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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Nov 01. 2019

대한민국 공직사회의 특징 Ⅱ

9급은 정말 여섯 시에 퇴근하는가

대한민국 공직사회의 특징 Ⅱ



‘신참이 뭘 알겠어…….’ 보는 마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직 경력이 10년, 20년, 30년을 넘어서는 대다수의 고참과 관리자는 안타깝게도 신참을 독립된 인격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문제 해결에 있어 의미 있는 식견을 갖고 결정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뭘 알겠니…….’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관리자들 스스로가 잘 모르거나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에 있어서는, ‘경력이 짧다 해도 담당자는 해당 업무에 있어 명확한 주관(主觀)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평소에는 웃으며 어린아이 취급하다가 어느 날에는 갑자기 정색하고 성인답지 못하다고 지적을 하는 것이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관리자들의 이러한 이중성을 대함에 있어 참고할 만한 인물이 ‘삼국지’에 등장한다. 제갈량의 숙적, 사마의(司馬懿)라는 인물이다.



조조의 신하였다. 조조의 곁에 순욱, 순유, 가후, 정욱과 같은 일급 참모가 즐비했던 시절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할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조조가 죽은 뒤 그의 후손인 조비, 조예, 조방을 보좌하는 권신이 되었다. 제갈량이 출사표를 올리고 위(魏)나라를 공격해 오자 이에 맞섰는데, 사마의가 실행한 대응은 주로 기다림과 방어였다. 마침내 다섯 번째 촉(蜀)나라의 북벌에서 제갈량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제갈량의 공격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고, 이후 위나라 바깥의 적과 내부의 정적들을 모두 평정했다. 그의 아들 사마소가 실질적으로 삼국을 통일했고, 그의 손자 사마염이 새로운 통일 제국 진(晉)을 세웠다. 삼국 통일의 위업은 유비, 조조, 손권, 제갈량과 같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웅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마의를 조명하는 책이나 드라마에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수식어를 붙인다. 삼국지 최후의 승자, 사마의.


여기에서 사마의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이유는, 사회 초년병 시절, 그가 조직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며 일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조직에서 함부로 나섰을 때 조직원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잘 알고 있었다. 9급 공채생인 여러분이 사회 초년병 시절에 처하게 되는 환경이, 제갈량보다는 사마의의 그것에 가깝다는 사실도 이 기회에 함께 알아 둔다면 좋을 것 같다. ‘결국 이기는 사마의’라는 책의 일부를 소개한다.


어느 성공한 기업 총수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약 당신이 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 사원이라면 3년 동안 어떠한 제안도 하지 마라. 착실히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3년 후에도 제안은 되도록 자제하라.”고 말이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회사에 막 입사했을 때는 회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다. 따라서 제안을 한다 해도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다. 둘째, 당신이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좋은 제안을 하더라도 순유, 가후, 정욱과 같은 고참들을 어찌 당할 수 있겠는가? 또 다른 동료들을 어떻게 상대할 수 있겠는가? 셋째, 사장은 당신을 어떻게 보겠는가? 젊은 친구가 제 잘난 머리를 자랑하고 싶구나, 공명심과 출세욕이 강하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 예외도 있을까? 당연히 있다. 제갈량은 유비 밑에서 계책을 내고 자신을 드러냈다. 여기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유비는 제갈량을 찾아가 임원이 되어 달라고 청했다. 하지만 조조는 사마의를 하급 사무직에 데려다 앉혔을 뿐이다. 둘째, ‘유비의 공장’은 규모가 작고 인사 관계가 단순했다. 그런데 ‘조조의 회사’는 규모가 크고 인사 관계가 복잡했다. 셋째, 제갈량의 사장 유비는 인덕이 많기로 유명했다. 그에 비해 사마의의 사장 조조는 질투와 의심이 많기로 유명했다.

