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은 정말 여섯 시에 퇴근하는가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그렇게 말했다. 한국에서는 그의 사상이 ‘미움받을 용기’라는 일본 저자들의 책으로 소개되어 국내 독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모든 이들이 이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조직에 소속되어 일하는 사람에게 인간관계는 하찮은 것’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일은 인간관계에서 시작해서 인간관계로 끝나는 것 같다’는 신참의 말을 자주 들었다.
껄끄러운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고 상대가 내 말을 오해하니, 어쩌겠는가. 서로 마음이 합하지 않으니, 상대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게 되고, 회식에 참여하기 싫어지고, 인간관계뿐 아니라 일마저 헝클어지게 되는 것이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먼저 감안해야 할 점이 있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특급 인싸력’을 갖고 있는 ‘핵 인싸’만이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 조직에서는 기본적인 예의와 공손한 태도만 갖추고 있어도 무방하다. 억지로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제때에, 늦지 않게 할 줄 알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다.
능력보다 평판이 중요하다고 역설한 책 ‘능력보다 큰 힘, 평판’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단언컨대 인사만 잘해도 성공한다’고 주장한다.*1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변 사람 모두에게 인사를 잘하는 사람들 중에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공직 입문 이후에 우연히 이 책을 접했다. 그 당시에는 ‘인사가 중요하긴 하지만, 인사만 잘해도 성공한다니 과장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자의 생각에 온전히 공감하고 있다.
왜 인사만 잘해도 성공할까? 지금부터 잠시 동안만이라도 당신이 고참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제부터 고참의 시각으로 신참을 바라보자. 아침 08:40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았는데, 08:50에 출근한 신참이 당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평상시 태도가 그렇게 고분고분하지는 않았던 신참이었다. 하루쯤 신참에게 인사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고참인 당신이 큰 손해를 볼 것은 없다. 하지만 신참이 인사를 하지 않으니, 이런 생각이 든다.
‘저게 날 무시하나?’
당신이 자격지심을 갖고 있다면 이 생각은 다른 생각으로 이어져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주요 부서에 있지 않다고, 지금 저게 날 무시하나? 총무과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나였는데. 만년 주사보라고 지금 저게 날 무시하나? 신참 때 동기 중에서 두각을 보이던 나였는데. 민원대에 있다고 지금 저게 날 무시하나? 기획예산과에서 민간위탁 활성화 계획서를 기안했던 나였는데. 어제 민원인과 다퉜다고 팀장이 나를 나무랐는데, 지금 저게 그 일로 날 무시하나?’
이제 다시 신참인 현실로 돌아오자. 고참이 여러분에게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면, 여러분에게 이득 될 게 전혀 없다. 인사를 잘하면 이런 불이익을 받을 일이 없다. 신참이 사무실 저편 구석에 고참이 있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해 인사를 하지 못했다고 해 보자. 평소 인사를 아주 잘한다는 평판이 이미 자리 잡은 신참에게 이 일은 큰 문제로 확대되지 않는다. ‘미처 못 봤겠지.’ 상식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평소에 인사를 잘 안 한다는 평판이 형성되어 있는 신참이라면 이처럼 의도하지 않은 행동조차 나쁜 평판으로 다시금 축적된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건방진 놈이야.’ 인사하지 않는 행동은 고참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자신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주는 상대방에게 그 어느 누가 호의를 베풀 수 있을까? 성인, 군자가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다.
기왕에 인사해야 한다면 진심을 다해 인사하는 것이 좋겠다. ▲상대방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목소리로. ▲상대방의 눈을 마주치면서. ▲삐딱하지 않은 자세로 정중하게.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날 때마다.
상대방이 듣기 어려울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인사해 놓고서 상대방이 인사를 받지 않는다고 실망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상대방은 여러분이 인사하고 싶지는 않지만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인사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흐트러진 자세로 인사하면 상대방은 ‘저 신참은 인사를 왜 저렇게 하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날 때마다 인사하자. “아까 봤는데, 뭘 또 인사해?”라고 웃으면서 말하는 고참이 있을지언정 여러 번 인사한다고 시비 거는 고참은 없을 것이다.
같은 부서 소속인데, 사무 공간이 1층과 2층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해 보자. 여러분이 주로 1층에서 일한다 해도 가끔씩 2층에 올라갈 일이 있을 것이다. 2층 사무실에 들어서면서부터 큰 소리로 인사하자. 모니터에 얼굴을 박고 있던 고참이 여러분의 인사를 듣고 여러분의 얼굴을 쳐다본다면 한 번 더 인사해도 좋다. 더 좋은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여전히 모니터에 얼굴을 박고 여러분의 인사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고참이 있다 해도 실망하지 말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최선을 다해 인사했다면, 반응을 보이지 않은 고참들까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반응이 없다고 해서 인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반응을 보이든, 보이지 않든, 여러분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 인사하면 그만이다. 반응이 없는 고참조차도 여러분이 평소 인사를 잘하는 사람인지 잘 안 하는 사람인지 다 평가하고 있다.
