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좋은 사람이야
난 부족해
여러 기억들과 감정들이 모여 가느다란 실을 만들고, 그 실들이 모여 작은 나무 모양의 신념이 되었다.
새로 등장한 "불안이"로 인해 "난 좋은 사람이야"라는 신념은 꺾여버렸고,
여러 상황을 대비해 계획을 세우던 불안이의 예상과 달리 "난 부족해"라는 신념이 만들어져 버렸다.
의도하지 않았던 신념에 불안이는 폭주하게 되고, 이내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하게 되었다.
얼마 전 봤던 영화 "인사이드아웃2"의 내용이다.
한참 감정을 공부할 무렵에 "인사이드아웃1"을 보고 조금 더 깊이 내 감정을 살피게 되었다.
내 마음 속에서 일렁이는 수많은 감정 하나하나에 제대로된 이름을 붙여주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조금 더 세심하게 감정들을 읽어내려 노력하게 되었고,
이런 노력은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감정을 제대로 마주하고 흘려보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대부분의 후속작이 그러하듯 조금 더 많은 감정들의 이야기일테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념"이라는 부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경험들이 모여 신념을 만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감정은 간과했다.
정확히는 그간 내가 겪었던 경험들의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서 느낀 감정들과 기억들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했다.
순간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내 신념은 뭐였지?'
'나는 어떤 신념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지?'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다.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에 대한 신념도
가장 중요하다 여겼던 "관계"에 대한 신념도
그 밖에 내 삶을 구성하는 여러가지들에 대한 신념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설명하지는 않더라도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 하다못해 추상적이고 모호한 어떤 것이라도 떠올라야 할텐데,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것 같았다.
'사십평생동안 나는 신념도 없이 살아온 것인가?'
'아니면 그 동안의 신념을 잊은 것인가?'
'새로운 신념이 생기려는 것인가?'
질문을 던져봐도 내 안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도대체 신념이 뭐지?'
불현듯 이런 궁금증이 떠올랐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이런 물음도 생겨났다.
그리고 혼란스러웠다.
'아, 요 근래 심란하고 갈피를 못잡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구나'
어쩌면 나는 내 신념을 점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새로운 신념이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말미에서 주인공은 여러 상반되는 신념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경험한다.
때로는 좋은 사람이었다가
때로는 비겁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용기를 냈다가, 또 가끔은 겁장이가 되기도 한다.
성공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실패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이런 모순 속에서 신념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지만 꼭 신념이 한 방향이어야 하는 걸까
좋은 사람인 나도, 비겁한 사람인 나도, 용기 있는 나도, 겁장이인 나도, 성공하는 나도, 실패하는 나도, 모두가 나인 것을.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마주한 적이 있는가?
좋은 모습, 용기를 낸 모습, 성공했을 때의 나만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앞으로 나는 어떤 신념으로 살아가게 될까? 살아가야 할까?
며칠이 지난 지금도 아직 답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게 찾은 답은 과연 정답인 걸까?
아니, 답이 있긴 한걸까?
혼란스러우면서도 지금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고민하는 이 순간이 반가운 것은 이상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