이런 회사에서 이런 사장에게 제안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 기회를 통해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사장의 성격을 확실하게 파악하면서 실전 경험까지 쌓는 편이 실속 있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1


‘유비의 공장’과 ‘조조의 회사’ 가운데 정부 조직은 조조의 회사에 더 가깝다. 규모가 크고 인사 관계가 복잡하다. 관리자들 역시 여러분이 마음껏 날개를 펴기보다는 어디 가서 사고 치지 않기를 더 바란다. 거대 관료제에서 여러분은 하급 신참 직원일 뿐이다.


신참에게 필요한 일은 조직에 무난하게 적응하고, 업무 능력을 높이고, 인간관계를 잘 맺는 것이다. 거대 관료제에서 상계연(上計掾·지금으로 하면 지방 통계청 공무원이랄까)이라는 하급 관리로 일을 시작한 사마의는 그렇게 했다. ‘니들이 뭘 알겠니…….’라고 생각하는 거대 조직을 향해 “아니에요. 나 아는 거 되게 많아요.”라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견제만 받을 뿐이다.



제갈량과 같은 인재가 되고 싶은가? 여러분의 조직은 여러분을 삼고초려한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조직이 여러분을 일급 참모로 대우해 주기 전까지는 날개를 펴지 마라. 그럼 조직이 여러분을 일급 참모로 대우해 준 다음에는 날개를 펴도 된다는 얘기일까? 그것도 아니다.


함부로 날개 펴지 말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아 겸손 또 겸손하길 권한다. 날개도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과 사업을 펼칠 때에만 펼치길 권한다. 국가와 국민에게 큰 도움은 되지 않고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취향에 맞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만 날개를 펼친다면, 훗날 씁쓸한 처지를 맞게 될 것이다. 승진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조직의 업무 효율성은 낮아지고, 자신의 건강과 평판이 나빠질 것이다. 날개를 펼치는 과정에서 동료 직원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 훗날 그 상처를 되돌려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날개는 꼭 펼쳐야 할 때, 상관과 동료들을 돌아보면서 조심스럽게 펼치는 게 좋겠다.     


보면서도 ‘담당자로서 명확한 주관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 심리

여기에서 주의할 것이 있다. 여러분이 잘 모르는 일이나 여러분이 맡고 있는 업무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제안을 가급적 자제할 필요가 있다 해도, 여러분이 담당하는 업무―특히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명확한 주관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성공한 기업 총수가 신입 사원은 ‘착실히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의 규정을 숙지하는 일, 현황과 문제점을 인지하는 일, 대책을 강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 각 대안에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 분석하는 일, 결과적으로 어떤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 법과 대의명분에 합당한 것인지 판단하는 일은, 담당자가 착실하게 맡아서 해야 할 일이다.


여러분이 맡고 있는 업무에 있어 어떤 문제점이 있고, 어떤 개선안이 필요한지 상관이 묻는다면, 여러분은 최선을 다해 분석해서 상관에게 이를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질문이 상사가 여러분을 테스트해 보기 위한 것이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의지를 갖고 여러분에게 지혜를 구하는 것이든 여러분은 성의 있게 답변해야 한다.

  

동 주민센터에서 광고물 업무를 맡을 때였다. 광고물은 일정 요건이 되면 구청 도시계획과에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은 뒤 광고물을 표시하는 상인들은 극소수다.


전수조사를 한 적이 없기에 정확한 수치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직관적으로 느끼기에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간판이 100개라면 95개는 신고․허가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광고물이다. 워낙에 불법광고물이 절대 대다수이기 때문에 법 위반을 지적해도 광고주들―술집 주인, 식당 주인, 카페 주인들―은 쉽게 순응하지 않는다.


“아니, 그럼 저 앞에 있는 간판들은 뭐예요?”

“저 간판도 위법 간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한테만 뭐라고 그래요?”

“민원이 들어 왔습니다.”

“민원이 들어왔다고 우리만 단속한다고? 그럼 나도 이 골목길 간판들 다 민원 집어넣을 거야!”