어느 날, 어떤 고참과 다투거나 껄끄러운 대화를 나눴다고 해 보자. 다음 날 출근해서 그와 마주치게 될 때 여러분은 인사하기가 망설여질 것이다. 눈을 마주치기조차 싫을 수도 있고, 인사하기도 싫을 수 있다. 인사하고 싶지만, 고참이 받아 줄 것 같지 않아 불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먼저 인사하는 사람에게 좋은 인간관계가 주어지게 될 것이다. 상대가 인사를 받을지 말지 신경 쓰지 말고, 그저 내 할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그에게 인사할 것을 권하고 싶다. 여러분의 출근 인사를 받은 고참은 ‘어제 저 사람에게 싫은 말을 했는데, 그런 것 가지고 삐치지 않는, 성숙한 사람이구나.’ 생각하면서 여러분의 인사를 받을 것이다. 상대방이 멋쩍게 받든 쾌활하게 받든 개의치 마라. 껄끄러운 고참에게 아침 인사를 건넨 여러분은 이미 성숙한 사람이다.
안다. 조직에는 가끔 이런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음을. 여러분의 성숙한 대응에도 끝내 무례한 극소수의 사람들은 여러분이 아니더라도 조직원과 세상이 그를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조직원과 세상이 여러분을 높여 줄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해야 할 도리만 다하면 그만이다.
알고 있겠지만,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 역시 인사 못지않게 중요하다. 고마운 일이 있으면 고맙다고, 미안한 일이 있으면 미안하다고 말하자. 고맙다는 말은 자주 해도 된다.
1년 차, 그야말로 신참이었을 때 선임과 사소한 일로 사이가 살짝 험악해진 적이 있었다. 다툰 것은 아니었지만, 민원인과 사회복무요원을 대하는 태도에 견해 차이가 있었다. 그 선임은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었고, 나는 그 노하우가 내가 생각하는 예의와 약간 거리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선임으로서는 내가 건방지게 느껴졌을 것이다. 불편한 사이가 하루 이틀 이어졌다. 사이가 묘했을 때 그 선임이 직원 모두에게 음료수를 돌린 일이 있었다. 나는 선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화사한 미소는 아니었지만, 그가 ‘뭐 이런 것 가지고.’ 하는 표정을 지었고, 서먹했던 사이가 다시 평상시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임이 성숙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고맙다는 인사를 계기로 괘씸하게 여겼던 마음을 풀었던 것 같다.
남발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미안하다는 말도 인간관계에 있어 무척이나 핵심적인 대사 같다. 미안하다는 말은 어렵다. ‘미안하다는 말은 어려워(Hard to say I’m sorry)’, ‘미안하다는 말은 참 어려운 말인 것 같아(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팝송의 제목으로도 쓰일 만큼, 미안하다는 말은 하기 어려운 말인 것이다. 미안한 상황에 대해 스스로가 공감하지 않으면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하면 자존심이 꺾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미안한 일이 있을 때면 놓치지 말고 꼭 하는 것이 좋다.
동 주민센터에서 청소 담당을 맡았을 때였다. 당시 내가 소속된 동 주민센터에서는 주민들이 참여해서 분필과 스프레이로 낙서하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축제 담당이었던 고참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때는 가을이어서 은행나무 열매가 도로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마다 고참은 내게 은행나무 열매를 치워 줄 것을 요청했다. 나 역시 그의 요청을 받을 때마다, 구청에서 업무 위탁을 받아 청소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용역업체에 연락해서, 조치할 것을 요청했다. 개인적인 성향이지만, 나는 정형적인 업무는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편이다. 고참의 청소 작업 요청이 있을 때마다 청소 용역업체에 연락해서 처리를 요청했을 뿐, 별도의 관심과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내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자, 고참이 회의 중에 문제를 제기했다. 원활하게 축제를 준비하고 열기 위해서는 전 직원이 도와줘야 하는데, 직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참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야 가운데에는 청소 업무도 있었다.
자리에 돌아와서 생각해 봤다. 내가 뭘 안 도와드렸을까.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나. 전자문서함에서 낙서 축제와 관련된 문서를 찾아봤다. 문서를 보고서야 알았다.
나는 이 축제가 나무판자를 세워 그곳에 낙서를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낙서장이 아스팔트 도로였던 것이다. 그래서 고참이 아스팔트 도로에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 그토록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이었다. 축제가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낙서를 해야 할 도로가 깨끗해야 하는데, 도로가 은행으로 지저분해지니 마음이 급해진 것이었다. 청소 담당인 내가 공무관, 공공근로 참여자, 사회복무요원을 동원해서 물 양동이, 바닥 솔 같은 확실한 연장으로 시원하게 물청소를 해 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용역업체에 전화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니, 서운했던 것이다.
고참을 다른 자리로 청해서 차분하게 말했다. 우선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나무판자를 세워 거기에 낙서하는 줄 알았지 아스팔트 도로에 하는 것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고참은 사과를 받아 주면서, 이 일로 서운했던 마음을 짧고 굵게 털어놓았고, 축제가 며칠 남지 않았으니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을 전했다. 쿨하신 분이었다. 서먹했던 사이가 다시 평상시로 돌아갔다.
‘아니, 낙서장이 아스팔트 도로인 줄 내가 무슨 수로 아나요. 난 전혀 몰랐다고요. 사전에 공지 들은 것도 아니고.’ 이렇게 목소리 높이고 조직원과 부딪혀 봤자 모두에게 손해다. 축제를 앞둔 담당이 얼마나 바쁘고 마음이 급한데, 잘잘못을 규명해서 무엇 하랴. 동료로서, 시민과 조직을 위해 애쓰고 있는 담당자를 많이 생각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이익이다. 나도 여러분도 언젠가는, 동료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스케일 있는 일을 맡게 될 것이다.
고참과 사이좋게 지내려면 Ⅱ에 계속.
*1 하우석. 2008. ‘능력보다 큰 힘, 평판’. 한스미디어. p.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