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업무를 마음껏 즐겼다

쉬어가기 2 -교재를 개발하는 일

by 김글향
새로운 산업은 재미있게 일하는 사람과 함께 시작된다.


'팀 오라일리'의 이야기에 질문을 던져봅니다. 재미있게 일해본 적이 있나요? 일은 일이지, 일을 어떻게 재미있게 한단 말인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일을 재미있게 한다는 것은 뭔가를 해본다는 것 자체로 즐거운 기운을 느끼는 것이지요. 처음 저에게 개발하는 일이 주어졌을 때 믿을 수 없게도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3~7세까지 어린이 교재 교구를 개발하는 업무가 처음으로 배당되었습니다. 시장조사부터 시작하여 아이디어를 뽑아내고 작성한 원고가 샘플로 나오며, 몇 번의 오류 점검을 통해 프로그램으로 출시되었던 모든 과정이 신세계를 경험하는 것이었지요. 아이디어가 상품화된 프로그램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재미있게 즐겼고, 그 중심에 내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마치 세상에 태어난 내 자식을 대하듯 개발된 프로그램들이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것들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현장의 반응이나 피드백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각종 포털사이트를 폭풍 검색하며 반응을 살폈습니다. 현장 영업을 하는 지사장님들의 이야기도 건너 들었고요. 생각에는 못 미치는 반응이었지만 다행히도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다 초긍정적인 피드백을 마주할 때면 고생한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첫 업무는 무사히 잘 마무리되는 듯싶었습니다. 그런데 끝났다고 여겨졌던 업무들은 계속되는 일의 연장선에 있었습니다. 교육기간을 대상으로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받아보는 월별 프로그램이다 보니, 시작했을 때 무난한 반응이 월 단위로 시시각각 변화되었습니다. 뜨거워졌다가 잠시 식었다가 또 뜨거워졌다가 생뚱맞게 비난받다가 욕도 들었다가 다시 또 무난해지고... 그렇게 일 년 동안 지속되더니 안정기로 접어들자 또 다른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나의 개발 업무였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모두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먹었습니다. 나부터 만족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겠다고! 그렇게 서서히 영역을 넓혀가서 모두는 아니더라도 절반 이상은 만족시켜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으며, 중요한 것은 개발하는 일 자체를 즐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즐길 수 있는 일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진정한 행운이겠지요.


주어진 업무를 즐길 수 있는 여유는 어디서 나온 걸까?

세월이 흘러 일을 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면 깎이고 찢기고 무너지고 포기하고 다시 재활하는 등 고난의 과정도 수없이 마주했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변함이 없었던 건 여전히 개발하는 일을 즐긴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즐길 수 있는 여유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저 조차도 잘은 모르겠지만 업무에 임했던 나의 습관, 태도를 돌아보았습니다.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하기 전에 항상 질문했습니다. 이 일을 이 프로젝트를 왜 해야 되는 건지?

도입 부분을 신경 씁니다.


생각해보면 유치원 교사 시절에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도 도입부를 가장 중요시하였습니다. 아이들과 한 가지 활동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왜 이 활동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 첫 단추를 잘 끼우면 그 수업은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흘러갔지요. 예를 들면 '비'를 주제로 빗물이라는 장애물을 피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게임 활동을 진행한다 치면, 바로 게임을 설명하기보다 도입에서 뉴스를 보여주는 거죠. 뉴스에서 빗물 피해와 관련된 사연을 접하고, 빗물을 피해서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인식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게임 활동을 진행하면 아이들은 훨씬 더 비장하게 활동에 임하게 됩니다. 업무에 임하는 나의 자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왜 개발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하는 것이지요. 나 스스로 충분한 이유가 납득이 되어야만 적극적으로 비장하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든든한 도입이 형성되면 전략적으로 전개 부분을 설계했습니다.

시장을 들여다보고, 빈틈을 발견하고, 빈틈을 채울 수 있는 아이디어를 도출해내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지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백번 이긴다는 말... 저는 이 말을 업무의 길잡이로 삼고 있습니다. 하고자 하는 말이 한마디로 다 설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에 곧바로 돌입하기 전에 생각해봅니다. 같은 경쟁 업체나 시장 상태를 점검하는 과정은 꼭 필요한 것이지요. 현재 컨디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빈틈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빈틈을 파고드는 것이 전략이라면 전략이었습니다. 파다 보면 방향이 설정되고, 설정된 방향에 따라 내용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아이디어를 수집합니다. 그렇게 수집한 아이디어에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다 보면 어느새 초안이 완성되어있습니다. 시장에 출시하기에 무조건 첫 번째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마루타라는 말도 있듯이 처음 무언가를 출시하면 반짝할 수 있으나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크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실 있는 두 번째를 좋아합니다. 첫 번째에서 빈틈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완하여 업그레이드시킨 두 번째도 충분히 비전이 있습니다.



완성된 초안은 던질 수 있는 곳은 다 던져보며 피드백을 받아봅니다.

그리고 마무리 부분 굳히기에 들어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끝났다고 생각될 때 한번 더 점검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완성된 초안을 곳곳에 다 뿌려 피드백을 받은 후 수정하는 과정은 절대 생략되어서는 안 됩니다. 초안 상태에서 출시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수도 있거든요. 한 번은 교재를 출시하는 일정이 너무도 빡빡하여 시간에 허덕인 적이 있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점검하지 못한 교재가 바로 현장에 배포되었지요. 한 달 뒤 지사장님들의 원성이 폭주했습니다. 회사 이미지는 땅으로 추락해버리고, 너무 긴박하게 돌아가는 일정에 대표님을 원망했지만 결국 한번 더 꼼꼼하게 보지 못했던 나의 책임이었습니다. 사소하게 여겨지는 것들로 인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마무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업무에 임했던 나의 습관, 태도를 돌아보니 도입-전개-마무리 과정이 있었습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이 과정으로 인해 개발 업무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업무에 돌입하는 스스로를 돌아보자.

우리는 지금 생각대로 일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일하는 대로 생각하고 있는가?

일을 재미있게 즐기는 사람은

스스로의 생각대로 일을 펼치려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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