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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달 Jan 19. 2022

그렇게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시한부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 <5> 보호자의 삶

지난 10월, 루비의 두 번째 입원이 끝나고 퇴원 상담을 하면서 이런 말을 들었다.

퇴원 직후 집에 돌아온 루비. 옷은 체온을 보존하기 위해 병원에서 빌려준 옷이다.

"폐수종도 두 번이나 발병하고 심장비대증도 말기라 사실 이제는 어느 정도 준비를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약을 하루 세 번, 8시간 간격으로 계속해서 주셔야 해요"


집사람과 함께 어떻게든 출퇴근 시간을 맞춰 보았으나 이제는 한낮에도 약을 줘야 한다. 더 이상 두 번의 투약으로는 유지가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7월부터 쭉 재택근무를 했던 나도 11월이면 다시 출근이 예정되어 있었다. 집사람은 재택을 꿈도 꾸지 못한다. 우리는 답이 있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지금의 루틴에서 벗어나 루비와 함께 지내야 한다. 

사실 이 것 이외의 답은 없었고 지금 다시 그때의 상황으로 돌아갔더라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다. 그럼 이제 누가 그만두느냐의 문제였는데, 나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을 다닌 집사람이 일을 계속하고 내가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루비가 퇴원한 그 주말에 마음을 정리하고 월요일에 회사에 출근하여 바로 팀장에게 면담 신청을 했다.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깐 괜찮으신가요?"


팀장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일찍 출근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나도 조금 많이 일찍 출근했다. 예상대로 사무실은 나와 팀장밖에 없었고 그렇게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 말했다.


당시 고민에는 세 가지 방안이 있었다.

퇴사 / 휴직 / 재택근무


 퇴사를 염두에 두고 있긴 했지만 다른 방안도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해 회사는 7월부터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고 재택근무를 루비가 떠나기 전까지 연장할 수 있을까 라는 요청을 해 볼 생각이었다. 두 번째는 휴직. 처음 루비의 남은 생에 대해 들었을 때 '길어도 삼 개월'이라고 해서 대략 그 정도 기간에 대한 휴직도 고민했다. 하지만 회사에 크게 정을 붙이지도 못했고 당시 '월급쟁이'의 삶에 대해 회의감도 컸기에 퇴사라는 카드를 밀어붙였다. 예상대로 회사는 나를 붙잡지 않았고 무탈하게 인수인계를 마치고 10월 말 퇴사를 했다.


퇴사 후 집안일과 루비, 누룽지를 케어하는 일은 전적으로 나의 일이 되었다. 아침 여섯 시 반, 오후 두 시 반, 저녁 열 시 반 이렇게 약을 먹이고 약을 먹인 후 한 시간 뒤에 밥을 준다. 식전에 약을 먹어야 효과가 더 좋다고 한다. 이게 기본적인 스케줄이고 보조제를 먹이고 급수량, 배변량 체크는 수시로 한다. 신장 관리는 음수량이 특히나 중요하다. 항상 물이 떨어지지 않게 관리하고 혹여나 더러워졌을 경우 수시로 교체해줘야 한다. 루비와 달리 체력이 넘쳐나는 누룽지는 유치원을 보낸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가는 유치원의 등하원도 내 몫이 되었다. 유치원에 가지 않는 날에는 산책을 간다. 나의 스케줄은 집사람의 근무 일정과 루비의 약시 간에 완전히 종속되었다. 

 사실 많이 불편하다. 집사람 스케줄과 루비의 스케줄을 거스르지 않는 한에서 약속이나 외출을 한다. 1박 2일의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집사람과 둘이서 외식을 하는 날은 누룽지를 유치원에 보낸 날에만 가능하다. 보통은 점점 익숙해져서 괜찮아져야 하는데, 날이 가면 갈수록 더 힘들다.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다가 집에서만 있다 보니 활동량이 많이 줄었다. 사람도 잘 만나지 않는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도 이런 무기력함이 한몫을 했다. 나도 그런데 산책 좋아하는 루비는 오죽할까. 루비의 외출은 병원 검진 외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약 시간으로 인해 할 수 있는 일과 이동이 제한돼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루비와 함께 하는 날들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도 있지만 반복적이고 무료한 일상에 조금이라도 활력을 불어넣기 위함도 있었다. 

 온·습도에 예민해졌다. 루비의 기관지와 심장에 영향을 주는 요인 중 하나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건조하면 기침이 잦아진다. 난방이라도 하게 되면 습도가 30 이하로 떨어진다. 적정 습도는 40~50 정도라고 한다. 적정 습도를 맞추는 것이 생각보다 눈에 띄게 루비의 기침량에 영향을 줬다. 집에 있는 작은 가습기에서 대용량에 가열 기능도 있는 가습기로 교체하고 나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행히도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 루비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심장과 신장 사이의 줄다리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한 번은 쇼크가 올 것 같은 상태가 되기도 했는데 신기하게도 루비 스스로가 이를 제어하는 모습도 보았다. 루비 스스로가 호흡을 가다듬고 안정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며 루비도 우리도 병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부디 이 추운 겨울을 잘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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