단속 나가면 거의 예외 없이 반복 재생되는 레퍼토리다. 만약 민원과 관계없이 동 주민센터 광고물 담당자가 법을 위반한 광고물을 자발적으로 조사해서 법 규정에 따라 간판 철거 조치를 진행한다면 매일 하루 8시간, 오로지 그 일만 해도 1년 안에 일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동 주민센터 광고물 담당은 일반적으로 청소, 수방, 제설, 순찰 등 다른 업무도 많이 맡는다.


‘담당자로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책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좋을까(누가 묻는 것도 아니고, 내게 해결할 만한 권한도 없는데, 왜 이런 걸 생각하고 있을까).


우선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에서 신고․허가 요건을 완화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현재 간판 설치 상황이 무법천지에 가까우니, 법 위반자를 양산하지 않는 방향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차라리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안전을 위협해서는 안 되고, 공유 재산과 사유 재산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방식으로 ‘안 되는 것 빼고 다 되는’ 네거티브(negative) 규제 방식을 생각해 볼 만하다. 의지가 있다면 페이퍼를 만들어 옥외광고물법의 주무부인 행정안전부에 건의해야 한다. 행정안전부에서 이를 수용할 것인지는 미지수다(바쁠 텐데 읽어 보기나 할지).


또는 일부 지역을 자율관리구역으로 지정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구청 도시계획과, 지방의회 의원과 깊이 있게 논의하고, 상인들의 호응을 토대로 이를 추진해 본다면 의미 있는 대안을 도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역시나 의지가 있다면 페이퍼를 만들어 행정안전부에 건의해야 한다.


이 생각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나와는 다른 논리를 갖고서 신고․허가 요건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담당자도 있을 것이다(뭐가 됐든 동 주민센터 광고물 담당의 의견을 궁금해 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안 물어본다).     


상급자가 여러분의 의견을 물어보는 때는 크게 세 가지 경우다. 첫째, 자신에게 해결책이 있는 경우다. 이때 상급자는 여러분의 의견에 별로 관심이 없다. 관심 없는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나면 자신이 갖고 있는 해결책을 말해 줄 것이다. 둘째, 뭔가 불편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자신에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다. 그때 ‘담당자로서 이 사안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는 말이냐.’라는 대사로 압박하는 것이다. 셋째, 문제 해결을 위해 겸손한 마음으로 담당자에게 지혜를 구하는 경우다(써 놓기는 했지만 이런 경우가 정말 있기는 있을까).


현실에서는 첫째와 둘째 경우가 대다수겠지만, 어떤 경우에서든 나 역시 여러분이 여러분의 업무에 대해 명확한 주관을 갖고 있기를 권한다. 그게 우리의 일이다. 여러분의 논리가 타당하다면, 여러분이 규정을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상급자에게 준다면,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받게 될 것이다. 규정을 꿰차고 있는 공채생은 절대로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앞서 말했는데, 그와 같은 맥락이다.


평소에는 ‘신참이 뭘 알겠어…….’라고 깔보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담당자로서 명확한 주관이 있어야 한다’고 압박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다. ‘아직은 신참이어서 모르는 게 많으니까, 담당자로서 명확한 주관을 가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훈련시켜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신참들을 대한다면 좋지 않을까. 이런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신참들도 고참들을 존중해 줄 것이라 믿는다.


이 대목에서 신참들도 기억해 둬야 할 것이 있다. 일을 배우려 하는 의지가 없어 보이는 신참에게는 고참이 도제교육을 행하는 데 부담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고참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싶다면 일을 배우고자 하는 신참으로서의 의지를 충분히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     


사내 정치

정부 조직 안에서 사내 정치는 어떨까. 승진과 전보에서 불이익받기를 원하는 조직 구성원은 없다.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조직 구성원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내 정치에 임한다(사내 정치에서 떨어져 사는 전략 역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사내 정치 중 하나다).


