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날 때는 뒤돌아보지 말아야할텐데...
나는 누군가와 함께였다. 그녀의 얼굴이 기억나질 않는다. 나를 해하거나 공포에 떨게 하는 대상은 아니었다. 우린 세상을 떠났다. 그곳은 세상이 아니었다. 또 다른 곳이었다. 아주 조용했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이었다. 나의 지난 날들이 보였고 앞으로의 내가 보였다. 앞으로의 나는 평안하기만 했다. 해야 할 일도 없었고 하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 그런 날들이 펼쳐져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 집착하지 말고 떠나는 거야. 뭘 그렇게 전전긍긍 손에 못 쥐어 안타깝게 살아가는 날들을 안달하며 살아가. 그래 떠나자.
노승이 나타났다. 그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고 손에 무언가 꼭 쥐고 있었다. 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떠나고 있는 찰나에 서 있었다. 아무말 없이 그 손에 쥔 것을 가슴 깊이 숨기려는 행동을 의아하게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는 스님이었다. 회색 저고리에 머리는 털 하나 없이 반질거렸다. 행색은 노승인데 하는 짓은 손에 쥔 것을 잃을까 두려워 하는 영락없는 중생의 모습이었다. 그의 모습이 내모습일까 난 세상을 떠나기로 한 이 결심이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세상을 등지고 떠나려는 내 발걸음은 무언가 잡고 있는 듯 점점 무거워지고 다시 세상으로 발길을 돌리고 싶어하는 것처럼 주저하고 있었다. 노승의 손에 든 것은 욕망이고 욕심이고 그것을 그의 손에서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한 건 나였다. 세상과 멀어지려 하는 우리는 그런 것에 연연할 수 없고 또 그 땅에 발을 딛고 있는 나로서는 모두 나와 비슷한 처지여야 한다고 말이다. 노승은 점점 작아졌고 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진 후 홀가분하고 세상과 멀어진 지금의 또 다른 세상에 적응 할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쓸쓸한 어깨가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후회스러웠다. 그의 것을 빼앗은 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불안했다. 나도 빼앗길 것 같아서. 편안하기만 할 것 같은 세상을 향한 열망은 점점 불안으로 회오리치고 있었다.
"언니, 아무래도 나 안되겠어. 나 살아생전 아무것도 일군게 없잖아. 번듯한 직장하나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잖아. 나 이대로 세상을 떠나는 건 아닌 것 같아. 딱 10년이면 될 것 같아. 10년은 더 세상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아쉬움을 뒤흔들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날 힘들게 하는 것들 천지인 그곳이 세상 편한 이곳보다 나를 더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생각에 미칠 것 같았다. 그 아쉬움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세상에 남겨두고 온 것들이 모두 간절했다. 수평선을 보고 앞으로만 고요하게 흘러가는 인생이 내게 휘몰아치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들 다른 인생을 살아가지만 뭐하나 힘겹지 않은 게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움켜쥔 것을 놓을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움켜쥔 게 무엇인지 알아보려 노력해야 후회없을 것 같다 말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등을 토닥거린다. 꿈이었을까. 난 정말 다른 세상으로 가려 했던 걸까. 눈을 어렵게 떴을 때 아직 어두운 새벽이었다. 몸이 무겁다. 잠꼬대를 했을까. 모든게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난 누군가와 편안한 세상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건 분명 현실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아쉬움이 많아서 떠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큰일 날 뻔했다고 말한다. 무슨. 그냥 꿈이었는데.
세느 강변의 모습을 몽환적으로 표현한 르누아르의 잃어버린 작품이다. 르누아르의 전시회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이 그림은 처음이었다. 다른 어떤 작품보다 더 눈에 들어와 구글에 검색을 하니 어느 여성이 벼룩시장에서 7달러를 주고 모조품으로 생각하고 구매했는데 알고보니 경매가 10만달러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의 진품이었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것 같은 일이 벌어진 거다.
세상을 떠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났지만 그 느낌은 아주 생경했다. 세상을 떠나는 나는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그 아쉬움을 생각하니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느낌 만으로 그려내는 그림처럼 모든 것이 살아 숨쉬는 것 같다. 형체가 없어도 모든 것이 살아 숨쉬는 것 같은 느낌이라니... '정신차려' 누군가 등을 탁 치는 것 같다. 지금에서야 노승이 움켜쥔 것이 욕망도 아니고 욕심도 아닌 그저 아쉬움이었다는 걸 알 것 같다. 난 물질보다 정신을 움켜쥐고 싶다.
늘 같은 공간, 늘 같은 자리, 늘 같은 모습이지만 오늘도 아주 작은 변화의 움직임을 느낀다.
#세상을떠날때아쉽지말아야할텐데
#그걸꿈에서느끼고나니이순간이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