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기 3 - 재택근무 검정고시를 거뜬히 통과하기
처음부터 4대 보험을 넣는 직원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직장이라는 '터' 어딘가에 깊숙이 뿌리 박혀있는 근로자들의 로망, 말만 들어도 멋지게 날아다닐 것만 같은 그 이름 프리랜서로 출발했습니다.
저의 프리랜서 생활은 금전적인 만족감이 떨어지고, 업무의 피로도가 다소 높았지요. 정식 직원들과는 달리 지정된 날짜에 맞춰 꼬박꼬박 들어오는 돈은 구경할 수 없었고, 대표님과 협의했던 마감 날이 되면 기한에 따라 약속된 금액을 보상받는 형태였습니다. 어쩌다 회사에 돈이 돌아가는 날짜와 맞닥뜨려지면 저주의 타이밍으로 인해 기다려야 하는 날도 종종 있었습니다. 금전뿐만 아니라 소속이 불분명하다 보니 회사를 향한 내 마음은 꺼져가는 촛불처럼 흐릿하게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업무량도 겹겹이 증가하여 프리랜서와 근로자 사이쯤 끼어있는 프로자 느낌을 받을 무렵, 회사로부터 제안받았습니다.
4대 보험을 넣는 연구자로 개발일 본격적으로 진행해보자는 대표님의 제안에 나는 프리의 날개를 벗고, 직장의 '터'에 옮겨 심어졌으며 더불어 마음의 안정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집과 직장의 위치가 지역을 넘나드는 거리에 있었기에 나의 조건은 재택근무였고, 대표님의 조건은 주 1회 출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꿀 같은 조건인 4대 보험을 넣는 직원이면서 재택근무를 하는 개발 업무의 장이 펼쳐졌습니다. (주 1회 근무는 드라이브를 하며 바깥공기를 느끼고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만끽할 수 있는 고마운 날이었습니다.)
초반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냐고 주변에 마음껏 떠들어댔습니다.
자주 연락하는 동료 교사(유치원 동기)들에게 꼴사납게 자랑했지요.
"개발하는 일이 너무 재밌어."
"회사에 정식으로 소속된 연구원이라고."
"주 1회 출근하긴 하지만, 재택근무를 주로 하다 보니 시간 컨트롤이 자유로워서 무지 좋아."
그때의 나로 다시 돌아간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재택근무를 하려거든 감시의 무게를 버텨야 한다.
재택근무를 하며 정식 연구자가 되기 위한 길에는 다양한 테스트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시험은 지금도 간헐적으로 치르고 있답니다;;)
이름하여 재택근무 검정고시!
이 테스트를 완벽히 통과해야만 비로소 안정적인 직장 생활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문제 유형을 분석해보았습니다.
문제 1)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 공격,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답 : 별수 없다. 다 받아야지 뭐.
문제 2) 과도한 업무량을 조절하는 방법은? / 답 : 조절은 무슨. 다 소화해야지 뭐.
문제 3) 눈에 보이지 않는 업무 브리핑은 어떻게 해야 하나? / 답: 말로 해도 될 것을... 굳이 메일을 보내거나 서류를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운 브리핑이 항상 필요하다.
문제 4) 일을 해야 하는데 온갖 방해 요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 답: 어떻게 하긴.. 직장이라 생각하고 모조리 다 통제해야지. 어설프게는 금물. 자기 관리 및 컨트롤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문제 5) 재택 업무 스케줄을 주도하려면? / 답 : 업무는 정해진 마감 날짜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내야 한다.
문제 6) 몸만 떨어졌을 뿐, 영혼은 매일 출근한다. 차라리 직장에 나가는 게 올바른 선택일까? /
답 : 아니. 그래도 재택이 편하다.
최종 요약 문제) 제대로 된 재택근무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 전화 다 받아내고, 업무 다 소화하고, 메일과 서류를 통한 번거로운 브리핑을 감행하며, 온갖 방해 요소를 통제하여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고, 마감 날짜에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무조건 마무리하자!
이렇게 재택근무 검정고시에 모두 통과하면 비로써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고, 더불어 책임감과 능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저는 이 살벌한 테스트를 힘겹게 치러내며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진급을 맛보았으며 급여 또한 상승 곡선을 달리게 되었습니다.
재택근무!
감시의 레이더 망에서 벗어나려면
집이라는 공간에서 늘어지는 몸과 마음을 단단히 조아 매고, 업무 약속을 칼 같이 지키는 직장인이 되어 자기 관리 및 컨트롤을 통해 믿음을 투척하고, 책임감과 능력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재택근무의 수혜를 가늘고 길게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출근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기도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