그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방식은 상사에게 잘 보이고 상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그 방식인 것 같다. 연장자를 존중하는 선한 마음 때문이기도 하고,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조직문화와 수직적인 조직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공채생들이 절대 대다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상사에게 일부러 밉보이려 노력하는 직원은 없다.


‘정승 집 강아지가 죽으면 사람이 몰려들어도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없다’는 말이 있다. 염량세태(炎涼世態).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지는 세태라는 뜻으로, 세력이 있을 때는 아첨하며 따르고 세력이 없어지면 푸대접하며 떠나는 세상인심을 이르는 말이다.


내가 소속되어 일하던 구청의 총무과장 딸이 결혼한 날, 예식장은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그를 총애한 구청장은 자신이 혼주인 것처럼 손님들을 정성스럽게 맞이했다. 총무과에서 가장 영민하고 민첩한 젊은 남자 직원 두 명이 카운터에서 축의금을 접수받고 있었다(천 원 한 장 비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정부 조직이든 총무, 인사, 감사, 기획, 예산 업무를 보는 부서는 주요부서로 인식된다. 권력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몰린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와 유력자에게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구청장의 아침 조깅 코스의 하천을 관리하는 간부는 매일 아침 구청장이 조깅하는 시간에 맞춰 하천을 순찰하고 정비한다. 구청장이 관광명소로 조성한 거리의 대형 인형을 매일 물수건으로 닦는 간부도 있었다. 전자 결재가 정부 조직의 공식 문서 생산 절차지만, 구청장에게 결재를 직접 받으려는 간부들이 구청장실에 줄을 서 있다. 무거운 사안이어서 그 맥락을 충분하게 설명하기 위해 대면 보고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얼굴 도장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 경우도 많다. 간부만 그럴까. 나를 포함한 하급 직원들도 간부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기는 마찬가지다. 간부들의 그것보다 그 정도가 조금 약하고, 덜 창의적일 뿐이다.


공무원 입직 후 네 명의 구청장을 만났다. 그 가운데 두 명이 징역형을 받았다. 천오백 명에 달하는 전 직원이 공손하고 극진한 태도로 그들을 대했다. 하지만 자리를 잃는 순간, 곁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들을 떠나갔다. 사적인 이유에서든 정치적 이유에서든 면회를 가는 직원들이 소수 있었겠지만, 감옥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때는 없다. 고인 물은 썩게 되어 있고, 절대 권력은 없다. 권력이 사라지면 곁에 있던 사람들도 다 사라진다.


여러분은 이러한 세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속되고 저급하게 느껴지는가. 그렇게 느껴진다면 자신이 이러한 태도를 갖지 않으면 된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는다면, 그리고 자신의 고유 업무에 충실히 임한다면 여러분이 속되고 저급하게 여기는 세상에서 발을 뺄 수 있다. 무엇보다, 권력자에게 사람이 몰려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과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권력에 흔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맹상군 열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2 풍환이라는 빈객이 맹상군에게 한 말이다.

  

“부귀하면 사람이 많이 모여들고 빈천하면 친구가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주군은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비비면서 다퉈 문 안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문 뒤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며 시장을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미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내심 손에 넣고자 했던 물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군이 지위를 잃었을 때 빈객들이 떠난 것을 원망하면서,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것을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주군은 이전처럼 빈객들을 잘 대우하면 됩니다.” *3


이를 읽고, 세태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자신을 성찰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 이유가 혹시 내 지위 때문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만 해 본다면, 스스로의 행동을 조심하게 될 것이고, 지위를 잃어 사람들이 모두 떠나갔을 때에도 크게 상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9급 공채생인 우리가 하급 공무원인 것은 영원히 변함없겠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계급이 올라갈 것이고, 휘하에 사람들을 거느릴 수 있으니, 이를 미리 생각해 둔다면 공직 생활에 보탬이 될 것이다.


