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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Nov 27. 2021

왜 글을 쓰나요?

Writing makes you free!

정신없이 벌려 놓고 살고 있었다. 배도 다 땄고 그 바쁘던 호박도 말라 비틀어진 덩굴만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는데 할 일은 어디서 자꾸 생겨나는지 정신없이 시간을 돌리고 있는 시골집 풍경은 아직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나고 자란 나의 고향. 모든 기억을 꺼내 아주 한가로웠던 순간을 골라내려 해도 쉽게 찾을 수가 없는 건 늘 바빴긴 때문일 것이다. 외면한 적도 있다. 모른 척 하는 거다. 그땐 부모도 젊었기에 나의 외면은 그리 큰 흉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늙은 부모의 바쁘고 힘든 일거리를 외면하는 자식은 뒷담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남의 말이고 내가 신경쓸 건 없다. 내가 가장 신경 쓰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다. 부모에 대한 나의 마음이다. 마음이 생각이 내가 흩뿌려 놓은 나의 사유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그 사실이 나를 움직이고 있다.


사유의 패턴을 바꾸는 일이다. 불안으로부터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충동적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글을 쓴다는 건 내 안에 감찰사를 안착시켜 나의 생각과 그것의 결과로 이뤄지는 나의 행동을 적어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일 것이다. 생각만으로 그치는 수많은 일들을 실천할 수 있게 돕는 일을 하고 있는 글쓰기는 글을 짓고 글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자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놓는 경이로운 역할을 하고 있다 감히 말하고 싶다. 고전의 말을 빌려 천지에 직립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입신의 위세를 어찌 몸에만 둘 수 있을까. 정신을 세우고 마음을 세워 결국에 실천하는 데 힘을 보테고 그러하도록 수련하는 일이 글쓰기의 가장 큰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거다.


호박밭 옆에 아주 큰 덩이를 모두 무를 심었었다. 무가 작을 때 연한 열무를 뽑아 팔았다. 그 무가 커서 김장철에 쓰이는 큰 무가 됐다. 무가 쩍쩍 갈라지고 그 쓸모가 변변치 않게 되자 엄마는 모두 뽑아 씻어 놓고 단단한 무를 손으로 썰어 무말랭이를 해서 팔겠다고 한다. 아이구. 그냥 대충 골라서 팔고 파쇄시키라 말을 해도 그 아까운 무를 어떻게 그렇게 하냐며 신경쓰지 말라는 말만 돌아온다. 일주일 내내 그 단단한 무를 썰고 있을 엄마 모습이 떠올라 주말만 되기를 기다렸다. 언제부턴가 오른팔에 통증이 가시지 않아 걱정스럽지만 내 몸뚱아리보다 엄마 몸뚱아리가 더 연약할 터 그냥 대충 외면하며 수북이 쌓인 무가 엄마 손에 쓸려 없어지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느릇이었다.


토요일 오후, 출근했다 돌아온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나는 가평으로 차를 몰았다. 어디를 가시나. 길바닥에 차가 한가득이다. 어차피 주말마다 밀리는 서울춘천간 도로는 이날도 쉽게 길을 내어줄 것 같지 않았다. 느슨하게 마음을 먹고 노래보다는 길게 이어지는 강연을 골라 가는 내내 틀어 놨다. 고미숙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며 글쓰기 그 거룩함에 대해 느껴가며 적당한 속도로 운전을 했다. 나의 적정 속도는 80Km/h.


운전하는 내내 '왜 글을 써야 하는가' 열변을 토하는 선생님의 말씀이 잔상으로 남아 지금도 난 그녀의 논리에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다. 생명의 에너지는 창조하도록 만들어졌고 우린 살아가면서 매 순간 창조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글을 쓰면서 나이 들어감에 대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고 말씀하신다. 고전을 통해 자신은 다시 태어났고 읽는 행위는 곧 쓰는 행위로 이어진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주변에 있는 수 많은 읽을 거리. 죽을 때까지 읽어도 다 읽지 못할 그 많은 읽을 거리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줬다는 말에서 잠깐 멈췄다. 일을 하다 그만두면 늙는다고 하는데... 할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했다.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우린 끝없이 할일을 찾아 헤매게 되는 것. 그렇다면 글을 읽고 쓰고 하는 일을 업으로 하고 계시는 선생님은 죽을 때까지 할일이 넘쳐나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는 중에 가평에 도착했다. 도착한 집은 어수선했다. 빨리 추워진 날씨 덕분에 김장까지 서두르고 계셨다. 내려오길 잘했다. 저녁 늦게서야 재료 준비를 끝낸 우리는 저녁밥을 먹고 엄마 아빠 작은오빠 그리고 나 이렇게 달려들어 김장을 끝낼 수 있었다. 늦은 저녁 수육을 썰어 배추 잎에 쌈을 싸서 먹는데 힘들었던 과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모처럼 혼자가 된 나는 느긋하게 소주를 곁들이며 홀짝이는데 기분이 무척 좋았다. 정말 미쳤다. 그러는 중에도 글쓰기가 준 행복을 생각하는 나는 그냥 살아지는 삶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생각했다. 삶에 어떤 목표가 있어야 하나요. 그냥 살아가다 좋아하는 것도 만나고 해야 할 것도 만나고 해내고 싶은 일들도 만나며 살아지는 건데 매 순간 앞에서 선택을 주저하는 나는 아직도 그냥 살아지는 삶이 멀기만 하구나 싶다.


그래도 다행인건 읽는 것도 쓰는 것도 그리는 것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좋은 인연이니 난 행복한 부자가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싶은 장면은 늘어나고 쓰고 싶은 이야기는 내 안에 쌓일 것이고 읽을 거리야 뭐 두말하면 잔소리 아닌가 말이다. 다만 조급해 하지만 않으면 이 모든 것은 나의 우주를 만들 것임에 틀림없다. 멋진 일이다. 글을 쓴다는 건 반성하는 일이고 그 반성한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나만의 다짐이다. 그런 글들이 나를 세워줄 것이라 믿고 있다. 읽는 행위 또한 그렇다. 읽으며 생각하고 나의 사유로 끌어 들이는 것들은 글로써 배설되고 그림으로 행동으로 이어져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그 사유의 흔적이 족쇄가 되지 않도록 가능한 꿈을 꾼다면 충분히 나의 삶은 읽고 쓰고 그리는 행위를 통해 실천하는 지성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 싶다. 감사한 일이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자연을 닮아 가는 모습이 참 좋다.




집에 돌아오면서는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 새겨진 문구를 기억해본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오늘을건강하게살아가는방법

#나의사유패턴을바꾸는일

#나를움직이게하는게바로나일때

#두려움걱정으로부터자유로워지는방법

#그건실천하는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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