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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Sep 09. 2022

책머리에

주민등록,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동 주민센터에서는 주민등록 업무를 ‘민원대의 꽃’이라 부릅니다. 화려해서라기보다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서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겠죠. 민원 업무의 토대가 된다는 취지라면 ‘민원 업무의 근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주민등록 시스템에서 실제로 일 처리가 되는 모습을 모니터로 보고 있다 보면, 그 일 처리가 무척 화려해서 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결국 주민등록 일은 민원 업무의 뿌리, 줄기, 꽃 모두에 해당합니다. 민원 업무의 큰 토대가 되는 일이 바로 주민등록 업무입니다.


주민등록 제도가 ‘병영 국가’ 체제하에서 간첩을 분간하고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의도로 시작된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개인 정보를 보호하면서도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더 좋은 대체 수단은 없는지 꾸준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담당자 입장에서는 대체 제도가 도입되기까지 현행 제도를 충분히 익혀 국민들에게 행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나는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이 제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주민등록 업무 수행을 거부합니다!’ 선언한다 해도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말이죠. 게다가 이미 건강보험, 국민기초생활보장 같은 복지 제도 역시 이 주민등록 제도를 기반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주민등록 제도가 무척 복잡하고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안 믿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리고 주민등록 일을 처음 맡은 실무자 절대 대다수가 이 제도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채 민원대에 투입됩니다. 그때그때 민원을 처리하면서 전임자에게 도제식 교육을 받습니다. 저는 이것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궁즉통, 궁하면 통한다는 식으로 일을 처리할 수는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닥치는 대로 익히게 된 지식과 기술이 자신의 몸 안에서 어느덧 체계를 잡아 고수의 반열에 오르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국가 정책의 기반이 되는 주민등록 제도를 익혀야 하는 실무자들을 아무런 교육 없이 곧바로 민원대에 투입하는 일은, 군사훈련을 제공하지 않고 소년병을 최전선에 투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게다가 현대 행정의 최일선에 악성 민원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알고 보면, 지식과 정보는 우리에게 이미 다 공개돼 있습니다. 주민등록법, 주민등록 사무편람, 주민등록 질의․회신 사례집,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해외이주법,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국적법, 출입국관리법, 동 주민센터에 전해 내려오는 업무 매뉴얼, 전임자가 말로 알려 준 이야기, 진위와 경로는 알 수 없지만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어느 누구도 이 모든 근거 규정과 정보를 다 끌어와서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편안하게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민등록 제도를 최대한 쉽게 설명하고 실무의 ‘원리’와 ‘큰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이것이 이 책의 목적입니다.


이 원리와 큰 그림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주민등록 실무를 못 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날 동 주민센터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왜 가족관계증명서에 있는 이름하고 등본에 있는 내 이름이 다른 거야?” 거세게 항의하는 민원인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이 원리와 큰 그림을 알아야 합니다.


주민등록 일을 하다 보면, 낯선 용어와 낯선 상황을 접할 때 당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때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첫째, 가족관계증명서에 기록된 정보와 주민등록표에 기록된 정보가 다를 때, 그리고 이에 대해 항의하는 민원인을 만났을 때 당황하게 됩니다. 둘째, 재외국민, 해외이주, 국외이주, 현지이주, 재외국민 출국…… 이런 낯선 용어들을 들었을 때 당황하게 됩니다. 셋째, 구 원장, 그러니까 옛날 종이 주민등록표를 찾아 달라는 민원인의 요구를 받을 때 당황하게 됩니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어 보면 담당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이 책으로 주민등록 일은 이제 만사 오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의 주민등록 제도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도는 복잡하고, 민원인은 강경하고, 상급 기관은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해 주지 않고, 고참과 관리자는 무뚝뚝한, 이 차가운 현실에 내던져진 9급 공채생들에게, 이 책이 말 걸기 편한 선배처럼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주민등록 일을 처음 맡은 신참 담당자를 대상으로 썼습니다만, 전입, 인감, 등․초본, 가족관계증명 등 다른 민원 업무 담당자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주민등록 일을 전반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공무원과 일반 시민, 그리고 민원대 공무원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공시생에게도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미처 살피지 못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강호 제현과 재야 고수의 날카로운 지적과 건설적인 제안을 기다리겠습니다.


이 책을 쓰는 데 꼭 필요한 조언을 해 준 공직 사회의 스승들과 동료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매일 점심시간도 없이 전국 일선 담당자들의 질문에 숙련된 전문 지식으로 정성 들여 답변해 주는 행정안전부 콜센터 상담원과 주민등록 시스템 상담원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최고 의사결정권자 의전, 정책결정, 인사, 감사, 총무, 기획 못지않게 중요한 일을 맡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전국의 모든 민원 업무 담당자에게 전우애와 함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9급 공채생 김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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