사내 정치와 관련된 공무원 조직의 특징 중 또 다른 하나가 무척이나 많은 가십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소문을 생산해 내고 이 소문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간다. 청사 안의 복도, 계단, 빈 회의실에서 이를 교환한다고 해서 이를 ‘복도 통신’이라고도 한다. 알고 있겠지만, 아름다운 소문은 쉽게 유통되지 않고, 나쁜 소문은 번개처럼 유통된다. 이는 우리 스스로가 아름다운 소문보다 나쁜 소문을 더 많이 소비하기 때문이다.


선택의 문제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십을 소비하지 않을 것을 권하고 싶다. 원래 남 얘기, 남 걱정은 너무 재미있는 것이어서 끊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가십 소비도 중독이다. 가급적이면 공직 생활 초기에 이에 중독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꽃꽂이, 살사 댄스, 클래식 기타, 영어, 스페인어, 탁구. 가십보다 의미 있는 활동이 세상에 널려 있으니, 이를 선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 같다.     


한국 공직사회의 또 다른 특징으로 형식주의와 더딘 변화를 들 수 있다. 변화를 불안하게 여기고 관행과 선례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는 것, 실질적인 법의 취지보다는 형식적인 법 조문을 우선시하는 일, 실제 활동보다 문서를 중시하는 일,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초등학생을 돕는 것보다 우선시되는 출근 시각. 그런 것들이다. 이 부분은 너무나 많이 비판되고 있어서 따로 이야기하지 않겠다. 할많하않.     


좋은 점도 많다

한국 공직사회의 특징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얘기만 많이 한 것 같다. 좋은 점도 아주 많다.


기본적으로 구성원들이 선량하다. 타인의 마음에 공감을 못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을지언정 사악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가십을 많이 소비하기는 하지만, 누군가를 모함하려 악한 소문을 만들어 퍼트리는 사람도 못 본 것 같다(내가 못 본 것일 수도 있기는 하다).


무엇보다, 정부는 모범적인 고용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 이것이 가장 좋은 점이 아닐까. 절대로 밀리지 않는 월급부터 초과근무수당, 병가와 출산휴가를 비롯한 각종 휴가 제도, 요양휴직과 육아휴직을 비롯한 각종 휴직 제도, 인사고충 심사 청구 제도, 그리고 노후 준비를 위한 연금 제도까지. 규모가 크지 않은 민간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서민 노동자들이 무척이나 갖기를 원하는 제도들이다.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만, 직장문화 때문에 실제로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을 것이다. 정부 정책의 수혜가 민간기업보다 정부 조직에 먼저 전달되는 느낌을 불편해 하는 국민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서민 노동자들의 마음을 살펴 헤아린다면 더 좋은 공직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이들이 ‘법과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정부 조직이라면, 자신들이 공표한 법과 정책에 어긋나는 일을 해선 안 된다’고 여길 것이다. 정부 조직 역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규정하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당위적인 인식은 여러분의 직장 생활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나와 여러분이 가해자가 될 수 있음에도 주의해야겠다. 우리가 비록 계급은 낮지만, 맡은 업무에 따라 사회복무요원, 공공근로 참여자, 공무관의 복무를 관리해야 할 수도 있다. 그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회사 안팎에서 어르신과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부터 재활용 폐기물 분리 같은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내가 성인, 군자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이 길이 참 부담스럽다. 하지만 공직자라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당위적이다. 그리고 온 국민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음을 기억하자. 앞서 말하지 않았는가. 국민들은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수준의 공직자상을 여러분에게 바라고 있다.




*1 친타오. 2018. ‘결국 이기는 사마의’. 박소정 譯. 더봄. pp.102-103.

*2 ‘사기’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민낯이 철저하게 드러나 있는 인간학의 보고(寶庫)다. 또한 군주와 참모 사이에 벌어지는 긴장과 갈등이 그 어떤 예술 작품보다 극적으로 드러나 있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하급 공채생이라 해도 관료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3 사마천. 2018. ‘사기 열전 1’. 신동준 譯. 올재. pp.257-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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