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참과 관리자 유형 분석
인사만 잘해도 성공하는데 뭐가 더 필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여기에 고참과 관리자 유형을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 여러분의 공직 생활에 참고하면 좋을 만한 내용이라 생각한다.
리더십의 유형을 구분하는 데 있어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두 차원으로 나눠 접근하는 것은 설득력 있는 방식이다. ‘사람은 좋은데 무능하다’, ‘일은 똑 부러지는데 성격이 나쁘다’, ‘무능한 데다가 성격도 나쁘다’. 우리는 보통 우리의 리더를 이렇게 평가한다. 그렇지 않은가? 극소수지만, ‘유능한 데다가 인품도 높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여기에서는 일을 대하는 태도와 조직원의 어려움을 대하는 태도를 중심으로 고참과 관리자 유형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어떤 유형이 되었든 만날 때마다 정성스럽게 인사하고, 고마울 때 고맙다고 말하고, 미안할 때 미안하다고 말하고, 규정을 꿰차서 일하는 것은 기본이다. 기본에 충실하되 각 유형을 대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점을 기억해 두고 직장 생활에 임한다면, 여러분에게 행운이 함께할 것이라 믿는다.
Ⅰ. 샐러리맨 유형
정부 조직에서 가장 일반적인 유형이다. 국민들은 공직자라면 우국지사여야 한다고 인식하겠지만, 현실의 공무원들은 스스로를 샐러리맨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가와 국민에게 큰 위기가 닥치면 우국지사가 되어 헌신적인 활동을 할 것이라 믿는다.
조직에서 다수를 차지한다. 하지만 자기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지 않고 강하게 결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향력이 약하다. 승진이나 권력처럼 강한 목적의식을 갖고 최고 의사결정권자와 강하게 결속되어 있는 야심가 집단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가련한 처지다.
순진하고 선량한 보통 사람들이다. 여러분의 딱한 사정에 연민을 느끼기도 하지만, 팔 걷어붙여 나서서 돕지는 않는, 냉정한 모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런 모습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실망할 필요 없다. 인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냉정한 모습이 다름 아닌 나와 여러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덕을 많이 쌓아 둘 것을 권하고 싶다. 힘닿는 데까지 이들을 도와줄 것을 권하고 싶다. 물론 여러분의 임무를 모두 마친 뒤에. 그러면 틀림없이 여러분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평상시 여러분의 행동이 위기 시에 여러분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들 가운데에는 여러분의 아픔에 공감하는 휴머니스트도 있고, 자신이 고생한 만큼 여러분도 그 고생을 고스란히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여러분의 성장에 기뻐하는 선임도 있고, 여러분의 성과를 시샘하는 동료도 있다. 일하면서, 인간이라면 갖게 되는 칠정(七情), 기뻐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싫어하고 탐하는 마음을 이들과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일도 안 하고, 여러분에게 잔소리 한마디 없고, ‘저 사람은 도대체 하루 종일 무슨 일을 하나’ 궁금해 할 만큼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도 있다.
Ⅱ. 야심가 유형
승진과 권력을 향해 적극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 유형이다. 소수 계층이지만, 충성심을 갖고 최고 의사결정권자 곁을 맴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승진과 권력을 차지하게 된다. 국가와 국민에게 충성하기보다는 개인에게 충성한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지시에 “No.”라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시 이행으로 인해 조직 전체에 비효율이 발생해도, 가짜 일로 인해 조직원의 업무량이 늘어나도, 조직원에게 어려움이 닥쳐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들이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최고 의사결정권자도 이들을 필요로 한다.
현실 권력의 비정함을 그야말로 낱낱이 알려 주는 책,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유세의 어려움)」편에는, 참모가 리더에게 말할 때 현실적으로 주의해야 할 점이 너무나 자세하게 열거되어 있다. 놀랍게도 이들은 이를 완벽하게 통달하고 있다. 타고났다고도 볼 수 있고, 공직 생활을 겪으며 습득한, 놀라운 현실 감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들이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중국의 고전을 통해 살펴보자.
