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이또이 Nov 26. 2021

'열정'만 있고 '열중'은 없다면...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스르륵 열였다. 연회색의 하늘에 슬쩍 스치고 지나가는 붓자국마냥 그렇게 뿌옇고 조용한 아침이 마음에 내려와 앉듯 잔잔하기만 하다. 어느 인기척도 없이 멍하니 그렇게 멍하니 하늘만 보다가 고개를 떨구니 '아, 내가 아들방에서 잤지' 새삼 여기가 어딘가 조용히 놀란다. 체온은 높지 않은데 몸에서 열이 나는 것처럼 욱신거리고 땅으로 꺼지는 것처럼 늘어지는 살들을 움켜잡고 저녁 시간을 간신히 보냈다. 감기에 목이 붓고 달에 한번 그분이 찾아오시고 생각이 많았던 요즘 머릿속이 뒤엉켜 난장판인 내 정신 세계가 제발 좀 가만있으라 몸뚱아리를 내리 누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바람이 잘 통하고 조용히 누울 수 있는 곳으로 기어들어가 눈을 감았다. 화장실을 한번 다녀온 것 외에는 눈을 감고 있었으니 평소에 아이들 돌보느라 수도없이 뒤척거렸던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황송한 잠자리였다.


그런데 내 옆으로 어제의 나, 그제의 나, 그끄저께의 내가 주루룩 앉아 있다. 난 먼 산을 바라보는데 그들은 나를 바라보는 듯 뒤통수가 묵직하다. 그래 어서 말을 해봐. 나는 아들 책장에 넌지시 올려져 있는 국어사전에 손을 뻗었다. '열정'을 찾았다. 어떤 일에 쏟는 힘과 정성. 그 아래 '열중'이 눈에 띄었다. 한가지 일에 온 정신을 쏟는 것. 내 열정은 어디에 숨었고 또 내 열중하려 했던 마음은 산산히 부서져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에 시계들처럼 곳곳에 축축 늘어져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여럿의 나는 스물스물 기어 올라와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거봐. 뭐하러 그런 결정을 했어. 몸이 부서져라 해보지도 않고 열정이 있다 좋아한다 말할 수 있어? 그럴 거면 입다물고 있었어야지. 제일 싫어하는 말들을 쏟아내는데 인정사정 봐줄 것 없다며 고개를 들어 다 털어내고는 시원한 냉수 한잔을 들이켰다.


사실 최근들어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못마땅했다. 누군가는 열정이라 말했지만 초라하기 짝이 없는 허세였고 작은 나를 애워싸는 그럴듯한 설치였다 느껴지는 하루하루가 계속됐다. 무엇보다 힘든 건 생활이었다. 몸과 정신이 분리되 생활하기를 며칠이 지나자 몸에서 신호가 왔다. 육체의 무게보다 정신의 무게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하중을 누르는데 이러다가 이도저도 아닌 게 될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이제야 찾았다 생각하는 길에서 끝에 뭐가 있나 궁금했는데 쪼그라드는 내 형체는 아래로 향하고 있으니 답답했다.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 모래주머니를 하나씩 던져야 하는 열기구처럼 지금 당장 필요한 것에 열중하기 위해 몇 개는 버려야겠다는 생각에 달했다. 아쉬움에 몸서리쳤던 지난 시간들에 나는 끝까지 움켜쥐려 했던 어리석은 열정 팔로워였다.


열정이 없으면 죽는 것처럼 아팠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아이들을 키우며 집에만 있었던 나는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게 두려웠고 시간이 지나 관계에 허덕일 때는 그 공동체에서 멀어지는 게 초라했다. 그 혼란의 시기에 나를 건져 올린 건 그래도 남아있는 열정의 싹이었다. 그래서 더 소중했고 뭐 하나 버릴 수 없는 것들이니 끝까지 움켜쥐고 가려했던 게 숨을 헐떡거리며 산을 오르는 것처럼 무게가 느껴졌다. 시작 점에서의 내 모습과 지금 어느 지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열정들을 대하는 나의 모습은 아주 조금의 변화를 거쳤을리라. 조금이라도 향상된 역량을 살펴보자면 이대로 끌고 가는 게 맞다 생각하면서도 지금 이 시기에 집중해야 할 것들을 따져보니 답이 나왔다.


초심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잔가지에 가려 중간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원줄기를 잊었던 것은 아닌지 그 덤불 속을 헤집고 들어가 더듬으니 단단한 무언가 손에 만져진다. 그건 살기 위해 뭐라도 하자는 그 마음 하나였다. 일단 살아내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따라가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하고 싶은 것을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살아내는 일. 현실을 잊은 예술을 꿈꿨다니. 아주 터무니없다.


코로나 4단계 거리두기에 문을 닫았던 문화센터 수채화 반이 다시 개강을 했고 오랜만에 만난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그동안 그렸던 그림을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유화 그림 하나를 더 보여드렸다. 선생님은 괜찮다 말씀하시는데 내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집콕 생활을 하는 동안 마음속에서 수도 없이 지웠을 그림이다. 그릴까 말까 할까 말까. 말씀드리니 선생님께서 친한 친구 이야기를 해주셨다. 친구가 5년 넘게 그린 500호 사이즈의 파도 그림을 어느날 엎었다는 이야기였다. 친구는 속이 후련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는 울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 그림은 친구만의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이기도 했다는 거다. 속 사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고작 몇 개월 끼적인 작은 그림을 가지고 안달복달 했던 내가 너무 초라했다. 하지만 또 자극도 받았다. 그 친구는 오랜 시간 그려오던 그림을 엎고 나서 결론적으로 다른 그림을 성공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 긴 세월과 그림의 무게가 친구를 누르고 있었던 거다.


"선생님, 이게 뭐라고 자꾸 안에서 갈등하게 돼요. 이 그림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답답해요. 그런데 미련은 좀 남아요." 그런 생각이라면 엎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미련이 남으면 참고 해보라고 말씀하신다. 엎으면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고 계속 그려 완성하며 그것을 통해 또 배우는 게 있을 거라 하시면서... 자리에 털썩 앉아서는 캔버스를 무섭게 노려봤다. 그리고 엎을 기세로 붓을 가져갔다가 식물의 줄기를 완성하려 붓을 댔다. '오기가 발동된 건가요?' 물으시는데 피식 웃고 말았다. 난 그런 사람이다. 정을 주지 않은 것은 쉽게 버릴 수 있지만 그 어떤 이유에서든 내 정성을 오롯이 받은 것은 포기가 쉽지가 않다. 난 500호 사이즈의 그림을 엎을 자신은 없다. 그건 무너지는 느낌이었을까 창을 부수고 날아오르는 기분이었을까. 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내 문제가 세상 제일 어려운 일인 것처럼 느껴질 때 귀를 열어야 한다. 접시 물에 코박고 죽을 수도 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행위를 그만둔다는 건 마음을 접었다는 말이 아니다. 다시 시절을 잘 만나 그 마음이 이어지면 이어 붙여 잘 가도록 정성을 다하면 될 일일 것이다. 어제의 나의 선택은 잘 한 것이고 그 선택으로 오늘의 나를 안타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당장 할 수 없다고 발을 동동구르는 나는 아직 영글지 않은 알갱이일 뿐이다. 뭐라도 하려는 노력은 어제와 다름없이 진행되겠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마음이 덜 시끄럽다는 거다. 꾕과리 소리가 물러나니 징 소리가 크게 울리는 듯하다.




이전 27화 그대여 삼도천을 건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