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용량
아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뿔싸. 어쩌다가 아이의 눈에 비친 나는 사중 인격이 된 것일까? 사실 변명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육아를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내 안에 여러 가지 인격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사중 인격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다중인격이 되고야 만다.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변화되는 마음들이 더욱 혼란스럽게 나타난다. 아이의 눈에 비친 내가 더 이상해지기 전에 마음을 잘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방법이 궁금했다. 육아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내 마음을 유연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마음 사용 설명서가 있다면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마음과 관련된 좋은 글을 접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마음의 그릇
현명한 큰 스님이 젊은 스님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제자는 모든 일에 웬 불만이 그렇게 많은지 늘 투덜거렸다.
어느 날 아침, 큰 스님은 제자를 불러 소금을 한 줌 가져오라 하고 소금을 물 컵에 털어 넣게 하더니 그 물을 마시게 했다. 그러자 제자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그 물을 마셨다.
큰 스님이 물었다.
“맛이 어떠냐?”
“짭니다.”
큰 스님은 다시 소금 한 줌을 가져오라 하시더니 근처 호숫가로 제자를 데리고 갔다.
그러고는 소금을 쥔 제자의 손을 호수 물에 넣고 휘휘 저었다.
잠시 뒤, 큰 스님은 호수의 물을 한 컵 떠서 제자에게 마시게 했다.
“맛이 어떠냐?”
“시원합니다.”
“소금 맛이 느껴지느냐?”
“아니요.”
그러자 큰 스님이 말했다.
“인생의 고통은 순수한 소금과 같다. 하지만 짠맛의 정도는 고통을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지지. 지금 네가 고통 속에 있다면 컵이 되지 말고 스스로 호수가 되어라.”
“그늘이 넓은 나무 밑에는 새들이 모이고, 가슴이 넓은 사람 밑에는 사람들이 모인다.”
출처: 행복한 아침편지 중에서
이 이야기를 읽고 난 뒤, 우리들에게 존재하는 여러 가지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착한 마음과 나쁜 마음의 차이?
순수한 마음과 약은 마음의 차이?
부드러운 마음과 까칠한 마음의 차이?
기쁜 마음과 화난 마음의 차이?
그것은 바로 마음을 담는 그릇의 차이가 아닐까.
어떤 그릇에 마음을 담았는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즉, 달라지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마음을 담는 그릇일지도 모른다.
내 마음의 그릇은 어떻게 생겼을까?
아이가 나에게 왜 사중 인격이라고 말했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아마도 그때그때 떠올랐던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담았던 그릇의 문제였지 않을까.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