설득할 때 힘써야 할 점은 상대방이 자랑스러워하는 점은 칭찬해 주고 부끄러워하는 부분은 감싸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개인적으로 급히 하고자 하는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그 일이 공적인 타당성이 있음을 보여 주어 꼭 하도록 권해야 하며, 상대방이 마음속으로 비천하다고 느끼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을 때는 그 일이 아름답다고 꾸며 주어 하지 않는 것이 애석한 일임을 표현해야 한다. 군주의 마음에 고상한 계획이 있으나 실제로 이룰 수 없는 경우에 유세객은 그를 위해 그 일의 허물을 들춰내고 해로움을 내보여서 실행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해야 한다. ……
다른 사람을 칭찬할 때는 군주와 같은 품행을 지닌 사람을 칭찬하고, …… 군주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자가 있으면 그 허물은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힘껏 꾸며 주어야 하며, 또 군주와 똑같은 실패를 겪은 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 일은 별로 손실이 없음을 밝혀 주어야 한다. 상대방이 자신의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굳이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찾아낼 필요가 없다. 스스로 자신의 계획이 훌륭하다고 생각할 때 그가 실패할 경우를 꼬집어서 곤란하게 할 필요가 없다. ……
용이라는 동물은 유순해 길들이면 탈 수 있다. 그러나 턱밑에 직경 한 자쯤 되는 역린(逆鱗)이 있는데, 만약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어, 설득하려는 자는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어야만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1
야심가가 조직원을 대하는 태도는 대부분 전략적인 것이다. 말 잘 듣는 사람 골라서 일 많이 시키기, 충성 경쟁 유도해서 일 많이 시키기, 압박하고 질책해서 일 많이 시키기…….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소설에는 조직의 성과를 높이기 위한, 조직원을 ‘프로’로 만들기 위한 관리자의 대사를 한 페이지 이상을 할애해서 알려 주는데, 여기에 일부 소개한다. 정부 조직의 야심가들이 자주 쓰는 대사이기도 하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 하는 대사와는 차이가 있다.
넌 연봉이 얼마지? 넌 주무기가 뭐야? 이봐, 팀을 위해 사생활을 포기하는 건 당연하잖아! 이봐, 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는 게 말이 돼? 네가 그러고도 프로야? 너 이 세계가 얼마나 냉정한지 모르지? 너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지 모르지? 이봐, 기왕이면 멋지게 살아야지. 안 그래? 다들 똑같은 조건에서 너보다 더 열심히, 잘하고 있잖아! 그게 힘들어? 힘든 걸 이겨내는 게 프로야! 몸이 힘들면 정신력으로 이겨내! 올해 목표도 우승이다.*2
할 수 있다고, 힘내라고 격려하는 야심가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일 많이 시키고 성과를 높이기 위해 하는 것이다. 격려 대사 역시 같은 소설에 많이 제시되어 있다. 한 번쯤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이, 잘하는데.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아냐, 넌 할 수 있어. 좋아, 잘하고 있어. 밤중에 연습이라, 보기 좋은데? 오늘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넌 우리 팀의 대들보다.
유형과 관계없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한결같아야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유형은 특별한 만큼, 다음과 같은 태도를 추천하고 싶다. 가급적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야심가, 특히 충성심이 뚜렷한 야심가의 곁에서 실무자로 일하는 것은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어쩔 수 없이 가까워져야 할 때에도 절대로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자. 충성심―또는 야심―이 지나친 나머지 법령을 어기는 야심가가 종종 있었는데, 모두 끝이 좋지 못했다.
Ⅲ. 우국지사 유형
말 그대로 나라를 걱정한다. 조직과 사회 전체를 바라본다. 경영자가 아닌데도 조직의 비효율을 걱정하고, 하급 직원인데도 공직 기강을 걱정한다. 최근에는 고참과 관리자가 신참 직원에게 도제교육을 행하지 않는 것을 많이 걱정한다.
밤을 새워서라도 임무를 완수한다. 체력이 좋다. 마음속에 뜨거운 열정이 있다. 누가 권한 것도 아닌데, 신문, 잡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사회 문제와 정책 현안에 대한 전문지식을 쌓는다. 법령에 기반하면서도, 알아듣기 쉽고, 풍부하고 친절한 설명으로 민원인에게 행정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품이 높다. 신참 공무원들이 훗날 국가의 기둥과 대들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훈련을 중시한다. 후배들이 자신의 업무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실력을 향상시키기를 원한다. 선비 스타일이어서 묵묵한 편이지만, 신참들이 어려워하는 일에 있어서는 온정적으로 대한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하다.
안타깝게도 또는 당연하게도, 조직 안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극소수다. 이미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사람이 리더가 된다면 정부 조직에도 희망이 있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렇게 쉽게 굴러가는가. 이런 사람들은 겸손해서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 다만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 같아서 누구에게든 발탁을 받는다. 어진 리더 밑에서라면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있겠지만, 정부 조직의 관리자들은 야심가가 많아서 이 숭고한 선비형 공무원은 다른 평범한 인재와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 거대 관료제의 톱니바퀴 대접을 받는다는 말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공무원들 가운데, 우국지사 공직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공직자 가운데, 오차 하나 없이 이 유형에 합하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관광과 권(權) 주임님 칭찬합니다
관광과 권** 주임님을 칭찬합니다.
