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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내 기억과의 재회

문방구 오락실 백구 바다

by 메타보이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 학교 앞은 별천지였다. 문방구에 갖가지 불량식품 과자들과 여러 종류의 뽑기들, 폭죽들, 장난감 총과 조립완구류들이 어린 시절 나의 정신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문방구에 들어가면 바로 맡을 수 있는 달콤 새콤한 향기들, 완구들의 포장지 냄새들, 내 주머니 안에서 만져지는 10원, 50원, 100원이 섞인 동전이라는 것으로 살 수 있는 도파민 넘치는 작은 세계들.


학교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그것은 일어나서 학교를 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눈뜨면 문방구에 가서 뭘 사서 학교에 입장할지부터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가 끝난 뒤의 시간은 다시 문방구에 들르지만 돈은 쓰지 않았다. 가끔 종이 뽑기 한두 개 정도. 오락실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 모퉁이를 돌아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있는 오락실에 들어가면 일렬로 늘어서 있는 오락기들에서 나오는 자극적인 효과음들과 버튼들을 연타하며 흥분한 아이들. 그것은 마치 싸움구경을 하는 것 같았다. 흥분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오락기에서 2명이 대결을 하고 있으면 그것보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없었다.


오락실은 꽤나 중독성이 강하여 저녁 무렵 한두 명씩 집으로 밥 먹으러 들어가는 시간이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다. 할 만큼 하고 돈이 떨어지면 나올 수 있는 힘이 나는 없었던 것이다. 집이 가난하지 않았지만 하루 용돈에는 한계가 있었고 돈이 없어 게임을 하지 못함에도 남들 게임하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도 없어져야 오락실을 나올 수 있었다. 오락실은 짜릿했지만 동시에 패배감과 결핍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렇게 집에 들어와서 가족들과 같이 혹은 각자 차려진 밥상에 밥을 떠서 자신이 먹고 싶을 때 밥을 먹었다. 먹을 것에 큰 욕심이 없었던지라 참치캔이나 달걀을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백구에게 자주 챙겨주었다. 확실히 우유나 달걀을 자주 챙겨준 백구는 동네 떠돌이 개들과는 달리 털에서 윤기가 났다. 털은 쓰다듬기 부드럽고 눈매는 예쁘고 기품이 생겼다. 그럴 땐 나도 함께 어깨가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앞에 있지도 않은 타자들, 예를 들어 동네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윤기 나는 털을, 생기 있는 백구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유년기가 끝나갈 때쯤 겨울방학 내내 가족들이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이웃과 왕래가 잦았던 지라 집에 있던 백구는 당연히 동네 누군가 챙겨줄 거라 생각했고 정말 까맣게 잊어버렸다.


방학이 끝나갈 때쯤 집에 돌아와 보니 백구가 없었다. 부모님에게 여쭤보니 집을 비운 사이 백구 밥을 챙겨주기로 했던 이웃이 깜빡하고 자신도 며칠 잊어버렸다고 했다. 백구는 빈 마당에 묶여 옴짝달싹 하지 못하고 바짝 말라죽어있었다고 했다.


나는 백구의 시신을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동안 백구가 잘 있었는지 확인해보지 못한 죄책감과 달걀이며 케이크이며 맛있는 것을 더 많이 주지 못한 미안함이 몰려와서 한동안 식욕을 잃어버렸다.

묶여서 도망가지도 못하고 배고프고 괴로웠고 외로웠을 것을 생각하며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생명을 돌보는 일의 무게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성인이 되고 나서 석양이 질 무렵 고향 바닷가를 걷다가 해솔밭 적송 아래 묶여있는 백구를 보았다 유년시절 케이크 상자의 남은 크림을 너무 맛있게 핥아먹던 백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캄보디아 2일차 (19).JPG


[ 지나간 오후 ]


낡은 어선에 뚫린 구멍 사이로

시린 해풍이 밀려오면

백사장에 묶인 백구에게도

그리움이 찾아든다


소슬한 적송가지 사이로

치익 - 치이익 석양이 가라앉는다


바다는 증발하여 구름을 올리고

백사장의 백구는

품 안의 새끼들에게 젖을 물릴 마냥

적송 등치에 앉아


고즈넉한 뒷산이 품고 있는

바닷가에서

혼자된 것이 힘들었던지

백구는 백사장에서 고개를 파묻고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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