. 힘들지만 재미있었다. 모든 것이 처음인 강아지에게 첫 경험을 선사하는 느낌이 이런 것이었구나. 처음엔 낯설어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해가는 것을 보면 돈과 시간을 쓴 보람을 느꼈다.
날이 좋아서 루비도 가끔 바람을 쐬어줬다. 물론 지나친 흥분으로 인해 집 앞에 잠깐 나갔다 오는 것이 전부였다. 매일같이 좁은 집 앞에만 있는 것보다는 짧은 시간이라도 바깥공기를 맡게 해 주고 싶었다. 컨디션이 조금 좋지 않아 보이는 날에는 문 앞 복도에 잠시 나갔다. 그래도 문 밖이라고 이래저래 뽈뽈 거리는 것을 보면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옷과 산책용 줄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하니까 미안했다.
고민이었다. 산책을 나가는데 몇 번이고 위기가 찾아오니까 정말 산책을 나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 컨디션이 괜찮아 보이는 날에는 같이 나가보고 싶다. 출퇴근으로 인해 매일같이 하루 최소 두 번은 흥분하는 것을 보면 안 될 것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또 괜찮아 보이기도 한다. 이 고민은 아직까지도 진행형이다. 루비가 대답을 할 수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2021년 6월
정기검진. 병원을 갔다 오는 날엔 항상 심장이 콩닥거린다.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루비의 검진 결과에 따라 그날 하루의 기분이 요동친다. 안타깝게도 루비의 심장은 빠른 속도로 커져가고 있었다. 강심제, 혈압약과 더불어 이뇨제의 양이 차차 증가했다. 다행인 것은 이때까지는 그래도 고구마와 함께 약을 주는 것에 큰 거부반응이 없었다. 밥을 먹고 나서 좋아하는 고구마를 약과 함께 곧잘 먹었다.
이때부터는 고구마를 박스채로 사서 한솥 가득 찐 다음 퓌레로 만들어 냉동하기 시작했다. 약을 주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써봤는데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훗날 약에 물을 탄 다음 주사기로 강 급한 방법도 써 봤는데 아직까지 식욕이 존재하는 이상 고구마만 한 것이 없었다.
약이라도 잘 먹어주니 정말 다행이다. 좋아하는 맛있는 것 많이 먹여주고 싶고 쉬고 싶을 때 편한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심심할 땐 노즈 워크도 했지만 하루하루 수명을 다 해가는 심장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것저것 신경 썼다고 생각했는데 앞선 노력들이 무색하다만치 심장병이 악화되고 있다고 하니까 내가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여태껏 뭘 했던 걸까. 루비를 위해서 해 왔던 행동들에 대해 회의감이 느껴졌다. 짧게 나간 산책도 오히려 루비에겐 독이 되지 않았을까. 이것 때문에 심장이 더 빨리 안 좋아졌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전보다 기운이 많이 빠진 루비는 소파에 누워 있는 날이 잦았고 반대로 에너지가 넘쳐나는 룽이는 계속해서 놀아달라고 칭얼거렸다. 한 사람은 룽이를 데리고 외출을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남아서 루비를 돌보았다.
'따로 또 같이'는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