본인은 관광숙박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민원인입니다. **구청에서 최근 업무를 보면서 느낀 점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권** 주임님이 맡은 업무가 많아 항상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최근 업무 협의를 하러 수차례 구청을 방문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업무 상담을 하러 구청을 방문할 때면 앞서 온 민원인과 협의 중에 있는 경우가 많고, 어떤 경우엔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민원인도 있어 정말 바쁘겠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비교적 장시간 검토를 요하는 사항을 협의하던 중에 쉽사리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아서 시간이 날 때 좀 더 검토하시고 그 결과를 메일로 보내 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 결과를 기다리던 중에 ‘급한 내가 찾아가야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다고 설마 보내 주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보내 준다 하더라도 빠른 시일 안에 될까’ 하는 마음이 들어 내일 아침 일찍 방문해야지, 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메일을 확인하니 새벽 1시가 넘어서 보낸 메일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까지 민원인을 위해서 업무를 했다니!
이런 공무원도 있구나, 쉬운 말로 철밥통이니 하는 얘기들을 하는데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도 있구나, 생각하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가만히 혼자만 놀라고 있을 게 아니라는 생각에 어디 이런 일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찾아보다가 이곳에 글을 올립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상담 중에 관련 업무에 해박한 경험과 지식으로 친절하게 안내하던 모습도 떠올라 더욱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권** 주임님 감사합니다.
2015년 1월 14일. **구 열린 구청장실 홈페이지.
권(權) 주임님께 감사합니다
때는 2013년 2월. 저는 그해 그달 1일 금요일에 ***동에 발령을 받아 제설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제 전임자는 권 주임님이셨고, 권 주임님은 저와 같은 날 발령장을 받아 ***동에서 관광과로 가셨더랬습니다.
바로 다음 날인 2일 토요일 밤에 저의 발령을 축복하는 듯 16cm의 눈이 예보되었고, 슈퍼컴퓨터의 예측력은 보기 좋게 적중하여 그야말로 함박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아직 동네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서 약간의 부담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전임자인 권 주임님이 저와 함께 작업을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라고 말씀드리면서도 저는 내심 ‘오케―’를 외치며 쾌재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아직 동네 지리도 모르는 채로 제설작업을 한다는 게 걱정이 되었는데, 마음의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었습니다.
제설작업은 저녁에 시작했는데, 눈은 다음날 아침까지 끊이지 않고 내렸습니다. 관내를 두 바퀴 정도, 그리고 경사지는 서너 번 정도, 그리고 당시 V.I.P. 사저는 경찰의 요청으로 특히 신경 써서 열심히 작업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과는 별개로 대자연은 9급 공채생에게 끊임없이 눈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대자연의 은총으로 놀랍게도 하루 만에 관내의 골목길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저는 권 주임님께 뭐 대단한 혜택이라도 드리는 듯 생색 내며 말씀드렸습니다.
“주임님, 이제 그만 들어가시죠.”
그 시각이 이미 새벽 1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권 주임님은 “아닙니다. 조금만 더 보고 갈게요.”라고 말씀하시며 다시금 제설작업을 진두지휘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소속이 ***동이 아님에도 권 주임님의 책임감은 확고해 보였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함께 일했던 제설작업 용역 직원들도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결국 권 주임님의 귀가 시각은 새벽 5시경.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직원들로부터 듣게 된 권 주임님의 이미지는 모범생, 성실처럼 지극히 긍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묘한 개성 내지 엉뚱한 매력에 대해서도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권 주임님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는 대단했습니다.
그 시절 스스로에게 물어 봤습니다. 나는 떠나 온 부서의 임무를 위해, 그리고 후임자를 위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쉽지 않다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고 수양해야겠죠. 이 감사노트는 권 주임님께 드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런 모범이 되는 일은 전체 직원님들, 간부님들, 그리고 구청장님께서 아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 쓰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시절, 감사했습니다. 쑥스러워서 한 번도 말씀드리진 못했지만, 도움을 받았던 일에 감사드리고, 무엇보다 권 주임님의 행동이 후배 직원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기에 특히 감사드립니다.
사심 없이 열심히 일하시는 만큼 승승장구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2015년 3월 12일. **구 사내 인트라넷 감사노트.
*1 한비자. 2016. ‘한비자: 법치의 고전’. 김원중 譯. 휴머니스트. pp.193-197.
*2 박민규. 2003.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pp.251-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